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지역 서원•재실 탐방(29)
창선대부(彰善大夫) 이우(李優), 남은(南隱) 이석(李晳) 선생의 혼천재(混泉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향교 홍보장의. 청도문협 회장


청도군 각남면 옥산리에 소재하는 혼천재(混泉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인물은 조선조 전주이씨 효령대군(孝寧大君)의 현손인 해양부정공(海陽副正公) 창선대부(彰善大夫) 이우(李優) 선생과 공의 5세손 입청도조 남은(南隱) 이석(李晳)[1562 명종18〜1623 인조1] 선생이다. 남은 공은 광릉참봉, 통진현감, 영평현감을 역임했고 삭녕현감을 제수 받았으나 나가지 않고 광해주의 혼란을 피해 옥산리에 우거했다. 향년 62세로 졸했다.
원래 이 재사는 1860년대 중반, 현재 위치로부터 서남쪽 1키로 지점인 속칭 서당골에 초가삼간으로 지었고 그 뒤 1939년, 4간 툇마루 팔작 와가로 개축하고, 혼천재 이름을 현액했다. 그러나 외진 곳이라 관리와 이용하기가 불편하여 2003년도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재사 구조는 팔작지붕, 5간 툇마루, 겹처마이며 재질은 육송이다.
‘혼천재’란 맹자 이루장구 하편 “原泉이 混混하여 不舍晝夜라, 盈科而後進하여, 放乎四海하나니, 有本者如是라 - 근원이 좋은 물은 철철 넘쳐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 구덩이를 만나면 구덩이를 채운 뒤에 앞으로 나아가 사해까지 이른다. 근원이 있는 것은 이와 같다.”에서 혼혼(混混) 원천(原泉) 자구를 차용했다.
혼천재 뒤에 영귀정(詠歸亭)이 있다. 이곳은 남은 공의 후예인 만우헌(萬愚軒) 이회규(李會圭)[1820 순조20〜1896]와 후손 4대에 걸쳐 수학하고 강학하던 서당이다. 1860년부터 1960년까지 1세기동안 지역민의 한학 교육장으로 활용되었고, 1860년대에는 청도와 창녕을 오가는 유림들이 학문을 토론하며 유숙하던 곳이기도 했다.
만우헌의 유집으로는 ‘경전 강의록’이 있으며 제자들의 스승을 기리는 ‘영귀정 유계’가 있다. 1910년경에는 만우헌의 종손인 흠와(欽窩) 이경의(李京儀)가 1950년까지 강학을 했다. 그는 덕천(悳泉) 성기운(成璣運)과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으로 도학이 고고했다. 평생 백의를 고수하고 단발령과 창씨개명을 거부했으며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여 단아하고 엄숙했다. 문하생들이 ‘보인계’와 ‘동학계’를 조직해서 선생을 추모하고 동문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있으며, 은사를 추모하여 ‘흠와문집 건.곤’ 2책을 발간했다. 영귀정은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돌아오겠다는 공자의 제자 증점의 영이귀(詠而歸)라는 자구를 차용했다. 1850년대 중반에 서당골에 지었다가 1900년 초에 초가3간으로 이건했고 1940년초에 와가로 개축했으며 그 뒤 2004년에 새로 지었다.
혼천재 동쪽에 있는 영모재(永慕齋)는 만괴(萬愧) 이득재(李得裁)를 배향하는 재사이다. 만괴는 남은의 현손으로 덕망이 있는 유학자로 후학지도에 심혈을 기울였다.
1915년에 지었으며 그 뒤 1965년에 새로 중건했다.
‘혼천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둘러가지 않는다 지나가지 못 한다
채워서 근원 알고 근원 위에 내가 선다
옥산의 금과옥조는 혼혼의 원천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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