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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40)밀직부원군(密直府院君) 중미(中美)의 후예인 박기열(朴基烈) 선생의 경모재(敬慕齋)

경모재
청도신문(2025년 4월 23일)

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40)

밀직부원군(密直府院君) 중미(中美)의 후예인 박기열(朴基烈) 선생의 경모재(敬慕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인협회장,  교장

 

  청도군 이서면 금촌리에 소재하는 경모재(敬慕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박기열(朴基烈, 17701844)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원보(元甫)이다. 공은 경산군(慶山郡) 고산면(孤山面) 욱수동(旭水洞)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이 산수가 아름다운 금촌(琴村)으로 택거(擇居)한 밀양박씨 과천공파(果川公派) 청도 입향조이다.

  공은 태사공(太師公) 언부(彦孚)와 밀양박씨 12 중조의 한 분인 중미(中美,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을 평정하여 대광보국숭록대부, 밀직부원군 봉작을 받았으며 중서령)의 후예이다. (, 사헌부 대사헌, 경산 내매촌 이거), (, 단성현감), 사조(嗣祖, 통훈대부, 과천현감), 신손(愼孫, 현감), 이양(而讓, 군수), 광익(光翼, 승사랑 예빈시 봉사, 대구시 수성구 시지동 率一齋에 배향), (, 선무랑, 임진 원종공신), 경원(통덕랑)이 선대이며 아버지는 증 가선대부(嘉善大夫) 문봉(文奉)이다. 문봉은 호가 경안(慶安)이며 그의 아들인 기열, 만열, 수열, 광열, 상열의 후손들은 밀양박씨 밀직부원군파 과천공후 경안공파 화수회를 결성하여 숭조애족(崇祖愛族)을 다짐하고 있다.

  경모재의 아들 성림(成林)은 증 가선대부(嘉善大夫)였으며 다섯 아들 경취(慶就), 경성(慶聖), 경태(慶泰), 경창(慶昌), 경화(慶化)를 두었다. 증손 주철(周喆)은 통정대부(通政大夫)였고 현손 치만(致蔓)은 통정대부 돈령부도정(通政大夫敦寧府都正)이며 5세손 정기(廷基)는 숭덕전 참봉(崇德殿 參奉)을 역임했다. 후손 대수(大洙)는 서울시 재무국장, 한수는 영남방직 대표이사, 재성은 전 군의원, 재영은 경북 문화재 연구원장, 석용은 검사이다.

  경모재는 원래 구 건물이 있었으나 협소하여 1965년에 팔작지붕 정면 4칸 건물로 확장하여 새로 지었다. 중재(重齋) 김황(金榥) 경모재기 조상님의 가르침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있다고 느끼며 경외심과 사모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고 했다.

  7세손 형수(炯洙)는 재실 창건 축하시인 재성지감(齋成識感) 吾祖曾年卜此邱 조상께서 이 언덕에 일찍 자리잡아/ 鬱然梓柏閱春秋 울창한 가래나무 잣나무 봄 가을을 지켜왔네/ 構堂敢曰追先故 재실을 짓고 선조를 추모하려고/ 蘋藻猶堪致具修 제사 음식을 갖추고 장만했습니다/ 澗水鳴琴舊已遠 시냇물은 거문고를 울리듯 오래되고 멀리 가고/ 雲山入戶景全收 구름과 산이 창에 들어와 경치를 모두 거두었네/ 但將敬慕楣間語 문 위의 말씀을 공경히 사모하며/ 嗣楫來來世勿休 계속 고쳐 나가며 대대로 그치지 않으리 했다.

  문중에서는 선대를 기리는 뜻으로 한수(漢洙) 74명의 종원이 경모장학회를 설립하여 4년제 대학에 입학하는 문중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향학열을 북돋우고 있다. 마당에 이를 기념하는 경모재 장학기념비를 세웠다.

  이날 후손인 천수(문중 유사), 정희(새마을 지도자), 경준(청도향교 이사)씨가 족보 등 문중 자료를 펼쳐놓고 재실을 안내했다.

 

경모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조상님의 가르침 경외하고 숭모하며

더불어 숭조애족 단합하는 경모재

대대로 그치지 않고 이어가며 지킨다

 

경모재기
축하시인 '재성지감'
경모장학회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