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55)
문학과 덕행이 높았던 통훈대부 예예충(芮禮忠) 선생의 봉강재(鳳岡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이서면 대전2리에 자리 잡고 있는 봉강재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예예충(芮禮忠)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의흥(義興)으로 통훈대부였으며 유림들 사이에 문학의 본보기가 되었고 덕행 또한 높아 여러 사람들이 따랐다.
공은 고려조 찬성사(贊成事)로 부계군(缶溪君)에 봉해진 낙전(樂全)의 후예로 고조는 전라도 관찰사, 한성우윤(漢城右尹)을 지낸 수몽헌 승석(守夢軒 承錫), 증조는 경주부윤(慶州府尹)이었던 충년(忠年)이고 아버지는 어모장군(禦侮將軍)으로 대전리에 입향한 극양(克讓)이다.
1936년에 창건하고 1950년에 중건한 봉강재는 팔작지붕 정면 4칸이며 하당과 관리사가 있고 정면에 솟을 대문이 있다. 후손 두기(斗基)는 ‘봉강재기에 “옛날에 재실 이름을 현룡(見龍)이라고 한 것은 주역에 ’드러난 용이 밭에 있다[見龍在田]는 뜻을 취한 것이다. 다시 이 집을 중흥하였는데 터도 옛날 그대로가 아니고 이름 또한 고쳤으니 대개 선조의 묘소를 우러러 보면서 선조를 생각하고 몸을 닦는 곳은 산이 더욱 절실한 것이다. 이곳에서 글을 읽는 자는 독실하게 힘을 써서 창기(創起)하는 뜻을 저버리지 않는다면 문학이 다시 울연(蔚然)히 일어날 것이다. 그런고로 기록하여 기다리노라” 했다.
과연 그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져 후손들이 번창하고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어 각계각층에서 크게 활약하고 었다.
예충 공의 아들 송간(松幹)은 어모장군(禦侮將軍)이었으며 현손(玄孫) 신겸(愼謙)은 통덕랑(通德郞)이었다. 8세손 주영(周英)은 수졸헌 재문(守拙軒 在文)과 같이 부계군 묘소를 심득(尋得)하였다. 10세손 행남재 동훈(杏南齋 東薰)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 오위장(嘉善大夫 同知中樞府事 折衝將軍 龍驤衛副護軍 五衛將)에 올랐다. 11세손 대현(大鉉)은 장릉참봉(章陵參奉)이며 대룡(大龍)은 통정대부에 올랐고 대주(大周)는 송병선(宋秉璿) 문에 종학(從學)했으며 문집이 있다.
12세손 용기(龍基)는 장릉참봉, 통정대부였으며 문집이 있고 정기(定基)는 숭선사업에 공을 세웠고 빈곤자를 구휼하였다. 두기(斗基)는 문장과 덕행이 높았으며 제자들의 영귀암계(咏歸巖稧)가 있다. 13세손 종철(鍾徹)의 처 고성 이씨는 시부모님께 효도하여 경성대성학원(京城大聖學院)에서 표창했다. 14세손 용해(庸海)는 한국일보 논설위원, 문화재 위원을 지냈으며 상해(祥海)는 인천지방법원장을 역임했다. 광해(光海)는 대종회장을 역임했으며 현 청도향교 전교이다. 15세손 창근(昌根)은 경기도 부지사를 역임했다. 16세손 달희(達熙)는 청도향교 전교를 역임했다. 17세손 재두(載斗)는 대종회장을 맡았으며 행정안전부 국장을 지냈다. 재길(載吉)은 대종회장이며 규대(圭大)는 청도군의회 의장을 지냈다.
후손의 재실은 매전면 지전리의 덕흥(德興)을 배향하는 지양재(芝陽齋), 이서면 대전2리 시학(時學)을 배향하는 일간재(一幹齋), 매전면 내리의 신겸(愼謙)을 배향하는 황강재(黃岡齋), 덕기(德基)를 배향하는 춘장재(春莊齋)가 있다.
이날 후손인 우해(友海, 전 교장), 윤희(潤熙, 의흥예씨 대종회 전 사무총장) 씨가 문중의 족보 및 자료를 기반으로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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