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35)
선대의 학맥을 이어가던 산림처사(山林處士) 예덕기(芮德基) 선생의 춘장재(春莊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매전면 내1리에 자리잡고 있는 춘장재(春莊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예덕기(芮德基)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의흥(義興)이며 평생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산림처사(山林處士)로 지내며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선대의 학맥을 이어갔다.
할아버지는 이서면 대전에서 새 터를 잡아 이곳에 옮겨와 황강재(黃岡齋)에 배향되고 있는 통덕랑(通德郞) 신겸(愼謙)이며 아버지는 귀백(歸伯)이고 아들은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른 서필(瑞苾)이다.
의흥 예씨 시조 낙전(樂全)은 고려 인종 때 예부시랑(禮部侍郎)으로 중국 금나라의 만수절(萬壽節)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왔으며 뒤에 보문각(寶文閣) 학사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역임하고 의흥(義興) 부계군(缶溪君)으로 봉군(封君) 되었다.
란(蘭)은 조선 성종 때 통정대부(通政大夫) 예조참의(禮曹參議)를 지냈고 승석(承錫)은 승문원 부교리(承文院副校理) 겸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으로 고려사 찬술에 참여했고 그 뒤 세조, 예종 실록 찬술에도 참여했다. 전라도 관찰사,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극양(克讓)은 어모장군(禦侮將軍)을 지냈으며 청도 입향조이다.
춘장재는 목조와가 겹처마 전면 5칸 규모의 재사이다. 전면에 숭조상문(崇祖尙門)이 현액된 솟을 대문이 있으며 부속건물인 관리동이 있다. 1968년에 창건했지만 노후하여 헐고 1998년도에 새로 신축하였다.
마루 벽에 성순영(成純永)이 지은 ‘춘장재 상량문’, 안용호(安龍鎬)의 ‘춘장재기’ 후손 옥락(鈺洛)의 ‘원운(原韻)’과 운손(雲孫) 영해(瑛海)의 ‘춘장재중수(春莊齋重修)’가 걸려 있다. 마당에는 백일홍, 동백나무, 향나무 등으로 조경을 하였으며 ‘헌성록’ 표석이 있다.
특히 이 재실에는 후손 윤관(昀寬)의 부인인 남건희(南建喜)가 6년 여 세월 동안 향나무에 화엄경(華嚴經)을 손수 서각한 병풍이 있다. 이는 조상에 대한 지극한 정성 깃든 작품이기에 이 병풍을 펼쳐놓고 제향을 올리는 종친들도 더 숙연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재실의 기둥에 후손 옥락의 ‘원운’을 기둥에 다음과 같이 주련(柱聯)으로 걸어 놓았다.
吾先當代愛淸幽 移卜田園晩計優 우리 선대 당대에 맑고 그윽함을 즐기시니 전원에 거처 옮겨 만년 계책 넉넉하리 /萬古長存堯日月 一心專講魯春秋 만고에 길이 남는 건 요 임금 세월, 마음은 오로지 노나라 역사 이야기 /晴看翠嶂環簷滴 靜聽鳴泉傍枕流 /밁은날 푸른산 바라보고 처마 끝에는 방울방울, 샘가에 길게 흐르는 물소리 고요히 듣네 /聚族迎賓今有所 願言世世繼而修 일족들이 모여서 손님 맞이하는 이곳은 세세토록 이어받아 닦아가기 바라네.
이날 후손 병순(秉淳, 청도향교 장의)씨가 문중의 자료를 내어놓고 재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춘장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육화산 기슭의 햇살 밝은 복된 땅
춘장재 선대의 뜻 받들어 기리며
오늘도 의흥인들은 긍지가 드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