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청도가 좋다

천년 고찰 용천사

  천년 고찰 용천사

                     행전 박영환

 

   3월 어느 날, 경북 청도군 각북면 비슬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용천사(湧泉寺)를 찾았다.

    이 절은 신라 문무왕 10년(670년)에 해동화엄종의 창시자인 의상대사가 해동화엄전교(海東華嚴傳敎)를 위해 창건한 1340년 전통의 고찰이며 한 때는 47개의 암자와 3천명 이상의 스님이 거주하였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규모가 별로 크지 않다.  스님도 세 분밖에 계시지 않는다.  

  용천사는 ‘湧泉’란 이름이 말해주듯이 맑고 깨끗한 석간수가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곳이다. 창건될 당시 이름도 ‘玉泉寺’이었으니 그 때 역시 이 샘이 유명했던 것 같다.

  그 이후 삼국유사를 집필하신 일연선사가 이곳에 오래 머물면서 ‘佛日寺’라고 바꾸기도 했지만 뒷날 다시 샘과 관련한 이름으로 되돌려 ‘용천사’로 한 것이다.

  용천사는 비슬산 맑은 수맥이 끊임없이 흐르는 것과 같이 오랜 세월 동안 불법 도량으로 면면이 이어지고 있다. 화엄종을 전교하기 위한 10대 사찰 중 하나이었으니 ‘의상십철(義湘十哲)’이라 일컫는 의상의 제자 10대덕(大德) 고승들은 물론 그 제자의 제자들이 줄지어 이곳에서 교화에 힘썼을 것 같다. 그런 맥은 신라는 물론 고려시대까지 이어졌으며 마침 국존이라 일컬어지던  일연선사까지 이곳의 승통을 계승했던 것 같다. 아무튼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일연선사가 오래 머문 곳이니 이곳은 겨레의 역사서인 삼국유사(三國遺事) 태동에 깊은 관련이 되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용천사는 고향집에서 승용차로 30분 정도 거리이고 더더구나 처갓집은 바로 이웃마을이기에 오래 전부터 자주 찾는 곳이다. 아내는 이곳에 올 때마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왔던 추억을 떠올리곤 했다. 

  아내와함께 절에 들어서면서 합장을 한 뒤, 먼저 용천수 한 바가지를 떠서 마셨다. 시원한 물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음이 좀 복잡하고 머리가 아픈 일이 있어도 이곳의 물을 마시면  스르르 녹아내리며 잡심이 평정되었다.

    성해(性海)주지 스님을 방문했다. 여러 번 이곳에 오긴 해도 주지스님을 직접 찾아 뵙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세수로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연세이지만 나이보다 훨씬 더 젊게 보이는 정정하신 분이셨다. 반갑게 맞으며 구기자차를 우려내어 권하셨다.   

  구기자차는  독특한 맛과 향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음미를 하면 그 속에 참 맛이 있다. 스님이 바로 그런 성품을 지니신 분 같았다. 

  “용천사에 주지로 오신지 오래되셨는지요?”

  “이제 1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곳이 동화사의 말사입니다. 대구, 청도, 고령, 성주 지역의 조계종 사찰은 동화사에서 관장합니다. 여기 오기 전에는 동화사에 있다가 기회가 닿아 온 것입니다.”

  “많은 절의 주지를 맡으셨겠습니다.”

  스님은 미소 속에 잠시 말씀을 끊었다가 계속하셨다.

   “물론 나이도 있고 하니 몇 곳을 맡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또 그 기간도 짧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라도 있는지요?”

  “이유라기 보다는 평소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출가한 이후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절의 주지 직책도 잘 맡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맡게 되어도 오래 하지 않고 훌훌 털고 일어나 거처를 옮기곤 하였습니다. 제가 밀양이 고향이긴 하지만 경상도 지역에만 머물지 않고 전국 곳곳의 절집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스님께서 좋아하신다는 글귀 유산완수(游山翫水)가 스님의 삶을 말해주는군요”

  “틈틈이 서예를 익히고 있는데 이상하게 ‘산에서 노닐며 물에서 즐긴다’는 ‘游山翫水’를 많이 쓰곤합니다.”

  “서예에 일가견을 이루신 것 같습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즐겨 먹을 갈고는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스님의 방에는 스님이 직접 쓴 서예 작품들이 많이 걸려 있었다.

  “서예를 하신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연한만 따지면 꽤 오래되었지요. 절에 들어오기 전부터 관심을 가졌으니…. 사실 절에 들어오기 전에 문학 작품도 더러 습작을 했습니다. 그러나 절에 온 이후부터는 쓰지 않습니다.”

  “문학활동을 중단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딱히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말을 많이 하면 고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생이라 하시면….”

  “좋은 말을 하게 되면 그게 모두 내가 먼저 지켜야 할 짐이 되지 않습니까? 짐이 쌓여, 지고 가려면 얼마나 고생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대중 앞에 강연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이때 마침 월간 ‘桐華’ 에 스님을 취재하여 인터뷰 기사를 실었던 백종하(불교관련 사진작가, 대학에서 사진 강의) 님이 방문을 하였는데 중간에 넌지시 한마디를 하셨다.

  “스님은 사진도 찍지 않습니다.”

  “그러시군요. 저는 내심 백 교수님이 온 김에 사진 몇 장을 부탁드리려고 했습니다만….”

  “사진 그것 찍어 책이나 인터넷에 올리면 곤란합니다. 그러면  얼굴이 알려져 ‘游山翫水’가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폿집에 가서 막걸리 한 잔도 먹을 수가 없습니다. 하하하.”

  짐짓 농담을 하시며 호탕하게 웃었다.  스님은 내친 김에 농담 한 마디를 더 하셨다.

  “극락에 가면 혀만 소복하게 모여 있고 다른 몸뚱어리는 지옥에 전부 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혀만 극락에 간다고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혀는 좋은 말을 많이 하여 극락에 가고 다른 몸뚱어리는 그 말을 실천하지 않아 지옥에 간 것이죠. 물론 우스갯소리지만 의미하는 바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쯤에서 이야기는 다시 ‘湧泉’ 쪽으로 돌아갔다.

  “용천사 물을 긷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지요?”

  “저도 이곳에 오기 전, 많은 사람들이 물을 길어간다는 소문은 익히 듣고 왔습니다만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청도는 물론이고 대구 지역 사람들이 참 많이 옵니다. 오늘은 마침 평일이고 또 음력 2월 초 하루가 되어 조금 적게 왔습니다만은 정월달 내내 장을 담그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수원이 풍부하여 물이 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니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큰 수곽 같은 것을 만들어 밤에 흘러가는 물을 저장하였다가 낮에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경비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

  “좋은 보시가 될 것입니다.  빨리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것도 그렇지만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 절 바로 밑 큰 길가에 ‘湧泉寺洞下道路修治頌功表石(용천사동하도로수치송공표석)’이란 꽤 긴 이름의 돌비가 있습니다. 이게 조선 영조 때인 1725년에 세운 공덕비입니다. 내용은 사람과 우마가 다니기 어려울 정도의 길을 용천사 스님인 행준, 순기 순식 등 여러 스님이 새로 수리하여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조선시대의 사찰이 지역내의 도량으로서의 역할뿐만아니라 지역민의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비문의 글씨가 아름다워 금석문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교통사 연구에도 중요한 사료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표석이지만 실제 현장에 가보면 주민들의 컨테이너박스와 엉켜 거의 방치되어 있습니다. 당국은 문화재로 지정한 것에 그치지 말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너무 방치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다가 약 300년이상 된 표석이 자칫 훼손되지나 않을까 무척 염려스럽습니다. 당국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잘 관리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스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보니 어느덧 해가 비슬산 속으로 숨어버렸다. 다시 용천수 한 바가지를 시원하게 마시고 난 뒤 산에서 내려왔다.                   

 

                                                                                                                                            (2010. 3. 16.)

 

 

 

 

 용천샘

 

 물맛 좋기로 소문난 용천수

 

 용천수에 기도

 

 종각

 

 용천사 동하도로 수치송공 표석

 

 

 표석 안내문

 

 각북면 입구에 새겨진 아름다운 각북, 살기좋은 청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