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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친구

축, 억새 나라

 , 억새 나라

 

                                          - 울산 울주군 간월재에서

 

 

                               

 

                                                                             행전 박영환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드디어 우리는 억새 나라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왕뱅이 억새만디* 간월재에 억새천국이란 문패 하나 달고

밥물처럼 출렁이는 5만평

억새 나라에는 속옷까지 젖은 긴 이야기들이 어깨를 타고 흐르고 있습니다

공룡들이 큰 발자국으로 형벌처럼 다가올 때마다 콩닥거리던 가슴

호랑이와 표범의 시린 눈망울은 지금도 스멀스멀 파고들어 온몸을 떨게 하고

빨치산 흙 묻은 군화에 쌓이던 지친 숨소리에 젖은 애련

잊지 못할 죽림굴 숯쟁이들, 생쌀을 씹으며 천주의 빛을 채우던 성자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 믿음, 지켜주고 싶어

가녀린 솜털 같은 홀씨가 아니라 억센 창을 든 억새였습니다

울산 소금장수, 언양 소장수 땀방울에 묻어있던 옹이들

못다 판 물건을 챙겨 길을 재촉하는 장꾼들의 턱에 닿는 밀물소리도 들었습니다

우리는 가을이면 소 질매*를 타기도 하고 지게를 붙잡기도 하면서

마을로 내려가 지붕의 큰 치마가 되기도 했습니다

모두 옛날이야기, 지금은 도회의 오색무늬가 능선과 능선 사이에서

줄 없는 줄을 가지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지만 그 또한 옛날이야기가 되겠지요

이제 우리는 오직 바람만 말벗하며 산 메아리를 꺼내 읽는

날마다 어깨를 부비며 다짐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는 그런 나라를 건설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산발치 바래소*의 귀에 대고 빌어봅니다

, 억새 나라.

 

*왕뱅이 억새만디: 왕봉현[王峰峴] 억새가 많은 산마루란 뜻임

*소 질매: 소가 짐을 싣는 길마의 방언

*바래소: 왕발골 산발치에 있는 파래소 폭포는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준다고 바래소라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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