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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읍 고수리 - 화수정

청도읍 고수리 - 화수정/ 행전  박영환

 

2016년 11월 30일(수) 청도읍 고수 2리에 소재하는 화수정을 찾았다.

 

 

                                   화수정에서 내려다본 고수리 

 

  고수리는 1905년 경부선 개통 이후, 청도군의 행정 중심이 현재의 화양읍에서 고수리로 옮겨오면서부터 청도군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고수리의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천변에 형성된 마을로 물보다 높다는 뜻에서 고수라는 말을 사용하였다는 말이 타당성이 높다. 고수부지(高水敷地)의 고수가 행정 명칭으로 표기하면서 숲을 형성하였다는 뜻으로 아름답게 쓰기 위해서 고수(高樹)라고 한자를 바꾸었다고 한다.

청도읍사무소와 청도 우체국, 청도 전화국, 청도 공용 버스 터미널, 청도역, 청도 중학교와 청도 고등학교, 한국 전력 공사 청도 지사, 대구 은행 청도 지점, 농업 형동조합 중앙회 청도 지점, 청도 농업 협동조합 등 금융과 주민 생활 지원을 위한 행정 지원 기관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며, 농촌 지역이면서도 경지 면적이 없이 상업 종사자와 직장인이 주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고수 1리의 자연 마을은 냉정, 즉 찬물 샘이다. 1리부터 8리까지의 마을 가운데 가장 먼저 형성된, 고수리의 대표적인 마을이다. 고수 2리의 자연 마을은 양정(陽亭)이다. 고수 3리에는 새각단 마을이 있다. 고수 4리에는 신기(新基) 마을이 있다. 역시 새각단과 마찬가지로 새로 형성된 마을인데, 새각단 마을이 신작로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면 신기는 철로변에 형성된 마을이다. 고수 5리의 자연 마을은 일명 구 장터라 한다. 고수 6리에는 잠실 마을이 있다. 고수 7리는 뒷마, 뒷마을이라고 부른다. 원래 고수리는 이 마을의 처음이다. 하남면 당시의 고수리는 납닥 바위[현 청도역사] 앞에서부터 형성되었기 때문에 높은 곳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이다고수 8리는 청도역과 도로 교통의 발달로 인해 조성된 상업 마을이다.

 

 

 

 

화수정(花樹亭)

 

소재지: 청도군 청도읍 고수 2 285번지

건축연대: 1922

건물구조: 목조와가 정면 4, 측면 2

관리문중: 경주 이씨

설립목적: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종친간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후손들에 의해 세워진 경주 이씨의 선대를 위하는 제사이다.

보수: 신축된 후 수차에 보수하였으나 90여년이 지나면서 노후된 건물로 서까래가 썩고 기와가 파손되어 선대 유산에 누가 됨으로 화수회 정기총회의 의결을 거쳐 2008 11월부터 2010 12월까지 정자와 축대까지 완전히 정비하였다. 공사 총액은 7300여만 원이다. 당시 청도군 화수회장은 이복수이며 사무국장은 이정길, 재무국장은 이문희이다.

현황: 와우산 기슭, 청도읍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있으며 수령 수백 년 은행나무가 있다. 입구에 화수정 표석이 있으며 단단한 스테인리스강 문이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마당 은행나무 밑에 보수공사를 설명한 비석이 있으며 정자 마루 벽에는 화수정기’ ‘화수정기 상량문’, 등 현판이 걸려 있다.

경주 이씨는 1550년경 이대수가 청도읍 원정리 정촌에 입향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이대수는 풍수지리설을 따라 자손 발복의 길지를 찾아다니다 원정리 정촌을 적합한 곳으로 판단하였다 한다. 이후 1581년경 이정탁이 청도군 원정리에서 고수리로 이거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