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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

동유럽 여행(5) 폴란드 소금 광산 그리고 슬로바키아

동유럽 여행(5)

 

         폴란드 소금 광산 그리고 슬로바키아

 

행전 박영환 

 

◎ 포니차 발견한 아침 산책

 

  여행 제5일, 일찍 눈을 떴다. 3시 40분인데 밖은 훤했다.  전날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너무 끔찍하여 잠을 설친 것이다. 이곳은 동절기는 9시에 해가 뜨고 오후 3시가 되면 캄캄 해지며 여름은 3시만 되면 훤해졌다가 9시가 되어야 어두워진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은 맑지 못했다. 날씨가 나쁘면 예술이 발달하고 좋으면 과학이 발달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기후가 나쁜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은 예술이 발달하고 기상이 좋은 미국은 과학이 발달했다고 한다. 폴란드는 음악이 발달한 나라이다. 쇼팽을 비롯한 많은 음악가가 배출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 밖으로 나갔다. 젊은이들은 별로 보이지 않고 노인들만 활동을 했다. 가까

운 곳에 성당이 있어 잠깐 들어갔다. 알려진 성당들처럼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이곳에도 노인들만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모여 들었다. 공원에도 노인들만 있었는데 대부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곳뿐만 아니라 동유럽 전체가 참 많이 피우고 있었다. 남자는 물론 여자들도 공공연하게 담배를 피웠다. 배달하는 여인도 담배를 물고 물건을 가지고 갔다. 심지어 학생들이 흡연을 해도 관용적이란다. 

   마침 새벽시장이 서기에 과일을 좀 사려고 갔는데 유로화를 받지 않아 사지 못했다. 이곳에 한국차가 많이 보였다. 대우자동차 공장이 있었던 영향으로 마티즈, 티코 등이 많이 보였다. 그런데 현

대의 ‘포니’가 골목 주차장에 서 있었다. 아마 20년도 더 된 것 같아 사진을 찍었다. 이곳 사람들은 자동차 10년 타기가 아닌 영구적으로 타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실용에 초점을 맞추어 차를 타는 것 같다. 잘 닦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곳은 철저히 보행자가 우선이었다. 사람이 길을 건너게 되면 멀찌감치 차를 세워두고 보행자가 지나가도록 기다렸다. 우리나라는 차가 먼저 가기 위해 발밑에 와서야 하는 수 없이 차를 세우지 않는가. 그런 생활을 해오던 터라 저쪽에서 차가 오기에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을 해도 웃으면서 괜찮다고 하면서 지나가라고 했다. 이점은 배울 점이었다.     

 

◎ 378계단을 내려간 소금광산

  

식사를 마치고 약 20분 뒤, 소금광산에 도착했다. 소금광산도 아우슈비츠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이다. 13세기 무렵부터 채굴이 본격화되었다. 갱은 9층으로 나뉘어져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으며 총길이 300여 키로미터 중 3 키로미터 정

 

도만 일반 관광객을 위해 개방하고 있는데 온도는 섭씨 14도 정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다. 계단을 조심스럽게 밟고 내려갔다. 원래 이곳은 바다였는데 점차 뭍으로 바뀌면서  물은 증발하고 소금만 남아 소금 바위덩어리가 되었다고 한다. 관광코스는 2시간 정도이며 연간 100만명 정도가 찾아온다고 한다. 그런데 사진 촬영비도 3유로를 징수했다. 그래도 화장실은 공짜로 사용하라니 다행이었다.  

  바닥은 크리스탈 소금이었다. 소금을 폴란드어로 ‘술’이라고 한다. 원래 폴란드에는 소금이 없어 어려움이 많았다. 소금광산을 가장 먼저 개발한 사람은 킹카 공주이다. 킹카공주는 13세기 사람으로 헝가리 왕 베라 4세의 딸이었다. 그녀가 크라카우의 공작 블레슬리우에게 시집을 오게 되었는데 그 당시 폴란드에 소금이 없음을 알고 아버지께 간청하여 결혼 선물로 ‘마레무라’는 소금이 나올만한 광산을 얻게 되었다. 그녀는 그곳을 지나면서 일부러 구덩이에 반지를 버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파게 했는데 과연 소금이 쏟아져 나왔다. 전설적 인물인 킹카 공주는 소금 광산의 수호신이 되었다.

  

소금 광산에는 여러 방들이 있고 그 방마다 소금으로 만든 특유의 조각들이 가득하다. 모두 열거하기는 힘들고 몇 가지를 소개하면  ‘가스를 태워버리는 사람들’ - 이는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고행자’이니 ‘기어다니는 사람들’이니 하는 별명이 있다.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방 - 코페르니쿠스는 1493년 크라카우에서 공부를 했으며 이곳에 들린 적이 있다. 이를 기념하여 둥근 지구를 손에 든 상을 조각하였다. 성 안토니 예배실 - 17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이며 가장 오래된 예배당 중 하나이다. 광부들은 ‘성 안토니’가 어디를 파야 소금이 있는지를 알려준다고 믿고 있다. 전설의 방 - 킹카 공주의 전설을 형상화 시킨 방이다. 킹카 공주를 기리는 이 성당은 바닥과 천정, 벽 들의 조각 모두 수작업을 한 것이다. 이 성당은 일반인들의 결혼식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샹들리에 밑에서 카메라를 바닥에 놓고 촬영을 하면 그 배경이 묘하게 조화되어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일

행들이 사진을 가장 많이 찍은 곳이 그곳이다.

  그 이외에도 카시미르 대왕 방, 요정들의 방, 에라즘바라체 호수, 보석을 지키는 방이 있으며 그곳에 반지를 킹카공주에게 전하는 모습, 난장이 광부들이 광산을 캐는 모습, 말이 소금 마차를 끄는 모습, 지하 90미터에서 소금물을 물레방아로 자아올리는 모습들이 있었다.

  말은 지하 세계에서 약 5 년간을 사는데 평생 그 곳에서 새끼를 낳으며 살았단다. 지하 소금 광산에는 흙을 퍼다가 곡식을 심어 먹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소금광산에 흐르는 물은 통 소나무의 속을 파서 수로를 만들고 물레방아로 물을 밖으로 퍼내고 있었다.

  밖에 나올 때도 체크를 했다. 혹시 떨어져 있는 사람이 있으면 곤란하니 인원을 단단히 점검하기 위함이었다.

  밖에 나와서 버스에 앉자 가이드가 시험문제를 내었다. 계단이 전부 몇 개였습니까?

 

전부 378계단이 정답이었다.

 

◎타트라 산맥을 넘어 슬로바키아로

 

 14시 30분 크라카우를 출발, 숙소가 있는 슬로바키아로 향했다. 이 길은 종전의 동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바로 타트라 산맥이 있는 국립공원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년설이 있는 2,663미터의 국립공원은 슬로바키아와 폴란드의 국경지대에 걸쳐 있다. 총면적의 75%는 슬로바키아 소속이고 25%는 폴란드령에 해당된다.

  넓은 평야만 지나다가 갑자기 차 두 대가 겨우 비키는 골짜기와 험준한 산을 넘게 되니 조금 이상했다. 쏟아지는 폭우 속에 지나가다 보니 음산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고개 마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여유롭게 풀을 뜯는 소와 양떼들을 보며 평화를 느꼈다. 슬로바키아는 1993년 체코에서 분리되어 슬로바키아 공화국이 되었다. 저녁 7시 반스카 비스트리카에 도착했다. 이곳은 슬로바키아 중부의 도시로 슬로바키아에서 가장 큰 SNP 광장이 있고, 전형적인 산맥이 둘러쳐진 도시다. 몇 년 전에 슬로바키아 수상이 서쪽에 치우쳐 있는 현재 수도 브라티 슬로바를 이곳 반스카 비스트리카로 옮겨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을 만큼 반스카 비스트리카는 슬로바키아에서 비중이 큰 도시다. 이곳의 룩스 호텔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호텔은 아직도 여권을 맡겨놓으라고 했다. 동유럽 어느 지역도 여권 검사를 하는 곳이 없었는데 유독 이곳만 그렇게 했다. 아직도 공산 국가 시절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방도 안에서 열쇠를 잠그도록 되어 있었다. 뭔가 통제를 철저히 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그래도 음식은 별로 짜지 않았다. 가지고 왔던 소주 몇 병을 내어 같이 마셨다. 외국에서 마시는 소주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 근처 슬로바키아 봉기기념관이 있는 광장으로 갔다. 독일군에 저항하던 것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조금 실망을 했다. 광장은 넓고 크며 조경도 어느 정도 되어 있지만 휴지가 너무 많았다.


 

   동유럽여행(6)'헝가리 부타페스트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