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47)
빼어난 문장으로 유림에 우뚝 선 통덕랑(通德郞) 이상구(李商耈) 선생의 간아정(澗阿亭)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금천면 동곡리에 자리 잡고 있는 간아정(澗阿亭)을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이상구(李商耈, 1662〜1733)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호는 애수헌(愛睡軒)이다. 1690년(숙종 16) 금천면 방지리에서 동곡리로 이거한 공은 빼어난 문장으로 유림에 우뚝 섰으며 통덕랑(通德郞)을 지냈다.
공은 고성 이씨 청도 입향조인 모헌(慕軒) 이육(李育)의 6세손이며 매전면 동창에 운수정(雲水亭)을 지은 모재 반(慕齋 礬)의 현손이다. 증조는 부호군(副護軍)을 지냈으며 경사에 박통(博通)했던 수헌 개(修軒 漑)이며 조부는 충의위(忠義衛) 정재 구(正齋 球)이다. 아버지는 통덕랑을 지낸 관가정 광정(觀稼亭 光鼎)이다. 그는 문학으로 이름이 났으며 효도와 우애가 출천(出天)하였고 부모상을 당하여 시묘를 했다.
맏형 양정재 하구(養靜齋 夏耈)는 성균 진사이다. 고려 무신 집권기를 대표하는 문인 가운데 한 명인 임춘(林椿)의 문집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조선조에 와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다 청도의 운문사에서 발견되었는데, 신유한(申維翰)이 쓴 발문과 임춘의 14대손 임재무(林再茂)가 쓴 중각서하집발(重刻西河集跋)에 의하면 언젠가 영남의 청도군에 잠시 있을 때 고을 사람 이생(李生, 이하구(李夏耈)를 따라 노닐었는데, 그의 책갑 속에 ‘서하집’이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이때 이생이 말하기를, “예전 병신년(1656년)에 운문사의 승려 인담이 약야계(若耶溪) 곁 소나무와 바위 사이에서 잠을 자다가 꿈에서 담인이라는 한 도사를 만났는데 가까운 거리의 빈 곳을 가리키며 ‘이곳을 파 보면 세상에 드문 보물을 얻게 될 것일세.’라고 했다.” 잠에서 깨어 그의 말과 같이 하니, 동탑 하나가 있었는데 그것을 분리하여 『서하집』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양정재가 그것을 보관하게 된 것 같다.
간아정은 팔작지붕 중당협실형 4칸으로 1930년대 창건했으며 2009년에 크게 중수했으며 ‘愛睡軒’ 편액도 걸려 있다. 김재화(金在華)는 ‘간아정기’에 고성 이씨는 도주의 제일 거족으로 수천 호에 이르는 명문가라고 하면서 새로 중건한 이 정자에서 선대를 받들며 오래도록 전승되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8세손 종원(鍾遠)은 ‘선정중건유감先亭重建有感’에서 重起先亭舊澗阿 옛 간아 선정을 다시 세워서/ 每瞻遺躅感悔多 그 자취 늘 보게 되니 감회가 깊도다/ 嘯歌宛隱泉鳴谷 휘파람 소리 들렸다 사라지며 샘물은 골짜기를 울리고/ 陟降依稀檜掩坡 산소를 오르내리는 길 희미하게 보이는데 소나무가 비탈을 덮고 있다/ 經畵曾年愁不及 계획하고 도모한 일, 해를 더할수록 근심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 竣完斯日喜如何 준공된 이 날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네/ 會宗齊宿皆於此 종친들 이곳에 모여 밤을 지내며/ 百世相傳永保和 백세토록 서로 전하여 길이 보존하고 화목하리라.‘ 했다.
또 족후손(族後孫) 정국(庭菊)의 ‘경차간아정운(敬次澗阿亭韻)’과 박순렬(朴淳烈)의 ‘경차간아정운’도 걸려 있다. 애수헌 공의 후손들은 재계와 학계, 의학계 등 각계 각층에서 크게 활약하고 있으나 지면 관계상 일일이 소개하지 못함을 아쉽게 생각한다.
이날 후손인 덕승(德承, 전 고성이씨 모헌종중 종친회장)씨가 문중의 자료를 내어놓고 안내 해주었다. ‘간아정’이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빼어난 문장으로 유림에 우뚝섰던
거룩한 간아정 문향으로 가득한 곳
후대들 잇고 이어서 천세 만세 빛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