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山子 金正浩 공적비
2010년 12월 20일 경북 청도군 청도읍 한재 마을 입구에 세워진 고산자 김정호의 공적비를 찾았다. 이 비석은 청도 김 씨 부산종친회가 주축이 되어 2000년 5월 대동여지전도의 원형을 석각하여 세운 것이다. 김정호는 청도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관이 청도 김 씨인 것으로 보아 그의 뿌리는 청도에 있음이 확실하다.
다음은 위키 백과사전에 실린 김정호에 관한 내용이다.
김정호는 청도 김 씨 봉산파로 황해도 토산에서 1804년 무렵에 태어났다. 가정 형편은 빈한했고 신분은 한미했다. 지도 제작 등에 필요한 지식 등에 비추어 볼 때 몰락한 잔반(殘班)이나 중인이었으리라 추측한다.
언제 한양으로 이주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주한 뒤에는 남대문 밖 만리재에 살았다고 한다. 이는 김정호와 안면이 있는 한세진의 대인(對人) 증언을 근거로 한다. 반면 동아일보 1925년 10월 9일자 기사에서는 그의 유허(遺墟, 옛 집터)가 남아 있는 남문 밖 약현에 기념비를 세우려 했음을 밝히고 있다. 서대문 밖 공덕리에 살았다는 설은 남대문 밖 공덕리를 잘못 설명한 듯이 보인다. 아무튼 만리재·약현·(남대문 밖) 공덕리는 김정호가 편찬한 지도와 지지에서 살펴보면 서로 가까운 곳에 있다.
동관(童冠)의 나이 때부터 지도와 지지에 관심을 가졌다고 최한기가 쓴 〈청구도〉 제문(題文)에 나타나 있다. ‘동관’은 18세나 19세로 추정한다.
1834년(순조 34년)에 지지 《동여도지》를 제1차 편찬하였고, 그 부

도에 해당하는 지도 〈청구도〉도 펴내었다. 그 뒤 1851년(철종 2년) 무렵에 지지 《여도비지》를 편찬하였고, 1856년(철종 7년) 무렵에는 지도 〈동여도〉를 편찬하였다.
1861년(철종 12년)에는 앞서 만든 〈청구도〉와 〈동여도〉를 보완하여 〈대동여지도〉를 편찬한 뒤 1866년(고종 3년)까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착오를 정정하고 보궐(補闕)하기 위해 32권 15책의 《대동지지》를 편찬하며 살다가 그해에 남대문 밖 약현에서 죽었으리라 여겨진다.
아무튼 고산자와 같은 선각자가 우리 지도의 초석을 다졌기에 오늘의 지도가 완성된 것임에 틀림없다. 지금 보아도 현재의 지도에 거의 접근한 것이다.
측량기기등 모든 것이 열악한 상태에서 그것도 혼자의 힘으로 이런 큰일을 해내었다는 것은 길이 표창할 대역사임에 틀림없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어둡기 전에 빨리 가야되겠다고 생각했다. 잘 알고 있는 길도 밝을 때 가는 것만 못한데, 늘 낯설고 어두운 방방곡곡을 헤매던 님은 얼마나 힘들었을꼬. 삼가 옷깃을 여미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대동여지도 설명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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