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각 5일 시장(청도군 풍각면 송서리)
- 풍각시장은 1일과 6일에 선다.

풍각시장을 찾아서
행전 박영환
3월 어느 날 경북 청도군 풍각면 송서리에 있는 풍각시장에 갔다. 고향집에서 10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곳이니 어릴 때도 자주 왔고, 근래에도 이따금 오는 곳이니 낯설지 않은 곳이다. 아내가 어제 뜯은 쑥으로 떡을 하기 위해 방앗간에 간 사이 나는 장터를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런데 손님이 별로 많지 않았다. 이곳은 풍각, 각북, 각남면 3개 면민은 물론 이서면이며 화양면 사람까지도 장을 보러 오던 큰 시장이기에 늘 손님이 북적거렸다.
그런데 요즈음은 농협이며 슈퍼 등에서 상설 시장을 열어놓고 있으니 5일장이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소를 팔고 사는 우(牛)시장도 흥정하는 소리가 요란했는데 그것도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그런 속에서도 어물전이며, 채소가게, 옷집, 철물 집, 신 가게 등은 여전히 물건을 풀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노점의 옛날 국화빵도 김이 모락모락 났다. 등 굽은 할머니의 정이 묻어 있는 국화빵을 한입 베물었다. 역시 따끈따끈했다.
초등학교 때, 학교가 파하면 부리나케 학교 근처의 이서시장으로 뛰어나갔는데 그 때마다 할머니는 갓 구워낸 국화빵을 사주셨다.
“입 델라 천천히 먹어라.”
“할머니 책도 사줘요.”
할머니는 책 전 앞에서 주머니 끈을 푸셨다. 그런데 고놈이 사실은 만화책이었지만 글자를 모르시는 할머니는 손자가 책을 사는 것이 대견하여
“오냐 열심히 공부하여 검․판사 되거라.”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지금 생각해도 죄송한 일이다.
5일장은 눈과 귀를 열어주는 곳이었다. 이곳에 와서 새로 나온 물건 구경도 하고, 세상물정 소식도 듣고 풍각쟁이의 노랫가락, 엿장수의 각설이 타령, 마술 꾼의 묘기에 실컷 웃다가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재미에 사람들은 장날이 되면 별 볼 일이 없어도 괜히 좀이 쑤셔 집에 있지 못했다. 오죽하면 ‘거름 지고 장에 간다.’는 말이 생겼겠는가. 아무튼 장이 서는 날만은 만사 제쳐놓고 새 옷 갈아입고 출입을 했으니 이를테면 축제일이었다.
시장은 약속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웃 마을 사람들이나, 사돈을 만날 때도 시장에서 만났다. ‘다음 장날 만납시다.’ 그게 약속의 전부이다 구체적인 장소도 없고 시간도 없다. 그래도 잘 만났다. 남자들은 우시장 장국밥에 막걸리 몇 잔을 하면서 만났고 여자들은 국시(수)집에서 국시 한 그릇을 나누며 만났다. 하기야 자린고비들은 멸치 가게에서 짭조름한 멸치 꽁지를 씹으며 대충 사연만 전하고 헤어지기도 했다.
신 가게에는 고급 신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옛날에는 고무신만 있었는데…. 그 고무신도 마음대로 신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옆구리가 터지면 기워 신고, 밑바닥에 구멍이 나면 신기료장수에게 때워 신었다.
점심요기를 하기 위해 칼국수 집에 들어갔다.
“어서 오이소.”
이곳은 손님이 많았다. 점포 세 개를 차지하여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도 옛날처럼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엄살 아닌 엄살을 부렸다.
할머니를 경운기에 태워 오시는 할아버지의 환한 미소가 인상적이었다. 할머니는 경운기에서 내려 보행 보조기를 밀면서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 보조기는 지팡이도 되고 시장바구니도 된다. 요즈음 시골 마을에는 할아버지는 앉은뱅이 네발 오토바이를 타고, 할머니는 보조기를 밀고 다니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학교 앞 문구점에 들어가 공책 한 권을 들고 주인 할머니께 값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잘 모른다고 하면서 거기 어디에 값이 붙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리저리 살폈으나 적힌 곳이 없었다.
“영감쟁이도 참, 값도 안 붙여 놓고 어디 가뿟노.”
아마 영감님만 값을 알고 할머니는 모르는 모양이다.
“일 년에 한두 권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니…. 인자는 안 갖다 놔야 되겠심더.”
“학생들도 사지 않나요?”
“요즘 아이들 이런 것 안 씀니더.”
대충 값을 말씀하라고 하여 부르는 대로 드리고 나왔다.
노점에서 냉이를 파는 할머니
“냉이 지금 지 때이다(가장 적절한 시기이다), 지금 안 먹으면 다음 장날은 시어 목 먹는다.”
손님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강아지 몇 마리가 바구니에 담겨 나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닭들도 낯선 사람을 잔뜩 경계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묘목을 파는 노점에 가서 석류묘목 하나를 구입했다.
이름이 풍각이라
어디서 풍각쟁이의 노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허 생원이며 조 선달, 동이가 어깨춤을 추면
물레방앗간 성 처녀의 사랑 노래는
달빛 속에 들려오리라.
나의 장날도
늘 메밀꽃이 피고 달이 밝았다.
할머니 국화빵 사줘요. 단술 사줘요. 책 사줘요. 신발 사줘요. 설빔 사줘요.
“풍각장에서 장을 보면 풍년이 옵니더”
크게 외치는 아지매의
목소리가 정겹다.
어느덧 장도 파장 기운이 돌았다. 그만 돌아가려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내가 갓 해온 쑥떡을 입에 넣어 주었다. 입안에 사르르 녹았다. 이게 풍각 시장 맛인 것 같았다.

싱싱한 칼치 사이소

봄 옷 한 벌 갈아 입으시소

채소 헐타

봄에 심을 석류 등 묘목입니더.

주인님 빨리 데려 가이소

빨리 데려 가이소

쑥떡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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