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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28)청도의 수호신인 김지대(金之岱), 김한귀(金漢貴) 선생을 모신 성황사(城隍祠)

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28)

청도의 수호신인 김지대(金之岱), 김한귀(金漢貴) 선생 모신  성황사(城隍祠)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향교 홍보장의. 청도문협 회장

 

 

 

성황사

 

청도신문(2020.8.11.화)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310번지 언덕에 소재한 성황사를 찾았다. 좁은 길에 경사가 심하기에 자동차도 몇 번이나 숨을 고르며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서니 탁 트인 전경에 바람까지 시원했다.

  맞배지붕 3칸에 城隍祠 가 현액되었으며 입구에 성황사 안내문 및 성황사 사적기가 있었다.

이곳은 김지대(金之岱), 김한귀(金漢貴) 양 선생을 모신 사당(祠堂)이다. 이 두 분은 청도가 낳은 큰 인물이기도 하거니와 고을이 밀양군 속현(屬縣)으로 감무(監務)가 파견된 지역에 불과했는데 후일 군수에 해당하는 지군사가 다스리는 군으로 행정단위를 승격시킨 공적이 컸음을 기리고 앞으로도 고을을 지키는 수호신(守護神)이 되어 주실 것을 기원하여 청도군민이 세운 것이다.

  창건연대는 조선 성종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이미 오산(鰲山)의 산록(山麓)에 성황사(城隍祠)가 있음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후세 사람들이 공들의 목상(木像)으로 장난치는 일이 있어 후손들이 보기가 민망하여 매장을 했고 사당은 오랜 세월을 돌보지 않아 1960년대 경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1998, 청도군에서 복원하였으며 그 뒤 2002년에는 청도 김씨 종친회에서 거액을 들여 주위환경 보수, 조경, 진입로 확장, 포장을 하는 등 새롭게 단장하였다.

  김지대 공은 고려 고종조 전라도안찰사(全羅道按察使),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정당문학이부상서(政堂文學吏部尙書),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등 제 관직을 거쳐 최 고위직 태부(太傅)에 올랐으며 김한귀 공은 공민왕조 동경도병마사(東京道兵馬使), 감찰대부(監察大夫), 개성윤(開城尹) 등 제 관직을 거쳐 고려명현이 모셔지는 선원각에 배향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두 분 모두 오산군(鰲山君)으로 봉() 받은 것이다. 김지대공은 오산군으로 봉호 되면서 청도김씨(淸道金氏)의 시조가 되었고 김한귀공은 그 후손인데 특별히 동명의 봉호를 이어받은 것이다. 이 두 분은 나라에서 봉호뿐만 아니라 시호도 하사했는데 김지대 공은 영헌(英憲)이고 김한귀 공은 원정(元貞)이다. 두 분 시호(諡號)에 담긴 뜻에는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덕성과 청백을 의미하고 있으니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오래오래 본받을 인물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2002 7 30, 청도군수 김상순, 청도문화원장 이문섭, 청도향토사학회 회장 장봉채, 청도김씨 대종친회 회장 김태우는 비문의 말미에 1998년 청도군이 늦게나마 사당을 그 터에 옛 모습대로 재건하였으니 군민 모두 기뻐함이 산과 바다와 같은 큰 기쁨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수호신이란 시제로 글을 올리며 두 손을 모으다.

 

청도라 삼청 고장, 속현으로 머물 텐가

나라에 공을 세워 지군사 땅 이루다

그 은혜 잊지 않으리, 영원한 수호신

 

성황사 사적기

 

 

표석

 

성황사에서 내려다 본 마을풍경

 

성황사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