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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 차산농악(淸道 車山農樂)

     청도 차산농악(淸道 車山農樂)

 

                                                            행전 박영환

 

 

공연을 하고 있는 차산 농악단(2012, 2. 6,)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동리마다 거의 농악단이 있어 정초에 동리 집집을 돌며 한해가 무사태평하고 운수대길하기를 빌곤했다. 세월이 흘러가며 그 풍속도 점차 사라지고 청도내에서 남아 있는 농악단이 얼마되지 않아 아쉬움이 큰데, 그 속에서도 차산농악은 예나 지금이나 잘 계승보존되고 있어 든든하고 고맙다. 

  1993년에는 '청도 차산농악 전수관'까지 생겨 본격적으로 후진까지 양성하고 있는데, 이는  김오동이란 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오동 님은 1922년에 차산 마을에서 태어나 2002년에 돌아가신 분으로  한평생 차산농악과함께 살아온 열정적인 상쇠이자, 소리꾼이었다. 

   이번에 차산마을을 방문하면서 차산마을에 농악이 발전하고 김오동이란 분이 계승, 발전시켰다는 것이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동명에 '車' 자가 들어가는 것은 좀 희귀한데  차산리(車山里) 는  '車'가 들어 있다. 이는 동리가 수레바퀴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마을은 높게 솟은 왕산 태령이 길게 둘러싸 분지를 만들고 있다.  마을 앞 들판에서 주위를 바라보면 구릉과 산등성이가 둥글게 들판을 둘러싸고 있어 흡사 수레바퀴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이 둥글게 생긴 차산은 신라고촌(新羅古村)이라 부를만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했으며 농악도 그 유래가 깊다고 한다. 

  이런 마을에 마을 모양처럼 둥글게 생긴 악기를 사용하는 농악이 발전한 것이다. 정말 농악에 사용되는 꽹과리며, 징, 북, 장구, 소고 어느 것 하나없이 둥글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다섯가지 둥근 악기가 주축이된 농악을 계승 보존, 발전시킨 사람의 이름이  '金五同'이다. 金五同  - '다섯 가지를 하나 같이 같게하여 조화를 이루게 하면 금이 된다.' 이런 뜻이 될 것 같다.

  차산은 자연부락치고는 꽤 큰 마을이다. 13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五同'이란 이름은 잘 없을 것 같고 아마 일반적으로도 이 이름은 그렇게 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五同'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거기에다가 운명처럼 농악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은 아무래도 우연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보니 악기만 다섯 가지가 아니고 농악대의 복장도 다섯 가지 색깔이다. 

    아무튼 그는 타고 난 그 재능을 더한층 갈고닦아 마침내 다섯 가지의 소리는 가락으로, 다섯 가지 빛은 흥으로 승화시켜 차산농악을 그야말로 금과 같은 존재로 승화시켜 모든 사람들이 그 가락

과 흥 속에 둥근 원을 그리도록 만들었다.   

  그는 택호인 '옥분어른'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오딩이'이라고 불렀다. '오딩'이란 '오동'의 경상도식 발음이다. 어쩌면 그 '딩'이 악기소리와 같아 더 정감이 간다. 아무튼 '오딩'의 그 신명 그 열정은 자칫 사라질뻔한 차산농악을 튼튼하게 일으켜 후대에 전한 것이다.       

   원래 차산 농악단은 차산 동민 18명으로 구성되어 출발했다.  청도 풍각면 차산농악은 천왕기(天王旗)싸움에서 발달한 농악으로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다. 천왕기싸움은 매년 1월 초에 8m  높이의 천왕기를 앞세우고 마을별로 농기와 농악대가 어울려 고갯마루와 장터에서 서로 위세를 자랑하며 노는 놀이이다. 꿋꿋하고 향토적인 예스러움과 질박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장단을 외가락으로 빨리 몰아가는 경우가 많아서 소박하고 씩씩한 느낌을 준다.
  뿐만 아니라 정월 대보름,  마을의 풍년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성주풀이, 지신밟기를 할 때와 농번기 고된 농삿일의 피로를 풀어주어 능률을 올리고 또 협동심을 고취 시키기 위해서 행해졌다. 
   

  굿거리 장단에 덥베기 춤으로 이어지는 경상도 악무가 특징인 이 악무는  영남대학교  김택규 교수의 민족 예술적 가치의 평가에 의하여 더욱 계승 보존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으며 오늘날은 차산에서 이 농악이 보존되고 있을 뿐 아니라 영남대학교 민속보존 연구회에도 전수하고 있다. 

    그동안 차산농악은 전국 민속경연대회 등 여러 국가적 규모행사에 참가하여 농악부문과 농요부문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3회나 수상하는 등, 많은 상을 받았고  특히 김오동 님은 개인상을 20여차례나 받았았으며 1981년도 대통령 취임식 때는 축하단으로 초청시연을 하기까지 하여 그 명성을 떨쳤다. 

     이런 활동 속에 뛰어난 기량으로 차산 농악에 심혈을 바쳐온 김오동 님은 경상북도 인간 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는 명예를 얻게 되었다. 이는 양철로 쇠를 만들어 농악패를 모아 15세부터 본격적으로 차산농악의 상쇠로 나섰으며 민족성이 강한 농악으로 민족혼을 지필까 두려워한 일제에 의해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강제로 징집이 되기도 했지만 멈추지 않았고 광복 이후, 서둘러 빚을 내면서까지 농악단을 재건하여 열정적으로 노력한 김오동 님의 인간 승리이기도 했다. 

 

김오동 님은 사실 농악만 잘한 것이 아니다. 농요도 그에 못지 않게 잘 하는 선소리꾼이었다. 결국 농악부문에 문화재가 되기는 했지만 농요부문으로도 대상에 올랐을 정도이다.

  그는 밤에 다른 사람이 모르게 상모 돌리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밤중에 이상한 물체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놀란 어떤 사람이 신고를 하여 경찰이 총을 들고 온적도 있었으며 징용에 끌려가 한쪽눈을 심하게 다친 와중에도 몰래 가락을 익혔고 미군에 잡혀 포로 수용소에 있을 때 드럼통으로 쇠를 만들어 농악 한 판을 벌이니 미군들이 놀라기도 했단다. 

  대회를 앞두고 농악대가 모자라면 이웃 고을인 창녕이나 밀양까지 가서 단원을 모집했으며 대회에서 수상을 못할 때는 빚을 져서 상당히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한편 정초에 부산 등 각지에 가서 지신을 밟아주게 되면 때로는 소 반 마리 값도 벌어 올때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 열정은 무형문화재가 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차산에 전수관을 만들었으며 초,중등학교 및 대학등 여러 곳에 출강하여 전통문화 보존에 노력했다.

  그는 농악에 관한한 무서울 정도로 엄격하여 대원들 중 연습을 게을리 할 때는 불호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 이외에는 관대하게 대했다. 이를테면 젊은 대원들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자리를 피할라치면 그러지 말고 그 자리에 돌아서서 피우라고 허락을 했던 것이다.    

 

 

 상쇠 金五同

                                    행전 박영환 

 

 

 

차산은 

수레바퀴처럼 둥근 땅 

닮아서 유래 깊은 농악이 오색 빛 흥을 지피면

하늘도 땅도 사람도

둥글게 둥글게

하나가 된다

그 중심에  님이 있었다

 

 

양철로 쇠를 만든다고 쇠소리야 나겠냐만

타오르는 신명 앞에 모여든 농악패 있어 

열다섯 나이에, 상쇠 되어 가락을 만들었다

 

 

민족 혼불, 독이 되어 스밀까 두려운 주재소

고문에, 징집으로, 날선 칼을 들이대도

아무리 비수래도 영혼마저 벨 수 없어

 

 

광복되자 빚을 내어  농악단 재건하여

천둥 번개 꽹과리 자진가락에, 빗소리로 신이 나는 장구

구름 속의 북소리, 바람 불어 시원한 징소리

천왕기 펄럭이며. 굿거리장단에 덧베기춤

성주풀이, 지신밟기 선소리꾼

풍년농사 기원하며

간절한 열정으로 막힌 가슴 어루만지니

큰 상으로 표창하며

으뜸가는 상쇠이니 인간문화재 4호라네

 

전수관에서 대학으로

이 마을에서 저 고을, 방방곡곡

노심초사 후진 양성, 선구자의 삶

꽃망울 다독이며 저문 길 다하도록 걸었네

 

 

그제나 저제나

늘 손에 쥔 건 꽹과리 하나

꽹과리가 가르쳐준 대로 

먼저 울고 뒤에 웃었다

많이 울고 적게 웃었다

그것이 상쇠의 삶이리라

 

 

지금도 님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은

우리의 영원한 상쇠이다.

 

   2002년 그 분이 떠나간 뒤에도 제자들이 그 자리를 이어받아 지키고 있다. 현재 상쇠로 활동하고 있는 분은 세 사람이다. 

백진환(45세) - 차산 출생, 84년부터 전수를 받음 

박준오(44세) - 차산 출생, 85년부터 전수를 받음  

김태훈(45세) -  대구 출생, 영남대 민속보존회 회원으로 87년부터 전수를 받음

   

  모두 15년 이상 교육을 받은 유능한 상쇠들이다. 지금까지 상쇠 경력만 해도 10년이 넘는다. 이분들이 각종 공연 및 연수를 맡고 있다. 현재 농악대의 구성은 농촌 사정상 온전히 차산 동민들로 구성할 수 없어 청도 내 다른 지역 사람, 또 대구 영남대 민속보존회 출신들도 있으며 약 40명 정도이다.  

  전수관에는 지금도 청도, 대구 등 전국 각지에서 연수생들이 참가하고 있다. 연수를 받는 사람은 연 250명 정도가 된다. 동계, 하계 캠프도 열리고 있으며 평상시에는 일주일에 1회 정도 연수가 있으며 동계에는 무료강습회도 열린다.

  차산농악이 늘 크게 울리며 오래오래 민족 고유의 가락으로 우뚝서기를 기원하는 마음 간절하다. 

          

                                                                                                  

                                                                                                                   201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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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산농악단 공연 모습(2012.2.6/ 청도 달집태우기 축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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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산농악단 공연 모습(2012.2.6/ 청도 달집태우기 축제 때)

 

 청도 차산농악 전수관(1993년 개원)

 

 

전수관 내의 소품

 

전수관에서 만난 현재 상쇠 세 분 중 한 사람인 김태훈 씨

 

 

 차산 마을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는 산

 

 

 

 

 

 

 

 

 

 

 

 

 

 

 

 

 

 

 

 

 

 

(기념비 내용>

   차산동은 신라 고촌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역사가 유구한 마을이다. 차산농악은 1932년에 이 마을이 뜻을 모아 결성한 농악대이다. 지금까지도 전승 보존에 힘쓰고 있는 김오동이 중심되어 18명의 회원으로 발족하였다. 농사의 풍요와 집집의 번영을 축원하는 지신밟기에 취지를 두고 해마다 연해 해오던 터에 영남대학교 교수 김택규의 민족 예술적 가치의 평가에 의하여 더욱 계승 보존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오늘날은 차산에서 이 농악이 보존되고 있을 뿐 아니라 영남대학교 민속보존 연구회에도 전수하여 여러 가지 국가적 규모 행사에도 참여하면서 그 가치를 높이고 있다.

  뛰어난 재질로 차산 농악에 심혈을 바쳐온 김오동은 경상북도 인간 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는 명예를 얻었다. 

  차산 농악은 1964년도 제1회 대국 경북 농악연합회 주최 농악대회의 도지사상을 비롯하여 1977년 1979년, 1983년도 전국 민속경연대회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1980년도에는 상쇠 김오동이 개인상을 수상하였으며 1981년도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에는 초청 시연의 영광도 차지하였다.  

  차산농악의 전통은 백세에 불변일 것이며 지역사회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무궁한 계승발전이 있을 것이다.

1985년 5월 광산 이영진(李榮鎭) 撰  밀성 박재주(朴載注) 書

 

 

 

 

 

 

 

 

 

 

 <공로비 내용>

   그 산맥이 있어 우리가 그 봉우리를 향해 눈빛을 견주듯이 작은 산이 가까이 있어 삶의 애환을 다스리고 자연의 노래를 배운다.

  빼어난 상쇠이자 소리꾼인 김오동(金五同) 선생은 1922년 7월 10일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에서 김해 김씨인 부 용경 옹과 모 파평 윤씨 슬하의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나셨다. 선생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4호인 차산농악의 기능보유자로서 50여년이나 차산 농악을 이끌어 왔으며 전국 민속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농악부문과 농요 부문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 3회 그 밖의 각종대회에서 20여차례나 개인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경력으로 어찌 선생의 진면목을 다 말할 수 있으랴. 선생은 평생을 농악과 농요와 더불어 하셨다.

  어릴 때부터 양철로 쇠를 만들어 농악패를 모았고 15세부터는 본격적으로 차산농악의 상쇠로 나섰다. 당시 민족성이 강한 농악을 한다고 주재소에서 고문을 당하고도 강제로 징집되어 일본 오키나와로 끌려가서도 몰래 가락을 익혔다.

  해방이 되자 귀국해서는 빚을 지면서까지 일제가 망쳐놓은 농악단을 꾸리고 지신 밟기 등 여러 농요를 발표하셨고 , 후세 교육의 중요성을 미리 깨달아 차산 초등학교와 영남대 민족보존연구회 및 여러 대학에 강사로서 농악도 전수하셨다.  또 관계자들에게 전통문화 보존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셨고 도움을 청하여 차산에 번듯한 연수원까지 세워놓으셧다. 이런 공로를 오래 기리기  위해 차산농악 단원이 본인의 거절을 무릅쓰고 정성을 조금씩 모아 이 비를 세운다.

  타고난 자질을 감출 수 없는 것일까. 농요 한 토막을 청하니 짐짓 사양하는 척 하면서도 웃으며 목청을 고르신다. 그 소리에 스민 연륜이여!

  아무도 돌보지 않던 길, 천대받던 길을 선구자적인 예인 정신으로 밝혀온 일생을 어찌 벼슬아치의 헛된 영예에 비할 것인가. 살아있는 동안 비문이 있는 것은 힘든 일이나 선생의 밟고 온 삶의 향기가 부족한 재주를 이끈 것이다.

 

  시인 경주인 최병해

         아산인 장봉채 씀

 

 

지신밟기 노래

 

 

경북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김오동(72세)/1993)

 

♬ : 풍물간주

♬♬

("자 이집 성주를 한번 모셔봅시다")

에여루 지신아 지신아 밟아 눌라보자 ♬

에여라 지신아 모시보자 모시보자 ♬

에여라 지신아 이 집아 성주를 모시보자 ♬

에여라 지신아 성주야 본향이 어디던고 ♬

에여라 지신아 경상도라 안동땅아 ♬

에여라 지신아 제비야원에다 솔씨를 받아 ♬

에여라 지신아 소평 대평1) 던졌더니 ♬

에여라 지신아 그 솔이 점점 자라나여 ♬

에여라 지신아 황장목이2) 되였구나 ♬

에여라 지신아 집이나 한쌍 지여보자 ♬

에여라 지신아 앞집이 김대목아 ♬

에여라 지신아 뒷집에라 박대목아 ♬

에여라 지신아 연장망태 챙겨 메소 ♬

에여라 지신아 살매망태3) 걸러 미고 ♬

에여라 지신아 갓끈을랑 목에 걸고 ♬

에여라 지신아 담배야 설대야 허리 꼽고 ♬

에여라 지신아 가자 가자 찾어가자 ♬

에여라 지신아 팔도강산을 찾어가자 ♬

에여라 지신아 팔도강산을 다 댕기도 ♬

에여라 지신아 까마야 까치야 집을 지어 ♬

에여라 지신아 부정이 타여 못 씰레라 ♬

에여라 지신아 상상봉을 올라가니 ♬

에여라 지신아 눈비 맞고야 키은 나무 ♬

에여라 지신아 동쪽끝으로 뻗은 가지 ♬

에여라 지신아 소톱 대톱 걸어 놓고 ♬

에여라 지신아 수루룩 수루룩 톱줄이야 ♬

에여라 지신아 곧은 낭을 베를 치고 ♬

에여라 지신아 굽은 낭은 배를 처여 ♬

에여라 지신아 마디마디 궁글 �어 ♬

에여라 지신아 가는 낭근 사목도요4) ♬

에여라 지신아 굵은 낭은 팔목도라 ♬

에여라 지신아 사목도야 팔목도야 ♬

에여라 지신아 이 나무를 욍기주소 ♬

에여라 지신아 호박아 주치야5) 유리지동6) ♬

에여라 지신아 서른 석자 대들보에 ♬

에여라 지신아 웃채도 일만 삼칸 ♬

에여라 지신아 아래채도 일만 삼칸 ♬

에여라 지신아 쌍무지개 도리 얹고 ♬

에여라 지신아 시침반을 연목7) 걸고 ♬

에여라 지신아 구름으로 산작얽고8) ♬

에여라 지신아 오색톨랑9) 알매10) 얹어 ♬

에여라 지신아 에헤 그 집 잘 지었다 ♬

에여라 지신아 김대목이 지었는가 ♬

에여라 지신아 박대목이 지었는가 ♬

에여라 지신아 대궐 졌던 도대목이 ♬

에여라 지신아 에헤 그 집 잘 지었다 ♬

에여라 지신아 주인양반 문을 여소 ♬

에여라 지신아 방치장이나 구경하자 ♬

에여라 지신아 누야 대보11) 장판방에 ♬

에여라 지신아 오동장농 객기수라12) ♬

에여라 지신아 입춘 한장 써붙이자 ♬

에여라 지신아 입춘하고는 대길이오 ♬

에여라 지신아 천증세월은 인증수라13) ♬

에여라 지신아 춘만하고는 복만가라14) ♬

에여라 지신아 에헤 그 집 잘 지었네 ♬

에여라 지신아 이 집 �고야 삼년만에 ♬

에여라 지신아 아들 딸을 칠형제를 ♬

에여라 지신아 한 태줄에 점지하소 ♬

에여라 지신아 금자동아 옥자동아 ♬

에여라 지신아 내가 너를 길를 적에 ♬  

에여라 지신아 진 자리는 내가 눕고 ♬

에여라 지신아 마른 자리 너를 눕혀 ♬

에여라 지신아 금옥 같이 길러 다가 ♬

에여라 지신아 가자 가자 찾아가자 ♬

에여라 지신아 서울이라야 찾어가자 ♬

에여라 지신아 경주 서울 첫서울로 ♬

에여라 지신아 벼슬문을 들어서니 ♬

에여라 지신아 과게야 운이 �쳤던가 ♬

에여라 지신아 글 한자에 과게했다15) ♬

에여라 지신아 삼정승아 육판사요 ♬

에여라 지신아 암행어사 점지하소 ♬

에여라 지신아 이 집 대주 출읍할16) 때 ♬

에여라 지신아 동을 가나 서로 가나 ♬

에여라 지신아 남을 가나 북을 가나 ♬

에여라 지신아 동서남북을 다 댕기도 ♬

에여라 지신아 남읏 눈에 잎이 되고 ♬

에여라 지신아 남읏 눈에 꽃이 되여 ♬

에여라 지신아 구신아 악담을 다 막아주소 ♬

에여라 지신아 일년하고는 열두달아 ♬

에여라 지신아 과연하고16) 열석달을 ♬

에여라 지신아 삼백하고나 육십오일 ♬

에여라 지신아 하루 아적17) 같이도 넹겨주소 ♬

에여라 지신아 만복을랑 이 집으로 ♬

에여라 지신아 잡구야 잡신은 다 물러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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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평(小坪) 대평(大坪) : 작은 들 큰 들.  2)황장목(黃腸木)  3)살매 : 연장의 일종인 듯.  4)사(四)목도 : 네사람이 메는 목도. 통나무 앞뒤에 줄을 걸어 목도채를 꿰어 양쪽에서 네사람이 어깨에 메고 운반한다.  5)호박아 주치야 : 호박돌 주춧돌. 호박돌은 둥근 돌에 구멍을 뚫어 줄을 매 주춧자리를 다지는데 쓰는 돌. 6)유리지동 : 도리와 기둥을 이르는 듯.  7)연목(椽木) : 서까래.  8)산작 → 산자( 子).  9)오색톨랑 : 오색토(五色土)일랑.  10)알매 : 산자 위에 얹는 흙.  11)누야 대보 : (뜻 모름).   12)객기수 : (뜻 모름).   13)천증세월인증수(天增歲月人增壽).   14)춘만건곤복만가(春滿乾坤福滿家).   15)과게 → 과거(科擧).  16)과연 → 과년 : 윤년(閏年).   17)아적 : 아침.

 

◇ 정초에 풍물패가 집집이 돌며 지신밟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 이 마을에서는 정월 초사흘부터 대보름까지 지신밟기를 했다고 한다. 노래와 연주가 한 구절씩 반복되는 것이 이 지역 지신밟기 노래의 특징이다. 노래 내용은 이른바 '성주풀이'인데, 노래로 성주님의 근본을 풀어냄으로써 신을 불러모시는 뜻을 갖는다. 성주님은 집안의 우두머리격으로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령이다. 지신밟기는 성주굿 다음에 부엌에서 하는 조왕굿

 

 

 

 

청도차산농악 / 블로그 payten 내용임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에 전승하는 농악.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호.

〔유 래〕

1980년 12월에 지정되었다.

 

차산리는 속칭 신라고촌(新羅古村)이라 일컬어지는 유서 깊은 고을로 130여 가구 모두 농사에 종사하는 각성바지 마을이다.

 경남과 도의 경계에 위치한 관계로 음력 정월 11일경이 되면 면내의 두레뿐만 아니라 고개 넘어 경남 창녕군의 두레들도 참여하여 많을 때는 15∼16개 마을이 장터에서 천왕기(天王旗) 싸움을 벌였다.

차산농악은 이러한 서낭기싸움과 지신밟기 등을 기초로 발전한 농악이라 하겠다.

유능한 상쇠이자 선소리꾼인 김오동(金五同:1922년생, 토착민)의 열의로 차산농악은 건실하게 지켜져 왔다.

 

〔특 징〕

쇠가락엔 질굿·자진모리·조름쇠·천왕굿가락·무정작궁·덧뵈기·호호딱딱·부정굿가락·굿거리(살풀이) 등이 있다.

 차산농악은 지신밟기 가사가 다양하고 천왕기의 존재, 비교적 가락이 빠른 점, 호호딱딱 기타 판굿에 특이한 진풀이가 있는 점, 노래하는 농사굿이 있는 점 등이 특색으로 꼽힌다.

 잡색으론 포수, 양반, 색시가 있다.

 

판굿 편성은 아래와 같다.

 

〔편 성〕

1. 굿거리굿(춤굿):세 줄 횡대로 서서 인사한 다음, 시계 반대방향으로 한 줄로 행진하면서 굿거리장단에 덧뵈기 춤을 춘다.

 쇠꾼들이 원의 중심으로 들어가 무정작궁을 치며 정(井)자로 서서 재비들을 지휘한다.

2. 부정굿:두 줄로 원진한다. 3. 호호딱딱

4. 자진모리(막조우기):시계 반대방향으로 계속 원진.

5. 물레굿(미영잦기):처음엔 2인이 한 조로 돈 다음(2석), 3인이 한 조(3석), 4인이 한 조(4석)로 돈다.

6. 진굿:두 줄로 원진(2석)·세 줄 원진(3석)·네 줄 원진(4석)하다가 다시 이를 차례로 푼다. 7. 농사굿(법고수들이 연희한다. 풍농을 기원하는 경축행사):① 씨뿌리기 ② 모찌고 모심기(모노래 가창) ③ 논매기 ④ 벼베기 ⑤ 벼타작 ⑥ 벼 끌어 모으고 티끌 날리기 ⑦ 노적쌓기

8. 개별놀이:① 장구 ② 북 ③ 열두발 상모 등. 9. 조름굿:시계 반대방향으로 원진하며 신나게 쇠를 몬다.

10. 오방진굿(둘둘말기):천왕기·농기·쇄납·나무 나발 등을 한가운데 두고 조름쇠를 치며 나선으로 돌면서 5방에다 각기 똘똘말이를 한 다음 이를 푼다.

 

≪참고문헌≫ 경북무형문화재대장(경북도청)
≪참고문헌≫ 農樂(정병호, 열화당,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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