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친구

헐티재의 장모님

           

 

           헐티재의 장모님

 

                                                      

 

                                                                 행전 박영환

 

 

 

헐티재는 아흔 일곱에 돌아가신 장인 어른과

아흔 살인 장모님이 만나는 고개다

"영감, 옛날에 보따리 이고 지고 참 많이도 넘었지요

호열자 돌림병을 피해 대구 파동을 떠나 월암리로  올 때도

아이들 공부하느라 대구에서 자취할 때 보따리 이고 갈 때도

아들 딸 결혼 혼수 가시러 대구 큰 장에 갈 때도 이 고개를 넘었지요

여름에는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겨울에는 저고리 안섶에 고드름이 달려도 

늘 영감님이 있어 두렵지 않았습니다. 호강 고생이었지요

부부의 연을 맺고 같이 산 세월만 해도 일흔 해가 넘으니 그  동안 혼자 무엇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요. 죽을 먹어도 둘이고 밥을 먹어도 둘이었지요. 들에 나가도 둘이었고 시장에 가도 둘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혼자 지낼 준비가 전혀 안되었습니다, 그려

백수를 하고 떠나도 섭섭하기는 마찬가지, 외로움은 오히려 더 깊은 것 같구려

여기에 오면 만날 줄 알았는데 역시 계시지 않는구려. 내가 보이지 않는가요

그래도 나는 만나고 있소.

당신의 다정한 목소리가 저기에 들리고 있습니다."

진달래 꽃 한 줌을 들고

고개 근처 용천사를 향해 합장하시는 장모님의 손길이 가볍게 떨고 있다.  

 

 

 

*헐티재는 경북 청도 각북면에서 대구로 가는 큰 고개입니다. 옛날에는 전부 걸어서 넘었으나 지금은 도로가 개설되어 차들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시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연은  (0) 2023.03.22
신발  (0) 2023.03.22
와, 동백꽃  (0) 2023.03.19
개똥  (0) 2023.03.18
이제 또 지나가리라  (1) 2023.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