청도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58)
두 밝음이 만나서 사방을 비추는 죽암 배명선(竹岩 裵命善) 선생의 이강재(离岡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풍각면 안산리 안태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이강재(离岡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죽암 배명선(竹岩 裵命善1659∼1728) 선생이다. 선생의 본관은 성주이며 대구에서 이곳에 정착한 성주 배씨 안태 마을 입향조이다. 평소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두터웠으며 주경야독하여 학문이 높았다.
성주 배씨는 경주 배씨에서 분파되었다. 시조 지타(柢沱)는 신라 6촌 중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의 촌장으로 신라의 개국 공신이다. 중시조 현경(玄慶)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옹립하는데 큰 공을 세워 개국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에 올랐다.
공의 10대조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 규(規)이며 9대조는 좌사간(左司諫)을 지낸 한(閑), 7대조는 장사랑(將仕郎) 경보(景輔), 5대조는 진사 진강(振綱), 할아버지는 찰방(察訪)을 지낸 영우(暎瑀)이다.
1948년에 창건한 이강재는 팔작지붕 목조와가 전면 4칸이다. 이강재 건립 공로기에 주간(主幹)을 한 동석(東錫), 효예(孝藝) 두 분을 비롯한 찬조자 31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 재실의 이름의 ‘离’는 ‘離’와 같은 자인데 이때 ‘리’는 ‘떠난다’는 것이 아니고 ‘의지하다, 만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서흥 김희달(瑞興 金熙達)이 1952년(壬辰)에 쓴 ‘이강재기(离岡齋記)’에 ‘이강’의 연유와 그 뜻을 설명한 바 있다.
“비슬산 남쪽에 안산동(安山洞)이 있으니, 골짜기가 깊고 아늑하며, 산이 사방으로 둘러 마치 팔을 모으고 맞이하는 듯한 형세이다. 이곳은 성주 배씨(裵氏)가 대대로 살아온 본향이다.
이곳의 내원(乃源), 한숙(漢淑) 등 종원들이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려 하지 않고, 다만 성심을 다하여 근본에 보답하고 화목한 속에 손님을 맞아들이고 어린 자손을 기르는 방도에 힘썼다. 그러는 중 마침내 여러 종원들이 힘을 합쳐 마을 동쪽에 재실을 지었고, 산 이름을 취하여 ‘이강(禽岡)’이라 편액하였다. 『주역』에 “두 밝음이 만나서(의지해서) 이(離)가 된다”고 하였으니, 대인은 밝음을 이어 사방을 비추는 법이다. 이 ‘이강’의 근원 또한 참으로 크다.“ 했다.
이처럼 ‘이강’의 정신은 ‘밝음은 혼자 빛나지 않는다. 앞선 조상의 밝음과 후손의 밝음이 서로 만날 때 가문의 정신은 오래 이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어서 기문은 계속된다.
”배씨 가문은 오래도록 유가의 순박한 가풍을 전하여 왔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쌓은 음덕이 많았다. 그리하여 마침 오늘에 이르러 여러 군자가 나와 뜻이 굳고 올곧게 되었으니, 어지러운 세속에 휩쓸려 어둠 속에 잠기는 법이 없었다. 긴 밤에도 촛불을 들고, 환한 대낮에는 그 광채가 더욱 빛나 한 고장을 환히 비출 만하였다. 배씨 가문이 밝고 문명한 기운을 이루는 조짐이라 하겠다.
이 재실을 이어 맡게 될 후손들이 세세토록 착한 행실로 선대의 뜻을 잇고, 집안에서는 효자(孝子), 순손(順孫)이 되며, 밖에서는 바른 사람, 단정한 선비가 된다면, 마음은 더욱 밝아지고 가풍은 더 분명해져 마침내 사방을 비출 만한 집안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어찌 이 재실의 영광이 더욱 빛나지 않겠는가.” 했다.
이날 후손인 정범(禎范, 문중 총무, 서부지부 향우회장) 씨가 문중의 자료를 기반으로 안내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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