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39)
문성공(文成公) 유(裕)의 후예인 안성주(安聖周)선생의 용운재(龍雲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매전면 예전리에 자리잡고 있는 용운재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인물은 안성주(安聖周, 1669∼1730) 선생이다. 공은 1700년대 전후 조선 숙종(肅宗) 때에 안동에서 예전리로 이주한 순흥 안씨 판관공파 입향조이다.
순흥 안씨는 고려 신종 때 흥위위 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 상호군(神虎衛上護軍)에 추봉된 시조(始祖) 안자미(安子美)가 순흥현(順興縣)에 정착 세거(定着世居)하여 관향(貫鄕)을 순흥(順興)으로 삼게 되었다.
문성공(文成公) 유(裕, 1243~1306, 珦으로 개명하였다가 조선조 문종 어휘와 같게 되어 초명으로 쓴다)의 호는 회헌(晦軒)이다. 1260년(원종 1) 18세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도첨의중찬수문전태학사(都僉議中贊修文殿太學士)를 지냈으며 우리나라에 주자학을 최초로 도입하여 도(道)를 밝히고 학교를 진흥함으로서 동방의 도학지조(道學之祖)로 추앙받고 있다.
문성공 이후 순흥 안씨는 고려조 6대, 조선조 6대에 걸쳐 ‘文’자 시호를 받은 분이 열여덟 분이 되는 등 고려, 조선조 6대 성씨 중의 하나이다.
조부 몽주(夢周)는 종사랑(從事郎) 헌해훈도(憲海訓導)를 지냈고 행 안동부대도호(安東府大都護) 증 자헌대부(資憲大夫) 도총관(都摠管)이었다.
용운재는 1964년에 창건한 뒤 1997년 경에 중수한 팔작지붕 전면 3칸이다. 마루 벽에 김홍배(金弘培)가 쓴 ‘용운재기’와 최재영(崔在榮)이 쓴 ‘용운재 상량문’, 8세손 규호(圭鎬)의 ‘원운(原韻)’ 이 있고 좌측 방 앞에 따로 ‘在田堂’ 현판을 걸어 두었다. 후손 정호(正鎬), 규호(圭鎬), 주호(珠鎬), 순호(順鎬), 상길(相吉) 등 종원들이 힘을 합쳐 건립하였다.
용운재기에는 ‘우리나라 어진 유학자를 모시는 사원(祠院)은 회헌 안유 선생을 모시는 순흥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시작하여 진주 연산(硯山) 도통사(道統祠)로 이어진다. 이곳에 공자(孔子), 주자(朱子), 안자(安子, 안유) 세분의 성인을 모시고 있다. 이 용운재를 지은 것도 이를 따른 것이다.’라고 했다.
상량문에는 ‘상량을 하고 난 뒤 조상을 섬기며 부모님께 효도하며 형제 간에 돈독하고 학문을 닦으며, 충성과 신의를 실천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8세손 규호는 원운에 ‘古宅經營從始成/처음부터 정성을 다해 고택을 경영하고 梓陰蒼疊護佳城/ 푸르고 짙은 가래나무 무덤을 보호하네/ 戊朝雨意春初動/ 무일의 아침 비 오려 봄이 처음 움직이고 丙穴珠光夜復明 남쪽 굴 속 구슬 빛은 밤에 다시 밝도다’ 했다. 무조(戊朝)는 무일의 아침, 입춘 뒤 다섯번째 무일(戊日), 토지신께 제사를 드리는 날이다.
이날 후손인 승배(承培, 전 동장), 승용(承龍, 전 동장), 승영(承永, 전 매전농협 이사), 영태(暎台) 씨가 문중의 족보 및 자료를 펼쳐놓고 재실을 안내했다.
‘용운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대나무 숲 뒤로하고 동창천을 바라보며
선대의 유학 정신 마음 깊이 새기다
용운의 큰 뜻을 담아 이어가는 순흥 안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