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33)
예술의 마을 상 함박리의 전주 이씨 추모재(追慕齋)와 진양 하씨 화남재(華南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각남면 상 함박리(咸博里)의 추모재(追慕齋) 및 화남재(華南齋)를 찾았다. 추모재의 배향인물은 은산처사(隱山處士) 이이번(李爾蕃)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약 400여 년 전, 세상이 어수선하여 은둔할 곳을 찾아 경기도 양주 용암리에서 가족들을 거느리고 이곳 함박리로 와서 마을 뒤 미달산(美達山)에 함박정사(咸博精舍)를 지어 시를 짓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그 정사가 세월이 흘러 퇴락함에 1991년 유허지(遺墟地)에 정면 5칸 재실을 지어 추모재라 하였다. 그 후 2009년에도 새로 중수했다. 대청에 ‘추모재 중수기’, ‘추모재 기문’이 걸려 있다.
화남재는 진양 하씨 청도 함박 문중의 재사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낸 풍운(風雲) 하천룡(河天龍), 청강(淸江) 하진상(河進祥) 선생을 배향하고 있었다. 공들은 세종 때 영의정을 역임한 하연(河演)의 후손이다. 그런데 화남재는 1924년에 창건하였으나 1948년 붕괴 위험으로 철거한 뒤 아직 복원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진양 하씨가 함박골에 입향한 동기는 임진왜란 때 구만동 죽바위 건너 운정(雲井)골에 피난을 했다가 뒤에 함박리에 정착하게 되었다. 후손인 효렴처사(孝廉處士) 상후(相厚)는 효자로, 그의 처 창녕성씨(昌寧成氏)는 효열부(孝烈婦)로 이름이 높아 군수와 향교에서 포상(褒賞) 하였다.
또 이 마을은 함박 김씨 시조인 김성인(金誠仁)이 정착하여 살았던 곳이다. 그는 원래 사여모(沙汝某)란 일본인 장수로 임진왜란 때 들어왔지만 인의(仁義)의 나라 조선을 칠 수 없어 곧 귀순하였고 그 뒤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 등에서도 큰 공을 세워 자헌대부(資憲大夫)에 올랐다. 그에 대한 자취는 ‘청도지역 재실 탐방 106회’에 상세히 밝힌 바 있다.
함박리에는 ‘상 함박’과 ‘하 함박’ 두 개의 자연 부락이 있으며 마을이 자리한 곳의 터전이 넓고 오목한 것이 부귀와 다산(多産)을 의미하는 ‘함박꽃 모양이기 때문에 함박리(咸博里)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난 2024년 12월 12일(목)에는 이 마을 청함 갤러리에서 (사) 한국서각협회 경북지회 청도지부 개소식 및 창립전이 많은 내빈과 회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사단법인 한국 서각협회 박정국 이사장은 하광원 청도지부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으며 회원들은 그동안 준비한 작품을 전시하였고 하 지부장의 평소 소장 작품 50여점도 구경할 수 있어 관람자들에게 유익한 기회가 되었다. 청함 하광원 지부장은 이곳 진양 하씨 후손으로 한국 서각협회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국제각자전 특선 수상, 청도향교 서예지도 교수, 청각회 등 서각지도, 청함 갤러리 원장이다.
이곳 상 함박리는 ’예술인의 마을‘로 불려지는데 서예, 서각, 불교 미술, 한국화, 인두화, 판소리, 색소폰 연주, 시인, 대금 제작, 한차, 솟대, 사진, 이·미용, 광고미술 등에 총 14개 분야에서 전문 예술인이 활동 중이며 총 인원 23명에 달한다.
‘함박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전주 이씨, 진양 하씨 오순도순 정겹게
부귀와 다산의 꿈 대를 이어 가꾸더니
예술혼 화알활 태워 함박꽃 활짝 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