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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경슬재

성곡리  경슬재를 찾다

                    

                                   행전 박영환

 

 

 

 

 

   2017년 신년 초인 1 2(), 풍각면 성곡리를 찾았다. 겨울이면 이곳은 햇볕 드는 시간이 하루 3 시간 정도 되는 골짜기라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마을이었으나 성곡댐 언덕 위에 코미디언 전유성이 철가방 극장을 개설하며 근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또한 성곡댐은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나도 몇 차례 지인들과 이곳을 찾은 적이 있다. 이곳은 성곡댐 조성과 함께 성곡리, 수월리, 현리리, 봉기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성수월 센터가 성곡리 이주 단지 입구에 위치하며 성수월 센터 앞쪽으로 각북면으로 넘어가는 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에 전유성은 몰래길이라 칭하기도 했다.

 

 

  또 이곳은 농업용수를 해결하고, 급증하는 생활용수를 충분히 공급하기기 위해 이 일원에 저수지를 축조하던 중, 고분군을 발견하게 되어 경상북도 문화재 연구원에서 2006 9월부터 2008 12월까지 발굴 조사를 했던 곳이다.

  조사 결과 삼국 - 통일 신라시대의 목곽묘와 석곽묘, 석곽옹관묘, 목탄요, 주거지, 석실묘 등과 고려시대 - 근대에 해당되는 석곽묘, 건물지, 배수로, 옹관 등 총 919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 중 321기가 정식으로 발굴 조사되었으며, 출토 유물은 토기와 철기를 비롯하여 3600여 점에 이른다. 이에 조사 대상 유적 중 유구 10기를 이전, 복원하여 청도지역 삼국시대 고분 문화와 주변의 지역 집단 간의 관계 및 문화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교육 전시 자료로 활용함과 동시에 지역민의 문화활동에 기여하고자 본 공원을 조성한 것이라고 한국 농어촌 공사 경산지사가 밝히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에 소개된 마을의 현황을 요약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옛 기록에는 성곡이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1914년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장기리(長基里)와 우곡리(牛谷里), 성재리(聖在里)를 합하고 평화롭고 성스러운 골짜기가 되라는 뜻에서 성곡리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우곡리 또는 우실은 마을 뒷산의 형상이 소가 누운 형상이라고 하여 이름이 유래하였다. 이곳에 배나무가 많아서 배안곡이라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당시 아무런 피해가 없이 편안히 지낸 곳이라고 하여 백안곡(百安谷)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장기동, 현리동의 비지를 병합하여 성곡동이라 하고 풍각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성곡동에서 성곡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6·25 전쟁 이후에 인구가 불어나면서 풍각 국민학교 성곡 분교가 신설되었고, 1969년도에 성곡 국민학교로 승격되었다가 1995년도에 폐교되었다. 1999년도 착공하여 2009년도에 완공한 성곡 저수지로 인하여 성곡리 본동과 배암골이 수몰되었다. 배암골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풍각면 송서리 들 가운데와 봉기리 관음사 앞들로 옮겨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였다.

 

  

 

 

경슬재(景瑟齋)

 

  청도군 풍각면 성곡리 189번지, 장기마을 산자락에 서남향으로 웅장하게 자리 잡았다. 성곡 저수지에서 3킬로미터 거리이다. 원래 귀후정(1947년 건축)이 있었으나 협소하여 2002년도에 그 옆에 새로 경슬재를 하나 더 신축하였다.

  전면에 세운 3칸 규모의 솟을대문(출입문외 수납공간 1, 1)을 들어서면 자갈을 깔아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석축 3단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인 팔작기와집 재사(대청 2, 온돌방 3)가 있다. 재사 보호를 위해 툇마루 앞에 유리문을 설치했다. 경슬재 왼쪽에 있는 귀후정(2, 마루1) 역시 유리문이 있으며 그 앞에 하당(마루1, 1, 부엌1)이 있다. ‘경슬재 상량문’, ‘경슬재기’, ‘경슬재 낙성 원운  차운 등이 대청에 걸려있으며 마당에는 경슬재 건립비가 있고 토석담장을 둘렀다.

  파평인 윤취립(尹就立) 선생과  파평인 윤취립(尹就立) 선생과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상복(相福), 손자 시찬(時燦), 이찬(以燦)에 이르는 3(三世) 4(四公)을 추모하는 재사이다.

  선생은 고려조 문숙공 윤관 장군의 후예이며 문과에 급제하였고 고성 현령에 재임 중 청렴하게 선정하여 칭송이 많았으며 그 후 통정대부를 제수 받았다.

  파평 윤씨들이 장기마을에 들어온 것은 약 300년 정도 되었으며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