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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북 김제시 금산사

전북 김제시 금산사

대적광전

    2026년 8월 11일, 전북 김제시에 위치한 금산사 (金山寺) 를 찾았다. 이 절은 백제 법왕 때 창건된 고찰이다.

대적광전, 미륵전,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해탈교, 극락교, 향적당, 적묵당, 보현당, 설법전, 요사채, 나한전, 조사전, 보제루, 대장전, 상서전 등이 있는 큰 절이다.  그런데 이 절이 고찰이라고 하지만 워낙 깨끗하게 잘 다듬어서 그런지 최근에 지은 듯 아주 깨끗하다.

 

미륵전
미륵불상

  미륵전의 미륵보살상은 옥내 입불로서는 세계 최대라 하며, 삼존불 중 가운데 미륵불상이 11.82m, 좌,우불상은 8.8m이나 된다.

  이 미륵전 수미단 아래에는 커다란 무쇠솥이 감춰져 있다. 왜 미륵불 아래 무쇠솥을 두었는지 그 까닭은 잘 모르지만 그 솥을 한번 만져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굳게 잠긴 자물쇠는 아무나 그 안에 무쇠솥을 만져볼 수 없게 한다.

 후삼국 때 견훤이 아들 신검에 의해 이 절에 갇힌 적이 있다. 그 때도 자물쇠는 굳게 잠겼으리라.  마음을 쉽게 얻을 수 없는 절 같다. 

 

  사실, 이 절을 찾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80년대에 온 적이 있다. 그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하는 글을 쓴 적이 있고 이글을 수필집에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다가 이번에 생각이 나서 찾아보았는데 그때의 느낌은 지금과 많이 다른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어 새삼 놀랐다. 아마 절을 들어올 때 조금 언짢은 마음이 있어 젊은 기분(그 때 아마 40대였던 것 같다)에 그렇게 쓴 것 같다.

 글의 내용은 이러하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때아닌 겨울 비가 산하를 촉촉이 적셔주는 이른 아침, 모악산 K사를 찾아 나섰다. 과연 상쾌한 공기였다. 산자락의 뿌리 틈에서 새벽을 마중 나온, 이 신선한 공기의 향그러움은 간밤, 설레임에 잠을 잃은 눈자위의 긴장과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이곳의 공기는 한번 숨을 들이키는데 3초의 생명을 연장한다고들 하는데, 그 말이 전혀 터무니 없는 말이 아닌 듯하다.

  개울물 소리도 한없이 정겹다. 이름 그대로 어머니의 마음을 상징한다는 모악산은 맑은 시냇물을 잠시도 쉬지 않고 흘려보낸다. 자칫 빙점의 계절 속에 때 절어 찌들고 얼붙어 폐칩될가 봐 가슴을 흔들어 깨우는 것 같다.

  나는 겨울에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겨울방학이 틈을 내기가 가장 용이하기에, 어쩔 수없이 그렇게 되었지만 그것이 때로는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봄, 여름, 가을은 동적인 자연미를 느낀다면, 겨울은 정적인 미가 있다. 봄의 아장이는 새순, 여름의 풍성한 기지개, 가을엔 색깔의 환희가 있지만, 겨울은 사실 내세울 게 없을 수도 있다. 성장(盛裝)을 떨어버린 나목(裸木)들은 시린 바람에 여위어 있다. 그러나 잎새를 벗어버린 겨울은 꾸밈이 없이 순수함과 진실이 있어 좋다. 바위는 바위대로, 능선은 능선대로 완전히 제 모습이다. 새들도 몸을 숨기지 않고, 하늘도 전혀 가식이 없는 푸름이다.

  사찰도 마찬가지다. 다른 계절엔 인파가 법석대며 그 때 소음들이 덖지가 되어 껌자국처럼  된다. 이 정제되지 못한 소음들은 여행을 칙칙하고 피곤하게 한다. 반면에 겨울의 산사는 이런 공해가 없다. 부처님의 미소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조용하게 스님과 합장할 수 있어 좋다.

  비포장 도로인 절의 경내로 들어서며 우산을 받쳐들고 조심스럽게 걷기는 해도, 산과 절과 스님을  이주 가까이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임이 있었지만 그것은 이내 깨어지고 말았다.

  자동차 클랙션 소리가 기대하던 분위기를 완전히 헝클어 버렸다. 차량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곳에 진흙 물을 튕기면서 달려온 자동차, 그것은 스님이 타고 있는 승용차이었다.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없이 당당하게 질주하는 자동차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스님이라고 승용차를 이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종교도 발빠른 현실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인지, 요즈음은 웬만한 절엔 스님들이 이용하는 승용차들이 있다. 그러나 괜히 아쉬움이 생긴다. 스님들에 대한 기대가 아직도 너무 고루하게 남아 있는 것인가?

  사찰의 개창(開創)을 흔히 개산(開山)이라고 한다. 스님들이 산골짜기를 개척하여 사찰을 창건하고 수행 처로 삼아 중생을 제도할 때, 비로소 그 산은 산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기에 개산이란 이름을 붙인지도 모른다.

  서양의 한 시인은 칠흑과 같은 어두운 현대 세계를 밝힐 수 있는 빛은 오직 고요하고 착한 수도자의 마음밖에는 나올 수 없다고 말하며, 그 빛은 사찰에서 비쳐 나오리라고 예언한 바 있다. 동감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수도자들의 성지인 사찰을 아끼고, 그곳에서 수도를 하는 그들을 성직자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들은 막연하게나마, 성직자들에게 거는 기대가 많다. 세속의 범주를 벗어나, 일그러진 물질 문명에 바람벽이 되어 주십사 하는 바람같은 것이다. 대부분의 스님들은 이러한 바람에 부응하고, 극기와 절제라는 불법에 충실하고, 수도자의 외길을 걸어가며, 중생제도에 진력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스님들 중에는 때로는 인간이란 한계에 갈등을 느끼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일찍이 이 절에서 법도를 정진하고 있던, 고승 원명대사(圓明大師)도 제자들 중에 인간의 번뇌를 버리지 못하는 이가 있어, ‘혹시라도 게으르거나 거칠지 마라. 만약 너희들이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이, 먹기만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사치하며, 자신의 일신만 돌보는 무리들이라면, 그것은 어리석음 아니면 미친 짓이다,’ 하고 크게 꾸중을 했다고 한다.

  이 절의 입구뿐만 아니라 이름 있는 사찰이 있는 곳은 대부분, 국립공원이 되어 있고, 입구를 막아서고 입장료를 받고 있다. 그 때마다 약간의 거부감을 느낀다.

  사찰은 수도의 도량이기 전에 중요한 문화재이다. 넓은 공간과 많은 건물들은 지속적인 보수가 있어야 하며, 그러자면 많은 관리비가 필요하다는 것쯤이야 왜 모르겠는가마는, 그래도 노골적으로 관리비를 요구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못하다. 절은 원래 문이 없어,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들지 않는 곳이 아닌가?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가난하여 돈이 없는 사람은 부처님 가까이 갈 수도 없단  말인가? 입장료에 연연한다는 것은 사찰 스스로가 불도의 도량을 포기하고, 한낱 유물화 구경거리로 비하시키는 행위이다. 진심으로 우러난 보시만 받을 수는 없는가? 그렇게 하다가는 대웅전이 내일부터 당장 비가 새게 되는 것인가?

  이 절의 대웅전 격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이 잿더미로 변하고, 스산한 낙엽더미 속에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웅장한 건물 화려한 내부는 이 절의 품격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법당이었다. 이 법당이 86년 12월 대화재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 화재도 천재지변이나 일시적 과실도 아닌, 종단 내 파벌의 분쟁에 의한 고의적인 방화였다니,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어, 불교계에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명찰의 면목을 변명의 여지없이 실추시킨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안타깝고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적광전은 중건 공사가 한창이었다. 재목을 다듬는 기계의 굉음이 모악산을 소란스럽게 들쑤시고 있었다. 작업장 귀퉁이에는 굉음보다 더 큰 성금을 바라는 호소문이 큰 입을 벌리고 있었다.

   (중략)

  이 절은 백제 법왕 원년에 창건이 되고, 신라의 고승 진표율사의 고뇌로 중창된 전통의 고 사찰이다. 이 절에는 용에 얽힌 두 가지 상반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진표 율사가 용왕의 도움으로 절의 중창을 순조롭게 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용을 내쫓고 절을 지었다는 설도 있다. 즉 모악산 남쪽, 이 절 터는 원래 용들이 깊은 늪에 살고 있었지만, 수만 석의 소금을 집어 넣어 짠 기운에 용들이 견디지 못하여 도망을 가게 한 뒤에 이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 용의 도움을 받은 터에 용의 뜻을 거슬리는 일을 했기에 노여움을 사서 화마가 겹치는 등, 액운이 많았던가? 이제 액땜을 다하였으면 한다.

  이 절의 입구 문간엔 다음과 같은 글귀가 기록되어 있다. ‘잠못 이루는 자에게 밤이 길듯, 피곤한 나그네에게 길이 멀듯, 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 아아, 생사의 밤길은 길고 멀어라’

  결빙된 산야를 일깨워 호흡 드리우며, 끊임없이 흐르는 여울 가에 서서 이 절이 그 본래 모습인 불자의 수행 처로 우뚝 서기를 기원해 본다.

 

 

  지금은 중건된 대적광전이며 여러 건물들이 제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 정말 흠잡을 데 없는 청결한 도량이다. 괜히 아무 것도 아닌 일로 흠짓을 낸 것같아 미안하다. 새삼 부처님의 눈으로 보는 것과 돼지의 눈으로 보는 것이 얼마나 다르게 보이는지를 실감한다. 그리고 지금은 국가지정 문화재를 보유한 사찰들은 문화재 관람료 감면 분을 국가 및 지자체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 잘 된 일이다. 

 

배롱나무 꽃이 한창이다
오충석탑
조사전
대장전
범종각
성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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