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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구룡계곡 /전북 남원시 주천면

구룡계곡 /전북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와 덕치리 사이

 

 

 

                                                                 행전 박영환

 

 

 

 

 

 

□ 구룡(九龍)계곡

  처음부터 조금 이상한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A 탐은 구룡폭포쪽으로 걸어가며, B 팀은 차를 타고 가서 유선대만 보고 주차장에서 합류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최 고문은 2/3는 평지이며 끝부분이 약간 오르막이 있긴 하지만 전부 나무로 계단을 잘 만들어 두었기에 별로 힘이 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 고문은 누가 뭐래도 지리산 전문가이다.  '지리산 통신'을 신문에 연재했던 분이다. 그리고 성품도  평소 거짓말이라고는 전혀 하지 않는 분이었다. '믿어야지. 믿고 말고.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버스를 탄다는게  좀 그렇지 않아. 특히 오늘은 춘향이가 나오고 변강쇠와 옹녀가 일정을 압도하고 있는데 ....' 

  아마 일행들도 나와 거의 같은 생각이었을 게다. 정 몸이 불편한 몇 분을 제외하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계곡에 접어들었다.  

  구룡 계곡은 전북 남원시 주천면 호경리와 덕치리 사이에 만복대, 고리봉, 세걸산으로 이어진 지리산 서북능선의 왼쪽 자락에 자리한 청정계곡이다. 우리가 육모정에서 출발했으니 구룡폭포까지 약 3㎞ 가량이 된다고 했다.  때묻지 않은 지리산의 청정 자연, 맑은 계곡수가 펼치는 정경은 장관이었다. 

  말구유 같다고 하여 붙여진 ‘구시소’, 곡식을 까불리는 키를 닮았다는 ‘챙이소’, 선인이 바둑을 두었다는 ‘유선대’ 등 아홉 절경을 그렸다. 계곡 최상류의 구룡폭포는 남원의 국악 명창들이 득음(得音)을 위해 판소리를 연습했던 곳으로, 동편제 소리꾼들에게는 성지와 다름없다고 했지. 송만갑, 박초월, 강도근 등 당대 최고의 국창, 명창들이 웅장한 폭포 소리에 맞서 절세의 소리를 다듬어 냈다고 하지 않는가. 높이 10m, 경사를 따라 흘러내리는 폭포의 길이는 30m 정도라고 하는데 대단하겠지.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 폭포를 묘사하며 '들을 제난 우레러니, 보니난 눈이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태백은 '백발 삼천장'이라 했고. 구룡폭포는 어떤 모습으로 맞을까.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런데 아뿔사, 그게 아니었다. 산길은 이내 험해지기 시작했다. 순진한 나는 장갑까지 배낭에 둔 채 맨손으로 나섰고 거기에다 무게가 만만찮은 카메라까지 목에 걸고 있지 않는가

  "최 고문에게 사기 당했다." 

  일행들이 비명아닌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쩌랴. 진퇴양난이다. 이미 최 고문은 B 팀을 인솔하여 주차장에 가고 없는 터라 물러설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엄살을 부리다가도  물살이 패인 바위의 모양이 마치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유처럼 생겼다고 부르는 '구시소'라는 안내판을 보고 '구시'를 찾았다. '구시'는  '구유'의 사투리다. 이는 전라도만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고 경상도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소구시'라고 했다. 그런데 '구시'는 없었다. 알고 보니 옛날에는 큰 나무 토막이나 큰 돌을 길쭉하게 파내어 만든 구유 모양이었으나 1960년대 홍수로 인하여 그 모습이 떠내려갔다고 한다. 

  또 사기를 당한 것이다. 

  '나무와 풀의 비밀' 안내판은 진짜였다. "나무는 겨울눈이 가지에 달려 있어 새싹이 가지에서 나오고 풀은 겨울눈이 땅속에 있어 새싹이 땅속 뿌리에서 나옵니다. 이곳에는 곰깨잎나무와 거북꼬리가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 두 식물은 쐐기풀과의 형제 식물로 모양이 비슷하여 열핏 나무인지 풀인지 구별하기 매우 힘듭니다."

  정말 신기했다. 나무와 풀이 비슷하다니.

  또 챙이소가 있다. '챙이'도 '키'의 사투리이다. 경상도 지방에서도 이렇게 부른다. 수확한 곡식을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를 말하는데 빠른 물살에 패인 모양이 '챙이'처럼 생긴 것이다. 또한 스님이 꿇어앉아 독경하는 모습을 하고 있어 '서암'이라고도 한다. 

  자세히 보니 그런 모습이었다. 정말 이름을 짓기 위해 유심히도 살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얼마 전에 손자가 태어나서 이름을 지었는데 짓다보니 이것 저것 걸리는 것이 많아 참 어려웠다. 

  야생화 군락이 있었다. 심심산골에 홀로피었다가 홀로 지는 꽃, 초록색 바탕에 노랑, 대비되어 선명했다. 뽕나무가 있었다. 이곳에 일부러 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자생인 것 같다. 뽕나무도 생명력이 참 강하다. 그 씨앗이 아주 멀리 날아가고 뿌리도 길게 뻗는다. 

  잠시 유선대(遊仙臺)에서 신선이 되었다. 반반한 바위에 금이 그어져 바둑판 같다. 신선이 바둑을 즐겼다는 전설하나가 충분히 생길 만하다. 주변의 절벽은 신선들이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병풍을 쳐놓은 것 같다. 그래서 은선병(隱仙屛)이라고도 한다. 

  비폭동(飛瀑洞) - 동리 이름이 아니다. 골짜기를 말한다. 반월봉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물보라를 만든다.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란다. 

  신선은 숨어야 하고 용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야 한다. 그게 제격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 오히려 변격이 정격을 누르는 세상이니 신선도 하강을 하고 용도 개천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드디어 구곡의 마지막 지점, 우렁찬 굉음을 내며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잠시 합장을 했다. 

  위험한 바윗길, 여러 개의 출렁 다리 등을 지나며 바짝 얼어붙었던 긴장이 슬며서 녹아내렸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낮게 낮게. 아래로 가는 것이나 아래에서 받침을 하고 있는 것을 잘 보아야 한다. 돌도 받치고 있는 돌이 더 위대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위에 있는 돌만 본다. 원래 목은 아래로 보기 편리하게 되어 있는데 자꾸만 위로 보려하니 목이 아프고 스트레스를 받아 병이 난다. 아래로 흘러가는 것, 받치고 있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너무 몰랐던 것 같다. 

  이렇게 반성을 하고 나오는데 이번에는 진짜 위로 쳐다볼 일이 또 생기고 말았다. 주차장 가는 길이 조금 거짓말 보태어 직각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주차장이 하늘에 있는 것 같다."

  누군가 한 마디 하자 일행들이 웃었다.  주차장은 어디에 있는가. 하늘에 계신 주차장님이여. 

  조심조심, 마지막 고비를 참느라 온몸이 떨린다. 군대에 있을 때 유격훈련을 하던 생각이 났다. 얼핏, 하루만 더 일찍 태어나도 못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품이 들어 있지만 엄치 조심을 했다. 

  아! 기다리고 고대하던 주차장 - 시계를 보니 1시간 30분을 걸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절벽을 올라왔는데 자상에는 거대한 평야가 전개되지 않는가. 세상에 이런 일이 ....  

  이건 사기다. 분명히 사기를 당한 것이다. 

  최고문 허허 웃는다. 

  만일 그렇게 어렵다고 했으면 아마 반 이상은 차를 타고 갔을 것이다. 그 사기 덕분에 결과적으로 좋은 등정을 했다. 사기를 당하고도 이렇게 즐거운 것은 무슨 심사인가. 

  하기야 이번 기행은 그런 것이 많다. 춘향이 묘가 그렇고 변강쇠와 옹녀가 그렇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속는 재미가 있는 여행, 정말 짜릿하게 즐거웠다.      

 

 

계곡 등정 준비

 

 

 

 

 

 

 

 

 

 

 

 

 

 

 

 

 

 

 

 

 

 

 

잠시 휴식

 

 

아! 숨차다

 

 

드디어 계곡의 최상류

 

 

일단은 내려가고

 

 

다시 가파른 계단, 주차장은 어디 있나요. 하늘에 걸려 있는 것 같다. 하늘에 계신 주차장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