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처럼 아름다운 꽃밭등, 청도 풍각 화산리
행전 박영환

2016년 12월 30일(금), 청도군에서 서쪽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인 청도군 풍각면 화산리를 찾았다. 화산리는 마을 앞산의 이름이 꽃밭등이라서 화산(花山)이라고 한다. 또는 주위 산봉우리와 등성이들이 마을을 향하여 꿈틀꿈틀하면서 기어오는 형상이 마치 꽃잎처럼 아름다운 산이라고 하여 화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동쪽은 풍각면 수월리·성곡리, 서쪽은 경상남도 창녕군 성산면 대산리, 남쪽은 풍각면 금곡리·안산리, 북쪽은 각북면 남산리·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 용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화산 1리와 화산 2리가 있으며, 동원, 서원, 원명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동쪽에 있다고 동원이며 서쪽에 있다고 서원으로 불리고 있으며 원명리는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오지 중에 하나였으나 지금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이날 이 마을을 방문한 목적은 동래 정씨의 재실인 '동화재'와 원명 마을에 있는 경주 김씨 재실인 '모본재'를 찾기 위함이다. 먼저 찾은 곳이 동화재이다.


동화재(東華齋)
청도군 풍각면 화산리 507-1번지에 소재한다. 1945년에 지었으며 2008년 문화재 보유 시공인에 의해 크게 중수했다. 동리 뒤편 언덕에 푸른 대나무를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냠향으로 마을을 굽어보고 있어 시야가 넓고 전망이 좋다.
주요건물은 동화재 및 관리동, 대문이 있다. 동화재는 2단 석축위에 목조와가 팔작지붕 4칸이며 중앙에 대청이며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한 중당 협실형이며 재사 보호를 위해 툇마루 앞에 유리창을 달았다. 대문채는 한 칸이며 관리동은 양옥이다. 블록 담장을 둘렀으며 서쪽에 따로 중문이 있다. ‘동화재기’ 및 상량문이 대청에 걸려있으며 마당에 ‘동화재 중건 기념비’가 있다.
이 재사는 동래 정씨 조상의 유덕을 추모하고 후손들의 후학에 사용하고 있다. 화산마을에는 동래 정씨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공식적인 명칭은 '원명'이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운밍이', '우밍이'라고도 부른다. 원명마을은 화산1리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본 마을과는 멀리 떨어진 자연부락이다. 큰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사실 초행길이라서 걱정이 되었는데 마침 이장을 맡은 바 있는 정규하(72세)씨가 안내를 해주어 고마웠다.
마침 마을 뒤편에 저수지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길을 우회하여 꼬불꼬불 산길을 넘어갔다. 재실이며 마을은 비탈에 듬성듬성 있었다. 먼저 재실을 관리하고 있는 분을 찾았다. 조그마한 폭포 옆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김비룡'씨였다. 경주 김씨로 대대로 이 마을에 정착하여 산다고 했다. 현재 경주 김씨는 1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비슬산 강계봉 아래 첫동네이다. 청도, 창녕, 달성의 경계 지점이다. 심심산골이라 옛날에는 모든 것이 참 불편하고 어렵기 그지 없었단다. 지금은 산 소리 물 소리 따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여름 철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펜션에 방이 없다고 한다. 마침 우리가 찾았을 때는 겨울이라 폭포 소리를 우리가 독차지 할 수 있었다.
동행한 김기한 교장님과 같이 폭포 앞에서 셔터를 눌렀다. 미끄러웠다. 좀더 좋은 모습을 찍어주겠다는데도 뭐가 심통이 틀어졌는지 신령님께서 한 쪽 다리를 잡아당기는 통에 휘청 넘어졌다. 자칫 큰 일 날뻔 했다. 다행히 크게 다친 데는 없었으나 신발은 물속에 빠진지라 발이 시렸다. 무릎에도 상처가 나서 피가 약간 고이고 멍이 들었다. 준비한 양말도 없으니 그냥 신은 채 말리는 수밖에 없다. 부지런히 걸으니 그래도 견딜만했다.

우밍이
‘우밍이’
꼬불꼬불 산길 돌아 찾아간 청도와 창녕의 경계지역
하늘 아래 첫 동네
‘원명마을’을 그렇게 부른다
그곳에서 쑥스러워하며
명함 한 장을 건네는 사람이 있었다
김비룡씨다
이름이 좋다고 하자
“울 아부지가 기 한 번 펴라고 이름은 좋은 것 지었는데 이름값 못하고 이래 삽니더” 머리를 긁는다
“이제 어엿한 펜션 사장 아닙니까”
“펜션 사장, 딴은 그러네예”
하기야 지금은 옛날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단다
“그 때는 죽지 못해 사는 것이지요. 나무 해다 팔고, 나물 뜯어 시장에 내고, 쌀을 만나는 것은 원님 만나는 것보다 힘들었지예”
세상이 바뀌었다. 음지가 양지로 바뀐 것이다. 사람구경 못하던 이곳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원한 폭포 소리 따라 길이 비좁아졌다
“저 폭포 이름 비룡폭포라 하이소”
“하 - 비룡폭포, 고맙심더”
‘우밍이’
청도와 창녕의 경계지역
산 좋고 물 좋아 살기 좋은 원명마을을 말한다.

그렇게 오래된 집은 아니었다. 4330년 정축 8월이니, 1997년에 신축한 것이다. 아담하고 깨끗했다.



모본재(慕夲齋)
청도군 풍각면 화산리 원명(元明)마을 뒤편 비슬산 남쪽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모본재(慕夲齋)의 배향 인물은 경주김씨 계림군파(雞林君派) 청도 입향조(入鄕祖)인 진사(進士) 김춘철(金春喆, 1654∼1715) 선생이다. 공은 제숙공(齊肅公) 김균(金稛)의 후예이다. 제숙공은 조선 개국 공신으로 벼슬이 보국숭록좌찬성(輔國崇祿左贊成)에 이르렀고 계림군(雞林君)에 봉해졌다.
공의 고조부는 부사과(副司果) 김경명(金鏡明)이고 증조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제주목사(濟州牧使) 김향진(金香振), 조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거산찰방(居山察訪) 김원명(金元鳴)이고 아버지는 김민복(金敏復),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공은 타고난 성품이 너그럽고 의젓한 풍채에 순수하고 밝았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했다. 공부를 시작하면서 열과 성을 다하여 학문에 전념하여 그 익힌 바를 행동으로 옮겨 실천했다. 경전을 통해 의리와 성품을 끌어내어 내 몸에 이르게 하니 문리가 대통하여 학식이 매우 깊고 통찰력이 넓었으며 마침내 시험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다.
공은 만년에 경북 경산 남천면 지암리에서 청도 각북면 금천리 송내(松內) 마을에 은거하여 세상의 잡다한 번뇌를 잊어버리고 후학들을 길러냈다. 그 뒤 아들인 참봉(參奉) 김서범(金瑞範)을 비롯하여 후손인 증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상주(金商周) 등으로 유풍이 이어졌고 자손들이 번창했는데 원명 마을에는 공의 현손(玄孫) 김성달(金星達)때 옮겨왔다.
이 재사의 건립은 자손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는데 마침 후손인 김신기(金信基, 대경섬유 사장)가 거액인 일억이천만원을 헌납(獻納)하고 종손인 김용기(金容基)가 부지를 제공, 또 많은 후손들이 물심양면으로 적극 협조하여 1997년에 창건하게 되었다.
주요 건물은 모본재 본당과 대문채, 관리실이 있다. 모본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이며 목조와가에 팔작지붕 겹처마에 대청이 가운데 있는 중당협실형이다. 재사 보호를 위해 툇마루 앞에 창문을 달았다. 대문채는 솟을 대문에 방과 수납장이 있는 구조이다. 관리실은 양옥이며 집 둘레에 담장이 있다.
재사에는 고원(古園) 김태기(金台基)가 쓴 모본재 창건기(慕本齋 創建記)가 걸려있고 경주김공 신기 공적비(慶州金公信基功績碑), ‘증 통정대부 상주지비(贈 通政大夫商周之碑)’ 및 창건에 주무를 맡았던 김인용(金仁龍, 대구광역시 부이사관, 일명 김인기)이 쓴 ‘모본송축(慕本頌祝)’ 와비가 자리하고 있다.
모본재가 위치한 원명 마을은 청도군과 창녕군 성산면 대산리 안심골과 경계를 이룬 깊은 산골이다. 일명 ‘우밍이’로 부르기도 하는데 ‘밀주지’에는 원시(元時)로 기록된 곳으로 팔방 구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뒷받침하듯 원명골과 안심골에는 고대의 사찰지인 대건사지, 시문집 동계집에 수록되어 있는 용흥사지, 동국여지 승람 권 27에 수록된 창녕현의 연화사지가 있는가 하면 암자 터가 널려있다. 또한 비슬산의 아름다운 계곡의 하나인 이곳에는 ‘조피덤 폭포’를 비롯한 기암괴석의 비경이 수려한 곳이다. 여기에 참꽃 군락과 참빗살나무 군락 등 희귀한 식물들도 많이 있어 근래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찾고 있다.
‘원명마을’이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왜 여기 사셨는가 물소리로 대답하며
조상의 숨은 뜻 이어서 받드는 곳
한 발만 들어서면은 여기는 신선 세계






원명마을 고개마루에서 만난 소나무, 인물이 좋다.


옛날에는 술을 집에서 담그지 못하도록 했다. 그것을 밀주라 하여 철저히 단속을 했다. 걸리면 벌금도 엄하게 매겼다. 그것이 이른 바 술을 초러 오는 것이다. 아무튼 술을 초러 이곳에도 많이 온 모양인데 그 때마다 이 동리 사람들은 경남 창녕과 경북 청도의 경계란 점을 철저히 이용하여 이쪽 저쪽 술독을 옮겨 피했다고 한다. 더구나 어떤 사람은 일부러 조사온 사람을 골려 먹는다고 경북에서 오면 경남 땅에서 경남에서 오면 경북 땅으로 옮겨 보란 듯이 술자리를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설마하니 그런 일이야 있었겠는가. 우스개이지만 그러나 지역상 그럴 여건은 충분하다.
이제 화산은 복 받은 땅이다. 청도에서 '행복마을 1호'인 것만 보아도 이를 말해준다. 동행하던 정규하 씨도 마을에 대한 긍지가 대단했다. 날로 날로 발전하여 행복이 가득한 꽃밭등이 되기를 기원하며 마을을 내려왔다.
2018년 11월 1일 원명 마을을 다시 찾아 만추에 젖은 풍경을 올렸다.


소박한 팬션

단풍이 물든 계곡

조피등 폭포 - 겨울에 찾았을 때는 꽁꽁 얼었으나 이날은 시원하게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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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ㅇ청도문화(청도문화원, 2001)
ㅇ청도마을지(청도문화원, 2018)
ㅇ김춘철 선생 묘갈명
ㅇ재실 창건 기문
ㅇ김인기(인용, 경주 김씨 후손) 제공 자료
*면담
ㅇ정규하(동래 정씨 후손)
ㅇ김비룡(경주 김씨 후손)
ㅇ화산리 주민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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