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자 만난 임자도/ 전남 신안군 임자면
행전 박영환/ 2012.8.11.
임자도는 전남 신안군의 한 섬이다. 그런데 그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우연하게 모 방송국에서 이곳을 취재하여 방영한 프로를 보면서 ‘민어’가 많이 나는 곳이란 것을 알았으며 풍광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 때 마침, 여름에 갈만한 적당한 여행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끌렸다.
내비게이션에 ‘점암 선착장’을 입력한 후 출발했다. 처음 가는 길이지만 내비게이션 김 양이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덕분에 11시경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자동차도 배에 싣고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다리는 차들이 많아 안내하는 청년에게 한꺼번에 많이 실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충분한 공간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승선을 하려면 표를 어디에서 사며 배 삯은 얼마냐고 했더니 이쪽에서 내지 않고 돌아올 때 내면 된다고 했다.
“나오지 않으면 돈을 내지 않아도 되는군요.”
농담을 했더니
“그렇습니다. 나오지 않으면 공짜입니다.”
하고 시원하게 받아주었다. 어차피 돌아오려면 이 배를 타야 하니 번거롭게 양쪽에서 돈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배는 임자도 농협에서 운영했다. 후진하여 차를 싣고 난 뒤 갑판 위로 올라갔다. 탁 트인 바다와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더위가 밀려가는 것 같았다.
점암 선착장에서 임자도 진리선착장에 도착하는 시간은 15분 정도, 육지에서 아주 가까운 섬이었다. 마침 이 섬에 살고 있는 노인 분을 만나 임자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마 일흔이 넘은 분 같았다.
“임자도란 이름이 좀 특이합니다.”
“그러죠. 고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제. 우리 임자도의 '荏'이 ‘들깨 임’이지요. 이곳의 토질이 사양토이므로 옛날에 자연산 들깨가 많이 생산된다고 해서 임자도라 부르게 되었다오.”
“들깨 섬이군요. 지금도 들깨가 많이 생산되나요?”
“지금은 들깨보다는 대파가 많이 생산되지, 잉.”
“그렇군요.”
“그런데 옛날에는 임자가 참 많았는데, 요즈음은 많이 줄어졌지라.”
“임자가 줄어지다뇨? 바닷가 모래가 자꾸 떠내려가나요?”
노인은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자세히 보니 취기도 약간 있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하고 오는 길에 기분 좋을 만큼 마신 것 같다.
“아, 옛날에는 친구 간에 부를 때 임자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임자 술 한 잔 받게’ 하고, 그런데 글씨 요즈음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없지 않소.”
그러고 보니 임자란 인칭 대명사가 사용되지 않은 것도 꽤 오래되었다. 사실 이 말은 친구 간에만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친구 사이에도 그렇게 불렀지만 남편이 아내를 부르는 말이기도 했지요. 우리 아버지만 해도 어머니께 ‘임자’라고 했습니다. 또 박정희 대통령은 장관들을 임자라고 불렀지요.”
“맞아요. 맞아. 그 때는 고을마다 집집마다 임자가 있었고 청와대에도 임자가 있었지요.”
“그랬습니다. 참 임자가 많았습니다. 제 성이 박가인데 한 때는 우리 박가들이 초가집 지붕 위에 주렁주렁했는데 지금은 초가집이 없어지면서 우리 일가들이 너무 많이 줄어져 많이 섭섭한 것처럼 되었군요.”
“박 씨들도 참 많이 줄어졌지. 허허허. 이런 것도 동병상련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우리 같은 처지이니 악수나 한 번 합시다. 잉”
노인이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거기에다가 우리는 ‘자’자 돌림이지요. 영자, 숙자, 희자, 임자가 아니겠소. 나야 뭐 어떤 자야보다도 임자가 제일 좋소.”
“그럼요, 荏子'는 들깨의 씨를 이르는 것 아닙니까. 이 들깨 씨는 기름을 짜서 먹기도 하지만 등잔불을 켤 때 요긴한 기름이 되었지요. 불을 밝혀 주는 것인데 얼마나 귀한가요.”
“와, 그럴싸하군요. 임자께서 임자도 홍보대사 하소.”
“그러지 않아도 이번에 사진도 많이 찍고 글을 써서 제 카페에 올릴 작정입니다.”
“고맙습니다. 올리면 우리 아이들 시켜 한 번 볼께요.”
“그런데 고기는 민어가 많이 잡힌다지요?”
"얼마 전에 텔레비전에도 나왔지요. 잉 -."
“사실, 그걸 보고 왔습니다.”
“그런가요. 물론 민어가 많이 잡히지만 병어와 꽃게도 많이 잡힌다께. 마침 잘 오셨네여. 오늘부터 이틀 동안 대광해변에서 민어축제를 벌이고 있다께.”
“그렇습니까, 잘 되었군요.”
“임자도, 한 번 볼만한께 잘 쉬다 가셔여.”
배에서 내리자마자 대광해변부터 먼저 찾았다. 민어축제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펄럭이었고 축제장엔 관광객을 위한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한 쪽에는 임자면 삼두리 부녀회가 중심이 되어 ‘민어 시식 코너’도 만들어 두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마침 점심을 먹을 때도 되었기에 민어 회를 시켰다.
도마 위에 민어 한 마리가 올라와 있었다. 길이가 상당히 긴, 납작하게 생긴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아래턱이 위턱보다 짧았으며 등 쪽은 회청색이고 배 쪽은 담색이었는데 흡사 숭어와 비슷했다.
부녀회원들의 숙달된 손놀림이 일품이었다. 고기도 제대로 임자를 만났을 때 품격이 올라간다. 소주를 한잔 곁들이니 입에 사르르 녹았다.
마침 축제의 일환으로 ‘제4회 국민생활체육 전라남도 여자 천하장사 씨름대회’가 열렸다. 씨름이 열리기 전 대불대 씨름단과 구례군청 여자 씨름단의 시범 경기도 있었다. 공격과 되치기에 따른 들 기술, 다리 기술, 손 기술과 허리 기술, 메치기, 그리고 연속적 동작인 종합기술을 선보일 때마다 이에 매료된 관중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이어서 본 게임인 여자 씨름대회가 열렸다. 자글자글 끓는 모래사장 위에서 샅바를 허리와 넓적다리에 걸어, 서로 잡은 두 사람이 상대방을 먼저 땅에 넘어뜨리기 위해 재주와 기술을 부리며 땀을 뻘뻘 흘렸다.
선수의 연령은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했으며 생각보다 치열했다. 별로 준비 없이 관광차 들렀다가 즉석에서 출전한 사람도 있었지만 상금을 타기 위해 본격적으로 준비를 한 사람도 꽤 있는 것 같았다. 덩치와 힘이 좀 있다고 등록을 한 사람은 대부분 초반에 떨어졌고 단단히 기술을 익힌 사람들이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40대 중반의 선수가 등장했을 때 갑자기 요란한 박수가 일어났다. 아마 이곳 주민인 듯 했다. 옆자리 분이 슬쩍 한 마디 했다.
“이곳 사람인데 작년에 출전하여 2등을 했습니다.”
“일등을 한 분은 출전하지 않았나요?”
“그 사람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올해는 저 사람이 아마 일등을 할 것 같습니다.”
얼른 보아 체구도 단단하고 눈빛도 강렬했다. 시작하면서 ‘파이팅’을 외치니 또 한 번 큰 박수가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다. 제대로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새로운 복병을 만난 것이다.
“임자 만났군!”
누군가 한 마디 하니, 폭소가 터졌다.
임자를 만났다는 것은 이처럼 단수가 높거나 뛰어난 상대를 만난 경우를 말하기도 하지만 잘 다룰 수 있는 주인을 만나 제구실을 하게 된 것도 그렇게 말한다.
요즈음 임자도는 후자의 뜻인 임자를 만나 그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대광해변, 대머리 해변, 어머리 해변의 넓고 아름다운 백사장에 수많은 피서객들이 몰려드니 임자를 만난 것이고, 해변 승마장에 힘차게 달리는 말과 100년 해송 숲도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하니 임자를 만난 것이고 전장포의 새우젓 토굴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염전에는 보석처럼 소금이 쌓이고, 너른 들에는 대파가 물결을 치니 임자 만난 징표이다. 튤립공원에는 매년 4월 튤립 축제가 개최되는데 80여종 300만 송이 형형색색 튤립의 대향연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어 민어 축제가 열려 관광객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니 이 또한 대단한 임자를 만난 것이 아니랴.
한때, 임자도는 유배지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조희룡 기념비이다. 조희룡은 흑암리로 유배되어 그 아픔을 문인화로 달랬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숨어 있는 섬이 아니다. 이제 임자도는 임자를 만나 펄펄 뛰고 있다.

차와 사람이 같이 타고 들어오는 대형 배

들어가는 도중에 만난 또 다른 농협 배

대광해변 입구

대광 해변



엄청난 크기의 민어

삼두리 부녀회원들이 회를 뜨고 있다

구례군청 여자씨름 선수들의 시범 경기




대불대 선수들의 시범 경기




여자 천하 장사 씨름 대회




염전

들판에 가득한 대파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호담 항공우주전시관/ 전라남도 무안군 (0) | 2023.01.19 |
|---|---|
| 증도-느려서 더 행복한 섬 / 전남 신안군 (0) | 2023.01.19 |
| 여수 세계박람회 (0) | 2023.01.19 |
| 지심도/경남 거제시 일운면 (0) | 2023.01.19 |
| 대변항/ 부산시 기장군 (0) | 2023.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