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읍 진라리의 조창봉 효자각 및 진라교회/ 행전 박영환
2016년 11월 30일(수), 청도군 화양읍 진라리를 찾았다. 다로천이 진라리 앞을 길게 통과하며 용각산 지맥이 남성현 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중에 진라리에 와서 끝을 맺고 있다. 진라 1리와 진라 2리가 있으며, 웃각단[안 진라]·중각단·아랫각단이란 자연 부락이 있다. 진라지가 마을 안팎을 구분하고 있다.
2005년 중앙 고속 도로 건설 발굴 조사 당시 선사 시대에 사람들이 거주한 거주지와 논농사를 했던 유적들이 발굴되어 이 지역은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터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라리는 마을 앞을 흐르는 내가 길어서 ‘긴 내’가 변하여 질래가 되었다고 한다. 또 신작로가 나면서 마을 앞의 작은 길을 큰 길로 만들면서 이곳에 ‘길이 난다.’라는 것을 ‘질이 난다.’라는 방언으로 표기하면서 진라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우선 조창봉(曺昌鳳) 효자각(孝子閣)을 찾았다. 국도 25호선 옆에 있으며 창녕 조씨(昌寧曺氏) 문중의 효자 정려문이 있어 효자문골이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생각보다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마을 안에 들어가서 수소문을 하니 길가에 있다고 했다. 다시 길가에 나와서 밭일을 하는 주민께 문의를 하니 바로 저기라고 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새로운 집들 뒤에 숨어 있어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관리도 잘 되는 폭은 아니었다. 들어갈 진입로도 마땅찮았고 잡초도 우거지고 비각에는 비가 새는 곳도 있었다.
주민의 이야기인즉 그저께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관심있는 사람들은 더러 방문하는 모양인데 이왕이면 잘 관리가 되어 모시는 분의 거룩한 정신이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조창봉(曺昌鳳) 효자각(孝子閣)
○소재지: 청도군 화양읍 남성현로 184-7(진라리)
○건축연대: 1879년(고종 16)에 나라에서 조창봉에게 정려를 내리자, 이를 칭송하기 위해 창녕 조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건물구조: 효자각은 단칸 규모의 맞배 기와집이다. 블록 담장을 둘렀다. 비각의 전면과 배면에는 판벽을 설치한 후 상부에는 홍살을 세웠으며, 좌우측에는 토석으로 마감하였다.
○관리 문중: 창녕 조씨
○배향 인물: 창녕인 조창봉
○현황: 진라 1동, 큰 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마을 입구에 있으나 신축 건물들 사이에 있다. 내부에는 정려판인 ‘曺 孝子 旌閭閣 記’가 붙어 있었다. 바깥에 ‘童蒙敎官 朝奉大夫曺公之墓’란 묘비가 누워있다.
동몽교관은(童蒙敎官) 조선 시대, 어린이를 가르치기 위해 각 군현에 둔 벼슬. ‘동몽훈도(童蒙訓導)’를 고친 이름이다. 조봉대부는 조선이 건국된 직후인 1392년(태조 1) 7월 문산계가 제정될 때 종4품 상계는 조산대부(朝散大夫), 하계는 조봉대부(朝奉大夫)로 정하여 그대로『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종4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는 경력·첨정·서윤·부응교·교감·제검·편수관·좌익선·우익선·부호군·군문파총(軍門把摠)·군수·동첨절제사·병마만호·수군만호 등이 있다.





묘비가 효자각 옆에 있다. 이곳이 묘지는 아닌데 묘지에서 옮겨온 듯하다.
조창봉 효자각에서 얼마 떨어지 않는 곳에 진라교회가 있었다.


진라 교회
○소재지: 청도읍 남성현로 24
○주요 건물: 본당(2층), 사택
○소속:장로교
○설립: 1978년
○신도수 100명, 대지 2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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