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둔사(薪芚寺)에서 다시 들은 기도소리
행전 박영환

신둔사는 영남의 명산이며 청도의 진산(鎭山)인 남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규모가 큰 것은 아니지만 신라 애장왕 때 보조국사가 창건한 이래 오늘까지 이어진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오래된 고찰이기도 하려니와 이곳이 있는 남산은 청도의 상징적인 산으로 봉우리며 계곡 등 명승지가 철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에 불자들은 물론 등산객이며 피서객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시인 묵객들의 마음을 담은 노래며 그림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절은 내 개인적으로도 잊지 못할 곳이요, 인연이 깊은 곳이다. 어머님이 시집을 온 이후 10년 동안 태기가 없어 애를 태우다가 나를 낳은 이후 내가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이곳 부처님을 찾아 간절하게 불공을 드린 곳이 이곳이기 때문이다. 그런 절이라면 내가 많이 찾았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마 어릴 때 어머니 등에 업혀서는 몇 번 갔겠지만 내 스스로 알고 찾아 간 것은 한 번밖에 없었다. 그것도 실은 스스로 찾은 것이 아니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소풍 장소가 되어서 간 것이다.
소풍을 가던 날 아침에 어머님은 나의 손목을 잡고 절에 도착하는 즉시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절부터 공손히 올리라고 간곡하게 당부하셨다. 아무튼 그날 어머님의 말씀에 따라 대웅전에 들어가 두 손을 모으고 부처님께 큰 절을 올렸다. 그리고 대웅전 앞에서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때 찍은 이 사진도 공교롭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다. 10명의 친구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아주 작은 흑백사진이다. 그런데 용하게도 지금까지 색깔이 변하지 않아 얼굴 모습이 또렷하다. 나는 그 사진을 이번에 수필집 ‘종소리의 뜨락에서’를 내면서 표지의 첫머리에 기념으로 담았다.
이곳은 고향집에서 30 리 정도 되는 거리에 있다. 멀다면 먼 곳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먼 곳도 아니다. 그런데도 초등학교 이후 학교며 직장을 다니느라 객지에 머물고 있었기에 좀처럼 다시 올 기회가 없었다. 그렇지만 마음 한 편에는 잊어서는 안 될, 다시 가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숙제처럼 계속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마침 교직에서 퇴임을 하면서 고향 청도를 알리는 ‘청도문학신문’이란 인터넷 카페를 만들 기회가 생겨 우선적으로 이곳을 찾게 된 것이다. 지난 6월 어느 날, 아내와함께 길을 나섰다.
대충 방향은 안다 해도 처음 가는 길이나 마찬가지인지라 내비게이션 김양의 안내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나설 때부터 제법 길이 험할 것이란 생각은 했지만 이처럼 산이 높고 길이 좁은 줄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길도 불과 몇 년 전에 신도들이 협찬하여 길을 닦은 것이라고 하니 그 전에는 차는 엄두도 못 내고 도보로 다닐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아무튼 자동차도 숨이 차서 쉽게 오르지 못하는 경사진 길을 초등학생이 어떻게 올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런 험한 길이기에 어머니께서도 아이를 혼자 보내지 않았을 것 같다.
도량에 들어서니 매미 몇 마리만 다투어 울고 있었으나 인적은 없었다. 대웅전도 큰 규모가 아니었다. 단청도 많이 바래었다.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어느덧 50 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나고 난 뒤 다시 올리는 절이라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부처님의 그윽한 눈길 너머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동안 별일 없이 건강하게 학교에 다니고 직장 생활을 무사히 마친 것이 다 이 공덕에 의해서서 이루어진 것이란 생각이 불현듯 밀려오며 무심했던 지난날이 죄스러움으로 다가왔다. 나뭇잎과 열매의 힘은 모두 뿌리에서 나오거늘, 정작 나뭇잎과 열매는 제가 잘난 줄만 안다. 그래도 뿌리는 이를 원망하지 않고 그의 살을 깎아 끊임없어 그를 키웠던 것이다.
어머님께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을 것으로 짐작되는 삼성각에도 향불을 피우고 이제 모두 잊으시고 극락왕생하시기를 엎드려 빌었다.
주지 스님을 뵙기 위해 요사채(寮舍寨) 문을 두드렸다. 마침 주지이신 도일(道日) 스님은 출타하시고 제자인 법관(法寬)스님만 계셨다. 법관 스님이 내어놓은 약차를 마시며 어머님께서 나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드렸던 일을 말씀드렸더니 “그런 인연이 계셨군요”하면서 반가워했다.
스님도 지난 3월 초에 신둔사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스님들은 거처를 어떻게 옮기느냐고 물었더니 “인연 따라 오고 인연 따라 가게 되지요” 하면서 미소를 머금었다. 스님 역시 인연을 퍽이나 강조하는 분이었다. 모든 것을 인연에 귀결시켰다. 스님 자신이 불가에 입문한 인연도 조용히 들려주었다. 절에 들어오기 전 여러 가지 생업에 종사하고, 심지어 정치 계통의 일에도 관여하고 또 종교도 불교가 아닌 교회에도 다닌 적이 있었지만 다 인연이 아닌지 오래 머물지 못하고 중도에서 그만두게 되었는데 지금은 절밥을 잘 먹고 있으니 옳은 인연을 만난 것 같다고 했다. 서울 도봉산 선학원을 시작으로 파계사, 봉암사 등에서 정진을 했다. 그 동안 여러 절에 있었지만 특히 봉암사의 ‘결사’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문경 희양산 봉암사는 신라때 창건한 절로 1947년 성철, 청담, 향곡, 월산, 자운등 스님들이 결사를 맺어 봉암사를 '부처님 가르침대로 철저히 수행하는 공부방'으로 가꾸었고 그 전통이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 들어가면, ‘앎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모를 뿐! 네가 알고 있는 것도 모두 버려라. 모른다는 것만 알아라’는 경구가 있습니다.“정진 하던 때를 회상했다.
스님에게 수행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자신을 이겨 ‘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싸움에서 100만 대군을 이기더라도 내 자신을 이기지 못하면 패배자라고 말씀 하셨는데 내 자신에게 이기려면 내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언하여 ‘참 사람’은 ‘저주’하지 않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역시 부처님과 어느 제자의 일화를 소개했다.
“부처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누구가 뺨을 때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제자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감사히 생각하겠습니다. 왜? 상처를 내지 않는 것만 해도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상처를 내었다면? 상처는 아물 것이니 흉터를 내지 않으면 감사할 일입니다. 흉터를 내었다면? 칼로 죽이지 않았으니 감사한 일 아닙니까? 죽였다면? 죽인다 해도 이 몸을 버리게 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부처님의 제자로 살려면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둔사에는 공양주가 따로 없다. 법관 스님이 도일 주지 스님을 모시고 산다. 어렵지 않느냐고 했더니 “조금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도 계시고 할아버지도 계십니다. 바로 주지 스님인 도일 스님이 아버지이시며 도일 스님이 아버지로 모시는 고송(古松) 스님이 할아버지이십니다. 고송 스님은 지금 파계사에 계십니다. 내가 오늘 비록 젊다 해도 내일은 반드시 늙게 됩니다. 그 나이 드신 모습이 곧 내일의 내 모습이 됩니다. 나이 든 분을 공경하는 것은 결국 나를 공경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아무 어려움이 없습니다.”
법관 스님은 이미 나이가 쉰을 넘겼지만 얼른 보면 서른 살 정도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 정정했다. 모습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실제 활동도 혈기 넘치는 청년처럼 왕성하게 하고 있다. 일례로 스님께서 현재 부처님의 말씀인 법요집을 만들어 각 사찰에 배포하고 있는데 그부수가 무려 만 권에 이른다고 하니 얼마만큼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스님은 영가들을 천도하기 위해 수 많은 재를 맡아서 지내고 있다. 이 재란 것이 얼른 보면 별로 어려움이 없는 것 같아도 상당히 어려운 것인데 굳건한 법력으로 영가들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요사채를 나와 ‘청풍루’란 누각에 올라갔다. 대웅전이 비교적 작은 규모인데 비해 이곳은 꽤 큰 누각이며 또 최근이라 할 수 있는 1998년에 창건된 곳이다. 큰 법회시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 누각 안에는 ‘금구’라고 불리는 징이 있다. 참 맑은 소리가 나는 징이었지만 아쉽게도 6.25 전쟁 때 총을 맞아 일부 파손된 것이다.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 보기는 별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청아하게 울리는 그의 독특한 소리는 여전하여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또 이곳에는 오래된 북도 있었는데 스님께서 잠시 두드려 보이며 그 힘찬 소리를 느껴보라고 했다. 과연 범상치 않은 소리가 큰 메아리를 만들었다.
이 절에는 또 특이한 부도(浮屠)가 있다. 이곳의 부도는 자연암벽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다. 절 뒤편에 있는 암벽을 그대로 이용하여 조선후기 부도의 형태를 종처럼 음각으로 새기고 그 가운데에 사각구명을 뚫어 사리를 봉안하고 이름을 기록한 희귀한 것이다.
또 이곳에는 맑은 샘이 유명하다. 바위틈에서 나는 석간수가 아주 맑고 수질이 좋아 많은 불자들이 즐겨 마시던 샘이다. 신령스런 샘이란 뜻으로 영천(靈泉), 또는 옥과 같은 샘이라고 옥여천(玉如泉)이라 불렀으며 이를 누군가가 샘 뒤편 바위에 크게 새겨놓았다. 아마 이곳에 계시던 스님 중 어느 분이 새긴 것 같은데 글씨가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 샘을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마침 도롱뇽과 개구리가 서식하고 있으며 녀석들이 알까지 풀어놓았다. “이 놈들이 부화되어 나가고 나면 다시 영천의 명성을 되살려 볼 작정입니다.” 법관 스님이 귀띔을 했다.
청도지역은 여기저기 이서국(伊西國)과 관련한 전설이 많다. 이곳 역시 이서국의 도성이었던 백곡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으니 관련이 없을 리 없다. 청도지역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여 한 때는 이웃 경주 지역 신라를 위협하기도 했던 나라였지만 점차 강성해진 신라에게 밀려 왕성을 빼앗기게 되었다. 왕족들은 왕성이 함락되자 급히 지금의 신둔사 근처 어느 봉우리 밑에 숨었다. 뒷날 사람들은 이곳을 은왕봉(隱王峰)이라고 불렀으며 지금도 신둔사의 종소리는 은왕봉의 정령을 위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절 뒤편에 성곽 같은 돌담도 있어 이 절터가 한 때 피난지가 되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잠시 덮일 수는 있어도 낙엽 아래서도 돌담 아래서도 종소리 속에서도 숨어 있다가 다시 생명을 얻는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내려오려니 법관 스님이 요즈음 자주 듣는 것이라고 하며 노래 한곡을 들려주었다. 어느 가수 분이 부처님 도량을 찬양한 내용이었다.
청아한 한 줄기의 연꽃송이 피어오르니
만다라화 향내음이 시방 세계 두루 하네
그 향기 맡는 이는 마음마다 연꽃 되어
사바의 속진번뇌 모두 다 사라지고
이루는 곳곳마다 연화장 세계로세
아 연꽃이여 청아하고 아름다워라
내 마음 연꽃 같이 영원히 피어나리
노래 소리를 뒤로 하고 절문을 나서니 마침 연꽃 같은 불도화가 만발하였다. 꽃송이 사이로 어머님의 간절한 기도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님 어머님!”
인연이 있는 절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 신둔사(薪芚寺)는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산 657번지, 청도 남산 중턱에 있는 절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대웅전-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다

5층 석탑 - 영산 보탑이라고도 부른다

청풍루 - 정면 3칸 측면 1칸의 2층 구조이며 큰 법회시 강당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건물은 1998년에 신축하였다.

범종각 - 이곳에서 가까운 은왕봉에 이서국의 왕과 왕족들이 신라군을 피해 숨었는데 애절한 종소리는 그 정령들을 위로하고 있다고 한다

삼성각 - 독성각(獨聖閣)·산신각(山神閣)·칠성각(七星閣)이 있으며, 대개 삼성각에 삼신을 같이 모신다. 토속신앙과 결부된 것이다.

석종형(石鐘形) 선각부도 - 절의 뒤편 천연바위를 이용한 부도 - 사각구명을 뚫어 사리를 봉안하고 이름을 남긴 희귀한 것으로 관심을 모으는 곳이다.

신령스런 샘이란 뜻으로 새긴 글씨 - 영천(靈泉) , 그 옆에 옥과같이 귀한 물이란 뜻인 옥여천(玉如泉)이란 글씨도 있다

옥여천 글씨

영천 -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고유의 물맛을 살리기 위해, 곧 새롭게 단장할 것이라고 한다

미완의 마애불상

6.25 전쟁 때 총을 맞은 흔적이 있는 징

법관 스님이 북을 울리고 있다

절 주변의 돌담

신둔사 도량 전경

산 정상을 바라 보며 불도화가 피어 있다

안내 표지
* 위의 내용을 새로 정리하여 '한국동서문학' 창간호(2012.3.)에 발표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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