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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청도읍 운산리

청도군 청도읍 운산리 

 

                                                                     행전 박영환

 

  

 

<운산리 전경>

 

 2016년 11월 28(), 국도 20호선을 타고 곰티재 방향으로 가다가 좌측에 자리잡은 운산리를 찾았다. - 그 뒤 2019년 3월 4일(월), 다시 방문 - 운산은 밀양의 비입지(飛入地)였던 괴산과 운산을 합한 마을로옛 청도 구미(淸道九尾)와 밀양 구미(密陽九尾)를 합한 마을이라고 한다.

  “웅곡은 골짜기의 청도 지역 사투리 굼티기에서 유래되었으며 한자음으로 표기하면서 운곡(雲谷또는 운산(雲山)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또 다른 이름으로 귀미라고도 하는데 옛 지도에는 고며리(古旀里)라 하였다밀양군 고미면에서 청도군 용산면으로 이관되면서 고며리라고 한 것을 볼 수 있는데이 이름 역시 사투리 굼티기와 뜻이 같으며 굽은 골짜기’ 즉 귀미가 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한국중앙연구원 향토문화대전에 설명하고 있다처음에 들어오면서 골이 깊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설명을 보고나니 충분히 공감이 갔다 약간 부연하자면 '굼티기'와는 좀 다르지만 음으로 보면 '웅딩이'가 '웅곡'으로 변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곁들인다. 오랜만에 '굼티기'니 '웅딩이'니 하는 말을 떠올리니 처음 온 마을인데도 전혀 처음 같지 않은 어제 친구들과 굼티기나 웅딩이에 빠지고 구르던 느낌이 들어 친근감이 간다. 운산은 1리와 2리로 구별하는데 위의 마을이 1리이고 아래 마을이 새동네 2리이다. 

  

  운산 2리 마을 입구에 '김녕김씨 청도군 총친회관'이 있었다.  

 

 

 

 'ㄱ'자형 목조와가이며 높은 블록 담장을 두른 단정한 회관이다. 재사 보호를 위해 툇마루 앞에 유리창을 달았으며 대문이며 건물 등을 중수한 흔적이 보여 지속적으로 잘 관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도문화대전 기록에 의하면 "충의공파 13세 김영손(金永孫)의 후손이 상주에서 영동으로 하여 풍각면 차산리에 이주하였다고 전해진다김영손의 묘가 차산리에 이장한 것은 임진왜란 때 피난을 위해서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정확한 연유는 알 수가 없다운산리 입향조는 김영손의 손자인 김응립(金應立)으로 운산리 아랫구미에 이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1970년대를 전후하여 약 40가구 이상의 김녕 김씨가 거주하였지만 2012년 현재 도시로 이주하여 약 25가구 정도가 생활하고 있다청도의 김녕 김씨는 청도읍 무등리매전면 남양리 임실 마을에 20여 가구 가까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라고 되어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청도군 종친회를  방문하여  종친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1972년 3월 22일) 

  

 

다음 찾은 곳이 용현재이다. 

 

 

용현재(龍見齋)

 

  청도군 청도읍 운산1리에서 300여미터 떨어진 산기슭 594번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1940년에 건축한 뒤 여러 차례 중수했다. 전면에 세운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높은 축대 위에 목조 와가 정면 4, 측면 1칸의 용현재(온돌방 3, 마루 1)가 있다. 툇마루 앞에 유리창을 달았다. 좌측에 맞배지붕의 하당(3)이 있으며 재사 주변에 시멘트 블록을 둘렀다.

흥해 최씨 시조 최호(崔湖) 의 재사이다. 흥해 최씨는 경주 최씨에서 분파되었다. 최호는 문창후 최치원의 7세손인 최균의 11세손으로 고려때 삼중대광 문하시중 삼한 벽상공신 신호위 상장군으로 곡강(흥해의 별호) 부원군에 봉해졌다. 그 이후 그는 흥해 최씨 1세조가 된 것이다.

 

  현재 이 마을에는 후손들은 없다. 경산 압량이나 용성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고 운산리 주민이 알려주었다. 재사 뒤에 선산이 있어 묘재로 활용하고 있다.  

 

 

 

 

하당

 

용현재 원경 

 

 

모원재 

 

모원재(慕遠齋)

 

관리문중: 김해 김씨

 

소재지: 청도군 청도읍 운산리1 204번지

국도 20호선을 타고 운문사 쪽으로 가다가 곰티터널 직전에 내려서 좌회전을 하면 약 2킬로미터 지점 운산1리 뒷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남산을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는데 앞이 확 트여 전망이 좋다.

 

건물구조: 평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4(3, 마루1 중당협실형)의 팔작와가 재사가 있다. 홑처마이며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구체부를 구성했다.재사 보호를 위해 정면에 유리창을 달았고 툇마루 양옆에 문이 달려 있다. 대청 앞에는 재사의 이름인 慕遠齋 현액이 있으며 마루에 김황(金榥)이 쓴 모원재기가 걸려 있다.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으며 좌우측에 관리사가 있고 블록담장을 둘렀다.

 

배향인물: 김해보(金海甫)

본관은 김해이며 호는 용은(龍隱)이다. 충간공 보의 후예이며 통덕랑이다. 임진왜란에 백의로 임금의 수레를 의주까지 호위하였다. 장단에서 옮겨와 살았다.

 

연혁: 1960년에 지었으며 2015년도에 중수했다. 운산1 40여호 중 30호가 김해 김씨이다.

 

 

 

 

모원재에서 바라본 정면

 

운산리(雲山里)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에는 운산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개설]

밀양의 비입지(飛入地)였던 괴산과 운산을 합한 마을로, 옛 청도 구미(淸道九尾)와 밀양 구미(密陽九尾)를 합한 마을이다. 청도 구미와 밀양 구미는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지난날 청도 지역과 밀양 지역을 분리하여 부른 이름이다.

 

 

[명칭 유래]

청도 지역 안에 있으면서도 밀양군 관할이었던 비입지인 운곡리는 웅곡(熊谷)이 변하여 운곡이 되었고, 운곡이 운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웅곡은 골짜기의 청도 말인 굼티기라는 뜻인데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운곡(雲谷) 또는 운산(雲山)으로 썼다고 한다. 또한 이름을 귀미라고도 하는데 옛 지도에는 고며리(古旀里)라 하였다. 밀양군 고미면에서 청도군 용산면으로 이관되면서 고며리라고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이름 역시 지방어인 굼티기와 뜻이 같으며 굽은 골짜기를 귀미라고 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괴산동, 운곡동, 소양동 일부를 병합하여 대성면 운산동으로 개설하였다. 1940년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청도면 운산동이 되었고, 1949년에 청도면이 청도읍으로 승격하면서 청도읍 운산동이 되었다. 1988년에 운산동에서 운산리로 바뀌었다.

 

청도에서 가장 많이 밀양 비입지가 있었던 곳이 운산리이다. 다른 곳은 밀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밀양 땅 고미면 지역과 청도의 내종도면 지역이었던 두 곳이 합해지면서 밀양과 청도를 구분하기 위한 청도 구미, 밀양 구미로 나누어 불렀고 현재도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밀양의 고미면은 밀양군 상동면으로 바뀌었다가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청도군으로 이관되었다. 한편 운산리뿐만 아니라 두곡리와 매전면 금천리[이사리] 그리고 금천면 사전리까지가 모두 밀양 비입지였다.

 

 

[자연환경]

용각산의 동쪽 구릉에서 발원한 원정천이 흐르는 운산리는 청도군 산동 지역으로 이어지는 가장 짧은 고개인 곰티재의 길목이 된다. 동서는 모두 산으로 막혀 있고 남으로만 트여 있는 북고 남저(北高南底) 형의 전형적인 산골 마을이다.

 

용각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 잡은 탓으로 평지는 마을의 끝 부분에 있으며 계곡의 도랑가에 약간의 다랑논이 있었으나 지금은 밭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예전엔 수리(水利)가 안정되지 못한 탓에 작은 마을에 8개의 저수지가 있어 수리에 만전을 기하고자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현황]

2012 6월 현재 면적은 5.14이며,  108가구에 284[남자 140, 여자 144]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매전면 덕산리, 남동쪽은 청도읍 부야리, 서쪽은 청도읍 안인리, 북쪽은 매전면 두곡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는 운산 1리와 운산 2리가 있다.

 

비탈진 밭에는 모과나무를 식재(植栽)하여 경제 작물로 각광을 받으며, 청도 모과를 유명하게 만든 시배지라고 할 수 있다. 동남쪽으로 국도 20호선이 지나고 있다.

 

 한편 청도군지에는 운산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용각산의 동쪽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로 동으로 뻗은 산줄기는 본군을 산동·산서로 갈라놓고 기후도 부분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

 

동편 봉우리의 힘찬 옹립은 곰티재라는 험준한 재를 이루어 산동 지방의 3개면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곰티 정상에서 산서 지방을 조망하면 산과 협곡과 산봉우리들뿐이다.

 

운곡(雲谷) 또는 밀양구미(密陽九尾)

임란 직전인 1590년경에 김해인 김해보 공이 이거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후손들이 마을을 잘 가다듬고 있다

 

 

 

운산2리 경로회관

 

 

참고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도주지(1958, 김석봉 편)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 관리 문중 후손 및 마을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