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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친구

삼국유사

  삼국유사

 

                                      박 영 환

 

비슬산에는 일연선사께서 서른 세 해나

오르고 내리면서 새긴 

땀에 젖은 발자국이 있습니다

 

선사님

삼국유사는 정녕 책상에 앉아서 쓴 것이 아니고

젊은 시절부터 방방곡곡 발로 뛰어 영혼을 담은 것이지요

앓고 닳아도 더 크고 깊던 쉼 없는 열정

몽고의 전란으로 방황하고 있는 우리 민족의 지친 자긍심을 위로하려는

애정 어린 발길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소리 아름다운 용천사 안내문이 하고픈 말이 있어 크게 외치고 있습니다

일연선사께서 비슬산에 마지막 머문 곳이 용천사였다. 삼국유사 원고를 이곳 용천사에서 탈고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277년 청도 운문사 주지로 옮겨 그곳에서 삼국유사가 편찬되었기 때문이다

용천사는 69, 운문사는 72

삶을 반추할 고희를 전후하여

마지막 주석처로 생각하고

한평생 간절한 인연으로 소망하던 원고에

마지막 붓을 드는 모습이 보입니다

드디어

삼국유사는 선사님의 지극한 정성으로

고고한 함성을 울리며

잉태된 태를 청도 땅에 묻게 된 것 같습니다 

이를 알리듯

신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이서국 말발굽 소리가 한 줄기 바람의 얼굴을 만들고 

화랑정신을 일깨워준 원광법사의 엄숙한 목소리는

시공을 넘어 죽비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선사께서 쓴 발자국의 언어가

이어서 이어서 가슴의 문을 두드리는 시간

땀의 향기를 마중합니다

감사합니다                  

 

 

 

* 일연선사는 1206년(고려 희종2년)에 출생했다. 선사는 22세(1227, 고종14년)부터 43세까지 21년, 그 뒤 58세부터 70세까지 12년, 도합 33년을 비슬산에서 활동했다. 선사는 승려로 보낸 기간이 71년인데 구도의 발걸음 가운데 절반을 여기에다 남긴 셈이다. 선사께서 생애의 역작으로 남긴 삼국유사가 어디에서 집필되고 편찬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용천사는 69세, 운문사는 72세에 주석했으니 시기적으로 보아 이때를 마지막 주석처로 생각하고 삼국유사의 자료들을 집대성하여 집필하고 편찬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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