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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42)창원 황씨 공희공파 입향조인 황도흥(黃道興) 선생의 초강재(草崗齋)

초강재
청도신문(2025년 5월 28일)

 

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42)

창원 황씨 공희공파 입향조인 황도흥(黃道興) 선생의 초강재(草崗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인협회장,  교장

 

  청도군 청도읍 송읍리(松邑里)에 자리잡고 있는 초강재(草崗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송오공(松塢公) 황도흥(黃道興)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창원(昌原)이며 경남 함안에서 청도읍 송읍으로 이거하여 정착한 뒤 서당을 개설하여 제자들을 길러냈으며 효우에 돈독하고 산수를 사랑하며 시서를 즐겼다. .

  송오공의 14대조로 공희공파(恭僖公派) 파조인 황석기(黃石奇) 1349(충정왕 1)에 회산군(檜山君)에 봉해졌으며 1358년에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를 지냈다. 호는 회암(檜巖)이고 시호는 공희이다.

공희공의 아들 ()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서강도원수 등을 지냈고 대를 이어 형()은 공조판서를, ()는 직제학·대사간을 거쳐 도승지 및 경기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 1588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공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하였으며 회원부원군(檜原府院君)으로 봉해졌다.

  후손 중 창주(昌柱)는 광주 고등법원장 및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윤성(允盛)은 경북 도의회 3선 의원으로 부의장을 지낸 뒤 대한노인회 청도지회장을 역임했다. 광주(光柱)는 국정원 소장과 CMB. 대구방송 사장을 맡았고 홍주(弘柱)는 청도군청 공무원으로 정년 퇴임한 뒤 청도축산 협동조합 사외이사를 지냈으며 통주(通柱)는 청도군 자원봉사센터장을 11년 역임한 뒤 현재 청도향교 이사이고, 용태(容泰)는 청도군 반시연합 회장을 맡고 있다.

  초강재는 팔작지붕 겹처마 4칸이며 마당에 초강재의 실록  헌성록이 세워져 있다. 1976 12월 종회시에 재실 건립을 결의하고 종인들이 뜻을 모아 1977 3 13일 상량했다. 청도읍 송읍리 와우등(臥牛嶝) 하록에 창원 황씨가 세거한 지 300 여 년이 되었으며 현재 40여호가 이 마을에 살고 있다.

  와우등은 이름 그대로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다. 소는 풀이 있는 골짜기를 만나야 생존한다는 이치로 와우등 기슭에 있는 창원 황씨들이 번창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재실 이름을 草崗齋라 하였다. 그 이후 몇 차례 도색 및 기와 번와 등 중수를 했다. 송읍은 솥골이 변하여 속골이라고 했다고 한다. 오랜 옛날에 소나무 숲이 있어서 솔골이라고 했다고도 하며, 다른 일설에는 솥을 만들던 장소라고 해서 솥골이라 했다고도 한다.

  아무튼 송읍리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던 주거지였다. 이러한 사실은 신 대구부산 간 고속 도로 공사 시 발굴조사를 할 때에 원삼국을 비롯한 전근대의 고분군이 있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다. 조선말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송읍 사창(松邑社倉)이 있었고 또한 뒷산에는 1600년대부터 남산봉수대를 옮겨와 봉수대가 없어진 시기인 1891년 전국 봉수대의 역할이 폐지될 때까지 존재했던 곳이다.

  이날 후손인 통주씨가 재실 곳곳을 소개하며 문중의 자료를 내어놓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초강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와우등 황소가 풀이 있어 생명 얻듯

송읍리 창원 황씨 조상 있어 내가 있다며

오늘도 거룩한 자취 이어가는 초강재

 

송원당
초강재의 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