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이 탄 당산나무
행전 박영환
속이 반도 더 타버린 나무이기에
속이 속이 아니지만
오히려 소신공양을 하듯, 타면서 채운 힘으로 나이테 겹겹이 감으며
더 큰 속으로 마을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마을 사람들도 어찌 속이 탈 일이 없을까
마을의 수호신인 수 백 년 된 나무도 촛불 하나 이기지 못했는데
사람들 속이야 성냥개비 하나에도 쉽게 타지 않겠는가
태우기도 하고
타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삶
탄 것과 타지 않는 경계는 어디이며
사람들의 속은 얼마나 남았을까
속이 속이 아닌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속을 알린다
가슴을 활짝 열고 들어주는 것이 고마워
합장한 손이 자꾸 길어진다.
*시작노트
이 나무는 경북 청도군 이서면 수야4리의 당산나무(느티나무)입니다. 마을 사람 중 누군가 기도를 드린다고 나무 밑에 촛불을 켜놓았다가 이렇게 불이 붙었다고 합니다. 불이 난 뒤에 금방 죽을 것 같아 걱정을 했지만 100년도 훨씬 넘게 오히려 가지를 더 무성하게 하여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