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2)
핏빛 그림자를 녹색으로 바꾼 베를린
행전 박영환
◎여권 잘 챙기시고
여행 제2일, 밤에 비가 왔고 날씨가 스산했다. 출발 전에 한국날씨와 비슷할 것이라고 했지만 한국보다 온도가 낮았다. 실제 이곳은 위도가 우리보다 한참 위다. 두꺼운 점퍼를 입고 나갔다. 일행 중 얇은 옷만 가져온 사람은 춥다고 몸을 움츠렸다.
안내 최 양이 "그래도 5월에 여행을 잘 왔습니다. 겨울철에는 너무 추워서 다니기도 힘들고 호텔방도 라디에이터로 난방을 하는데 그것도 시간제로 하기 때문에 무척 춥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8시에 출발하지 않습니까? 서유럽은 이렇게 여유가 없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서유럽 여행은 시어머니 골탕 먹이는 여행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말입니다”
모두 웃었다.
누군가가 ‘유럽을 강타하는 화산재’에 대한 걱정을 하자 “아이슬란드 화산재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신 모양이지만 이곳은 전혀 영향이 없습니다. 그것보다는 소지품 걱정이나 하십시오. 잘 잊어 먹는 것이 윗도리, 충전기, 전화기, 안경, 모자입니다. 그것보다 제일 중요한 것이 여권입니다. 여권을 잊어버리면 정말 곤란합니다. 그래도 근래에는 동유럽 각 나라를 지나갈 때 여권 검사를 하지 않아 좀 낫지만 옛날에는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비행장을 출국할 때는 여권이 없으면 꼼짝 못합니다.”
◎빌헬름 교회

11시경 베를린에 도착하니 현지 가이드 박 군이 나왔다. 독일에서 신학과 박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유학생이었다.
베를린이란 곰의 의미도 있지만 습지, 동토의 땅이란 의미도 있다고 했다. 교역 및 지리상의 동서 중심축 위에 걸쳐 있다는 이점 때문에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가 되고 이어 통일 독일의 수도가 된 곳이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이 동․서독으로 갈라지면서 두 쪽으로 나 있다가 통일이 되면서 다시 옛날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
먼저 빌헬름 교회를 찾았다. 원래 이곳은 독일 초대 황제인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1894년에 세운 교회이다. 높이가 69미터나 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되어 입구 일부만 남아 있다. 63미터나 되는 탑이 멀쑥한 모습으로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었다.
잔해로 남아 있는 몰골이 흉하니 깨끗하게 밀어버리고 새로 짓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부서진 것도 역사이고 또 교훈이니 남겨서 되돌아보는 마음을 가지자고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대신 탑 옆에 교회를 새로 신축하였다. 이 교회의 정면에는 여느 교회와 다른 예수상이 있다. 보통 십자가에 못박힌 우울한 모습이나 이곳은 승천하는 상이기에 밝고 웅장한 모습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있던 곳

베를린은 장벽이 가로놓인 도시였다. 이 장벽은 동․서 냉전의 산물이었으며 싫든 좋든 우리나라 155마일 전선과 동병상련의 모습으로 비유되곤 했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고압선을 깔아놓고 지키는 모습이 우리와 같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그들은 시원하게 걷어내어 동서가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꽁꽁 묶여 있다.
이곳에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다. 이 문은 원래 ‘승리의 콰드리가’라는 전차의 조각상이 있는 개선문이었다. 전쟁에 승리한 프로이센군 및 독일군이 개선할 때 보무도 당당하게 통과하던 영광의 장소였다. 그러나 동서로 갈라지면서 베를린 장벽의 비애가 서린 문으로 바뀌어 영욕이 혼재한 장소로 되었다.
우리 일행들은 활짝 열린 문 앞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했다. 그런데 이때 카메라 뒤에서 얼쩡거리는 검은 피부의 외국인들이 있었다. 뭐라고 연신 고함을 질러댔다. 알고 보니 저네들과 사진을 같이 찍자는 것이었다. 동서가 화합한 마당에 흑황이 손을 잡고 사진 한 장 못 찍으랴, 좋다고 하니 우르르 몰려와서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언제 우리도 판문점에서, 또 도리산 역에서 같이 만나 마음껏 웃을 수 있을런지. 그들은 30년을 막고 있었지만 우리는 반백년도 지난 60년 세월이다.
용산 전쟁기념관에 가면 ‘통일을 갈망하는 시계’가 있다. 이 시계는 1950년 새벽 4시, 동족의 심장에 총구를 겨눈 그 시간에 멈춰 있다. 통일이 되면 통일의 시각을 담아 시계탑 위에 올릴 것이라고 한다. 그날이 언제일까. 답답하다.
열어서 열리지 않는 것이 없다지만
열쇠를 잃어버린 동토의 땅 DMZ
세월만 탓할 것인가 겨레여 겨레여
◎녹색의 도시

장벽이 헐린 것도 참 부러웠지만 그 못지않게 국회의사당도 매우 부러운 장소 중에 하나였다. 우리는 아직도 정치에 대한 불신이 크다. 정치인의 투명성을 잘 믿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의 정치인들은 다른가 보다. 모든 것을 공정하게 처리하고 있고 그 투명성을 보여주기 위해 아예 의사당 곳곳을 유리로 깔았다. 그래서 이곳에 입장하면 그야말로 유리처럼 맑고 깨끗한 정치 현장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정경을 직접 목격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어 발길을 돌렸다.
의사당에는 연중 300만명 정도가 방문을 한단다. 잠깐 사이인데도 우리가 도착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야말로 장사진인데도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관심 때문에 더더욱 의사당이 맑고 바르게 운영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줄에도 예외가 있다. 아이를 태운 유모차에 우선권을 주는 것이다.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이다.
전승기념탑이며 비스마르크의 동상, 히틀러가 자결한 곳, 유태인 추모비는 버스 속에서 소개만 받았다.
거리에는 마로니에 꽃이 한창이었다. 그 향기가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곳은 마로니에뿐만이 아니고 숲과 호수가 많았다. 녹색 도시가 된 것이다. 나무만 팔아도 전 국민이 7년 정도는 거뜬하게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핏빛 그림자를 녹색으로 바꾼 것이다. 사람만 살려 하면 사람 살기가 힘든 땅이 되고 나무와 같이 살게 되면 오히려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되는 것이다.
거리에는 두툼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실용을 추구하는 사람들인지라 옷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 듯 했다. 그런데 독일은 또 패션사업이 번창한 나라이다. 실용을 숭상한다고 감각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중심 도로 옆에 꼭 자전거 전용 도로가 나란하게 붙어 있었다. 우리는 예사로 생각하고 전용도로에 들어섰는데 가이드가 빨리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자전거가 속력을 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에서도 자전거 타기 운동을 장려하고 있지만 별로 진척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 같다.
개를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거리 곳곳에 개와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 나라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저렇게 개가 거리에 많이 나오면 혹시 물리는 일은 없느냐고 했더니 가이드왈 “개에게 물리면 영광입니다.”했다. 이유인즉 유럽지역은 이민이 되지 않는데 개에게 물리면 시민권을 준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개가 물었으니 사죄하는 의미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가 전혀 물지 않아 그런 기회가 오기는 거의 힘들다고 했다. 이렇게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다고 하자 얼마나 기함을 했겠는가! 그래서 88올림픽때 개고기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고 하면서 도회지에서 보신탕집을 추방하지 않았던가. 그 때 어떤 이는 “도회지 사람은 암에 걸리면 안 되고 시골 사람은 암에 걸려도 좋단 말인가?” 하면서 “서양사람들은 견본(犬本)주의고 우리는 인본(人本)주의라서 개고기를 먹는다”고 항의를 한 적이 있다. 문화의 차이다.
◎드레스덴

작센 왕조의 수도 드레스덴으로 갔다.
궁전입구 장식이 왕관이다
얼마만큼 누리려고 했던가
궁궐이며 교회
그 어느 것도 눈길을 사로잡지 않는 것이 없으며
기를 죽이지 않는 것이 없다
초빙거궁, 박물관, 동상
화려함의 극치
슈탈호프 벽의 ‘군주들의 행진’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란 말이 여기에도 통하는지
오토 1세 대제(936-973년 독일 왕, 962년부터 황제)는 아우크스부르크 근처에서 벌어진 레흐펠트 전투에서 마자르족을 결정적으로 무찌르고 동쪽의 슬라브 영토로 점령했다. 성직자들에게 토지를 하사하여 교황청의 지지를 얻었고 마침내 오토는 교황 요한네스 12세에 의해 로마에서 황제 대관식을 올렸으며 독일을 신성 로마 제국으로 출범시켰다. 그 이후 국력이 크게 발달했다.
◎체코 국경
오후 7시경 독일에서 체코 국경을 넘었다.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 옛날에는 여권 검사가 있었다는데, 유럽 공동체가 형성된 이후 그것이 없어지고 돈도 같은 공동화폐 유로화를 사용하니 같은 나라 같았다. 실제 신성로마 제국의 영향 아래서 살았기 때문에 문화도 유사한 것이 많았다.
체코의 조용하고 아늑한 도시 우스티에 도착. 호텔 카사카데에 들었다. 최 교장이 28유로를 주고 맥주 20컵을 돌렸다. 같이 건배를 하며 피로를 풀었다.
저녁식사는 빵과 닭고기였다. 아내는 식성이 맞지 않은지 별로라고 했다. 이제 시작이나 다름이 없는데 걱정이었다. 비교적 식성이 좋은 나는 그런대로 잘 견디었다.
일행 중 어떤 분이 고추장, 멸치, 김을 식탁 위에 내어놓았다. 고놈들을 입에 넣으니 입맛이 확 당겼다. 이때 약간 떨어져 식사를 하던 외국할머니 한 분이 신기한 듯이 쳐다보고 있더니 슬금슬금 다가와 멸치 몇 점 달라고 했다. 고추장과 같이 드렸는데 아주 맛있게 먹더니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외국인들 중에도 고추장을 잘 먹는 사람들이 많다.
방에 들어갔는데 이곳은 샤워실과 화장실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수도꼭지가 뜨거운 것은 왼쪽으로 잠그고 찬물은 오른 쪽으로 잠그게 되어 있어 익히느라 애를 먹었다. 역시 침대는 무척 좁았다. 아직 쌀쌀한 날씨이니 난방이라도 좀 해주면 좋으련만 그대로 냉방이었다.
동유럽 여행(3) '백탑의 도시 프라하'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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