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황산대첩비지/전북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

황산대첩비지/전북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

 

 

 

                                               행전 박영환 / 2012.5.19.

 

 

 

 

전경

 

□ 황산(荒山)대첩비지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 있는 황산대첩비지는 사적 제104호. 고려 말(1380) 이성계가 황산에서 아지발도의 왜군을 무찌른 사실을 기록한 승전비를 세운 곳이다.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투로, 승전 사실을 영원히 전하기 위해 조선 선조 10년(1577)에 대첩비를 세웠다. 김귀영이 비문을 짓고 송인이 글씨를 썼던 것이다.

  충청남도 연산지방에도 황산벌 전투가 있었다. 이는 신라와 백제의 싸움이고 또 당이란 외세를 끌어들인 싸움인데 비해 이 전투는 왜구를 시원하게 무찌른 것이니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금강 어귀에서 퇴로가 막힌 왜구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차 바다로 달아나려했다. 고려군 최고 지도자인 이성계는 적장 아지발도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곳의 '引月'이란 지명은 달을 끌어들여 멈추게 하고 적을 무찔렀다는데서 나온 말이다. 이성계가 먼저 활을 쏘아 아지발도의 투구를 떨어뜨리고 이어서 이두란이 쏜 화살이 그의 머리에 명중했다. 장수를 잃은 왜구가 우왕좌왕하자 고려군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왜구를 섬멸하였다.

  당시 전사한 왜구들의 피가 강을 물들여 6~7일 동안 강물을 먹지 못했다고 한다. 아군이 포획한 말이 1600여 필에 이르며, 적군 숫자가 아군보다 10배나 많았으나 겨우 70여 명만 살아남아 지리산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가 이 대첩비의 내용을 알고 무참하게 폭파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조선총독부가 폭파 사실 자체를 알리기 위해 파손된 비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이를  광복 후 옛 비석으로 다시 복구하였다가  1972년 한글로 쓴 비석을 새로 세웠다. 지은이는 신석호이다.

  아무튼 이곳은 우리 민족의 기상 넘치던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지금도 때때로 독도를 향해 발톱을 내어놓는 그들을 볼 때마다 그리워지는 곳이기도 하다.

 

모른 체 하기 없기

결코 잊지 않기

정의 피가 언제나 펄펄 끓기 

우리 그렇게 살았으니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할  수 있어

용기, 의기로 정신 차리기 

 

 

 삼문

 

 

열심히 둘러보는 사하문협, 부산문인 산우회 회원들

 

대첩비각

 

 

 

 

파비각

 

 

파비

 

 

 

 

 

 

 

황산대첩 사적비

 

 

 

 

 

 

대첩 기념비를 읽고, 또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