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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지역 서원 재실 탐방

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24)학행이 독실했고 법도를 따랐던 이대수(李大壽) 선생의 추원재(追遠齋)

추원재
청도신문(2024년 8월 21일)

 

청도 지역 서원재실고택 탐방(124)

학행이 독실했고 법도를 따랐던 이대수(李大壽) 선생의 추원재(追遠齋)

 

행전(杏田) 박영환(朴永桓)

 청도문인협회장,  교장

 

청도군 매전면 관하1리에 자리잡고 있는 추원재(追遠齋)를 찾았다. 이곳의 배향 인물은 이대수(李大壽, 15431615) 선생이다. 공의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호는 만정(晩亭)이며 참봉을 지냈다. 평소 밤을 밝혀 독서하여 학행이 독실했고 법도를 따랐다. 화악산 아래 거처를 정하고 거문고를 타며 책을 읽고 거닐었다. 포산 곽창승(苞山 郭昌承) 추원재 중건기 공의 재주와 인품은 묘당(廟堂)의 상석에 오를 인물이었다고 했다.

경주 이씨의 시조는 표암공(瓢巖公) 알평(謁平)이다. 그는 혁거세(赫居世) 왕을 옹립하여 신라를 세웠으며 유리왕(儒理王) 9년에 급량부장(及梁部長)이 되었고 사성(賜姓)을 받았다. 그 이후 경주 이씨의 중시조는 거명(居明)이다. 그는 신라 때 십칠 관등 중 귀족 진골(眞骨)만이 오를 수 있었던 관직인 소판(蘇判)을 지냈다.

공은 국당(菊堂) ()의 후예이다. 고조는 국당공파 청도 입향조인 만송 휘(晩松 翬)이다. 그는 문과에 올라 홍문관(弘文館) 교리(校理), 양주(楊州) 목사(牧使)를 지냈으며 청도를 빛낸 사람들 175명 중 한 분이었다.

증조부는 만송의 장자인 문강공 사균(文剛公 思均)이다. 그는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 삼도관찰사(三道觀察使) 이르렀고 증직은 이조판서(吏曹判書)이다. 조부 ()은 무과에 급제한 뒤 현감(縣監), 도호부사(都護府使), 평안도 관찰사(觀察使), 개성 유수(留守)를 거쳤으며 청백리로 이름이 높아 향민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추원재는 팔작지붕 와가 중당협실형 5칸이다. 1896년에 창건하였으며 1948년에 중건했다. 정면에 솟을대문이 있고 별도의 공간에 모은정사(慕恩精舍)와 양화주사(養和廚舍)가 있다. 1998년에 새로 중수했으며 후손의 표성 내역을 새긴 비가 있다.

대청 벽에는 추원재 중건기와 후손 재영(在英), 진호(震鎬), 달희(達熙), 덕희(德熙) 등이 쓴 낙성 축하운이 걸려 있다. 제 종족과 논의하여 재실 중건에 힘썼던 달희는 재실을 경영한 세월 오래되어 기둥과 들보가 옛 모습을 찾기 어렵게 되자 중건을 위해 일족들이 정성을 다했도다. 어느 곳, 어떤 상황에도 화목하는 우리 종친들은 늘 명예를 더럽히랴 의리에 어긋나랴 돌아보고 조상 추모하는 마음 잊지 말자고 했다.

애국 충정과 살신성인의 영웅인 이인호(李仁鎬) 소령이 공의 후예이다. 그는 청도초등학교 34회 졸업생으로 해군사관학교 11기로 임관하였으며 해병 제2여단 소속으로 월남전에 파병되어 1966 8 11일 투이오아지구 작전에서 동굴을 수색하던 중 적의 수류탄이 날아오자 몸으로 덮쳐 부하들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散華)하였다. 1계급 특진과 태극무공훈장(太極武功勳章)이 수여되었으며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귀감으로 삼고 있다. 모교인 청도초등학교에서는 교정에 현충비(顯忠碑)를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으며 용산 전쟁기념관, 해군사관학교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도 그의 유품을 상설 전시하는 등 애도하고 추모하며 받들고 있다.

이날 후손인 용이(龍伊, 전 문임), 인백(仁白, 청도향교 이사) 씨가 안내하며 설명해주었다.

추원재란 시제로 글을 올렸다

밤을 밝혀 독서하며 법도를 따랐던

선대의 엄숙한 길 후대들 이어받다

이인호 살신성인이 이를 말해 주는 듯

 

추원재 전경
추원재 기문
이인호 소령 현충비(청도 초등학교)

 

이인호 소령 유품(해군사관학교)
교과서에 실린 내용(해군사관학교 소장)
이인호 소령 흉상(용산 전쟁 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