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국 이야기(4)
행전 박영환
그날 이서국 왕실은
신라군에게 왕궁을 내어주고
남산 은왕봉隱王峰에 몸을 감추었다
어지럽게 꽃이 아우성을 치고
덜 익은 노래가 되어
꽃술에서 울음을 삼킨다
세월의 파도가 수없이 지우고 지워도
감당하기 힘든 긴 시간
가파른 벼랑이 물구나무 서기를 하다가
그늘의 독백을 듣고 만다
목에도 가슴에도 까맣게 에워싸는 절망
바람 위에서 바람을 키운 얼굴들
비틀거리며 비탈길을 걷는다
저 멀리 백곡 궁성을 바라보는
젖은 탄식은 빗장을 친 별빛 사이로
포물선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