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화양읍 신봉리, 청도 복숭아의 효시/ 행전 박영환
2019년 3월 4일 청도군 화양읍 신봉리를 찾았습니다. 이 마을은 청도복숭아를 처음 재배한 마을입니다.
이곳에도 만향재와 추모재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찰인 죽림사가 병풍처럼 마을을 감싸고 있습니다.
만향재 편입니다


만향재(晩香齋)
◯관리문중: 아산 장씨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신봉리 345
국도에서 200여미터 지점 마을 중간에 북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건물구조: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건너 팔작지붕 4칸(방2, 마루2 중당 협실형)의 재사가 있다. 홑처마이며 시멘트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구체부를 구성했다. 대청 가운데에 재사 이름인 ‘晩香齋’ 현액이 있으며 그 옆에 박희명이 근서한 ‘만향재기’가 걸려 있다.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으며 벽돌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국헌(菊軒) 장방한(蔣邦翰)
본관은 아산이며 이요재(二樂齋) 양헌(養軒)의 아우로 천성이 순후하고 명석하여 나이 12세에 이미 박학하고 경학에 능통하였으며 16세에 과거에 오르고 37세에 성균관 진사가 되니 조야에 그 이름이 높았다.
졸후 각남면 칠성리(향인촌) 화계사에 백형 이요재와 같이 배향되었으나 고종 신미년에 훼철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었다.
◯연혁: 1996년에 신축했으며 2018년도에 강판기와 및 도색을 새로 했다.
신봉리 새터마을은 아산 장씨 집성촌이다.


다음은 추모재 편입니다.


추모재(追慕齋)
◯관리문중: 전주 이씨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신봉리
신봉리 홍도마을 산기슭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건물구조: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건너 정면 3칸(방2 마루1) 재사가 있다. 정면에 재사의 이름인 ‘追慕齋’가 현액되어 있다.
◯배향인물: 이선종(李先宗)과 이문명(李文明)
이선종의 본관은 전주이다. 호가 낙고(落皐)이며 자는 유천(由天)이다. 양녕대군의 9세손으로 명리에 쫓지 않고 향리에 은거하여 경학에 전념하고 후학들을 훈도하였다. 향년 72세에 졸하였다.
이문명은 호가 화강(華岡) 또는 복정(福井)이고 양녕대군의 11세손으로 효행이 지극하고 덕행이 높았으며 통정대부, 가선대부를 지냈다. 향년 81세에 졸하였다.
◯연혁: 1913년에 신축했으며 1998년에 중수를 거쳐 2008년 경에도 강판기와 대문을 수리했다.
이 재사는 이문명의 5세손인 이호선이 세웠다. 홍도마을에는 아산 장씨 20호, 전주 이씨 10호, 김해 김씨 5호가 살고 있다.
다음은 죽림사 편입니다. 죽림사는 2016년 12월2일에 방문하였습니다.

죽림사(竹林寺)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홍도길 205-6
○주요 건물: 대웅전, 삼성각, 산령각, 요사채 2동
○소속: 제9교구 동화사 말사
○연혁
남산 중턱에 자리 잡은 죽림사는 원래 화남사라 하여 610년(신라 진평왕 32년)에 법정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법정대사는 635년(신라 선덕여왕 4년) 왕의 명을 받아 불교의 포교와 화친사로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다. 왕은 이를 갸륵하게 여기고 900여평을 하사하고 대나무를 심게 하였다. 그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사찰이 대나무 숲 속에 있게 되자 절 이름을 죽림사라 개칭했는데 절도 전성시대를 이루게 되었다. 그 뒤 왕사였던 지눌 보조국사(1158-1210)가 1180년 (고려 명종 10년)중건하였고, 조선 태조 때는 무학대사(1327-1405년)가 중수하였다 한다. 그 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의 병화로 대웅전과 명부전이 불타 없어지고 보광전만 남은 것을 승려들이 인덕당을 세우고 불상을 봉안해오다 1935년 요사채를 건립하는 등 사찰을 크게 중건하였고 1999년 대웅전을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서 깊은 큰 대나무 밭은 세월이 지나면서 없어졌다. 근래에 절의 축대를 새로 쌓고 법당을 새롭게 단장하였다.
○활동상황: 현재 신도수는 300명, 대지는 3000㎡이며 주지는 법성스님이다.


삼성각


<죽림사에서 바라본 화양읍>

신봉리(新奉里)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에는 신봉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신기동과 노봉동을 병합하여 신봉동이라 하였다. 마을로는 홍도(紅桃)와 신기(新基)가 있다. 홍도 마을[홍두골]은 갈마봉 또는 선인장봉(仙人掌峰) 기슭에 있는 동네이다. 이곳은 옛날부터 자생하는 복숭아가 많아서 ‘홍도화발천가부(紅桃花發千家富)’라는 말이 전해지도 있다. 그래서 홍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동네라고 한다. 신기는 새터라고도 하는데 아산 장씨 장용호가 향인촌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새로 터를 잡아 택리를 했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도군 상읍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신기동과 노봉동을 병합하여 신봉동이라 하고 화양면에 편입하였다. 이후 1979년 화양면이 화양읍으로 승격되면서 화양읍 신봉동이 되었으며, 1988년 신봉동에서 신봉리로 이름을 바꾸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1년 신기 마을의 소교량을 가설하였으며, 1982년 마을 안길을 포장하였고, 1978년 마을 내 농로를 확장하고, 1985년 마을 진입로를 포장하였다.
[자연 환경]
신봉리는 화양읍에서 가장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화산(華山)[남산]의 지맥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청도천이 북쪽을 가로 막고 있고, 남쪽은 산으로 막혀 있는 남고북저(南高北低)의 마을이다.
[현황]
자연 마을로는 홍도와 신기가 있다.
홍도동은 경사진 밭을 계단식으로 개간하여 복숭아를 주로 재배하였으나, 지금은 청도 반시 감나무로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봉리 서쪽의 외목 고개는 예전에 풍각면과 창녕으로 넘나들던 고개이며 고개만 넘으면 각남면 칠성리의 향인촌(向仁村)이다. 새로운 도로가 생기고 자동차가 국도 20호선 청려로(淸麗路)로 통행을 하면서 고개는 폐쇄되었지만, 최근에 옛길을 확장하고 포장하고 나서 농로 또는 드라이브 길로 각광을 받고 있어 지금은 많은 차량들이 다니고 있다. 신봉리에는 신라 고찰 죽림사가 있다.
한편 청도군지(1991, 청도군)에는 신봉리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남산의 장엄한 두 줄기의 용이 하나의 주산인 비봉봉(飛鳳峰)이 되어 마을 앞을 달리고 하나는 갈마(渴馬)능이 되어 마을 뒤를 감고 돌아 나갔다. 이 두 고개사이의 계곡변 또는 중복에 자리잡은 마을로 본 읍내에서는 가장 고지대이기도 하다. 급한 경사지를 이용한 거주지는 계단식으로 되어 있어 아랫집 지붕이 뒷집 마당 같은 높이의 전형적인 산촌취락이나 그렇다고 심산유곡은 아니다. 청도팔경의 하나인 남산조양의 아침안개 속에 감싸인 마을이기도 하다. 중천에 옹립한 남산의 위용도 좋으나 춘삼월 호시절의 만산도화(滿山桃花)는 이 마을만 지닌 자연화다. 층층이 만개된 도원의 풍경은 속세에서는 아까우리 만큼 아름답다.
홍도(紅桃)마을
1700년대에 각남면 향인촌에서 아산인 장용호 공이 이거 구 죽림(竹林)사지 산비탈 터를 잡고 정착하였다 한다. 이는 현재의 홍도마을보다 훨씬 위쪽인데 아마도 당시의 홍도 마을에서는 주민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나 분명히 알 수가 없다. 그후에 전주 이씨, 청도 김씨가 입촌 했다는 것이다. 신라시대부터인지 고려시대부터인지는 모르나 옛날부터 복숭아나무가 많아 홍도(紅桃)촌이라는 동명이 붙어진 것이라고도 한다. 옛날부터 이 마을을 삼천(三遷)촌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이유는 이 마을은 도(桃)림, 송(松)림, 죽(竹)림이 일정한 연륜을 두고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복숭아가 성하면 마을이 넉넉해지고, 죽림이 무성하면 마을에 불교가 흥성하고, 송림이 우거지면 마을의 경제가 파탄된다는 것이다. 이 자연의 섭리가 어떻게 되어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지 알 수 없으나 이산에 자리하고 있는 죽림사라는 고찰도 신라통일시대 창건 당시는 화남사(華南寺)라 했으나 너무 죽림이 성하여 죽림사로 절 이름을 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는 군내 2개소의 대나무숲 중의 하나로 이 곳의 청죽이 공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홍도화발(紅桃花發) 천가부(川家富)라는 말이 있다. 이 얼마나 상응한 말인가? 전국에서 명성 높은 청도복숭아의 근원지가 바로 이곳이다.
신기(新基)마을
홍도촌과 등성이를 사이에 둔 마을이다. 글자 그대로 새 터 마을이다. 아산인 장경수 공이 홍도에서 1800년대에 이곳으로 이거했다.
풍수지리설로 금안포란(金 抱卵)의 길지(吉地)라서 이곳으로 옮겨와서 마을의 터를 잡았다는 것이다. 신기천호(新基千戶) 만세영(萬歲營)이라는 풍수설이 현실로 나타남인지 자손이 흥성한 것은 우연이 아닌 현실이다.
륵원(勒院)
마을의 뒷산봉우리가 풍수지리설로 마분등지상(馬奔騰之狀)이라 동헌이 있는 소재지의 지기가 유실되기 때문에 이를 막아보자는 뜻에서 조선시대부터 원을 설치하여 륵원이라고 명명하고 고마청(雇馬廳)에다 별도로 말 수필을 격마사육(擊馬飼育)했었다. 이는 달아나려는 말의 형국을 인위적으로나 붙잡아 보자는 뜻이다. 그리고 륵원 부근에 빙고(氷庫-얼음창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북문 바깥과 혼동한 것인지 별도의 것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임수(林藪)
우리 군내에는 2개가 있었는데 그 중의 1개가 이 마을이다. 현재는 도내의 도원(桃園)이나 이 일대는 대밭으로 여기서 나는 청죽은 질이 좋아 공물로 헌상되었다 한다. 동향인 구릉일대가 대밭으로 절 이름까지도 바꾸게 했고, 관이 경영하는 대밭이라 관리를 잘하여 남산죽전(南山竹田)이라 하여 명성이 높아 도내의 많은 대밭중에서도 삼천(三遷)이라는 자연현상이 반복되었다.

<경로당>

<마을전경>

<홍도마을 입구에 세워놓은 청도복숭아 유래비>

참고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도주지(1958, 김석봉 편)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 아산 장씨, 전주 이씨 후손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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