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임씨 집성촌 금곡리 / 행전 박영환

2016년 12월 30일(금), 청도군에서 제일 서쪽에 위치한 마을인 풍각면 금곡리를 찾았다. 그 뒤 2017년 5월 24일(수), 우리문화바로알기 회원들과 다시 찾았다. 이 마을은 창녕 비티재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마을이다. 특히 이 마을은 내 개인적으로는 며늘아기의 고향이기도 하여 다른 동리와는 또 다른 정감이 가는 마을이다.
동쪽을 제외한 세 방향이 산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서쪽으로는 창녕으로 접하는 길이 트여 있다. 그 길이 비티재인데, 비티재 마루가 경남과 경북의 경계선이기도 하다. 6·25 전쟁 때 창녕으로 잇는 길이 인민군의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아서 인민군이 창녕까지 점령하고도 청도 비티재는 넘지 못했다고 전하기도 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은 이 마을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명칭은 쇠골, 즉 금동 또는 금곡동이라고 하는 마을은 마을 뒤에 쇠를 캤던 굴이 있다. 예전에 이 골짜기에서 쇠를 채취했다고 하여 금곡이라는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주막은 모퉁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마을 입구 금곡리 마을 숲 내에 주막이 있어 주막걸이라 부르며, 마을 모퉁이에 위치한다고 하여 모퉁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전의 주막집이 이제는 작은 가게로 운영되고 있어 마을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풍각 서부 국민학교의 전신인 풍각 서부 간이 학교가 이 마을에서 시작되었다가 현재의 풍각면 안산리[구산]로 옮겨와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고 농촌 지역의 인구가 대도시로 옮겨가면서 폐교하게 되었다. 1600년 초 평택 임씨 임계량이 정착한 후 형성된 마을로서 지금도 평택 임씨 집성촌이다.
비슬산 조화봉 앞쪽에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마을 뒷산이 마랑재[마령치(馬嶺峙)]를 지나서 화악산을 이루며 동네를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은 화산(花山)이 앞을 막고 있고 동쪽만 트여 있다. 청도천의 발원지이다.



우리문화바로알기 회원들이 금곡숲에서 '서낭당과 장승, 솟대 그리고 마을 숲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있다.(2017년 5월 24일, 수요일)

마을 앞에 큰 숲이 조성되어 유서깊은 마을이란 것을 알게한다. 마을 앞 숲은 수구막이, 성황림, 숲 마당, 당 숲 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박윤제 청도문화원장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마을 앞에는 느티나무 숲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져 있고, 이곳을 금곡리 마을 숲이라 부른다. 금곡리 마을 숲은 인근 금리, 화산리의 지기 유실을 막기 위해 조성했다고 전하지만, 사실 역원제를 실시할 당시 역과 원의 이정 표시로 30리마다 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마을 숲 맞은편에는 재실이 위치한다.
금곡리 마을 끝에는 금곡 돌다리라 불리는 곳이 있다. 청도천 발원지 중 하나인 청도천의 지류가 마을의 서쪽을 지나가는데, 과거 이곳은 그냥 건너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크고 평평한 돌로 돌다리를 만들어서 이곳을 건너다녔는데, 비가 오거나 홍수가 질 경우 이 다리를 건너지 못해 건너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도로를 복개한 뒤에도 이 다리 중 일부는 버리지 않고 마을 할매당 맞은편 개천 변에 위치한다. 과거 마을의 중요한 교량 역할을 하였던 다리에 대한 고마움으로 마을 주민들은 동제를 올릴 때 함께 이곳에 금줄을 두르고 보호한다.

동행한 김기한 교장님과함께 제일 먼저 들린 곳이 금곡리 경로당이었다. 12월 30일(금), 이때는 농한기이기에 경로당에 가지 않고는 마을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다. 오순도순 모여서 한담을 나누고 있던 할머니들이 친절하게 마을의 현황 및 재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기룡재(起龍齋)
금곡리 118번지에 있으며 1881년에 건립된 도 문화재 자료 제625호이다. 마을의 북쪽 뒷산 밑에 있으며 건물은 기룡재 영역과 그 옆에 나란히 있는 영사당 영역으로 되어 있으며 남향이다. 기룡재는 정남향하여 좌측에 죽림헌, 정면에 대문채가 별동으로 배치되어 있고, 영사당 영역은 정면에 일각문이 있으며 토석담장을 둘렀다.
기룡재는 정면 4칸, 측면 칸 반의 중당 협실형, 소로수장집으로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온돌방 1칸, 우측에 온돌방 2칸이 배열되어 있다. 전면은 툇마루를 두고 맨 좌측방과 맨 우측 방 뒤에는 각기 반침이 설치되어 있으며, 대청과 대청 우측 방 뒤에는 쪽마루를 내었다. 죽림헌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좌측에 대청 1칸, 우측에 온돌방 2칸이 있다. 하당은 수납공간 2칸에 방 한 칸이며 대문채는 출입문을 중심으로 양쪽에 수납공간이다. 대청에 ‘기룡재기’ 등이 있다. 영사당은 대청 2칸을 중심으로 양옆에 각각 온돌방을 배치한 4칸이며 툇마루가 있다. 마당을 건너 양옥집 관리사가 있으며 재사 앞에는 조그마한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영사당 이건기’, ‘영사당 이건 상량문’ 등이 있다. 기룡재를 비롯한 주변 건축물들은 조선시대 청도지방 재실의 평면구조를 잘 반영하고 있어 이 시기 지방 재실의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다.
기룡재(起龍齋)는 임계량의 아들인 가선대부 임건원이 부친의 추모하고 자신의 학업과 자손의 교육을 위해 1881년에 건립한 것이다. 임계량(林啓良)[1640년(인조 18) - 1684년(숙종10년)] 선생은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에 이거한 평택 임씨 입청도 시조이다. 증 통정대부 용호위 부장군(通政大夫 龍驤衛 副護軍)이다.










용암재(龍巖齋)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 마을 앞에 있는 숲 왼쪽, 화산 마을로 가는 길목 오른쪽 산기슭 대나무 숲이 있는 남향이며 지번은 10번지이다.
주요건물은 용암재와 하당, 대문채가 있다. 용암재는 목조와가 정면5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평면은 중앙에 대청마루 2칸에 양옆 온돌방이 3칸이며 앞쪽에 툇마루가 있다. 대문채는 3칸인데 방과 수납공간이 있으며 집 둘레에 블록 담장을 둘렀다. 하당은 집 바깥에 중문을 통해 연결되며 방 2, 마루와 부엌이 있다. 마당에 사철나무와 우물이 있다.
이 재사는 평택인 임화서[林華瑞,1783(정조 7년) - 1583(철종 4년)] 선생의 묘재이다. 선생은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건원 선생의 증손으로 천성이 강직하고 학문을 즐겨 수학하였고 슬기로운 조상의 교훈에 따르며 문호를 크게 빛내었다.



화산재(華山齋)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 675-1번지에 있다. 창녕으로 넘어가는 국도변, 야산 언덕에 자리 잡고 있어 전망이 좋다. 1930년에 지었으며 1988년에 중건했다. 전면에 세운 3칸 규모의 솟을 대문(출입문 및 방 2)을 들어서면 시멘트로 된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인 팔작기와집(방3 마루 1, 중당협실형)이 있다. 재사 관리를 위해 툇마루 앞에 유리창을 설치했다. 좌측에 관리실(양옥 기와집)이 있다. 강당 좌측에 제단을 설치했고 강당 앞 우측에 ‘중건 표성금 비’ 등이 있다. 대청에 ‘화산재 상량문’, ‘화산재 중건 운’, ‘화산재기’, ‘화산재 중건기’ 등이 있다. 재사 주변에 토석담장을 둘렀다.
밀성인 박응(朴膺) 선생의 묘재이다. 후손들이 모여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며 향사를 지내며 문중의 대소사를 논의하는 회의장소로 활용한다.







유연재(油然齋)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 726번지에 있다. 금곡 경로당에서 서쪽 20미터 지점에 있는데 전망이 좋다. 1901년에 지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했다. 철대문을 들어서면 시멘트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 4칸 측면 한 칸 규모의 동남향, 팔작기와집인 재사가 있다. 우측에 관리사(양옥)가 있으며 토석 담장을 둘렀다. 대청에 ‘유연재기’가 걸려 있다.
평택인 임광협(林光協) 선생의 묘재이다. 선생의 자는 내숙(來淑)이며 호는 호당(浩堂)이며 임계량 선생의 증손으로 1755년(영조 31년)에 태어나 재능이 뛰어나고 천성이 부지런하여 학문에 전념하고 효우를 숭례하였다.



모효재(慕孝齋)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 143번지에 있다. 금곡 경로당에서 북쪽 200미터 지점, 동리 가운데 있으며 아늑한 남향이다. 1940년에 지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했다. 전면에 세운 대문(1칸)을 들어서면 시멘트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목조와가인 재사(마루2, 온돌방 2)가 있다. 오른 쪽에 관리사(양옥집)를 갖추었다. 주변에 적색 벽돌담장을 둘렀다.
김해인 김재정(金載鼎)[1784(정조 8년) - 1847(헌종13년) 선생의 재사이며 김해 김씨의 위선 재사이기도 하다. 선생의 자는 현숙(賢淑)이고 호는 유헌(裕軒)인데 절효 김극일 선생의 13세손이다. 이서면 자계리에서 금곡으로 옮겨왔으며 효성이 지극하여 주변에 칭송이 높았고 64세에 졸하였다.


염수재(염수재)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 420번지에 있다. 금곡 경로당에서 500미터 지점 동리 북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을 내려다보는 남향이다. 1984년도에 지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했다. 3칸 규모의 대문(출입문 및 수납공간1, 방1)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3단 축대위에 목조와가 정면5칸 측면 1칸의 팔작기와집인 재사(마루 2, 온돌방3)가 있다. 토석담장을 둘렀고 담장 밖에는 대나무가 무성하고 안에는 목련, 동백, 백일홍, 사철나무 등 조경이 되어 있다. 우측 담장 사이에 있는 중문을 통하는 관리사가 있다. ‘염수재 상량문’, ‘염수재기’, ‘염수재원운’, ‘차운’ 등이 대청에 걸려 있다.
임중화[林重和, 1729(영조5년) - 1773(영조 49년)] 선생의 묘재이다. 선생은 통정대부 임계량 선생의 손자로 자는 경국이며 44세에 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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