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27)
고부(古阜) 군민들이 동비(銅碑)를 세워 칭송한 이계손(李繼孫) 선생의 고례재(古禮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前 청도문인협회장, 前 교장
청도군 이서면 흥선리에 자리 잡고있는 고례재(古禮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이계손(李繼孫)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재령(載寧)이며 고부(古阜) 군수를 마치고 돌아갈 때 헌 벼루 하나만 들고 가니 군민들이 동비(銅碑)를 세워 청덕을 칭송한 청백리이다. 흥선리 합정산 자락에 묘소가 있는데 비문은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가 지었다.
재령 이씨(載寧李氏)는 경주 이씨(慶州李氏)에서 분적하였다. 경주 이씨 중시조인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의 후손 이우칭(李禹偁)은 고려 때 보조공신(補祚功臣)에 녹훈되고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낸 후 재령군(載寧君)에 봉해졌는데, 후손들이 이우칭을 시조로 받들고 재령을 관향으로 삼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군수 공의 증조부는 사재령(司宰令) 일선(日善)이며 조부는 사정(司正)을 지낸 술(戌)인데 그는 고려 때 송도(현재 개성시)에서 아버지를 따라 경남 밀양으로 이거했다. 아버지는 조선 태종 때에 자헌대부(資憲大夫) 전라감사를 지낸 영중(榮中)이다.
그 뒤 군수공 계손이 1400년대 초에 자손이 번성할 터전을 찾아 밀양 소음리에서 청도 금촌리로 택거하여 현재 재령 이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군수공의 아들 덕인(德仁)은 진사였으며 손자 붕(鵬)은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선무원종 이등공신(宣武原從二等功臣)이고 절충장군(折衝將軍) 방산첨사(方山僉使)를 지냈다. 증손 백신(白新) 역시 창의하여 선무원종 삼등공신이고 훈련원첨정(訓鍊院僉正)을 지냈다. 그는 향안(鄕案)을 창설하고 향규(鄕規)를 제작하는 등 향중에 신임이 두터웠다. 현손인 지암 결(砥巖 潔)은 한강 정구(寒岡 鄭逑)의 문인이었으며 두암 이기옥(竇巖 李璣玉) 등과 더불어 동강 김우옹(東岡 金宇顒), 수우 최영경(守愚 崔永慶) 문에 종유하였다. 문학과 덕망이 높아 사림의 사표이었으며 효심이 지극하여 효의 표상(表象)이기도 했다. 금촌에 그의 호로 명명한 지암서당(砥巖書堂)이 있다.
5세손 종명(宗明)은 가선대부 한성부좌윤(嘉善大夫 漢城府左尹)을 지냈으며 운문 오진에 효진재(孝眞齋)가 있다. 6대손 노(櫓)는 문수파(文峀派) 파조(派祖)이다. 문수에 그를 배향하는 문산재(文山齋)가 있다. 노의 동생인 이(栭)는 금촌파(琴村派)의 파조로 증 통정대부(通政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선교랑(宣敎郎) 별좌(別坐)를 지냈다. 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 문집에 행적이 실려 있으며 금촌에 배향하는 연호정(蓮湖亭)이 있다. 후손 지강(之綱)은 금호서원(琴湖書院) 창건에 공이 컸으며 재호(在浩)는 향교의 직제가 바뀐 뒤 청도향교 초대 전교였으며 병하(秉河)도 청도향교 전교를 역임했다.
고례재는 1790년에 창건한 정면 4칸의 목조와가이다. 마루에는 김재화(金在華)가 지은 고례재기(古禮齋記)가 걸려 있다.
이날 후손인 정욱(政昱, 유림신문 편집위원, 청도향교 이사)씨가 문중의 족보 및 문헌 등 자료를 내어놓고 설명해주었다.
‘군수공’이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헌 벼루 하나 들고 가볍게 떠나시니
감격한 군민들이 동비銅碑 세워 칭송하다
후손들 청백리 비석 가슴에 세워 뜻을 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