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월정(先月亭)이 있는 청도읍 사촌리 / 행전 박영환
사촌리는 2016년 11월 23일(수)과 2018년 5월 16일(수) 두 차례 찾았다. 처음에 갔을 때는 초겨울이라 하지만 쌀쌀한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한겨울 같았지만 두 번째 갔을 때는 5월이지만 초여름 같아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청도의 동남쪽 가장 끝 부분 오례산성 앞 사촌리(沙村里)는 동창천의 모래가 퇴적되어 형성되었다고 사촌(沙村)이라고도 하지만 제사를 지내던 곳이기에 사촌(祀村)이라고 했다고도 한다. 실제 이곳에서 돌칼, 돌도끼, 어망추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으며 경주 박물관에서는 이곳을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었던 곳이라고 연구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다.
또 이곳은 밀양군 상동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에 청도에 편입된 땅이다. 그런 연유도 있고 지역 특성상 밀양과 교류가 많은 지역이다. 실제 청도역보다 밀양 상동역이 더 가깝다. 이곳은 '사촌 딸기'라고 명명한 양질의 딸기가 생산되는 곳이기도 하다.

<선월정>

선월정(先月亭)
◯관리문중: 아산장씨(牙山蔣氏)
◯소재지: 청도군 청도읍 사촌 3길 29-7(사촌2리 장촌마을 250번지)
청도와 밀양군의 경계지에 있는 청도읍 내호리에서 동창천을 따라 북동쪽으로 개설된 지방도 919호선을 타고 가면 2.4㎞ 지점 동향으로 좌정했다.
◯건물구조: 암반 위에 2단으로 석축을 쌓아 동향으로 앉혔는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평면은 2칸 온돌방에 마루 1칸이 연접 배열된 좌실우당형이다. 전면에는 툇간에 툇마루를 시설하였다. 가구는 시멘트기단 위에 두리기둥을 전면에만 사용해서 통재의 대량 위에 종량과 종도리를 결구시킨 5량가이다. 우측 끝 방 뒷벽에는 반침을 그 외에 후면에는 쪽마루가 시설되어 있다. 정자를 포근하게 감싸는 석축담장을 둘렀다. 주인(主人) 사이옹기(四而翁記)의 ‘先月亭記’, 부사(府使) 조언신(趙彦臣) 등이 쓴 ‘謹次先月亭韻’ 등 여러 글이 마루 벽에 걸려 있다.
정자 밑 절벽을 배경으로 와연(臥淵)이 있다. 이를 보면 옛날에는 동창천 물줄기가 마을 앞까지 왔음은 알 수 있다. 아무튼 물빛이 고운 와연을 바라보노라면 흡사 처마 끝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으며 와연의 병풍이 된 절벽 위에는 사철 진귀한 꽃들의 향기가 그윽하다. 또한 정자 주변에 학(鶴)이 머물다 가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웅장하게 자리 잡은 바위 모양이 부처 같기도 하고 아니면 범이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 그 또한 예사롭지 않다.
◯배향인물: 사이당(四而堂) 장덕윤(蔣德潤)
본관은 아산(牙山)이며 호는 사이당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추부사(中樞副使)를 지냈으며 경남 밀양군 부북면 대항리(한목)에서 사촌리로 택거하였다.
금자광록대부신경위 대장군(金紫光祿大夫神慶衛大將軍) 장서(蔣壻)의 후예이며 고조부 장언기(蔣彦起)는 통정대부 수문장 호종공신이 되었으며 효행이 있어 시묘 3년에 산신령이 호위하였고 그가 졸한 이후에 역시 묘지를 산신령이 택하였다고 한다.
◯연혁: 사이당 장덕윤이 시유(詩遊)하고 강학(講學)하던 장구지소로 1890년(고종 27, 庚寅)에 창건했으며 그 이후 1941년(辛巳) 중건했고, 2001년 8세손 故 장성달(在 日本)의 부인 이경란(李慶蘭)이 축대를 새로 쌓고 건물도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대문 앞에 이경란의 공덕비가 있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에 조방장(助防將) 정희현(鄭希賢)이 군사를 이끌고 주둔한 곳으로 전한다.
선월정(先月亭) 부근의 아름다운 경치를 10경(景)으로 부른다.
마연어화(馬淵漁火) 마전암 부근에서 횃불을 들고 고기를 잡는 풍경.
造坊송죽(助防松竹) 조방대 부근의 푸른 솔과 대나무.
부성초가(鳧城焦歌) 오례산성에서 들려오는 나무꾼의 노랫소리.
매화적등(梅花績燈) 멀리 매화 마을의서 깜빡이는 등잔불빛.
만정괴음(滿庭槐陰) 정자를 둘러싼 정원의 느티나무 숲의 그림자.
당헌오월(當軒梧月) 선월정의 오동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
가호우립(駕湖雨笠) 가호(駕湖)에 내리는 빗속에 우의를 두른 농부의 모습.
茅계백구(暮溪白驅) 저녁때에 동창천을 따라 내려앉는 백구의 모습.
시정납량(柿亭納凉) 감나무 아래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
유호홍稻(楡湖紅桃) 유호마을 부근의 붉게 핀 복숭아꽃.
아산 장씨(牙山蔣氏)의 시조 장서(蔣壻)는 중국 송나라에서 신경위대장군(神慶衛大將軍)을 지냈으며, 금이 송을 침입하자 이강(李綱)과 함께 항전할 것을 주장했으나 관철되지 않자 배를 타고 망명해 경기도 아산군 인주면 문방리에 표착하였다. 당시 좌복야 박인량(朴寅亮)과 재보 위계정(魏繼廷)이 장서가 아산에 와 있는 사실을 고려 예종에게 알렸고, 왕이 장서를 아산군(牙山君)에 봉하고 후손들이 본관을 아산으로 하였다.
청도군 내 아산 장씨의 입향 경위는 마을에 따라 구분된다. 청도읍 사촌리에는 1600년대에 장덕윤이 선월정을 지어 입향하였으며, 각남면 칠성리는 1500년대 중엽에 장희윤(蔣希尹)이 밀양 부북면에서 각남면 일곡으로 입향한 뒤 손자 장사용이 칠성리 향인촌으로 이거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청도군 내에 134가구 35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화양읍 신기 마을·오천 마을, 청도읍 사촌 2리, 각남면 칠성리에 각각 집성촌을 이루어 거주하고 있다.








<1941년(辛巳) 중창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정자 벼랑 밑에 있는 와연(臥淵)

<이경란 공덕비>
다음은 2018년 5월 16일(수) 방문했을 때의 사진입니다.

만취 滿醉
- 선월정先月亭에서
행전 박영환
달빛에 취하기 좋은 봄밤입니다
선월정 주인 사이당四而堂은
이맘때쯤이면 어떻게 취했을까
처마끝 거울인 와연臥淵이 받들어 올리고
소나무숲 백학이 물어온 선율에
술잔이 뚜벅뚜벅 걸어오면
오례산성 바위는 범으로 다가오다가
부처로 눕는다
아희야 횃불을 들어라, 고기떼가 몰려온다
푸른 대나무 소매 끝에 쌓이는 절의
지게 위에 풍년을 담은 나무꾼 노랫소리
매화꽃 잔등에 깜박이는 등잔 불빛
느티나무 숲을 돌고 오동나무 숲길 따라
도롱이에 삿갓 쓴 농부
백구야, 너는 이미 가을바람을 준비하는가
아니로다, 아직은 볼이 아름다운 복사꽃
봄밤이 바쁘다
취하여 꽃을 그리면 꽃도 취하듯이
취하여 달을 노래하면 달도 취할까
선월정은 지금
만취
두리기둥이 붓이라
쏟아지는 시흥詩興.

<우리문화바로알기 회원들>

<선월정에서 바라본 앞 전경>

향토사학자 김태호 선생으로부터 선월정에 대한 설명을 듣다>

<제단으로 사용되었다고 추정되는 바위를 살피고 있다>

<일부러 옮겨놓은 듯한 돌을 살펴보고 있다>

<반생교회>


<멀리 도로에서 바라본 반생교회>
반생교회
○소재지: 청도군 청도읍 사촌 3길 13-1(사촌 3리 402)
○설립연도: 1946년
○주요 건물 : 1968년에 12월 21일에 신축한 본당 및 교육관, 사택
○소속: 대한 예수교 장로회 고신 소속
○현황: 반생교회는 교인이 접근하기 쉬운 사촌리 중앙인 장촌(아산 장씨들이 많이 산다고 붙여진 이름) 에 위치한 교회이며 신도수는 25명 정도이며 대지는 250㎡이다.

<마을 앞 도로에서 바라본 사촌리>
사촌리(沙村里)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집필자: 박윤제)에는 사촌리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청도의 동남쪽 가장 끝 부분에 자리한 사촌리는 밀양에서 청도로 이속된 곳이다.
[명칭 유래]
모래가 많아 모랫내라 불리는 사촌은 동창천에서 힘차게 내려온 물줄기는 넓은 강바닥을 이루고 모래를 끌어와 넓은 경작지가 위치하며, 이를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동네 이름을 사촌이라도 하였다. 또한 제사를 지냈던 동산이 있어 사촌(祀村)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형성 및 변천]
본래 밀양군 상동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예촌동, 매지리 일부와 밀양군 상동면의 원내 사지동, 원외 사지동을 병합하여 사지와 예촌의 이름을 따서 사촌동이라 하여 대성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40년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청도면 사촌동이 되었고, 1949년 청도면이 청도읍으로 승격하면서 청도읍 사촌동이 되었다. 1988년 사촌동에서 사촌리로 명칭을 바꾸었다. 사지리가 밀양에 있었을 당시에 사촌은 내·외사촌이었으며, 1912년에 조선 총독부가 발간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 청도 조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 똥뫼산에 과수원을 개간을 하다 돌도끼를 수습하여 신고를 하였고, 경주 박물관에서 1989년 3월 발굴 조사하였다. 이곳에서 수습된 유물로는 돌칼, 돌도끼, 어망추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으며 경주 박물관에서는 이곳을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 있었던 곳이라고 연구결과를 발표한 일이 있다.
[자연 환경]
동창천이 강하게 흘러내려 넓은 충적토를 이루고 있는 사촌리는 오례산성 바로 앞에 있다. 서북쪽에서 용각산의 맥이 줄기차게 내려와 유천에서 끝을 맺는 곳이다. 예전에 물줄기가 마을 앞까지 왔음은 선월정(先月亭) 아래 남아 있는 지당(池塘)을 보면 알 수 있다.
[현황]
2012년 6월 현재 면적은 3.29㎢이며, 총 104가구에 217명[남자 102명, 여자 11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경상남도 밀양시 상동면 매화리, 서쪽은 청도읍 유호리·내호리, 남쪽은 상동면 고정리, 북쪽은 청도읍 거연리·매전면 구촌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로 사촌 1리와 사촌 2리가 있으며, 모래내·장촌·최촌·주막촌·사모름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장촌은 아산 장씨 집성촌, 최촌은 경주 최씨 집성촌인 최촌이 있며, 사모름은 제사를 지내는 높은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충적토가 많아 경작지에는, 사촌 딸기라 할 만큼 딸기 하우스를 많이 하고 있고 산비탈에 일군 밭에는 과수 농사를 짓고 있다. 남쪽은 동창천을 따라 국도 58호선이 지나고 있다.

<우측 숲 속 안에 선월정이 있다>
한편 청도군지에는 사촌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산성과 능성이가 마을 서편을 막고 마을 앞은 좁은 들이 있으며 동창천을 경계로 밀양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비탈에 동향으로 자리 잡은 마을로 사질토의 토성(土性)으로 보아 동창으로 동명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선사시대의 제단(祭壇)지가 발굴되면서 돌도끼, 돌칼, 어망, 돌추의 파편들이 발견되었으며 부근 기슭에서는 삼한시대 토기파편들이 무수히 산재해 있는 마을이다.
수천년 수백년을 내려오면서 마을 주민들의 성씨가 얼마나 바뀌었을까 의문이 된다.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알고 싶은 분야도 많은 마을이기도 하나 남아 있는 사료가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조사된 내력은 1리에 성주 여씨가 1700년 경에 입촌 정착했다는 것이다. 2리에는 1리보다 100여 년이나 앞선 1600년 대에 아산인 장공이 밀양에서 이거하여 동기를 다지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蔣村’으로도 불린다. 경주 최씨가 거주하고 있는 자연촌은 ‘최촌’이라고도 한다.
사촌(沙村)이란 모래가 많은 마을이라 하여 붙어졌다. 이 동리는 1914년 행정구역 변경시 밀양군 상동면 원내사지리와 원외사지리, 청도의 매지리 일부와 예촌리를 합동하여 원내외 사지리의 사(沙)자와 예촌리의 촌(村)자로 사촌(沙村)으로 동명을 정했다 한다.
1리 총 53호 중
성주 여씨 8호, 김해 김씨 6호, 동래 정씨 4호, 기타 53호
2리 총 48호 중
아산 장씨 10호, 경주 최씨 8호, 김해 김씨 3호, 기타 27호
1989년 3월에 경주박물관에서 선사시대 제단지를 발굴 구명하여 우리나라 선사시대 자연숭배 토속신앙에 관한 연구의 한 시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으며 유물도 수점이 발견되었다.
*참고 자료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청도군지(1991, 청도군청)
-역주 오산지(2003, 청도문화원)
-도주지(1958, 김석봉 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청도문헌자료집(2003, 청도문화원 향토사학회)
-택리지(1978, 최창영 외)
-청도포럼
-아산 장씨 후손 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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