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헌 선생 전의 이공 장구지소라고 새겨져 있다>
오대梧臺에서
행전 박영환
말이 굴렀다는 마전연馬轉淵을 지나
오대에 올랐다
가슴 쿵쾅
오늘은 수헌의 봉서정鳳棲亭을 찾는 날
거북 바위 위 신라왕 깃발 세운 구멍이 있어
초가 삼 칸을 세웠다는데
좁은 터에 무심한 잡초만 무성하다
다행히 동쪽 안령鴈嶺, 남쪽 부용석芙蓉石, 서쪽 연봉蓮峯, 북쪽 오산鰲山은 그대로 있고
흰 물가 푸른 물굽이는 지금도 고운 소리를 잊지 않고 있다
저만큼 거문고 쏟는 듯 옥 울림에 귀가 스스로 맑아져
배가 가는 대로 몸을 맡겨두며
낚시 줄을 드리운 시인이 있다
버들가지에 꿰어 둘 물고기만 낚으려 할까
12폭 풍광을 담은 병풍바위
서책을 펼친 듯한 연잎 바위
백구白鷗 따라 가는 길은 돌부리도 멈출 수 없고
맑은 바람 달빛까지 낚싯대로 불러와 가득 싣는다
"네가 내 벗이라, 인간세상 저만큼 떨어진 이 마음 그 누가 알리"
늙기를 잊으며 어부사 자아올리는 님
"아희야 잔을 부어라"
그 말씀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잔이 넘치도록 가득 받들어 올리고 싶습니다.
*2018년 5월 30일(수) ‘우리문화 바로 알기 모임’에서 수헌 이중경(李重慶)의 오대(梧臺) 유허지를 찾았다.
이날 안내 및 강좌는 장인진(張仁鎭) 박사(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자문위원, 경상북도 문화재위원회 위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께서 맡아주셨다. 장 박사님은 이미 80년대 초에 이곳을 답사하여 고증했으며 수헌 이중경의 ‘오대어부가(梧臺漁父歌)’에 대하여 1983년에 학계에 최초로 발표했다.
이 ‘오대어부가’는 장인진 박사가 발굴하기 전까지는 심재완 ‘시조대전’이나 정병욱 ‘시조문학사전’에 수록이 되지 않은 시조로 청도에서는 처음 발굴된 고시조인 것 같다.
이 오대 지역은 지금은 비록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밀양군 상동면 지역이지만 옛날에는 청도 지역이고 또 수헌이 바로 청도인이기에 청도 사람이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하다.
이분의 증조부 이흥지(李興智)가 소요당 박하담의 사위가 되면서 경기도 금천(지금의 시흥)에서 청도 수야로 우거(寓居)하여 가촌(佳村) 마을에 살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 두암(竇岩) 이기옥(李璣玉)은 39세에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순조 28년(丁亥, 1827)에 도내의 유림들이 도림서원을 지어 배향을 할 정도로 큰 선비였다.
그는 1647년 이곳에 봉서정(오대정)을 짓고 약 15년 간 오대정사와 오대 구곡 등을 경영하며 생활했다.오대어부가(구곡, 어부사, 어부별곡) 20수는 그의 나이 58세 되던 1656년에 지었다. 그리고 66세 때 ‘오대어부가’를 담은 ‘잡훼원집(雜卉園集)’을 완성한 뒤, 67세(1665, 현종 6년)에 옛집이 있고 근처에 선대의 산소가 있는 수야에 돌아와 ‘수헌정사(壽軒精舍)’를 지어 만년의 은거지로 삼고 80세(1678, 숙종 4)에 작고하기까지 13년간을 살았다.
수야에 살면서 75세(1673, 癸丑 현종14)에 청도군수 권일(權佾)의 요청으로 청도 최초의 읍지인 ‘오산지(鰲山誌)’를 편찬했다.

<오대 앞에 비스듬이 누워있는 소나무>

<우리문화 바로알기 회원들>

< 수헌 이중경 선생에 대해 강의를 해주신 장인진 교수님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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