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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37)운천군(雲川君)의 후예로 선전관(宣傳官)이었던 이경행(李敬行) 선생의 학강재(鶴崗齋)

학강재
청도신문 2025년 3월 12일

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37)

운천군(雲川君)의 후예로 선전관(宣傳官)이었던 이경행(李敬行) 선생의 학강재(鶴崗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인협회장,  교장

 

  청도군 풍각면 월봉1리에 자리잡고 있는 학강재(鶴崗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이경행(李敬行, 15911642)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전주이며 자는 숙경(肅卿)이다. 조선 성종의 왕자 운천군(雲川君) (+)  5세손으로 인조 때 선전관(宣傳官)을 지냈다. 조부 광산군(光山君) ()이 산수가 아름다운 대구를 장구지소(杖屨之所)로 생각하고 남하하여 산격동에 복지(卜地)하였는데 그 뒤 공이 다시 청도로 들어와 풍각 월산 아래 정착 시거했다. 묘는 풍각면 월봉동 장등(長嶝) 오좌(午坐)에 있다.

  7세손 정규(正圭)의 호는 월포(月圃)이며 학행이 높았다. 성규(星圭)의 호는 월강(月岡)이며 중추부 의관(中樞府 議官)을 지냈으며 후손 현의(鉉儀)의 호는 성사(星史)이며 흥덕현감(興德縣監)을 지냈다. 경규(景圭)는 각종 풍수 서적에 소개되는 명산(名山)인 촉금산(燭錦山) 지도를 그렸으며 춘영(春永)은 학강재 중수 추진위원장이었으며 청도 지역 전주이씨 화수회를 조직하였다.

  학강재는 학산을 뒤로 하고 후손들이 살고 있는 거망(歫網)마을을 향해 자리 잡고 있으며 팔작지붕 전면 4칸이다. 1871년에 창건했으며 1980년 등 여러 차례 중수했다. 마루 벽에는 승지(承旨) 남계륜(南啓輪)이 쓴 학강재 소지(鶴崗齋 小識)’, 방손(傍孫) 광우(珖雨) 학강재 중수 서가 있고 전라도 관찰사 이준경(李浚慶), 후손 종미(鍾美), 정규(正圭), 현의, 병조(炳祚)등의 시문이 걸려 있다. 재실 뒤 학산에는 운천군의 손자 의양군(義陽君)의 묘소가 있는데 매년 음력 10 7일 아침 일찍 시향(時享)을 올린다.

  ‘학강재 소지에는 학산 아래 터를 잡고 있기에 鶴崗齋라 했으며 의 의미를 시경(詩經) 소아편(小雅篇), ‘鶴鳴于皐 聲聞于天/ 높은 곳에서 우는 학의 울음소리는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주역 계사편(繫辭篇) 鶴鳴在陰/ 학은 밤에 운다고 원용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학은 벼슬을 하지 않고 재야에 숨어 있는 은사(隱士)를 말한다. 그런 인물을 일컬어 학에 비유해서 학명지사(鶴鳴之士)라고도 한다.
  관찰사 이준경은 광산군에 대해 뛰어난 인덕, 고상한 풍채를 지닌 공은 의리와 지조를 굳게 지키는 왕손이었고 북쪽 궁궐을 향한 마음이 남쪽 향리에도 이어졌다고 했다.

  후손 정규는 학강재 건립을 축하하며 몇 년간 후손들이 힘을 모아 소나무 아래 대나무 울을 삼아 지었다. 사방은 밝은 그림이고 한줄기 흐르는 물소리는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고 했고 광우는 한 폭의 달빛 비치는 월산은 영원히 밝구나. 후손들은 조상을 존경하고 기리며 모든 선비들은 어진이를 사모하는 정이 깊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도를 가르치던 사수(泗洙)의 뜻을 이어 학문의 전통을 잇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며 주자학의 전통을 잇던 염락(濂洛)의 아름다운 풍습을 이어간다고 했다.

  이날 후손 진영(무심 스님), 수호(문중 총무) 씨가 문중의 족보 및 자료를 준비하여 안내하며 설명해 주었다.

 

  ‘학강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학명처사 큰 뜻을 이어가는 학강재

고고한 학의 울음 하늘에서 들려오듯

오늘도 현인의 말씀 천리 밖에서 호응한다

 

학강재 소지
학강재 중수서
전라도 관찰사 이준경의 시
중건 기념비
촉금산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