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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화양읍 모헌공의 체취가 가득한 유등마을

청도군 화양읍 모헌공의 체취가 가득한 유등마을 / 행전 박영환

 

2016년 12월 5일(월), 청도군 화양읍 유등마을을 찾았다. 이곳은 청도 고성 이씨 입향조 모헌공 이육 선생이 입향한 곳이다.

 

 

 

 

추원재(追遠齋)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795번지

건축연대: 1818

건물구조: 추원재(정면 5칸 측면 1), 유호재(정면 5칸 측면 1), 원산재(정면 7칸 측면 3), 전사청(5), 솟을 대문(3)

관리문중: 고성 이씨

배향인물:모헌공(慕軒公) 이육(李育)선생의 묘재이다. 모헌공은 1498(연산군 4) 무오사화, 1504(연산군 10) 갑자사화에 백형과 중형이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문인으로 연루되어 가문의 수난이 시작되자 벼슬을 버리고 안동에서 청도 유호로 이거하여 정착했다.

현황: 추원재는 처음에 죽촌 마을에 건립하였으나 1818(순조 18)에 현재 위치로 이건하였다. 건립한 이래 수차 중수하였으며 현재 건물은 1987년 착공하여 1989년에 준공했다. 그러나 참여하는 제관이 늘어나자 1956 5월에 유호재(柳湖齋)를 신축했다. 그래도 역시 공간이 부족한지라 1977 7칸의 원산재(院山齋)를 신축했다. 이렇게 3 재실이 병렬하여 건축되었고 전사청까지 구비되었으니 자손들이 얼마나 번창하고 종사에 적극적인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이 넓은 원산재는 매년 음력 8 18일 청도 유림들이 모여 강학계를 여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날 경전 독송 및 자작시 낭송을 한다.

각 재소마다 상량문 중수기가 있으며 요직에 오른 후손들의 방문 기념식수가 많다. 대문 앞에는 모헌 고성 이공 휘 육 유허비가 있으며 넓은 주차장이 있다.  

 

 

 

 

 

 

문중 정기 총회

 

 

 

 

 

 

군자정(君子亭)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유등 1

건축연대: 1531

건물구조: 4칸 겹집, 마루 바닥

관리 문중: 고성 이씨

연혁 및 현황

모헌공 이육 선생께서 이곳에 정착하면서 못을 파서 연을 심고 정자 이름을 군자정이라 했다. 이곳은 청도 8경 중에 하나인 명승지일 뿐만 아니라 향토문화재로 지정된 전국 백승지로 시인묵객이 이 정자에 모여 시를 지으며 자연의 멋을 즐기던 곳이었으며 후진들에게 학문을 전수하던 곳이다. 일명 모헌정사(慕軒精舍)라고도 하는데 향내 사림들이 강학계를 조직하여 매년 음력 8 18일에 모여 경전을 강송하고 시를 지어 읊는 행사를 한다.

군자정이란 이름은 송나라 주돈이의 애연설(愛蓮說)  花之 君子라는 일컬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정자는 1531년 창건 이후 연못 속에 지은 정자인지라 부식이 심하여 1915년에 중건하고 1972년에 다시 보수, 확장하였다. 다시 2009년부터 2010 12월에 걸쳐 20억원(도비 10, 군비 10)을 들여 대대적인 중수를 했다. 또한 처음에는 방 2칸 마루 10칸으로 되어 있던 것을 전면 마루바닥으로 바꾸었다.

유호연지: 군자정이 있는 이곳 연못을 유호연지라고 하는데 이서국 또는 신라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둘레가 600여 미터, 깊이가 약 2 미터 정도이며 넓이는 6 9421제곱미터( 2 1000)이다.

시비 및 단소: 연지 둘레길에는 시비들이 들어서 있고, 건너편 산기슭에는 모헌공의 중형(仲兄) ‘망헌 이주 선생의 단소’, ‘애국지사 매운 이정희 선생 추모비’, ‘임란 창의 고성이씨 청도 오의사 숭모단’, 그리고 5의사 중에 한 분이었던 이해 선생을 도와 전쟁을 치르고 선생의 죽음을 가족에게 알리고 숨을 거둔 의마총비도 있다

 

 

 

 

 

이리재(二履齋)

소재지: 유등리 1022

건축연대: 1954

건물구조: 이리재(목조와가 정면 4칸 측면 1), 대문채(3)

관리문중: 김해 김씨

배향인물: 김해인 김일장(金日章)을 향사하기 위해 세웠다.

현황: 이리재기 있음. 마당에 감나무 몇 그루가 있다.

 

 

 

원사재(遠思齋)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382번지

건축연대: 1967

건물구조: 원사재(목조와가 정면 5, 측면 1), 하당(3), 대문채(3)

관리문중: 경주 이씨

배향인물: 화양읍 유등3리에 있으며 경주인 이계남의 효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현황: 재사 뒤에 대나무가 울창함. ‘원사재 기’, ‘안동 노림재(청호공) 사진 등이 있다.

마당은 시멘트이며 은행나무 두 그루 있다. 대문은 사용되지 않고 임시 철대문을 내어 사용하며 주차장이 잘 되어 있다.

 

염수재(念修齋)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유등1 810번지

건축연대: 1996

건물구조: 벽돌 슬라브 싱글

배향인물: 철성인 이종옥 선생의 선재이다. 이종옥 선생은 모헌 이육 선생의 후손으로 청도문헌고 저술에 공이 컸다.

변천: 옛 건물은 본채가 4, 하당과 도장, 대문채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현대식 양옥 건물이다. 넓은 마당에 잔디가 있고 조경도 잘 되어 있다.  

 

 

유등 교회

 

소재지: 화양읍 유등길 38-5

주요 건물: 본당 및 구 건물, 기도실이 있음

소속: 장로교

변천: 1972년 설립되었으며 새 건물은 2010 2 19일 기공을 하여 2011 5 19일 준공했다.

현황: 대지가 넓으며 관리가 잘 되고 있음. 교인은 60여명. 옛날 종이 뜰에 전시되어 있음.

 

 

옛날에 사용하던 종

구 건물

 

  유등리는 순수한 우리말로 만들어진 동명이 대부분이다. 버드실로 불리는 유등곡리는 읍치에서 서북쪽이라 방향을 따라 서[]로 이름을 붙였다가 유()로 고쳐진 것이라고 한다. 버드실에서 이슬미나 오부실로 가는 나지막한 고개가 닭구멕이다. 닭구멕이란 닭의 목이라는 청도 지방 말이다. 마을 앞산은 봉란산이고 산등은 알뫼뜽이다. 이슬미는 오부실 앞의 한내강[청도천]이 풍각면에서 각남면으로 곧게 내려오다가 질매 끝에서 한번 굽이치고 이슬미에서 아주 많이 구부러진 곳이다. 용이 못된 이무기를 이슬이라 하는데, 이슬이 살고 있는 곳이라 하여 이슬미라고 한다. 오부실 또는 오화곡은 골짜기가 오목하여서 오목실이 오부실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안골과 띠골은 골짜기 안에 깊숙이 들어 앉아 있는 마을이다.

 

조선 초기 이 마을에 정착한 흥해인 최자순(崔自淳)이 마을 앞에 신라 시대부터 있었던 못을 넓히고 정자를 만들고 연꽃을 심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최자순은 무오사화로 연루되어 피난을 다니던 고성인 이육(李育)을 사위로 삼으면서부터 이 마을이 알려지게 되었다. 최자순과 남매지간이 된 김해인 김기손(金驥孫)과 모헌 이육이 관련되어 유곡(酉谷)이라 했는데 유곡(柳谷)으로 표기되면서 버드실로 알려지기도 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