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3)
백탑의 황금도시 프라하
행전 박영환

◎ 식물도 국제화
여행 제3일, 아직 시차가 잘 적응되지 않은지 새벽 4시에 잠이 깨었다. 옆방 사람들도 잠이 깨었는지 복도에 서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이 오지 않는데 누워 있는 것도 고역이라 바깥바람이나 쐬려고 밖에 나갔다.
전날은 어두울 때 왔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아침에 보니 체코 우스티는 평지가 아니고 산 중턱이었다. 공산당이 통치하던 시절에는 당 간부들의 별장이 많았던 곳이라고 한다. 공 교장 부부는 우리보다 먼저 나와 아침 산책을 했다. 또 저 멀리 다른 부부도 올라오고 있었다.
전날 끝없는 평원으로 이어지던 독일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얼른 보면 산세가 우리나라 시골풍경과 닮았다. 분위기만 그러한 것이 아니고 산야의 나무며 풀도 우리나라와 거의 같았다. 크로버, 민들레, 찔레꽃 등등. 사람만 섞이는 것이 아니고 식물들도 활발하게 교류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 걷고 또 걷고

아침 9시, 우스티를 출발하여 10시 50분에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도착했다.
체코의 정식 국명은 체코공화국이다. 유럽 중부에 위치한 내륙국가로 폴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원래 슬로바키아와 같은 나라였으나 1993년에 분리되었으며 면적은 한반도의 삼분의 일정도이다. 인구는 1200만명이며 프라하에는 120만명이 살고 있다. 1990년에 우리나라와 수교를 했다. 현재 이곳은 현대 자동차 생산라인이 있으며 약 2000명 정도 교민들이 살고 있다. 곳곳에 삼성이며 LG 광고 간판이 보여 우리의 국력을 실감할 수 있어 뿌듯했다.
‘북쪽의 로마’ ‘백탑의 황금도시’란 애칭이 있는 프라하는 2차 대전 당시 빨리 항복을 하는 덕분에 - 이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아무튼 공습을 피할 수 있어 중세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600년 정도 된 것이 많으며 이 건물들은 유네스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시가지 전체가 똑 같은 모양의 집들이었다. 집과 집 사이에 조그마한 공간도 없이 붙여서 지은 집들 - 색깔로 집의 경계를 표시한다고 했다. 주상복합 건물들이 많으며 창문을 보고는 몇 집이 사는지 알 수 없었다. 건물 중간에 설치된 문을 열고 들어가야 주차시설이라든지, 정원이 있었다. 예스럽고 웅장한 일면은 있으나 성벽을 보는 것 같아 좀 갑갑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도시 전체에 가득한 중세 유럽 분위기는 시간이 과거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주었다.
현지 가이드 최 씨가 안내했다. 벌써 이곳에 온 지 6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오래 있을 계획이 없었지만 점차 정이 들어 계속 머물고 있다고 한다.
프라하의 관광은 걸어서 한다. 이곳은 시가지가 오래 전에 형성되어 길이 좁기도 하려니와 관광객이 워낙 많이 몰려오기 때문에 차가 들어갈 수 없다. 연간 1억 명 정도의 관광객이 온다고 하니 하루에 300만명이 오는 셈이다. 즉 부산 인구가 하루에 몰리는 것이니 대단하다. 버스를 멀찌감치 세워놓고 걷고 또 걸었다.
◎천문시계
이곳은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이후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며 대한항공 직항도 개설되어 있다.
가이드는 체코를 알려면 4가지를 기억하라고 했다. 즉 체코의 건국자 성 바츨라프, 프라하의 황금기를 만든 까를4세, 종교 개혁자 얀후스, 프라하를 가로지르는 볼타바강이 그것이다.

볼타바강에서 시내를 조망한 뒤, 구 시청사 및 광장으로 갔다. 이곳 역시 다양한 양식의 건축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있었다. 먼저 구 시가지 옛날 시청건물 위에 있는 천문시계를 보았다. 천동설을 주제로 1415년경에 만들었는데 3층 정도의 높이였다. 우리나라도 거의 같은 시기인 세종 때에 물시계, 해시계 등을 만들었다.
그런데 참 기가 막히는 일은 이 시계를 만든 장인 하누스를 장님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또 다른 명품 시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한 것이라니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상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국에 장님이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참을 수 없는 분노에 떨던 그는 마지막으로 시계를 한 번만 만져보자고 간청하여 만지면서 고장을 내어 버렸다. 그 이후 이를 고칠 사람이 없어 시계는 고장이 난 채로 있었는데 수백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야 어떤 시계 과학자가 가까스로 시계를 고쳐 가게 했다고 한다.

아무튼 12시가 가까워지자 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먼저 ‘황금닭’이 울면서 위의 작은 창문이 열리고 12성자가 나타났다. 12사도는 저마다 사연을 안고서 인간에게 삶의 지표를 알려주었다. 두개의 원형 판, 맨 위 작은 구멍 안에 ‘황금 닭’이, 아래 시침 옆에는 전신상(부조)이, 그 중 오른쪽에는 인간의 해골상이 있었다. 그 해골상은 죽음과 운명을 상징하며 삶의 심판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해와 달과 별도 있고 허영심을 일깨우는 거울이 있으며 고리대금업자의 돈주머니가 보이고 게으른 베짱이, 철학자, 천사, 망원경을 든 천문학자, 교수가 나타났다.
몰려든 사람들은 저마다 어떤 생각을 하며 시계를 바라보았을까? 모두 부질없는 욕심에서 벗어나 맑고 바르게 살아가야 할 것인데, 잠시 시계가 연출하는 유희에 젖었다가 다시 욕심의 바다 속에서 끝없이 헤엄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얀후스와 바츨라프, 스트라호프 수도원
구시가지 광장에 체코의 신학자이며 종교개혁자인 얀 후스(Jan Hus) 동상이 있다. 얀 후스는 교황 등 로마 카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파문당했으며 콘스탄츠 공의회 결정에 따라 1415년 화형을 당한 분이다. 그런데 그가 비록 처형되었지만 그의 사후에 그의 신학사상과 뜻을 이어받은 강력한 개신교 공동체인 보헤미안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바츨라프 광장으로 갔다. 광장이라기보다는 큰 도로이며, 중앙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가 약간 놓여 있었으며 도로 양쪽으로 호텔과 레스토랑, 은행, 백화점 등이 늘어서 있었다. 광장 끝, 국립박물관 앞에는 이 광장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체코 건국의 아버지 성 바츨라프의 동상이 서 있었다. 또 이곳은 1989년 민주개혁 때 대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 ‘프라하의 봄’ 영령을 추모하는 위령비도 같이 있었다.
관광객을 위한 마차가 많았는데 말 눈에 안대를 씌워 옆을 보지 못하게 했다. 얼른 보기에는 마차행렬이 보기 좋았으나 말이 그런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안쓰러웠다.
스트라호프 수도원으로 갔다. 이때는 버스편으로 갔다. 1140년에 지어졌지만 많이 소실되어 18세기 경에 다시 지은 것이다. 현재 문학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4만권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으며 열람하여 읽을 수 있다.
◎보헤미아 왕가의 궁성과 성 비투스 대성당

궁성으로 갔다. 블타바강 서쪽 언덕 위에 자리한 프라하성은 동유럽 왕성 가운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16세기 말까지 보헤미아 왕가의 궁성이었던 성 안에는 시대에 따라 양식이 다른 다양한 건축물이 들어서 있어 하나의 작은 도시를 연상케 한다.
프라하성 제2 정원을 지나 제3 정원으로 이동하면 성 비투스 대성당을 만난다. 프라하를 상징하는 성당이다. 보헤미아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바츨라프가 10세기에 원형교회를 만들었고 11세기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축했다. 14세기 카를 4세 때 지금의 고딕양식 틀이 잡혔으며 1929년경에 완성됐다.
건축자재는 사암(砂巖)이다. 이 사암은 처음에는 물러서 만지거나 조각을 하기가 쉽지만 세월이 갈수록 단단해져 오래간다. 밖에 드러나는 검은 색은 철분이 나온 것이다. 아무튼 이 성당은 천년동안 지었다. 성당 안에는 21개의 예배당이 있다. 지하에는 까를4세등 역대 체코 왕들의 묘가 안치돼 있다. 가장 화려한 성당으로 비엔나의 슈퍼테판 성당과 프라하의 성비투스 대성당을 꼽는다. 이곳에는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형상화 한 것이 있다. 스테인글라스(Stained Glass)가 연출하는 은은한 빛의 아름다움, 햇살을 받아 다양한 색을 만들어내는 장관에 흡사 천국에 온 느낌을 받았다.
성 비투스 대성당 앞에 구왕궁이 있다. 이곳은 현재, 대통령 집무실과 영빈관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도 관광객들이 대통령궁 창문 밑으로 오간다. 격의가 없어 좋기는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못한 터라 약간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 궁을 지키는 위병들도 어쩌면 관광용(?)이 된 것 같았다. 옆에서 사진을 찍어도 개의치 않았다.
구왕궁과 성 이지르교회를 지나면 황금골목이 이어진다. 연금술사들이 불로장생의 묘약을 만들던 골목이었다고 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살았던 그의 여동생 집이 보존돼 있다. 카프카는 이 집에

서 ‘성’(城)을 집필했다고 한다.
◎ 까를교에서 소원을 빌고
프라하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곳이 카를교이다. 1357년 까를 4세와 신성로마제국의 차기 황제가 만들었다. 이 다리의 건설을 시작한 시간은 오전 5시 31분인데 점성술가와 천문학자가 가장 이상적인 시간이라고 택한 것이다. 유럽 건축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걸작으로 꼽히는 이 돌다리는 보행자 전용 다리이며 길이가 516m이다. 이 다리에는 30기의 성인 상도 조각되어 있다.
낮은 낮대로 절경이며 특히 밤이면 프라하성의 불빛이 장관을 이루어 환상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이 일품인 정경은 이미 세계적인 상품이 되어 있다. 그래서 체코의 유명한 감독 카렐 바섹은 이 다리는 프라하성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그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는 소원을 비는 곳도 있다. 다리 중간의 난간에 십자가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그 위에 손을 얹고 소원을 빌면 한 가지씩은 이루어진다고 한다.

소원을 빌기 위해 십자가의 동판에 왼손을 올려놓았네
불빛 따라 손이 따뜻했네
금색 발판을 밟은 다리 가볍게 떨렸네
소원을 빈다는 것은 항상 긴장을 몰고 오는가 보다
다리 아래쪽을 보며 소원을 말했다
내가 빌고 나오자 아내도 손을 얹었다
조금 뒤
뭐라고 빌었죠
당신 건강이지 뭐, 당신은 뭐라고 빌었는데
나도 당신 건강을 빌었지 뭐
평생에 한 번은 꼭 소망을 들어준다고 하니
우리 건강하게 잘 살 거야
그래요
이외에도 성 요한 네포무크와 강아지 부조상도 ‘문지르며 기도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속설 때문에 수많은 손길을 타 반질반질했다.
고도 프라하, 발품을 많이 팔아 다리는 뻐근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풍요로웠다.
(동유럽 여행(4) '폴란드 크라카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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