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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48)대나무를 벗하며 은사(隱士) 삶을 살던 추용주(秋鏞周) 선생의 죽림정(竹林亭)

죽림정
청도신문(2025년 8월 27일)

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48)

대나무를 벗하며 은사(隱士) 삶을 살던 추용주(秋鏞周) 선생의 죽림정(竹林亭)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인협회장,  교장

 

  청도군 이서면 칠엽2리 대밭골에 자리 잡고 있는 죽림정을 찾았다. 이곳은 추용주(秋鏞周, 18711954) 선생이 머물던 소구(所舊)이다. 공은 본관이 추계(秋溪)이며 통훈대부(通訓大夫) 겸 의관(議官)을 지냈다.

  팔작지붕 3칸으로 되어 있는 이 정자는 1947년에 공의 맏아들인 재구(載求)가 두 동생인 영구(永求), 안구(安求)와 함께 아버님을 위해 지어드린 효심이 깃든 곳이다. 마루 벽에는 죽림정기(竹林亭記)’ 차죽림정운(次竹林亭韻)’이 걸려있다.

추계 추씨는 중국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적부라(籍符羅)를 역임하고 고려에 들어온 추엽(秋饁)이다. 그 후예인 노당공(露堂公) ()은 시랑(侍郞) 겸 국학교수(國學敎授)로 재임할 때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편찬하여 중국에 전파하였다. 공의 할아버지는 혁종(赫宗)이며 아버지는 성규(成圭)이다. 후손들 중 창엽(昌燁)은 상담학 박사로 서울복지대학원대학교 교수이며 광엽(光燁)은 벽진 BIO택 대표이며 국제로타리 3700지구 총재이고 치엽(致燁)은 효학박사로 한국교원교육학회 교원단체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리고 상욱(相旭)은 송암파트너 변호사이다.

  도주(道州) 김재화(金在華)가 쓴 죽림정기(竹林亭記)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도주(道州) 최정산(最頂山)의 남쪽 기슭에 칠엽(七葉)이라는 마을이 있다. 사방이 산과 물로 둘러싸여 저절로 별세계를 이룬 은자의 땅이라 할 만하다. 아들 삼형제가 정자를 지어드리자 어르신은 이곳에서 한가로이 지내며 건물이 대나무 숲 앞쪽에 있어서 '죽림정'이라고 불렀다. 추씨가 노당공(露堂公)의 후손이라고 들었다. 후손들은 모두 근본에 힘쓰고 분수를 지켰으며 근면함과 검소함으로 집안을 꾸렸다. 어르신은 특히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온화하고 중후하며, 선한 일을 즐겨 한다. 올해 나이가 77세인데 정신과 기운이 여전히 왕성하니 장수할 것이다. 이는 자식들이 효성으로 봉양하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밥과 고기가 없어도 되지만 집에 대나무가 없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밥과 고기가 없기 때문에 집에 대나무가 있다'라고 말하겠다. 왜 그런가? 고기를 먹는 저 사람들은 그 행적이 저잣거리에 있고, 마음은 명예와 이익에 조급하다. 이들은 정원의 모란이나 건물 옆의 버들개지를 좋아할 뿐 대나무가 사랑스럽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대나무의 사랑스러움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바위 틈에 살거나 들에 거처하며 풀을 먹는다. 먹는 것부터 같지 않다. 어르신과 같은 사람도 그런 유형이 아니겠는가? 지금 어르신은 이 정자에 머물며 속된 일을 끊고 샘물 소리와 산빛 사이에서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 아들은 자손을 거느리고 어르신은 장수를 누릴 것이다. 이것은 아들 형제들의 효성스러운 마음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고 했다.

  그리고 이재호(李在浩)는 차죽림정운(次竹林亭韻)에서 “부모를 정성과 효성으로 섬기니 그 마음이 지극하구나, 이 정자를 둘러보며 축하의 말을 건네네/ 맑고 깨끗한 정원에서 만 가지 일을 이루며, 즐거운 마음으로 회나무 아래 앉아 편안한 집에서 수양하네/ 작은 연못가 오동나무에 달빛이 은은하게 비치고, 그늘진 골짜기 솔바람이 얼굴을 식히네./ 사람이 세상에 살며 거짓이나 억지가 없네. 타고난 천성을 지키니 태어날 때보다 낫네.” 했다.

이날 병화(秉和, 죽림문중 회장), 성엽(成燁, 문중 총무, 전 경북대학교 서기관) 씨가 재실을 안내해주었다.

 

죽림정기
죽림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