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헐티재의 장모님
행전 박영환
헐티재는 아흔 일곱에 돌아가신 장인 어른과
아흔 살인 장모님이 만나는 고개다
"영감, 옛날에 보따리 이고 지고 참 많이도 넘었지요
호열자 돌림병을 피해 대구 파동을 떠나 월암리로 올 때도
아이들 공부하느라 대구에서 자취할 때 보따리 이고 갈 때도
아들 딸 결혼 혼수 가시러 대구 큰 장에 갈 때도 이 고개를 넘었지요
여름에는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겨울에는 저고리 안섶에 고드름이 달려도
늘 영감님이 있어 두렵지 않았습니다. 호강 고생이었지요
부부의 연을 맺고 같이 산 세월만 해도 일흔 해가 넘으니 그 동안 혼자 무엇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요. 죽을 먹어도 둘이고 밥을 먹어도 둘이었지요. 들에 나가도 둘이었고 시장에 가도 둘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혼자 지낼 준비가 전혀 안되었습니다, 그려
백수를 하고 떠나도 섭섭하기는 마찬가지, 외로움은 오히려 더 깊은 것 같구려
여기에 오면 만날 줄 알았는데 역시 계시지 않는구려. 내가 보이지 않는가요
그래도 나는 만나고 있소.
당신의 다정한 목소리가 저기에 들리고 있습니다."
진달래 꽃 한 줌을 들고
고개 근처 용천사를 향해 합장하시는 장모님의 손길이 가볍게 떨고 있다.
*헐티재는 경북 청도 각북면에서 대구로 가는 큰 고개입니다. 옛날에는 전부 걸어서 넘었으나 지금은 도로가 개설되어 차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