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52)
유학의 업을 닦으며 의롭게 살았던 이만재(李萬斎) 선생의 계림재(桂林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매전면 하평리 모은정(몬담) 마을에 자리 잡고 있는 계림재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고성 이씨 좌윤공파(左尹公派) 청도 입향조인 계림처사(桂林處士) 이만재(李萬斎) 선생이다. 공의 자는 세택(世澤)이며 창녕 영산(靈山)을 떠나 광월(廣月) 마을에 은거하여 유학의 업을 닦으며 의롭게 살았다. 그 뒤 후손들이 인근의 몬담에 옮겨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다.
공의 시조는 고려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지낸 철령군(鐵嶺君) 황(黃)이고 10대조는 세종조에 9년간 수상을 지냈던 용헌공(容軒公) 원(原)이다. 좌윤공파(左尹公派) 파조(派祖)는 9대조 질(垤)이다. 그는 계유정난(癸酉靖難)때 원종공신 2등에 녹훈되었으며 뒤에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직에 올랐다. 7대조 분(賁)은 연산조 때 어지러운 시국을 피해 영산 교동(校洞)에 내려와 두문불출하고 있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이후 한성부판관(漢城府判官)에 이어 도총부경력(都摠府經歷)을 지냈다.
6대조 명암(明巖) 중(中)은 김식(金湜)의 제자이며 현학강장(縣學講長)이 되어 10년간 강의하는 동안 학문을 크게 떨쳤으며 성균관현량(成均館賢良)에 천거되었고 아버지 상에 시묘살이를 할 때 피눈물이 얼굴에 가득했고 묘막에 호랑이가 엎드려 있어 가축 같았다고 한다. 예조정랑지제교(禮曹正郎知製敎)겸 경연관(經筵官)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注官)에 부르니 사은하고 취임하지 아니했다. 기묘명현록(己卯名賢錄)과 인물지명신록(人物志名臣錄)에 기록되어 있다.
계림재는 1960년에 창건되었으며 팔작지붕 목조와가 4칸이며 대청 앞에 4분합들문을 달아 방풍을 한 것이 특징이다.
1959년 봄에 공의 후손인 정기(定基), 봉기(奉基), 종철(鍾轍) 등이 문중에 재실이 없는 것을 탄식하며 창건을 발의했고 그뒤 모든 종원들이 합심하여 물심양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종관(鍾琯)은 재실 대지를 헌성하는 등 크게 정성을 기울였다. 마루에는 이영호(李英鎬)가 찬한 ‘계림재기’와 박성묵(朴聖黙)이 지은 ‘상량문’이 걸려 있다.
1963년에 쓴 계림재기에 “액자에 계림(桂林)이라고 썼는데, 이는 호를 표시해 사모의 마음을 담기 위함이다. 공의 7대손인 종호(鍾浩)와 종출(鍾出)이 나에게 기(記)를 지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 행장을 삼가 살펴보니 ‘선비의 사업은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겸제(兼濟, 세상에 나아가면 천하 사람들을 함께 잘 살게 한다)와 독선(獨善, 자기 수양에 힘써 홀로 선을 지킨다)이다. 그 나아감과 물러남의 구분은 시대가 어떠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라고 하였다. 옛날 공의 시대에 공의 학문으로 나아가 영예를 구했다면 손바닥 뒤집듯 쉬웠을 것이다. 공은 당시 겸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부귀를 뜬구름과 같이 여기고 계수나무 숲속에서 홀로 선함을 닦았다.
‘공의 후손들은 선대의 그 뜻을 체득하고 밝혀 능히 지키며 때를 기다리다가 나와서 겸제의 사업을 이룰 테니 어찌 공의 도가 후세에 펼쳐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니 종호(鍾浩)가 말했다. ‘맞습니다.’ 마침내 그 말을 기록했다.”
후손들 중 승오(공군대령 전역), 승도(육군 소장 전역), 승유(전 대구시청 사무관), 동식(판사), 동환(공군 중령)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각계 각층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다. 이날 후손인 승웅씨와 문중 종손이며 청도군의회 의원을 지낸 경동씨가 선대의 자료를 내어놓고 안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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