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편소설 |
노루
행전 박영환
내가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6중대 2소대장으로 부임했을 때 우리 중대원들이 중대장 이문수 대위를 ‘루노’라고 불렀다. ‘루노’라니. 좀 특이한 별명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말은 아닌 것 같고, 영어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많이 궁금했는데 얼마 뒤 우리 소대 선임하사인 김 중사로부터 중대장의 별명에 얽힌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중대장님의 별명인 ‘루노’는 얼른 들으면 무슨 뜻인지 잘 몰라 약간 헷갈리지만 알고 보면 간단한 것입니다. ‘노루’를 말하는 것입니다. 직접 ‘노루’라고 하기가 뭐했든지 살짝 뒤집어 ‘루노’라고 한 것입니다. 결국 ‘노루’입니다.”
“노루라고요?”
‘노루’란 소리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의 어릴 때 별명이 ‘맹꽁이’인데 그 ‘맹꽁이’도 결국 ‘노루’ 때문에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갑자기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놀라자 김 중사도 덩달아 놀라며
“소대장님!”
하면서 나의 눈치를 살폈다. 중대장과 소대장이 공교롭게도 ‘노루’ 때문에 같이 별명을 얻다니. 참 기이한 인연도 다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김 중사에게 그런 것을 밝힐 계제가 아니었다. 나는 얼른 표정을 고쳐 잡고
“아, 아닙니다. 중대장님께 ‘노루’란 별명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둘러대다가 정말로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노루’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며 중대장님이 노루랑 닮은 점이 있냐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자 김 중사도 안심을 한 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하하하.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중대장님이 노루를 닮은 점은 없지요.”
“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닮은 것이 아니고, 중대장님께서 노루에게 너무 겁을 먹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너무 겁을 먹다니요?”
“직업 군인들 중에 의외로 노루를 금기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우리 중대장님은 그 중에서도 그 정도가 매우 심한 편입니다.”
“노루를 터부시하는군요.”
“그렇습니다. 노루는 영물이기 때문에 잡거나 해치면 꼭 보복을 당한다고 생각하십니다.”
“영물이라고요?”
“앞으로 겪어보시면 알겠지만 노루라면 정말 벌벌 떠시는 분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노루 근처에만 가도 화를 입는다고 생각할 정도이지요.”
“정말 의외군요. 중대장님은 만능 스포츠맨답게 단단한 체격을 가지신 분이 아닙니까? 거기에다가 부리부리한 눈망울에 매부리코, 웃음도 얼마나 호쾌하게 웃으십니까?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너무 달라 매치가 잘 되지 않는군요.”
“그러실 겁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중대장님께서 소위 시절 소대장을 하실 때 몇 건의 사고가 있었는데 그것이 공교롭게도 노루를 잡은 이후에 일어난 일이라 그렇게 겁을 먹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때 마침 중대본부에서 중대장이 김 중사를 찾는다는 연락이 와서 그쯤에서 이야기가 중단되었다. 김 중사는 급히 나가며 목소리를 죽여
“루노님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하면서 눈을 찡긋했다. 그런데 그 ‘루노’란 말이 갑자기 ‘맹꽁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김 중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지만 자꾸만 ‘루노’와 ‘맹꽁이’가 뒤섞여 머리를 휘젓는 통에 참느라고 애를 먹었다. 급히 창문을 한껏 열고 찬바람을 들이마셨으나 조금도 시원하지 않았다.
어릴 때, 고향마을에 노루 사냥꾼들이 찾아왔다. 그들이 올 때마다 또래 중 대장격인 길수가 사냥꾼들의 부탁을 받고 ‘몰이꾼’을 모집했다. 그 때마다 마을의 다른 아이들은 신바람이 나서 몽둥이를 들고 ‘몰이꾼’으로 나섰지만 나는 왠지 포수들이 뿜어내는 화약 냄새도 거슬리고 또 도망가는 노루를 되몰아 주어 단말마를 터뜨리며 죽게 하는 것이 너무 싫어 매번 아프다는 둥 핑계를 만들어 나가지 않았다. 길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계속 나를 찾아와 졸라댔지만 결국 늘 헛수고만 하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작은 마을이기에 아이들이 전부 참여해도 ‘몰이꾼’이 부족한 터인데 내가 자꾸만 피하니 길수는 몹시 마뜩잖아 하다가 마침내 ‘맹꽁이’라고 별명을 지어 비아냥거리며 타박했다. 맹추 같이 흐리멍덩하다는 뜻인 것이다. 그는 그것도 부족하여 나를 끌어내지 못한 분한 마음에 씩씩거리며 나의 이름 ‘동국’이도 된소리를 잔뜩 넣어 ‘똥국’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노루 몰이’에 참여하지 않고 방 안에만 박혀 있는 나의 모습이 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심약한 나의 모습이 ‘맹꽁이’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한 번은 눈 딱 감고 ‘몰이꾼’으로 나선 적도 있었지만 ‘노루’ 한 마리가 총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보는 순간 더 견디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도망을 치고 말았다.
그렇게 도망을 한 이후 다시는 몰이꾼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런 나를 아이들은 다른 놀이에도 잘 끼워주지 않았고 학교나 동리에서 만날 때마다 ‘똥국이’, ‘맹꽁이’라고 비아냥거렸다. 친구가 없어 외롭기도 하고 또 별명도 너무 싫었지만 그래도 몰이는 도저히 나서기 싫었다.
나는 부대 내에서 ‘루노’라는 별명이 들리는 것이 싫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고개를 저어도 ‘루노’라고 부르는 것이 ‘맹꽁이’로 들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노’라고 부르는 병사들을 발견하면 크게 꾸중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가혹할 정도로 몇 대 쥐어박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녀석이 ‘루노’라고 하면서 킥킥대다가 나에게 걸려 된통 꾸중을 들었는데 이 녀석 입이 잔뜩 부어 물러나며 혼잣소리로
“작은 ‘루노’라도 되는감?”
하고 구시렁거렸다.
“뭐야.”
나는 갑자기 비밀이 탄로라도 난 듯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물러나던 녀석을 다시 불렀다.
“뭐라고?”
“…….”
“엎드려뻗쳐.”
나는 떨고 있는 녀석의 엉덩이에 총을 거꾸로 잡고 개머리판으로 사정없이 치기 시작했다. 그 때 김 중사가 말리지 않았으면 자칫 큰 사고라도 낼 뻔했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제하려고 노력을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병사들뿐만 아니고 동료 소대장들 중에도 공연히 ‘루노’라고 하면서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배를 움켜잡고 키득키득하거나 쿡쿡대는 이가 있었다. 특히 1소대장 임 소위가 심했다. 그는 중대장 면전에서는 ‘중대장님, 중대장님’ 하면서 입에 녹듯이 알랑방귀를 뀌지만 중대장이 보이지 않을 때는 표정과 어투를 완전히 바꾸어 ‘루노’라고 했다. 그것도 기분이 약간 좋을 때는 ‘거시기 루노’라고 하고 중대장에게 핀잔 등을 받아 마음이 상하기라도 한 날은 ‘× 같은 루노’라고 하면서 완전히 성토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대한민국 육군 대위 꼴좋다. 차라리 노루 발바닥에 대위 계급장을 달아주지….”
하는 등 바락바락 험담을 늘어놓았다. 소대장들끼리 가끔 부대 근처에서 술을 마시는 일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그는 꼭 ‘루노’를 도마 위에 올려 안주로 삼았다. 어느 날도 그와 술을 같이 마시게 되었는데 술이 몇 순배 돌자 그는 예의 ‘루노’를 들먹이며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날 진지 구축 관계 때문에 지적을 단단히 받았던 앙금이 남아 있었던지 처음부터 목소리를 높여 ‘×을 빼서 개에게 줄 루노’라는 말로 시작했다. 나는 몇 번이나 속에 있는 것이 치밀어 올라왔으나 많이 참으며
“자, 술이나 한 잔 받지.”
하면서 말머리를 돌리려고 해도 그는 계속 욕설로 일관했다. 그러더니 끝내
“노루 따위의 속설에 빠져있는 장교는 군복을 빨리 벗어야지.”
하는 극단적인 말까지 서슴없이 했다.
나는 더 이상 도저히 더 참지 못하고 기어이 한 마디 하고 말았다.
“임 소위 너무 심하군. 중대장도 그만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잖아. 그런데 매번 ×을 빼서 개에게 줘야 한다고. 또 군복을 벗어야 한다고. 소대장이란 사람이 모시는 직속상관을 그렇게 말할 수 있어?”
내가 정면으로 반박하자 꼬리가 처진 그의 눈이 빳빳하게 굳어졌다. 막 입가에 가던 소주잔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놓으며 탁자를 꽝 쳤다. 그 통에 유리잔은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고 안주로 나온 냄비의 생선찌개 국물이 튀어 올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는 작업모를 벗어 오른 손에 움켜쥐고 손을 허리에 올린 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면서 말했다.
“어이. 김 소위 아부하는 건가?”
“아부라니? 말조심해.”
나도 지지 않고 같이 작업모를 말아 쥐고 쏘아붙였다. 몇 마디씩 더 험상궂은 말이 오갔다. 그러다가 나는 더 상종하기가 싫어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막 문을 밀치는 순간 그 때 쌜쭉하던 그의 입에서 느닷없이
“맹꽁이 같은 녀석.”
하는 말이 터졌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머리 정수리에 바늘이 찔린 듯 비명을 지를 뻔했다. 다리가 뻣뻣하게 굳어져 한 걸음도 더 옮길 수 없었다. ‘맹꽁이’라고.
그가 나의 어릴 때 별명을 알 리 없다. 그런데도 ‘맹꽁이’란 말이 스스럼없이 나왔다면 지금도 나는 그 ‘맹꽁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가슴이 쿵쾅거리고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정말 꽁꽁 숨어버리기를 바랐던 ‘맹꽁이’가 군대에 와서 이렇게 나타날 줄은 몰랐다. 초등학교 이후는 나름대로 깊이 감추고 있었기에 잘 나타나지 않았는데 중대장 때문에 기어이 나타나고 말았다. 이제 한 번 머리를 내민 이상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머리를 치켜들 것 같은 예감에 진저리를 치며 두더지 게임기처럼 고개를 내밀 때마다 삐쳐 나오는 놈의 머리통을 망치로 사정없이 내리쳐 몰아넣었다.
하필 ‘루노’가 된 중대장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중대장과 나는 다른 점이 많은데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대장은 뭇짐승들 중에 유독 노루만 영물이라고 두려워하며 죽이지 않으려 하는 것이고 나는 어떤 동물이라도 죽이는 것을 싫어하는데 상황이 노루와 연관되어 겁쟁이로 내몰린 경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중대장은 그야말로 병적인 반면 나는 조금 심약할 뿐인 것이다. 이렇게 다른 데도 내 마음이 영 편치 못한 것은 무슨 심사인지 모를 일이었다. 거기에다 더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중대장과 내가 이상하게 ‘노루’ 때문에 엮이는 일들이 계속 생기는 것이었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연대 탄약고 경비소대장을 맡은 것도 ‘노루’와 관련이 된 것이다. 원래 이 탄약고 경비는 7중대가 맡았으나 주변의 지뢰지대 보완 작업 중 소대장의 다리가 절단되어 후송되는 큰 사건이 있은 후, 연대장이 7중대장을 크게 질책하며 그 임무를 우리 6중대장에게 맡긴 것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곳이 노루가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니 중대장은 연대장의 명을 받고 난 뒤 어느 소대장이 탄약고 경비소대장으로 적합한지 꽤나 고심을 했을 것이지만 그 첫째 조건은 뭐니 뭐니 해도 노루를 잡지 않을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침 내가 병사들이 ‘루노’라고 하면 혼을 내고 임 소위와 크게 다툰 일까지 있었으니 나의 속마음을 모르는 중대장은 나를 당신의 단단한 우군으로 생각했을 것이며 내가 그곳에 가면 적어도 노루만은 잡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다.
내가 탄약고로 떠나기 전 날 저녁 중대장은 다른 소대장과 함께 저녁이라도 같이 하자고 했다. 식사를 겸해 술잔도 몇 순배 돌렸으며 남아 있는 소대장들이 혼자 떨어져 고생을 하겠다고 위로했다. 회식이 끝날 무렵 나는
“이렇게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는데 중대장이
“김 소위, 나와 잠시 더 이야기 하지.”
하면서 나를 붙들었다. 그러자 다른 소대장들이 자리를 피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만 남게 되자 그는 담배 한 대를 권하며 자신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술도 새로 시켰다. 식당 아주머니가 소주병을 들고 오자 이왕이면 찌개 국물도 새로 좀 덥혀주면 좋겠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아무튼 이야기가 좀 길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의 술잔을 채웠다.
“자자, 일단 한 잔 더 마시자고.”
“네.”
하면서 잔을 들어 중대장과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원 샷.”
하고 외치기가 바쁘게 그는 술잔을 잽싸게 꺾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 하고 나니 취기가 돌았는데 그 때 중대장이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 나에게 손을 불쑥 내밀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엉거주춤 일어나며 중대장의 손을 잡았는데 그의 손이 좀 차갑다고 느꼈다. 그는 나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김동국 소위, 이번에 정말 어려운 일을 맡게 되었소. 아마 이제 이 일이 우리 6 중대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소.”
그러면서 그는 계속 손을 놓지 않고 ‘에-.’, ‘에-’ 하면서 말을 끌기도 하고 헛기침을 몇 번 컹컹 했다. 그 순간 무슨 긴한 부탁을 하려고 이럴까 궁금해 하면서 혹시 ‘노루’ 하는 생각이 스쳐갔는데 역시 그 예감이 맞았다. 그는 손을 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나도 따라 자리에 앉자 말을 이어갔다.
“김 소위, 에-. 그곳이 노루가 많은 지역이라 걱정이 됩니다. 몇 번 강조하는 것이지만 한 번 더 부탁하오. 노루는 절대로 잡지 마시오.”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노루는 잡지 않겠습니다.”
나는 중대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큰 소리로 약속했다. 그 정도이면 ‘노루’ 이야기는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고맙소. 그런데, 에, 안산에 있는 연대 탄약고는….”
하면서 탄약고 주변의 지뢰 지대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그 이야기라면 나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었다. 그러나 중대장의 말을 끊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꾹 참고 다시 한 번 더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에, 안산에 있는 연대 탄약고는 우리 연대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요. 비상시 우리 연대가 공급 받아야 할 탄약이 그곳에 몽땅 보관되어 있소. 탄약고에 도착하여 7중대로부터 임무를 인수받는 동안 자연 알겠지만, 그곳에 보관되어 있는 탄약의 수량은 김 소위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이오. 만일 탄약고가 적의 수중에 들어가거나 폭파라도 당하는 날에는 우리 연대의 화기들은 탄약을 공급받지 못해 일시에 아무 소용없는 막대기나 쇠뭉치로 전락하게 되는 거요. 그래서 연대장님께서 연대 내의 그 어느 곳보다 신경을 가장 많이 쓰는 곳이오. 김 소위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지 않소?”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중요성에 비해 탄약고 주변 지뢰지대가 매우 허술하단 말이오. 지뢰의 유무가 애매하여 통 구별을 할 수 없는 곳이오. 아마 6․25 전쟁 와중에 급하게 지뢰를 설치한 것 같은데, 경황이 없어 그런지는 모르지만, 너무 들쭉날쭉 심어져 있다고 하오. 어떤 곳은 지뢰를 심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부어놓았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수북이 쌓여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아예 하나도 없이 텅텅 비어 있어 적들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침투할 수 있는 곳이 있단 말이오. 이렇게 부실하니 상부에서 매우 걱정하고 있소. 그래서 연대장님께서 전번에 7중대에 보완 작업을 지시하셨는데 그만 큰 사고가 나고 말았지 뭡니까?”
“…….”
“소대장은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하지만 평생 한 다리로 살아야 하고 중대장도 징계를 받았으니 진급은 이제 힘들게 되었소. 헛고생만 한 셈이오.”
중대장은 다시 술을 권하며 혀가 약간 꼬부라진 상태로 말을 이어갔다.
“그건 그렇고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고 바로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단 말이오.”
그렇게 경고를 하다가 괜히 사고를 떠올린 것이 마음에 켕기는지
“내가 좀 심한 말을 하고 있나요?”
하고 되물었다.
“아, 아닙니다. 조심하겠습니다.”
“아무튼 그 예기치 못한 불상사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작업을 중단하기는 했지만 아마 조금 진정이 되고 나면 곧 작업을 다시 시작할 것 같소. 며칠 전, 연대 지휘관 회의에서도 연대장님께서 최근의 적정이 심상찮다고 하시며 어려움이 있더라도 탄약고 주변 지뢰지대는 꼭 보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
하면서 다시 담배 한 대를 붙여 물면서
“그러니-.”
하고 재차 뜸을 들였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은 이미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지뢰지대 보완 임무를 맡게 될 것이 확실하니 절대로 화근이 될 노루를 잡지 말라는 것일 것이다.
중대장은 마른 입술을 축이려고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혓바닥으로 훑었다. 그리고는 과연 내가 예견한 대로 본론을 끄집어내었다.
“김 소위에게 지뢰지대 보완 작업 지시가 떨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소. 그러니 김 소위… 에… 노루만은… 절대로 잡지 마시오.”
중대장은 전방 부대에서 일어난 사고는 노루와 절대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7중대 사고가 난 뒤에도 중대장은 틀림없이 그들이 노루를 잡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설마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중대장의 말이 맞았다. 바로 직전은 아니지만 그 얼마 전에 중대장과 소대장이 노루사냥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때 우리 중대장은 주변 사람들이 들으란 듯이 7중대의 중대장과 소대장이 괜히 지각없는 짓거리를 하여 인생을 망쳤다고 크게 탄식했다.
“김 소위, 노루는 안 됩니다. 알겠죠?”
한 번 더 다졌다. 어쩌면 이는 중대장이 소대장에게 명령을 하는 것이 아니고 숫제 애원에 가까웠다.
그의 논리대로 하면 노루만 잡지 않으면 만사형통이다. 노루만 잡지 않으면 지뢰지대 보완 작업을 해도 사고가 없다. 노루만 잡지 않으면 부대 내의 어떤 사고도 나지 않는다. 노루만 잡지 않으면 적은 절대로 침입하지 않는다.
산야에는 수많은 짐승들이 있다. 노루도 그 중에 하나일 뿐인데 어찌 노루만 ‘노루 귀신’이 되어 자신을 죽인 자에게 철저히 앙갚음하여 앙화가 되게 할까! 아무리 중대장을 이해하려 해도 그 점만은 정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니라고 할 형편이 아니었다. 아무리 아니라고 설득을 한다 해도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중대장의 철저한 선입견이 바뀔 리 없고, 괜히 그에게 깊은 불안감만 만들게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절대로 노루는 잡지 않겠습니다.”
나는 철저히 그의 우군임을 약속했다.
“고맙소. 고맙소. 내가 역시 사람을 바로 본 것 같소.”
하면서 중대장은 다시 식당 아주머니를 불렀다.
“우리 예쁜 누님, 우리 김동국 소위를 위해서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맛있는 술 한 잔 권해 봐요.”
하고 농담을 했다.
“예쁘지는 않지만 술은 한 잔 올릴게요.”
하면서 중대장과 나의 잔을 채워주자 그는 껄껄껄 웃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그 자신이 노루를 경계하는 모습이 마음에 조금은 걸리는지 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김 소위, 내가 노루에 대해서 이상하게 떨고 있으니 우습죠. 겁 많은 중대장의 신경과민이라고….”
“아닙니다.”
하고 나는 극구 부인하는 체 했다.
“아니라고 해도 알고 있소. 그렇게 생각할 것이오. 온 부대 사람들이 ‘루노’라고 하고 있지 않소.”
“…….”
“그런데 고맙소. 내 다 듣고 있소. ‘루노’라고 하는 병사들 혼을 내는 것과, 임 소위와 다툰 것, 나쁜 놈들이지. 그 놈들 노루가 어떤 것인지,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있단 말이오. 아무튼 고맙소.”
하면서 다시 악수를 청하며 말을 이어갔다.
“나 역시 노루에게 당하기 전에는 간혹 주변에서 그런 말을 하면 괜히 미신에 빠져 있는 겁쟁이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당하기 전 이야기고 직접 겪게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오.”
“중대장님께서 당한 일이 있다고 듣기는 했습니다만은….”
사실 간접적으로 대충 듣고는 있었지만 자세히는 모르기에 본인에게 직접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한번 들어보시겠소.”
“궁금합니다.”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었어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모질게 당했으니….”
“그랬군요.”
중대장은 군홧발을 심하게 들썩거리며 다리를 떨더니 앞에 놓인 잔에 내가 따를 틈도 없이 자작하여 거푸 마셨다. 그리고 잠깐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다가
“정말, 떠올리기도 싫은 이야기지만 김 소위에게는 내 사정을 한 번 털어놓아야 될 것 같소.”
하면서 노루에게 당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이문수 소위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대장으로 첫 발령을 받았던 철원군 성촌 일대는 노루가 많았다. 그는 갑자기 특등 사수의 실력을 한번 발휘하고 싶었다. 어느 날 그는 전령 조 일병에게 말했다.
“조 일병, 우리 노루 사냥 한 번 하자.”
이 말을 곁에서 들은 선임하사 서 중사가 깜짝 놀라며 급하게 끼어들어 만류했다.
“소대장님 노루는 잡지 않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놈 손대서 덕 볼 것 하나도 없습니다.”
“하하하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 소위는 한바탕 웃음부터 크게 웃었다.
“아니, 선임 하사도 그런 걸 믿소?”
“꼭 믿는다고 하기보다는 그저 좋은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히죽 웃었다.
“그것 모두 부질없는 속설이며 마음 약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걱정입니다. 그러니 나와 같이 오늘 뒷산에 올라가서 보란 듯이 노루 사냥 한 번 합시다.”
같이 가자는 말에 서 중사는 몸을 뒤로 한껏 빼며 손사래를 쳤다.
“어이쿠, 저는 가지 않겠습니다.”
군대생활을 꽤 오래한 선임하사가 너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아 성에 차지는 않았지만 싫다는 사람을 어쩔 수 없었다.
“그럼 휑하니 갔다 올 테니 노루를 맛있게 드실 준비나 하고 기다리세요.”
이 소위는 탄알이 가득 들은 탄창을 손으로 힘차게 탁탁 쳐서 끼운 후 어깨에 총을 걸치고 노루 사냥에 나섰다. 성촌 뒷산에 올라가자 어렵잖게 노루를 발견했다. 망개나무 열매를 따먹다가 인기척에 놀란 노루 한 마리가 가시덤불을 헤치며 후닥닥 몸을 피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루가 재빨리 몸을 피해도 이 소위의 숙달된 사격 솜씨를 당해내지 못했다. 탕탕탕. 노루는 이내 큰 소나무에 기대어 힘없이 픽 쓰러졌다. 때 아닌 총소리에 까마귀 한 마리가 질겁하며 하늘 높이 날았다.
노루 다리를 장대에 묶어 조 일병을 비롯한 병사들이 시시닥거리며 메고 내려왔다. 취사 당번이 불을 지피자 이내 구수한 김이 모락모락 났으며 병사들은 허연 이빨을 내어놓고 반합에 한 그릇씩 받아 빙 둘러 앉아 먹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다투어 소대장의 사격솜씨를 추켜올렸다. 싫지 않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날 밤, 예기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야음을 틈타 쇠고리 철조망에 적이 침투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하여 크레모아를 터뜨려 적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만일 적에 의해 철조망이라도 뚫렸더라면 엄청난 사고가 벌어질 뻔했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노루 그놈이 기어이 탈을 내기는 내어도 그래도 불행 중 다행입니다.”
아침 갓밝이에 소대원들과 함께 지난 밤, 교전으로 인한 잔해들을 치우던 서 중사가 말했다.
“와 노루가 입에서 막 올라오려고 하네요.”
신 병장이 토할 흉내로 ‘우액’하자 평소 수더분하게 별 말이 없던 원 상병도 한 마디 했다.
“노루 그것요, 정말 시쁘게 보면 안 됩니더.”
주고받는 말들을 듣고 있던 병사들은 나름대로 한 마디씩 하기도 하고 비록 말이 없는 사람이라도 동감을 하는 뜻에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의 주고받는 말들이 모두 이 소위 자신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 같아 뒤통수가 몹시 간지러웠다. 정말 노루 때문일까? 이 소위도 그런 생각이 언뜻 지나갔지만 아무래도 동의하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얼마 뒤, 또 한 번 노루에게 총질을 할 일이 생겼다. 그때는 일부러 총을 쏜 것이 아니다. 초소 순찰을 하고 있는데 노루 한 마리가 제 발로 걸어 들어온 것이었다.
“야, 이놈. 네가 있을 자리가 아냐. 어서 사라져….”
서 중사가 돌멩이를 들고 노루를 내쫓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노루란 놈이 꽈리단추 같은 눈망울을 껌벅이며 영 도망을 가지 않았다.
“저게, 이제는 쏘지 않을 줄 알고 있는 모양이지.”
서 중사가 이 소위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며 다른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 소위는 갑자기 배알이 틀어졌다.
“그만둬요, 쏴 버릴 테니….”
탕탕탕. 그는 노루에 대한 찜찜한 생각을 지워버리기 위해서라도 더 한층 힘껏 방아쇠를 당겼다. 이내 노루는 가슴팍에 탄흔을 남기고 붉은 피를 쏟으며 힘없이 고꾸라졌다. 숲 속에서 씽씽매미가 요란하게 울었다. 그런데 며칠 뒤, 또 다시 심상찮은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 쪽 비무장지대 안에 일명 고구마 고지가 있었다. 그곳에 밤이 되면 적들이 숨어들어와 잠복을 했다. 우리 쪽 병사들의 동태도 살피고 침투를 하기 위해 기회를 살폈다. 이 소위가 중대장께 보고를 했고 이는 지휘계통에 따라 사단 사령부까지 보고되었다. 이 보고를 받은 사단 사령부는 즉시 병력을 출동하여 적들을 몰아내고 고지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새벽 4시, 이문수 소위는 정예병 10명을 데리고 나섰다. 일명 ‘고구마 작전’이었다. 마침내 백병전이 벌어졌다. 그 작전에서 고지는 우리 쪽이 되찾았다. 그러나 아군의 피해도 만만찮았다. 민 상병은 크게 다치고 최 하사는 적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 이문수 소위는 싸늘하게 식어가는 최 하사의 시신을 끌어안았다. 이 때 한 줄기 바람을 일으키며 휙 지나가는 이상한 물체가 있었다. 노루였다. 며칠 전, 이 소위에게 총을 맞았던 그 노루였다. 노루의 가슴팍에는 아직도 총구 자국이 완연했고 붉은 피가 낭자하게 흘렀다. 이럴 수가…. 아냐, …아니고말고. 이렇게 생각하며 눈을 닦았다. 그러나 노루는 헤벌쭉 입을 벌리고 희멀건 냉소를 계속 보냈다. 어깨에 메고 있던 소총을 내려 다시 조준을 했다. 탕탕탕. 탄창을 갈아 끼우며 무차별 사격을 해도 총소리만 요란할 뿐 노루는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않았다. 그 날 이후, 잠만 들면 노루는 그의 잠자리를 마구 헤집고 다녔다. 그 때마다 씽씽매미가 귀청이 멍하도록 요란스럽게 울어댔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그로부터 이문수 소위는 노루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우연이겠지만 환상으로 나타나고 꿈까지 꿨으니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내가 위로하자
“김 소위는 그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나요?”
하면서 중대장이 정색을 했다.
“아니, 그런 것은 아니고….”
나는 급히 말머리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김 소위, 세상 사람들이 전부 우연이라고 해도 나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는 취해 있었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정말 ‘노루’에 대한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때도 중대장은 ‘노루’하면서 손을 번쩍 들었고 나는 ‘절대로 잡지 않겠습니다.’하면서 거수경례를 했다.
이튿날 연대 탄약고가 있는 안산 지역에 도착했다. 탄약고는 중대본부와 16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독립부대이다. 이곳은 원래 ‘안산리’란 마을이 있었지만 전쟁 이후 민간인 통제선인 ‘민통선’ 안이라 민간인들이 살 수 없는 곳이기에 마을의 흔적만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말하자면 군사지도상에 명칭만 남아 있는 마을이 된 것이었다. 탄약고의 위치는 마을의 복판쯤 되는 것 같았다.
도착한 즉시 7중대로부터 인계를 받았다. 중대장의 말처럼 엄청난 양의 탄약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우선 경비 초소부터 점검을 했다. 초소들은 강가와 산기슭 등 적이 침투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곳곳에 손을 볼 곳이 많았지만 당장 경계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급한 것부터 손질하여 병사들을 투입했다.
“1분대는 강가 제1초소를, 2분대는 산기슭 제2초소를, 3분대는 구릉의 제3초소를 맡는다. 그리고 화기분대는 본부를 지킨다. 적이 예고하고 침투하는 일은 없다. 경계 중 절대로 방심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알겠나?”
“예.”
함성이 우렁찼다.
이어서 ‘각자 위치로’ 하고 명령을 내리려는 순간, 갑자기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동국 소위, 소대원들에게 강조할 말이 있잖아.
‘그렇구나. 그것을 잊을 뻔 했다.’ 잔기침을 몇 번 한 뒤 입을 열었다.
“강조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이곳은 민간인 통제구역이라 야생 짐승들이 수 없이 많다. 그 짐승들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잡을 기회가 있다. 그러나 함부로 짐승을 잡는 것은 좋지 못한 것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동안 내 허락 없이 어떤 짐승도 잡을 수 없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노루…. 노루는 절대로 안 된다. 알겠나?”
“예!”
“복창을 한다. 노루는 절대로 잡지 않는다.”
“노루는 절대로 잡지 않는다.”
병사들이 크게 복창을 했다. 나도 별수 없이 이문수 중대의 소대장답게 몇 번 복창을 받아내고 난 뒤에야 안심을 하고 또 노루만 잡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까지 하게 되었다.
소문대로 역시 이곳은 짐승들이 많았다. 노루도 심심찮게 풀숲에서 뛰어나와 맹랑하게 눈망울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껑충껑충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소대원들은 내가 워낙 강조한 터라 다른 짐승도 그렇지만 특히 노루에 대해서는 천연기념물처럼 보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뒤 노루가 아닌 전혀 엉뚱한 ‘너구리’란 놈 때문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사실 이곳은 옛날부터 유명한 너구리 서식지이기도 했다. 노루나 다른 짐승도 많지만 너구리는 그 보다 훨씬 더 많았다. 너구리는 애완용 발발이 만하며 무리를 지어 뾰족한 주둥이로 땅을 신나게 뒤지다가 인기척이 나면 잽싸게 몸을 숨겼다. 특유의 몸내음인 노린내 때문에 식용으로는 별로 인기가 없다. 하지만 복슬복슬한 털은 다르다. 잘 가공하여 목도리를 만들면 상당한 고가품이 되기 때문에 이곳의 너구리를 탐내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군 당국에서는 꼭 한 사람에게만 허용하고 있었다.
‘강 상사’라고 불리는 분이 바로 그 허가를 받은 사람이었다. 강원종이란 본명이 있었지만 본명을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통상 ‘강 상사’로 통했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인데 이곳에서 30년 이상 ‘너구리 잡이’를 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 분이 민간인 신분으로 민통선 안에도 들어오고 주요 군사 지역인 연대 탄약고 근처에서 너구리를 잡을 수 있는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전쟁이 나기 전만 해도 이곳 안산마을 역시 그 어느 마을 못지않게 평화롭던 곳이었다. 금강산 행 전기철도와 경의선 철로가 교차되는 곳이기도 하려니와 잘 뚫린 육로도 있어 교통이 아주 좋았다. 이 마을에 진양 강씨 50여 호가 집성촌을 이루고 혈연의 정을 나누며 오순도순 살고 있었는데, 강 상사 아니 강원종 씨가 바로 이 문중의 16대 종손이었다.
강 씨 문중 사람들은 대대로 벼슬을 하던 훌륭한 조상의 음덕으로 마을이 아무 탈 없이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종손을 중심으로 사당에 모여 조상께 감사하는 시제를 올리며 조상의 음덕이 오래오래 계속되기를 빌었다. 그러나 6․25 전쟁은 그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어느 날 갑자기 포탄의 굉음이 요란하더니 마을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마을 앞을 흐르던 너른 들의 젖줄이던 한탄강도 핏물로 가득했다.
이곳에서 있었던 그 치열한 전쟁을 사람들은 ‘평강, 금화, 철원’, 삼각지대에서 치른 전쟁이라고 ‘철의 삼각지 전투’라고 했다. 이 몹쓸 전쟁은 강의 어원도 바꿀 지경에 이르게 했다. 원래 한탄강은 은하수처럼 맑고 깊다고 ‘한여울’이라고 했고 한자로는 ‘漢灘江’이라고 표기했다. 그러나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강은 ‘漢灘江’으로 흐르지 못하고 동족상잔 비극의 중심에서 ‘恨歎江’의 더께를 쓰고 신음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철로 위의 기차는 월정리역에서 멈추고 도로도 동강이 났다. 아직도 그 기차는 그대로 멈추어 있고 도로는 겨우 임시로 기웠지만 그 길에는 동리 사람들을 태운 차량 대신에 군용차들이 군인이나 포탄을 싣고 먼지를 날릴 뿐이다.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할 처참한 상황을 맞아 마을 사람들은 피울음을 토하며 마을을 떠나야 했다. 전쟁이 나자 강원종씨도 부산으로 몸을 피했다가 휴전이 될 무렵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참으로 공교롭게도 고향 마을에 주둔한 부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는 지금도 이 일이 조상님의 뜻으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아무튼 그가 군대생활을 할 때 강 씨 문중의 사당 자리에 탄약고가 들어서게 되었다. 이를 알게 된 그는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한낱 병사의 신분으로 자신의 가문 사정을 들어 군의 계획을 바꿀 도리가 없었다.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던 그는 나름대로 조상을 모실 방안을 생각해냈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조상의 신주가 이곳을 떠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탄약고를 짓기 위해 평탄 작업이 거의 완성되어 갈 무렵 남몰래 바닥을 깊이 파고 조상들의 위패를 정성스럽게 묻었다. 조상을 그렇게 밖에 모실 수 없는 사정이 너무나 괴로웠다. 그러나 그나마 조상님께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은 것만이라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는 사당을 중수하는 기분으로 탄약고를 짓는데 혼신을 다해 노력했다.
“선대 할아버지, 할머니 죄송합니다. 시대가 변고를 만나 자손들이 모시지 못하고 군인들이 대신 지키게 되었습니다. 후손들이 모시러 오는 날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는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데 그가 제대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어느 날, 탄약고가 적의 기습을 받았다. 밀고 밀리는 공방이었다. 자칫하면 탄약고가 폭파될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는 조상의 사당을 지키는 심정으로 목숨 걸고 사수했다. 그의 활약에 힘입어 탄약고는 온전했지만 그 일로 그는 왼쪽 다리를 잃었다. 그는 전공을 인정받아 훈장과 함께 1계급 특진하여 하사로 제대했다. 하사로 제대한 그가 강 상사로 불리게 된 것은 제대 이후 세월이 많이 흐른 뒤, 후배 병사들이 예우 차원에서 그렇게 불러준 것이었다.
강원종 씨가 제대를 하던 날 부대장은 그를 위로하는 조촐한 회식 자리를 마련했는데 그 때 그는 부대장께 자신이 이곳 강 씨 문중의 16대 종손으로서 조상님들의 산소도 돌보고 또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문중 사람들을 위해 마을 복구 기금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제대를 한 뒤에도 이곳에 출입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이 말을 들은 부대장은 조상의 산소를 돌본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지 몰라도 전쟁으로 황폐할 대로 황폐해 농사도 지을 수 없을 터인데 어떻게 기금을 마련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때 그가 안을 낸 것이 ‘너구리 잡이’였다. 그는 이곳이 옛날부터 너구리 집단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니 이를 잡아서 팔면 충분히 기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대장은 좀 황당하다고 여겼지만 워낙 그의 뜻이 확고하기도 하려니와 한편 종손으로서 책임감이 갸륵하기도 하여 ‘국가 공훈자’ 예우 차원에서 특별히 허가를 해주었던 것이다. 오로지 강 상사 혼자에게만 이 지역 ‘너구리 잡이’가 허락 된 데는 이러한 연유가 있었다.
아무튼 제대 이후 강 상사 아니 강 하사는 의족에 의지한 몸이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을에 들어왔다. 그는 고향 마을에 들어서면 사당인 탄약고에 큰 절을 올린 뒤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잡초만 무성한 터에서 겨우 몇 조각의 기와나 무너진 담벼락, 외양간의 돌구유, 우물 등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그는 항상 마음속에서나마 마을 어르신들이나 형님, 아주머니, 조카, 또래들을 늘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과의 추억들은 세월이 아무리 흘러가도 생생하게 살아났다. 아름드리 은행나무 옆에 있던 그의 집인 종가 고택에서 할아버지의 낭랑한 독경이 들려왔다. 옆집은 화지리 아주머니 댁, 뒷집은 지포리 아주머니 댁, 그 뒤에는 월정리 아주머니 댁. 월정리 아주머니는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월정리에서 시집을 왔기 때문에 택호를 ‘월정리’라고 하는데 친정 마을의 ‘달샘’ 전설을 곧잘 들려주었다.
“옛날 아주 후미진 골짜기에 다 쓰러져 가는 오막살이가 있었지. 이 집에는 이름 모를 병으로 고생하는 홀아버지를 봉양하고 있는 한 처녀가 살고 있었단다. 처녀는 자나 깨나 천지신명께 아버지의 병환이 낫게 해달라고 빌었지. 그러던 어느 보름날 밤 꿈속에 한 노인이 ‘나는 달의 화신이다. 너의 정성이 지극하여 이르노니, 집 옆의 바위에 가보면 물이 고여 있을 것이다. 달이 지기 전에 너의 손으로 천 모금을 길어 아버님께 드리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였단다. 마지막 달의 자태가 산봉우리에 가려질 때 소녀는 천 번의 물을 길어 날랐단다. 그러나 효녀는 지친 나머지 아버지의 입에 가냘픈 손가락을 물린 채 숨을 거뒀는데 그 갸륵한 정성이 부친의 생명을 구한 것이었단다.”
월정리 아주머니 이야기를 상기할 때마다 마지막 운명을 하는 순간까지도 조상님께 죄송하다며 눈을 감지 못하시던 아버님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꼭 사당을 새로 짓고 문중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여라.
-아버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천 번이 아니라 억만 번이라도 너구리를 잡아 기금을 마련하겠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지그시 깨물며 결의를 다졌다. ‘언젠가 통일이 되면 꼭 복구를 할 것이다. 종갓집인 우리 집을 새로 짓고 탄약고를 허물고 조상님을 모시는 사당을 복구할 것이다. 그리고 전쟁 통에 없어진 집안사람들의 집들도 새로 지어 모두 한곳에 다시 모여 오순도순 옛날처럼 정을 나누며 살 것이다.’
강 상사의 너구리 껍질을 벗기는 솜씨는 일품이라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그는 무릎 사이에 너구리 머리를 집어넣어 고정시키고는 예리한 칼로 정수리 부근에 열십 자 금을 정확하게 그었다. 그 금으로 살갗과 가죽에 틈이 나면 숙달된 손놀림으로 당기고 늦추어 너구리의 알몸을 드러내었다.
그는 너구리를 팔아 마련한 돈을 한 푼도 낭비하지 않고 고스란히 저축하고 있었다. 그 돈으로 마을을 복구하려는 원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낭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잘 모르는 병사들은 강 상사에 대해 돈밖에 모르는 자린고비, 수전노, 구두쇠 등 온갖 흉측한 말로 몰아붙이곤 했다. 강 상사는 병사들이 자신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예 귀를 막고 있는 듯 했다.
그가 너구리를 잡을 때마다 병사들은 군침을 삼켰다.
“강 상사님, 막걸리 안주하게 살점 한 입만 주고 가시지요.”
간청을 했다. 사실 너구리 고기는 비릿하고 메케한 냄새 때문에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워낙 먹성이 좋은 젊은이들이기도 하려니와 또 막상 전방 부대에 안주감이 될 만한 살코기가 귀한 처지이니 사정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마다 강 상사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냉정하게 고개를 돌린 채, 고기를 주섬주섬 망태에 담아 휑하니 사라져 버리곤 했다.
“화지리나 지포리 식당에 넘겨도 똥값밖에 받지 못하면서…. 시×”
저만큼 그가 멀어져 가면 병사들은 냅다 욕을 내질렀다. 아마 들리기도 했으련만 강 상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이것이 강 씨 문중 16대 종손이 벌이는 ‘기금 모으기’ 방법이었다.
“소대장님 우리도 너구리 작전 한 번 합시다.”
항상 강 상사의 자린고비 행동에 배알이 틀어져 불만을 털어놓던 정 하사가 약이 오를 대로 올라 이제는 더 참지 못하겠다는 투였다.
“너구리 작전이라니…. 무슨 상황이라도 있니?”
그의 말뜻을 알고 있지만 나는 짐짓 딴전을 피웠다.
“강 상사인지, 강 하사인지 너무 심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한 마리를 통째로 달라는 것도 아니고 꼭 한 점이라 했는데….”
“쓸데없는 소리, 분대장까지 그러면 되나. 강 상사의 심정을 몰라서 그래? 그 분의 눈에는 너구리 한 점도 모두 귀중한 마을 복구 기금이 아니던가?”
“꿈같은 소리 아닙니까? 너구리를 얼마나 잡아야 마을을 복구하겠어요. 어림이나 있는 소리입니까?”
“좀 무리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그 고집이 마음에 들지 않니?”
“고집도 마음에 드는 고집이 있나요? 아무리 그래도 여기는 우리 부대 구역 아닙니까? 사실 우리를 너무 무시한다고요.”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아냐. 우리는 그 분의 뜻을 이해하고 도와 줘야 한다.”
그 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며칠 뒤, 입도 야무지고 일도 재치 있게 잘 하는 전라도 해남 출신 송 일병이 다시 간청을 했다.
“소대장님, 심심풀이로 너구리 작전 한 번 하게 해주더랑께요.”
“심심풀이라니?”
나는 갑자기 심심풀이란 말이 마음에 걸렸다. 내가 정색을 하며 되묻자 송 일병이 머쓱하여 얼굴이 빨개졌다. 나는 중대장처럼 어떤 특별한 짐승에 대해서만 터부시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심심풀이로 다룰 만한 생명은 없다는 판단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악의 없는 그의 간청에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 같았다. 겸연쩍어 하는 그를 보니 일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송 일병, 너구리 그만 잡고 너구리표 라면이나 한 그릇 끓여 먹지.”
내가 농담을 하자 얼굴이 풀어졌다. 조금 뒤 정 하사가 기발한 생각이라도 떠오른 듯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소대장님, 강 상사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안 됩니까?”
“아니, 그게 내 마음대로 되니? 이미 상부에서 오래 전부터 허락을 한 걸.”
“이 지역에 새로 지뢰를 설치했으니 들어오면 안 된다고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엉뚱한 소리 하지 마.”
송 일병이 금방 무안당했던 것을 잊어버리고 비위 좋게 넉살을 떨며 다시 나섰다.
“소대장님, 그러면 우리도 너구리를 잡도록 해주더랑께요. 나도 강 상사만큼 잡을 수 있당께요. 신나게 잡아서 소대 회식 상을 다리가 부러지도록 만들어 노켔찌라우.”
“뭐, 강 상사보다 많이 잡을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라우. 나가 이래 봐도 산에서 잔뼈가 굵은 놈이지라우. 군대 오기 전에 짐승들 겁나게 많이 잡았당께요.”
그의 손에는 폐선을 이용한 올무가 쥐어져 있었다.
“절대로 노루는 잡지 않겠당께요.”
그는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을 미리 말했다.
“너구리 고기가 그렇게 먹고 싶니?”
“너구리 고기 그것 말입니까. 사실은 별맛이 없당께요. 노랑내가 얼마나 난다고요. 강 상사에게 약이 올라 그러지라우.”
“너구리를 전문적으로 잡아 본 적이 있나?”
“뭐 전문적이라 할 꺼는 없당께요. 또 너구리만 잡은 것도 아니지만 어릴 때 덫도 많이 놓고 포수 아저씨들 오면 몰이꾼으로도 많이 따라 다녔찌라우.”
“뭐, 몰이꾼을 했다고?”
내가 깜짝 놀라 큰 소리로 외치자 송 일병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네….”
하면서 긴장을 했다. 그 때야 내가 너무 크게 외친 것을 알았다.
“몰이꾼을 했구나.”
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고 보니 나를 ‘몰이꾼’으로 데려가기 위해 끈질기게 찾아오던 고향마을 친구 길수와 송 일병 모습이 많이 닮았다. 각이 진 얼굴에 좁은 이마, 머리의 쌍가마까지. 키도 작달막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넉살까지. 영락없는 길수였다.
“동국아 몰이 가자.”
“싫어, 난 안 갈 꺼다.”
“저런 똥국, 맹꽁이”
길수가 내뱉던 말이 떠오르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녁에 올무를 놓았다가 아침에 건지겠당께요. 초소를 지키는 데는 조금도 지장이 없게 하겠쓰라우.”
송 일병은 계속 치근대었다. 길수도 이렇게 치근대었던 것 같다. 길수의 언죽번죽 치근덕거리던 소리가 갑자기 큰 벼랑에서 떨어진 바위가 되어 사정없이 굴러오고 있었다. 길수는 자기 혼자만 와서 치근대는 것이 아니고 늘 다른 또래들까지 달고 와서 우리 집 사립문을 흔들며 쌩이질을 했다.
“니가 그래 방안에 처박혀 책을 본다고 검․판사라도 될끼가.”
우리집 워리가 그 불한당들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거의 발작을 했다. 왕왕 와왕왕아앙하는 그 소리도 마침내 ‘똥국 맹꽁이’, ‘똥국 맹꽁이’하면서 가슴에 쏟아져 내리누르곤 했다.
그런데 갑자기 ‘맹꽁이’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좋다. 꼭 한 번만 허락한다.”
불쑥 그렇게 말한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런 용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마 길수나 임 소위처럼 ‘맹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소대원들에게 ‘맹꽁이’가 아닌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 같다. 나는 대한민국의 씩씩한 장교이다. 40명의 소대장이다. 광주보병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나를 따르라’고 얼마나 외쳤던가? ‘맹꽁이’는 이제 완전히 지워야 한다고 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고 나는 이내 후회를 했다.
‘정말 허락해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맹꽁이’의 기질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미 내뱉은 말. 배를 곯던 아이가 젖어미를 찾은 듯 박수와 함성으로 저렇게 좋아하고 있는데 어떻게 취소할 수 있는가? 만일 지금 말을 바꾼다면 나는 정말 ‘똥국 맹꽁이’로 낙인 찍히는 것이다.
“필승, 너구리 작전 준비 끝.”
보무도 당당한 정 하사와 송 일병 등 꾼들이 올무를 들고 너구리 작전 출정 신고를 했다. 얼떨결에 허락을 했는데 그들이 몰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토록 싫어하던 ‘몰이’를 군대에 와서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고향 마을 금록동은 읍내로부터 20킬로미터나 떨어진 마을인데 스무 집도 채 되지 않는 곳이며 이 마을에는 윤 씨와 김 씨가 약 반반으로 살고 있다.
사방에 험준한 산이 가로막고 있어 멀리서 보면 산에 가리어 마을이 보이지 않지만 일단 이곳에 들어서면 물이 풍부하고 땅이 기름져 곡식이 잘 되는 꽤 큰 들이 있었다. 이런 곳이기에 하늘바라기 땅만 있거나 다랑이 논에 힘들게 용두레로 물을 퍼 올려야 하는 인근 지역 사람들에게는 무척 부러운 선망의 땅이었다.
이 금록동(金鹿洞)마을에는 전설 같은 예언이 하나 전해져 오고 있었다. 이 마을의 뒷산인 선록산(仙鹿山)에 금사슴이 살고 있는데 이 금사슴을 찾는 성씨가 이 복된 땅의 영원한 주인이 된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이 금사슴은 찾지 못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서로 자기네 성씨가 먼저 찾아서 마을의 주인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금사슴 찾기는 김 씨와 윤 씨 총각에서 비롯되었다. 원래 두 사람은 사는 곳도 다르고 전혀 만난 적도 없는 생면부지의 타인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옥황상제님께 간절히 빌고 비는 소망만은 똑같았다.
“마을을 열고 닫는 옥황상제님의 깊은 뜻이 있어 병풍처럼 둘러친 산봉우리마다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 보호하고 받드는 복된 땅을 주소서. 하늘의 도가 마을에 가득하여 속인의 잡념을 멀리하게 하는 곳을 주소서. 폭포수가 만든 맑은 소(沼)에 흘러내린 물이 너른 들의 오곡백과를 풍성하게 하여 자손만대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갈 낙원의 터전을 점지하여 주소서.”
이들이 수 년 간 정성을 다해 빌고 빌자 이 정성에 감동한 옥황상제가 하루는 팔척 큰 키에 은빛 백발 수염이 발끝까지 내려온 신선을 내려 보내 당신의 뜻을 전했다.
“너희가 얻고자 하는 복된 명당이 바로 경상도 땅, 금록동(金鹿洞)이란 곳이니라.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 곳은 다른 성 씨가 공동으로 살 수 없는 땅이니라. 그런 곳임에도 두 사람이 똑 같은 소망으로 간절하게 바라니 마침내 옥황상제께서 숙제를 하나 내어 먼저 해결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땅의 주인으로 삼겠다고 하셨느니라. 그 숙제는 다름 아닌 ‘금사슴 찾기’이노라.
금사슴은 어떻게 찾을 것인가? 금록동 뒷산이 우리 신선과 금사슴이 산다고 선록산이라 하고 선록산 가장 높은 멧부리는 상제께서 가끔씩 쉬어가시기 때문에 상제봉(上帝峯)이라 하느니라. 봉우리 좌우에 사슴뿔 형상을 한 큰 바위 두 개가 있고 이곳은 늘 안개나 구름이 산 중턱을 휘감고 있어 금사슴이 두 발을 날려 하늘을 나는 모습이 되느니라. 그 아래에 오래 전부터 상제께서 금사슴 한 마리를 풀어 놓고 이를 찾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마을의 주인으로 삼으려 했으나 아직 찾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 너희들에게 이르노니 그 금사슴을 찾아 마을에 모시고 오는 사람이 그 땅의 주인이 될 것이니라. 그 주인은 그 땅에서 자자손손 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금사슴 찾기’에 실패한 사람은 어떠한 변병도 하지 않고 그 마을을 즉시 떠나야 한다. 만일 뜻을 어기고 버티면 화를 입게 될 것이니라.”
꿈에 신선을 통해 상제의 뜻을 똑같이 전해들은 두 총각은 거의 같은 시각에 이 마을에 들어왔으며 그 이후 그들은 새벽이면 마을 앞 촛대 바위 밑 큰 소에 나가서 몸을 깨끗이 씻고 꿇어 앉아 기도를 드리고 난 뒤 사슴을 찾아 선록산에 올라갔다. 그러나 무심한 세월만 흘러갈 뿐 아무리 헤매도 금사슴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두 사람은 누군가가 먼저 금사슴을 찾게 되면 다른 한 사람은 상제의 뜻에 따라 마을을 떠나기로 약조하고 그 때까지는 한 마을에 살기로 했다. 그래서 윤 씨는 서쪽에, 김 씨는 동쪽에 집을 짓고 땅을 일구어 농사도 지었다. 좀 더 세월이 흐르게 되자 배필을 만나 결혼도 하고 마침내 아이도 낳아 기르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한 번도 금사슴 찾기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들은 끝내 금사슴을 찾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 뒤 김 씨와 윤 씨 성의 자손들도 조상이 못다한 숙제를 잊지 않고 대를 이어가며 마을의 주인이 되기 위해 ‘금사슴 찾기’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다.
선록산에는 금사슴만 찾기 어려울 뿐 다른 산짐승들은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다람쥐나 오소리, 토끼는 물론 여우며 늑대, 아주 덩치가 큰 멧돼지도 있었으며 특히 이 산에는 노루가 무척 많았다. 노루들은 떼를 지어 저마다 독특한 풍광을 자랑하는 산등성이를 헤치고 다니다가 목이 마르면 백 개의 폭포수가 만든 소에서 물을 마셨으며 인기척을 느끼면 급하게 동굴이나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노루는 색깔이며 다리, 뿔 등이 사슴과 많이 닮았다. 하나하나 자세히 비교하면 다르지만 얼른 보면 닮은 점이 많았다. 마을 사람들은 금사슴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래도 사슴을 닮은 노루라도 이렇게 많은 것은 금사슴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언젠가 꼭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겨울이 되면 노루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금록동에 찾아왔다. 서울에 사는 돈 많은 부자 아저씨들이었다. 지금은 노루 사냥에 대해 별로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반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처음에는 반대도 많아 노루사냥 허락이 나는 데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김 씨 성의 득골 할아버지가 마을의 최고 어른이었을 때만 해도 노루사냥은 철저히 금기사항이었다. 어느 누구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노루는 금사슴을 호위하는 시종들이다. 그들을 잡기 위해 총소리를 울리면 금사슴은 노하여 선록산을 아주 떠나버린다.”
득골 할아버지는 목에 심줄을 있는 대로 시뻘겋게 세워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득골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마을의 상 어른이 된 윤 씨 성, 갈매 할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노루 때문에 오히려 사슴을 볼 수 없다. 장기를 둘 때도 졸이 죽게 되면 장군이 나타난다. 시종인 노루를 베어 버리면 사슴은 나오지 말래도 나타나게 된다.”
갈매 할아버지가 강력하게 주장했다. 갈매 할아버지는 서당 공부 대신에 읍내 학교에도 다녔으며 젊었을 때는 독립군을 따라 만주 일대에서 생활하기도 한, 상당히 개화된 인물이었다. 아무튼 노루를 베어야만 사슴이 나타난다고 갈매 할아버지가 주장하자 동리 사람들의 반대도 만만찮았다. 특히 김 씨 집안사람들은 금사슴을 영원히 놓치게 될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역시 지지 않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물론 금사슴을 찾아야 하지만 이제는 세월이 많이 달라졌다. 금사슴이 꼭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논에도 있고 밭에도 있고 집에도 있을 수 있다. 이제는 찾는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제 금사슴을 찾으려면 마을길부터 넓혀야 한다. 지게를 지고 다니는 꼬부랑길을 가지고는 금사슴을 모시고 올 수 없다.”
금록동은 진입로가 아주 좋지 못했다. 동리 입구의 계곡 벼랑 위로 토끼 길처럼 나 있는 꼬부랑길이 유일한 통로이었다. 갈매 할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마을이 발전하려면 가장 먼저 진입로부터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를 위시한 마을 사람들이 몇 번이나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도 했으나 결국은 막대한 경비 때문에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길을 확장하려면 여간 큰돈이 드는 것이 아닌데 저마다 빠듯한 시골 살림에 돈을 갹출하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도무지 이해가 잘 안되지마는 또 그렇다고 하더라도 노루 사냥을 허락한다고 길이 뚫립니꺼?”
철구 아버지가 말했다.
“두고 보거라. 이 사람아. 나도 생각이 좀 있단다. 속는 셈 치고 내 말을 한 번 믿어봐.”
할아버지는 의미 있는 웃음을 잔잔하게 지으시며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반대하던 사람들도 가장 연세가 높으신 분이기도 하려니와 평소에 생각이 깊은 분이 하시는 말씀이라 점차 그 뜻을 따르기로 했다.
‘사냥꾼들이 마을에 들어오려면 찻길이 있어야 한다. 사냥을 하려면 장비를 싣고 와야 하고 또 잡은 노루들을 운반해야 한다. 그 부자들이 취미로 즐기는 놀이인데 걸어서 들어오지는 않을 터. 노루사냥을 허락하면 서울 부자들은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길을 확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이 할아버지의 속마음이었다. 과연 갈매 할아버지의 생각은 적중했다. 노루 사냥을 허락하고 난 뒤, 그들 중 살기는 서울에 살지만 도로 확장 공사를 맡아 대구에 머무르고 있는 털보 사장이 자기 회사 장비를 가지고 와서 큰 트럭이 다녀도 될 만한 번듯한 길을 만들었다. 마을의 숙원 사업을 일시에 해결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갈매 할아버지의 선견지명에 놀라며 크게 존경하는 마음까지 생겼다. 길이 넓어지자 이번에는 길만이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씀드렸다.
“갈매 아제, 이참에 마을 회관도 하나 만들어 줬으면 참 조켔지예”
“에끼 이사람, 말 타면 종 부리고 싶다더니….”
“그런가예.”
“그래도 그것도 한번 기다려 봄세.”
할아버지 머리에도 이미 그것도 들어 있었던지 크게 나무라지 않고 웃음을 머금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직 입을 떼지는 못해도 언젠가는 한 번 부탁하게 될 것이며 아마 그것도 성사가 되어 동민들이 회의도 하고 또 경로당으로 활용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사냥꾼들이 오는 날은 마을의 축제일 같았다. 그들이 탄 차가 흙먼지를 날리며 장승박이를 돌아서 마을의 당산신인 느티나무 밑에 들어서면 동리 사람들은 화안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거의 ‘만세’에 가까운 동작으로 호들갑을 떠는 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먼저 보기 위해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헐떡이는 숨을 참으며 내달렸다.
“아저씨!”
하고 소리를 지르면
“그래 잘 있었니?”
하면서 서울 사냥꾼 아저씨들은 미리 준비해온 사탕 봉지며 학용품, 만화, 동화책 등을 한 보따리 내려놓았다.
“와 이거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과자다.”
“야, 내가 보고 싶던 만화책이다.”
“내가 가지고 싶던 연필이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다투면 길수는 아이들 손에 있는 과자며 학용품, 책들을 재빨리 낚아챘다.
“어허, 이리 내라, 버릇 없게시리, 내가 하나씩 갈라 주꾸마.”
길수는 학급의 반장처럼 갑자기 목에 힘을 주며 먼저 자기 것을 챙겨놓고 그 다음에 큰 선심이나 쓰듯이 하나씩 갈라주었다.
길수가 이렇게 목에 힘을 주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서울 사람들이 사냥을 올 때마다 묵어가는 집이 바로 길수 집이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자기 회사 장비를 가지고 와서 마을 진입로를 내어주었던 그 털보 사장이 길수 어머니의 먼 친척 오빠이었는데 우연하게 길수 어머니로부터 금록동 지역에 노루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울의 돈 많은 친구들을 데리고 내려오면서 노루 사냥이 시작된 것이었다. 아무튼 길수는 아저씨들이 자기 집에 묵는 것을 대단한 영광이요 큰 자랑으로 생각했다.
아저씨들이 오면 길수는 이따금 포수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털모자, 허리의 탄띠, 엽총까지 어깨에 메고 으스댔다. 꼬마 포수는 위엄 있고 활기 있는 걸음, 보무도 당당했다. 동리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가까이 오면 그는 배를 쑥 내밀었다.
“한 번만 만져 보자.”
하고 아이들이 사정을 하면 손을 점잖게 들어 자깝스럽게 어른 목소리로
“어허 다친다.”
그래도 아이들이 통사정을 하면 큰 인심이나 쓰듯이
“꼭 한 번만 만져라. 그라고 만졌다 카면 몰이는 꼭 나가야 한다.”
슬쩍 조건을 달았다.
“하무 함 함.”
아이들이 약속을 하면
“자, 새끼손가락 걸어라.”
아이들은 다투어 손가락을 걸고 아저씨들의 복장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아이들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감탄사를 연발할 때 쯤, 길수는 의기양양 한껏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우리 아저씨들 대단한 사람들이다.”
길수는 서울 아저씨들이 친 외삼촌이나 되듯이 서슴없이 ‘우리 아저씨’라고 했다.
“우리 아저씨들 집에는 전부 금뿐잉기라. 금테 모자, 금테 안경, 금 숟가락, 금 밥그릇, 김치는 금삼으로 담근다 안 카나.”
“우와, 인삼 말고 금삼도 다 있나?”
“하무하무, 우리 동네 사슴도 그냥 사슴이 아니고 금사슴 아이가. 그러니 인삼보다 더 좋은 기 금삼인 기라.”
길수는 터무니없는 허풍을 쾅쾅 쏟아냈다. 아이들은 좀 긴가민가했지만 어떻든 길수의 말에 아니라고 딴죽을 걸지는 않았다. 사냥꾼이 마을에 오기 시작하면서 길수는 이미 대장 자리를 굳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리 어른들도 서울 부자들에 대한 기대가 매우 컸다. 돈도 많고 배경도 든든한 사람들이니 해결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 동리 사람들은 그 힘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수백 년 동안 지게만 지고 다니던 길을 하루아침에 차가 다닐 수 있게 큰 길을 만든 사람들 아닌가! 이제 동사까지 번듯하게 지어 앞마당에는 무궁화도 심고 국기가 펄럭이고 큰 마이크 소리는 동리를 한 바퀴 돌아 상제봉에서 메아리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리 사람들은 서울 아저씨들이 나타나면 괜히 부침개, 동치미, 고구마 등을 가지고 길수 집에 드나들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서울 분들이 오시니 동네가 훤합니더, 국회의원도 서울 분만큼 잘 생긴 사람은 없을끼라예, 겨울철엔 머니머니 해도 사냥이 최고 아잉교, 우리 동네만큼 사냥하기 좋은 곳도 드문기라요. 입에 침을 튕겼다. 그리고는 슬금슬금 부탁들을 늘어놓았다. 제대한 아들 녀석이 빈둥빈둥 노는 꼴을 보면 가슴이 미어지는 듯 합니더. 갸가 가방끈은 좀 짧아도 심성 하나는 어데 내놔도 안 빠집니더. 어디 먹고 살만한 일자리가 없겠십니꺼. 다섯째 딸년까지 치우고 나니 물밑이 훤해졌심더. 딸년들 도둑년이란 소리 하나도 안틀리는기라예, 딸 가진 죄인이라 할 수없이 빚을 내어 시집을 보냈더니 아까운 문전옥답이 넘어가게 됐심더. 우애(어떻게) 좀 잡아 주면 소작료를 톡톡히 내겠심더. 송이 산을 한 번 사 보이소. 그것 돈됩니더. 지가 잘 관리하겠심더.
“글쎄요….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서울 분들은 동리 사람들의 부탁이 너무 절절하여 딱 부러지게 거절을 하지 못하고 ‘두고 보자’고 하면서 그야말로 어정쩡한 태도를 보이곤 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승낙으로 생각했다.
길수는 아저씨들이 자기 집에 머무는 동안 할 일이 많았다. 아저씨들이 잠을 자는 사랑방 청소도 하고 저녁에는 방이 지글지글 끓도록 아궁이에 장작불을 지폈다. 밥상도 들이고 숭늉도 들고 갔다. 그 이외에도 잔심부름이 많았다. 그러나 그 모든 일보다 길수가 가장 중요하게 맡은 임무는 사냥터의 ‘몰이꾼’을 모으는 일이었다.
아저씨들은 ‘몰이꾼’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했다. 될 수 있으면 많이 모아 오라고 부탁을 했지만 다른 마을과 멀리 떨어진 외진 작은 마을이기에 매번 참여할 아이들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마을에서 동원할 만한 아이는 빠지지 않게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선물도 갈라 주고 포수 복장도 만지게 하는 등 은근히 나름대로 꾀를 썼던 것이다. 하기야 그런 꾐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오히려 빠지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쪽이었기에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나였다. 나는 길수가 몰이를 가자고 할 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몰이꾼’에 빠졌다.
“똥국 맹꽁이 이 짜석은 오늘도 안 나왔나. 이 짜석은 선물도 안 받고 이 좋은 포수 복장 구경도 안 하고 집구석에서 알까나.”
길수가 빈정대었다.
“모리겠다. 알 까능가. 똥국 맹꽁이 그 짜석 언제 이런데 나오는 것 봤나.”
길수 사촌 길만이가 히죽 웃으며 말을 받았다.
“맹꽁이는 꼭 표를 낸단 말이다. 우리가 언제 이런 것 한 번 볼끼고. 그렇제?”
왼쪽보다 오른쪽 눈이 커서 자웅눈인 말봉이가 길수 편이 되자
“그라마, 그러코 말구제”
길수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사냥꾼들이 온다는 소문이 퍼지면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귀를 막았다. 아저씨들이 과자나 학용품, 책, 그 어떤 것을 사오든 또 포수 복장이 어떻든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런 말을 듣기만 해도 괜히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했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면 정말 가만히 내버려 두면 좋으련만 길수는 끈질기게 나를 포기하지 않고 성가시게 자드락거렸다.
코를 길바닥에 팽하고 풀어 팽개친 길수가 아이들을 거느리고 우리 집에 쳐들어왔다. 그는 실패할 줄을 번연히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길수와 나는 매번 거의 똑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동국아, 이번에는 몰이 나갈끼제?”
“몸이 아프다.”
“또 아프다 말이가.”
“그래 아프다.”
“내 니 안 아픈 것 알고 있다. 비록 아프더라도 몰이 한 번 하고 나면 기분 좋게 몸이 확 낫는다.”
“나는 병이 더 난다. 안 갈끼다.”
“동국아 니가 몰이꾼을 많이 안 해 봐서 그러치 그것 해보면 정말 재미있다. 아저씨들이 용돈과 선물도 듬뿍 준다.”
“그런 것 다 싫다. 안 갈끼다.”
“그라지 말고 한 번 가보자.”
“암만 캐도 나는 안갈 끼네 헛 고생하지 말고 어서 가거라.”
“정말로 안갈 끼가!”
“몇 번 말해야 아노.”
몰이꾼의 임무는 산등성이나 산발치에서 몽둥이를 들고 기다리다가 짐승들이 총소리에 놀라 도망을 가면 다시 포수 쪽으로 되몰아 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게 싫었다. 메아리를 울리며 요란하게 찢어지는 총소리도 듣기 싫었고, 산야의 푸른 공기를 이내 혼탁하게 하는 비릿한 화약 냄새도 비위에 거슬렸다. 더더구나 한사코 도망을 가는 생명을 총구의 과녁으로 몰아주는 짓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몰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참 희한한 아(아이)다. 몰이가 어떤데? 내사 내가 내몬 짐승이 총에 맞아 팍 꼬꾸라질 때 정말 만세라도 부르고 싶더라.”
“그라마 니나 많이 해라.”
“동국아 그 카지 말고, 몰이 가자. 니는 특별히 용돈을 더 많이 주라 카꾸마.”
길수는 그때 벌써 어른들의 흉내를 내어 흥정을 하며 꾀었다.
“돈을 더 받는 게 문제가 아니고 오늘은 정말 많이 아프다.”
사실은 꾀병으로 시작한 것인데 갑자기 온몸이 쑤시고 열이 펄펄 끓었다.
도저히 마음을 돌려놓지 못하게 되자 길수는 분통이 터져
“그러이끼네 이 새끼야 니는 ‘똥국 맹꽁이’인기라.”
하면서 마침내 욕지거리까지 퍼부었다.
나는 괜히 욕을 먹는 것이 억울하기는 하지만 통사정을 하는 길수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몰이꾼’은 하기 싫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길수는 마을의 영웅이 되었다.
“저가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아이들을 봤지만 길수만큼 용기 있고 집념이 강한 아이를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감동했습니다.”
아저씨들 중 사냥을 할 때 짐승의 발자국을 잘 쫓아가는 ‘자욱포수’로 소문이 난 아저씨가 길수를 위해 노루 잔치를 벌이는 날, 마을 사람들 앞에서 길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 말이었다.
“그런데, 야가 노루를 우애(어떻게) 생포했다 캤심니꺼? 노루를 6시간이나 추격했다 캤심니꺼?”
길만이 아버지가 조카 길수의 일을 상기시키자 ‘자욱포수’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특유한 걱실거리는 말투로 그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럼요, 6시간이죠. 그러니까 산 중턱 약수터가 있는 곳에 바위 하나가 있죠. 아마 낮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을 거예요. 그 아래서 노루를 발견하고 방아쇠를 당겼죠. 분명히 명중을 했다고 생각했으나 빗맞았는지 노루는 약간 절뚝거리면서 그냥 내달렸어요. 그 때, 길수가 불쑥 나서며, 지가 잡아 오겠심더 했어요. 아서라. 그냥 두어라 했죠. 그러나 길수는 막무가내로 달려갔어요. 조금 쫓다가 그만두려니 했지요. 그러고는 잊어버리고 저는 다른 노루를 찾아 오르내렸습니다. 그런데 해가 질 무렵 산에서 내려오려고 짐을 챙기며 몰이하는 아이들을 불러 모으니 길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길수가 노루를 쫓아 간 이후는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땅거미는 깔리고 있는데 아이는 없고, 가슴이 철렁하며 불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저씨는 당시의 불안한 생각을 하니 다시 목이 타는지 막걸리 주전자를 기울여 거푸 두어 잔 마시고 난 뒤 이야기를 계속했다.
“정말 기가 막히더라구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줄담배 아저씨는 그 상황을 생각하면 더더욱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었던지 담배 하나가 다 타기가 무섭게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것 참 보통 낭패가 아니었겠네예.”
철구 아버지가 한마디 거들었다.
“그럼요.”
“그래서 어떻게 했심니꺼?”
“아이를 버리고 산에서 내려올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마을 아이들과 함께 길수가 갔다고 짐작이 되는 곳으로 덩굴을 헤치며 올라갔죠. 어느덧 몇 개의 등성이를 넘었습니다. 이제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앞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때 뱀골 골짜기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우리 길수 소리였심니꺼?”
길만이 아버지가 말했다.
“네, 길수였습니다. 반가워서 허겁지겁 내려 가보니 아 글쎄, 이 녀석이 제 덩치보다도 큰 노루를 생포하여 끙끙대며 끌고 오는 것 아닙니까? ‘야, 이놈아’ 하고 일단 꾸중을 하기는 했지만, 정말 대견하더군요.”
“정말 보통 아이가 아니네예. 아니고 말고지예, 보통 아이들 같으면 처음부터 따라가지도 안 하겠지만, 설사 따라간다고 해도 조금 따라가다가 이내 포기를 하고 말 낀데….”
말봉이 아버지가 감격한 말투로 칭찬을 했다.
“그래서 오늘 길수가 잡은 노루를 가지고 마을 잔치를 열었습니다. 막걸리도 특별히 넉넉하게 준비하였으니 마음껏 드십시오.”
이번에는 털보 아저씨가 말을 받아 길수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길수는 노루를 쫓다가 찢어진 옷과 칡으로 신이 벗어지지 않도록 칭칭 감아 들메끈을 한 검정 고무신을 아직도 신고 있었다. 그의 가무퇴퇴한 손과 발등에 선연히 드러난 상처 자국이며 이마에 까칠하게 남아 있는 핏자국은 훈장처럼 빛이 났다. 이날따라 길수는 어깨에 힘이 유달리 더 들어갔지만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밉지 않고 그 모든 것이 돋보이고 든든할 뿐이었다.
“길수야 고맙데이. 오늘은 정말 귀한 노루 고기 먹게 됐데이.”
“암암.”
철구 아버지, 길만이 아버지, 말봉이 아버지 등 동리 사람들이 거나한 술기운에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어 갈 무렵 ‘자욱포수’ 아저씨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던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이 금록동에 큰 숙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 상제봉 아래 살고 있는 금사슴을 찾아서 마을에 모시고 오는 것이 이 마을 사람들의 소망 아닙니까?”
갑자기 금사슴 이야기가 나오자 마을 사람들은 이내 숙연해졌다. 갑자기 저 이가 왜 숙제를 들고 나오나! 저 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하고 있을 때 그는 마을 사람들을 훑어보며 비장한 어투로 말했다.
“방금 이 숙제를 풀어 줄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윤길수가 금사슴을 찾아서 모시고 올 사람입니다. 그 집념과 용기만 있다면 충분합니다. 드디어 금록동 사람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아저씨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이때 우리 아버지를 비롯한 김 씨 집안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노루 잔치에 갔다 온 아버지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아버지는 심약하여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는 나를 마뜩찮은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내가 들으란 듯이 길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길수 갸, 보통 때도 당차다 싶었지만 오늘 보니 정말 보통 아이가 아니더구먼.”
“오늘 마실에 무슨 일이 있었능기요?”
며칠 전부터 감기 몸살 기운이 있어 마을 잔치에도 못 가고 아랫목에 누워 있던 어머니가 궁금하여 물었을 때 아버지가 힘없이 어머니 옆에 앉으며 말했다.
“금사슴을 찾아서 모시고 올 인물이 드디어 나왔구먼.”
“뭐라 캣능기요. 금사슴 찾아서 모시고 올 인물이 나왔다고요?”
어머니는 깜짝 놀라 아픈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천장에 쥐떼가 뛰어다니는지 요란했다. 아버지는 얼른 일어나서 허리춤의 곰방대를 뽑아 천장을 툭툭 치며 혼잣말을 했다.
“6시간이나 노루를 따라가 생포하다니…. 정말 대단해…. 그러니께 금사슴을 찾는다는 말이 나올 만하제.”
아버지의 뜬금없는 말에 어머니는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다그쳤다.
“무슨 이야기잉교? 자세히 좀 말해 보소.”
“자욱포수라는 서울 분이 그랬어. 이 마을에 금사슴을 찾아서 모시고 올 인물이 바로 윤길수라고.”
“넷, 그게 참말잉기요.”
“그렇다고 하네.”
“하이고 야, 세상에 이런 변이 있나. 금사슴이 윤 씨 집안으로 간다고요. 그렇게 되면 우리 김 씨들은 어떻게 되는데예?”
“어떻게 되긴, 마을을 비워주고 떠나야지.”
아버지와 어머니는 금방 마을을 떠나야 하는 사람처럼 긴 한숨을 쉬었다.
“그건 너무 억울하네요. 그렇게 몇 대를 기다리다가 윤 씨들에게 빼앗기다니.”
“그래도 할 수 없지. 금사슴을 찾아서 모시고 오는 성씨가 이 마을의 주인이라고 약속이 돼 있으니께.”
길수가 금사슴을 찾아서 모시고 올 인물이라고. 이건 너무나 큰 사건이다. 나는 이불을 바짝 더 죄어 뒤집어쓰고 베개를 깔고 책을 읽는 체 하고 있었으나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몰골을 쳐다보며 어머니가 말했다.
“동국이 니는 금사슴을 못 모시고 오겠나? 그래 니가 먼저 찾았뿌라. 그래그래, 우리 동국이가 길수보다 인물이 못났나, 공부를 못하나. 우리 동국이도 할 수 있다.”
나는 책에만 눈을 박고 있을 뿐 고개를 들지 않았다.
“쯔쯔쯔, 사내 자식이 저렇게 용맹이 없어 가지고….”
아버지는 곰방대를 가지고 화롯전을 탕탕 두드렸다.
얼마 뒤, 겨울방학도 거의 다 지나갈 무렵, 서울 아저씨가 또 한 번 사냥을 왔는데 다른 사람들은 바빠서 오지 못하고 ‘줄담배’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골초 아저씨 한 분만 왔다. 그 때는 나도 몰이꾼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길수의 권유보다는 아버지 등쌀에 몰이꾼이 된 것이었다.
“동국이 니가 몰이꾼이 다 되고…. 햐, 내일 아침에는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 아이가.”
길수가 입을 헤벌쭉 벌렸다. 나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참나무 몽둥이를 옆구리에 끼고 어머니가 정성껏 싸준 도시락을 들었다.
아저씨는 길수가 노루를 끌고 오다가 맞닥뜨렸다는 뱀골에 도착하자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됐다. 여기에 본부를 정하자. 모두 가지고 온 도시락을 이 소나무 밑에 모아 놓고 전에 길수가 한 것처럼 신발을 단단히 조이도록 해라. 그리고 잠깐 쉬면서 사탕도 갈라 먹어라. 조금 뒤 몰이할 구역을 정해 줄 테니.”
그러면서 아저씨는 엽총집 주머니 지퍼를 열고 담배를 찾았다. 그러나 순간 아저씨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달랑 한 개비가 남은 담뱃갑 하나만 나왔기 때문이었다. 줄담배인 그가 이 한 개비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는 혹시나 하고 엽총집의 다른 주머니는 물론이고 입고 있는 옷의 이 주머니 저 주머니까지 모두 뒤졌다. 그러나 담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히 한 보루를 챙겨 넣었는데 어디로 갔을까.”
하면서 그는 봉지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아하 담배를 넣은 봉지를 가져오지 않고 이걸 가져왔구나. 이것 큰 일 났군.”
하면서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우선 그 한 개비를 피워 물며 빈 담뱃갑을 구겨 멀리 팽개쳤다. 갑자기 날아온 담뱃갑에 놀라 까투리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았다. 아저씨는 총을 뽑아 냅다 쏘았지만 이상하게 까투리는 훨훨 날아가 버렸다.
“담배가 없으니 벌써부터 총이 맞지 않는군. 하, 이를 어쩌지.”
혼잣말을 하다가 담배 심부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했던지 아이들을 죽 훑어보았다.
“혹시 담배 심부름 할 사람 없니?”
이날은 사냥 장소를 더 멀리 잡았다. 마을까지는 상당히 멀었다. 서로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잠시 조용해지며 작은 긴장이 일었다. 그 때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저씨는 매우 반갑게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네가 가겠니? 그러고 보니 너는 처음 보는 얼굴이로구나. 금록동에 살지 않니?”
“아닙니더.”
“아니 금록동에 살면서 여태 몰이를 한 번도 안 나왔단 말이냐?”
“…….”
길수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내가 너무 고소하다는 듯이 쿡하고 웃었다. 그리고
“맹-”
하면서 코를 쥐었다가
“꽁”
할 때는 쥔 코를 놓았다.
나는 길수를 흘겨보았다.
“무슨 사연인지 모르겠구먼. 아무튼 좋아. 몰이도 처음 하면 서툴 테니 담배 심부름이나 하렴”
처음은 아니다. 꼭 한 번 산에 올랐다가 기겁을 하여 도망을 간 적이 있다. 마침 아저씨가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내 아저씨가 준 담배 열 갑 즉 한 포(보루) 값을 손에 꼭 쥐고 마을로 내려갔다. 내려오면서 생각해도 심부름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짐승을 되몰아 주어 처절한 비명을 듣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담배를 사러 가는 것은 걸음만 좀 많이 걸으면 된다. 그리고 이 일도 칭찬 받으면서 하는 일 아닌가? 암만 생각해도 손을 잘 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막 산발치를 벗어날 즈음 총소리가 골짜기의 어깨를 누르며 요란하게 울렸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아 북북 문질렀다. 그래도 시원하지 않았다. 얼른 총소리를 벗어나기 위해 더 빨리 달렸다. 드디어 마을 입구에 있는 담배포에 이르렀다. ‘담배’라고 새긴 간판이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었다. 낡은 문을 급하게 열었다.
“아, 아리랑 다, 담배 주이소”
“야가 와 이래 급하노, 누구 집에 불이라도 났나.”
시익씩 숨이 차서 말이 제대로 되지 않자 담배포 곰순이 엄마가 담배를 넣어둔 장에 쌓인 먼지를 떨다 말고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방금 니 머라 캤노?”
“아리랑 담배 돌라 캤씸더”
곰순이 엄마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아리랑이라고?”
“와 아리랑이라 카는 것은 없심니꺼?”
“와? 누가 사오라 카더노…? 너가베(너의 아버지)는 아일끼고….”
“서울 포수 아저씨가 사오라 캅디더.“
“오라, 니도 참, 오늘 서울 분들 따라 몰이 갔제. 그런데 이것 우짜노. 우리 집에 그런 고급 담배가 없데이.”
“그라마 무슨 담배가 있는데예.”
“우리 촌구석에야 파랑새밖에 더 있나.”
순간 ‘파랑새’ 담배라도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라마 파랑새라도 주이소.”
그러자 곰순이 엄마가 손사래를 쳤다.
“야, 니가 머라카노. 그런 서울 신사들이 담배를 안 피웠으면 안피웠지 담배가루가 입에 그대로 들어오는 파랑새 같은 것 피우겠나! 파랑새 같은 것은 시골 사람들이나 피우는 기다. 괜히 심부름하고 욕 듣는 짓 하지 말어래이.”
정말 난감했다.
“그러마 어디에 가야 아리랑을 살 수 있습니꺼?”
“다른 동리에야 우리와 마찬가지로 없을 끼고 우짜마 면사무소가 있는 동미동에는 있을지 모리겠다. 거기는 그래도 양복쟁이들이 더러 온다 아이가”
면사무소까지는 4킬로미터 길이다. 그러나 어쩌랴. 걸음을 재촉하여 달려갔다. 그런데 그곳 담배포에도 없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몇 갑 있었는데 오늘 면사무소에 귀한 손님들이 오는 통에 전부 떨이를 해 갔다고 했다. 읍내에 나가야만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할까. 읍내까지는 여기서도 16킬로미터가 넘는 길이다. 그렇다면 파랑새를 사는 수밖에 없지 않는가! 그래, 그래야지. 돈을 쥐고 있던 손을 펼쳤다. 그런데 순간 그게 아닐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곰순이 엄마의 말처럼 심부름 잘 하고 욕만 얻어먹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길수가 노루를 잡아와서 영웅이 되던 일이 생각났다. 길수는 여섯 시간이나 끈질기게 따라가서 노루를 생포했다. 길수는 노루를 잡기 위해 가시덤불을 헤쳐가면서 얼굴이며 손등과 발등에 찔리고 긁히기도 했는데 나는 고작 고개만 몇 개 있을 뿐 아주 평평한 길을 걸어가서 담배를 사오는 것인데 그것도 못한단 말인가? 그래 아리랑 담배를 사오고 말 테다.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허리끈을 한 구멍 더 줄이고 바지 자락을 양말 속에 집어넣고 뛰기 시작했다.
드디어 읍내 담배 가게,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 들었을 때, 담배포 아저씨는 점심밥을 먹고 있었다. 얼른 보아 담임선생님을 너무 닮은 분이라 깜짝 놀랐다. 겨울 방학 때이라 담임선생님께서 담배 가게를 보고 있다고 착각할 정도이었다. 점포 벽 위에 걸려 있는 괘종시계를 보니 오후 1시가 지났다. 9시경에 출발을 했으니 벌써 4시간 이상 걸린 것이다. 갑자기 시장기가 돌았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흰밥 그릇에 숟가락을 걸쳐두고 아저씨가 엉거주춤 가게에 내려섰다.
“뭐 줄까?”
“여기는 아리랑 담배 팔겠지예?”
“담배집에서 아리랑을 안 팔고 쓰리랑을 팔겠나?, 몇 갑이나?”
아저씨의 시원한 목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랐다.
“한 보루(포) 주이소.”
손을 펼치니 돈이 땀에 촉촉이 젖었다.
“하이고 야 봐라. 돈이 다 젖었네. 니 어느 동네서 왔노”
“금록동에서 왔심더.”
“하이구야. 금록동에서 여기까지 왔단 말이가? 참으로 착하고 대단한 아이구나. 암만 어른들이 시킨다 캐도 이렇게 오십 리 길을 오는 아이는 없을 끼라. 앞으로 분명히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
아저씨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손길도 선생님이 칭찬을 하시며 쓰다듬어 주실 때와 거의 같았다. 길수만 칭찬을 받은 것이 아니다. 나도 칭찬을 받았다. 흡사 담임선생님께 칭찬받은 기분이었다. 담배 한 포를 야무지게 쥐고 왔던 길을 다시 뛰기 시작했다. 동리 우물에 가서 물이라도 퍼마시려다가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목이 마른 것도 애써 참았다. 소나무 밑에 놓아둔 도시락이 눈에 어른거렸다.
선록산 밑에 도착했을 때 겨울의 짧은 해가 이미 서산에 가로누워 있었다. 주황색 어둠이 소나무 사이마다 고개를 내밀었다. 발이 부어오르고 숨이 찼다. 그러나 마지막 골인 지점을 앞둔 마라톤 선수처럼 마음은 긴장과 함께 흥분이 일어났다. 조금 뒤 줄담배 아저씨가 말할 것이다.
- 지금까지는 길수가 금사슴을 찾을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동국이가 금사슴을 찾아서 마을에 모시고 올 아이다. 길수는 6시간이지만 동국이는 8시간 이상을 용감하게 달려서 왔다.
이미 담임선생님을 닮은 아저씨도 앞으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지 않았던가.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산길 입구에 다다랐을 때 몰이꾼 아이들과 함께 내려오는 줄담배 아저씨를 만났다. 코앞에 아리랑 담배 한 포를 자랑스럽게 바짝 내밀었다.
“아저씨, 우리 마을하고 면사무소 마을까지 뒤졌는데 파랑새 담배밖에 없어서 8시간 넘게 걸려 읍까지 갔다 왔심더.”
8시간 넘게 걸린 것을 강조하며 늦은 사정을 말씀 드렸다. 그러나 그 다음 너무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쯤 되면 분명히 금사슴을 찾아서 모시고 올 아이라고 번쩍 안아 칭찬할 줄 알았는데 칭찬은커녕 아저씨는 되레 입에 바람을 가득 담고 눈을 부라렸다. 성낸 왕방울 눈이 툭 튀어 나와 금방 얼굴을 덮칠 것 같았다.
“뭐랬니? 읍까지 갔다 왔다고?”
아저씨는 기가 막힌다는 투였다. 나는 의외의 반응에 너무 놀랐다.
“너 참 앞뒤가 막힌 아이구나.”
아저씨가 꾸중을 하자 길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용수철처럼 튀어 나와 까발렸다.
“그 애 별명이 ‘맹꽁이’ 입니더.”
“뭐, 별명이 ‘맹꽁이’라고, 맞아 그 별명, 누가 붙인지 모르지만 아주 잘 붙였구나. 정말 맹꽁이야. 아리랑이 없으면 파랑새라도 사올 일이지. 아무리 어리지만 담배 피는 사람의 심정을 그렇게도 모르다니. 쯔쯔. 너도 뒤에 담배를 피우면 내가 오늘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알게 될 꺼야. 어디 담배가 떨어지니 방아쇠를 당길 마음이 생겨야지. 오늘 사냥은 이 맹꽁이 녀석 때문에 영 망쳤어.”
우두망찰, 양어깨에 파고드는 허탈감. 정신이 얼떨떨하여 금방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아저씨가 미웠다. 송충이처럼 징그러웠다. 그 날 동국이가 또 맹꽁이 짓을 했다가 줄담배 아저씨께 매몰찬 핀잔의 퉁바리맞았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그 이후 나는 더더욱 분하고 정나미가 떨어져 절대로 ‘몰이꾼’이 되지 않았다. 서울 아저씨들의 소리가 나면 이불을 두 겹 세 겹 뒤집어썼다. 그런데 그러던 내가 지금 ‘몰이꾼’이 되려 하고 있다. 소대장 김똥국 소위, 너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몰이꾼’이 되었다. 몰이라도 큰 몰이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피식 웃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 너구리 올무를 걷으러 가기 전에 송 일병은 간밤에 대단한 꿈을 꿨다고 법석을 떨었다.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아마 고향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같았당께요. 길을 가다가 배가 고파 고구마 줄을 잡아당기니 밭 전체의 고구마가 한 줄에 걸려 주렁주렁 하나도 안 떨어지고 다 딸려 나왔당께요. 고구마 한 개 한 개가 전부 너구리 아닌감요. 두고 보드랑께요. 틀림없을께요. 그래 되면 소대 회식이 아니라. 연대 회식도 될 것이당께요. 내일부터는 아마 강 상사 보기도 쪼매 힘들게 됐찌라우.”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너구리 씨가 말랐는데 강 상사가 여기 뭐 하러 온당가요.”
하하하. 소대원들은 송 일병의 허풍에 한바탕 크게 웃었다. 물론 허풍이기는 해도 그의 말처럼 소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야, 조 이병 나가 싸게 갔다 올 터이니 솥이나 잘 닦아 놓더라고. 잉.”
그러나 얼마 뒤, 송 일병 일행은 패잔병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힘없이 돌아왔다.
“너구리는 어떻게 하고….”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너무 의외의 결과였다.
“그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당께요. × 같은 너구리 새끼들, 그 새끼들 죽어도 하필 강 상사 올무에만 가서 죽는감.”
“정말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단 말이지?”
송 일병은 뒤통수만 긁었다.
“남의 꿈을 꾼 게로군.”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찌라우.”
송 일병은 못내 아쉬워하며 올무 뭉치를 두 손에 구기박질렀다.
‘맹꽁이 소대장’이 몰이를 했는데 별수 있을 턱이 없지,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하마터면 크게 웃을 뻔했다. 공연히 헛물만 켠 소대원들이 좀 안됐긴 해도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이 무슨 똥국 맹꽁이의 심보인가!
“소대장님 오늘 저녁 꼭 한 번만 더 허락 해주드랑께요.”
송 일병은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젠 그만 두지. 강 상사님이 있는 한 너구리는 포기하는 게 나아.”
“두고 보십시오. 한 번 실수는 병가지 상사라 했찌라우.”
“문자 쓰고 앉았네.”
김 하사가 옆에서 비아냥거렸다.
“저는 문자 쓰면 안되는감요?”
하여간 맹꽁이 소대장이 몰이를 하는 한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 안되면 강 상사와 합동 작전을 할 것이랑께요.”
꼭 한 번만 더 허락해달라고 하는데 어쩔 것인가? 또 허락하고 말았다. 올무를 설치하고 돌아온 그들은 역시 큰 소리를 쳤다.
“소대장님, 왜 있잖습니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고. 강 상사도 우리의 올무를 보고 짭짤하게 건질 것이라고 했당께요.”
이튿날 아침, 너구리를 걷으러 가면서 송 일병은 텔레비전의 너구리표 라면을 선전하는 탤런트 흉내를 내었다.
“너구리 100 마리 몰고 가세요.”
하면서 보따리 하나를 크게 치켜들고 외쳤다.
“이 보따리가 뭐신양 하면 잉, 이불 보따리도 아니고 떡 보따리도 아니고, 옷 보따리도 아니고 짐 보따리도 아니고 너구리를 가득 싸서 들고 올 너구리 보따리잉께 지다려 보드랑께.”
넉살을 떨었다. 남아 있는 병사들이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강 상사가 거들어 주었다니 몇 마리는 건져 올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큰 소리 탕탕 치며 간 그들이 돌아올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이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었다. 처음에 좀 늦다고 생각했을 때는 필시 허탕인 게로군, 무슨 면목이 있을까, 이렇게 생각했지만 세 시간이 훌쩍 지나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았다. 혹시 욕심을 내어 지뢰 지대라도 들어간 게 아닐까. 매복하고 있던 적들과 교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뢰를 터뜨리거나 교전이 있다면 폭음과 총소리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렇지만 대검이나 개머리판의 공격을 받는다면 사정은 다르다. 소리 소문 없이 일을 당할 수 있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히자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 없었다.
화기분대원들과 함께 그들을 찾아 나섰다. 철모를 쓰고 소총의 실탄을 확인하고. 수류탄도 위장망에 걸었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높새바람을 타고 대남 방송이 요란했다. 지겹도록 들어온 김일성 장군 노래다. 막사 앞 개울을 지나 언덕길을 오를 때 노래가 잠시 멈췄다. 이번에는 여자 아나운서의 칼날 같은 섬뜩한 목소리가 위대한 수령님을 애절하게 외쳤다.
언덕 중간쯤에 3분대 초소가 있었다. 정 하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있었구나. 갑자기 문을 밀치자 그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본부로 오지 않고 여기에서 뭣들을 하고 있어.”
“…….”
병사들은 어리바리하며 고개를 더 접었다.
“너구리를 못 잡아서 그러니?”
“그게 아닙니다.”
송 일병이 풀죽은 소리로 말했다.
“그게 아니라면….”
“…….”
말을 하지 않았다.
“정 하사 무슨 일이야?”
“…….”
정 하사도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간해서 이들이 이렇게 풀이 죽을 작자들이 아니다.
“답답하구나. 말 좀 해 봐.”
다시 다그치자 겨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구리 올무에 노루란 놈이 걸려….”
“뭐, 노루라고 했니?!”
나는 말을 자르며 반사적으로 고함을 질렀다.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노루가 걸리다니.
“빨리 풀어 줘.”
다급하게 말했다.
“이미 그게….”
하면서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게 어떻단 말이니?, 죽기라도 했단 말인가?”
“네, 그게 그만….”
“이 무슨 소리얏! 정말 노루가 죽은 거니?”
“그게 워낙 성질이 급한 놈이 되어서….”
“이런, 이런,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먼.”
“…….”
“분명히 너구리 올무지?”
“강 상사가 만들었습니다.”
강 상사가 일부러 노루 올무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고,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너구리 올무에 이놈이 걸릴 줄 몰랐습니다.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는데 워낙 겁이 많고 얼뜬 짐승이라 막무가내로 설쳐대다가 올무를 더더욱 조이게 하고는 제 풀에 숨이 차서 죽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는 목이 잠겼고 눈가에는 눈물까지 비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못했다. 순간 매부리코가 벌겋게 달아오른 중대장의 화난 얼굴이 떠올랐다.
-김 소위 이래도 되는 거야.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더니…. 이제 우리 중대는 끝장이야.
으허허, 중대장은 얼굴을 묻고 신음을 했다. 관자놀이가 마구 뛰는 것이 보였다.
“노루가 있는 곳이 어디냐?”
“저 위쪽 벼락 맞은 참나무 밑입니다.”
“가보자.”
내가 간댔자 죽은 노루를 살릴 수는 없어도 일단 확인이라도 하고 싶었다. 송 일병이 앞장을 섰다. 평소에 별로 잘 다니지 않는 곳이라 길도 없었다. 송 일병이 참나무 가지 하나를 꺾어서 사람 키보다 더 큰 억새풀도 눕히고 뺨을 할퀴는 엄나무 가지도 후려쳤다.
송 일병 역시 길수처럼 왼손잡이였다.
길수라면 이 상황에서 노루를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어떻게 하긴 당연히 소대 회식을 시키지.
모가 난 갈퀴눈으로 길수가 이기죽거렸다.
- 소대 회식을 시킨다고.
- 말은 하지 않을 뿐 소대원들이 얼마나 군침을 흘리고 있겠니?
- …….
- 소대원들은 그 맛없는 너구리 고기도 못 먹어서 안달이 났던 사람들 아니니?
그것은 사실이다.
- 이제 벗어나라구. 내가 사로잡은 노루를 가지고 한바탕 신이 났던 금록동 노루 잔치처럼 신나게 한 판을 벌이라구.
- 우리 중대장이 들으면 정말 큰 일 날 소리를 하는구나.
- 그 중대장에 그 소대장이지. 국방부에서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루노’와 ‘맹꽁이’를 한 중대에 보내어 끼리끼리 붙여 놓았는지. 정말 찹쌀 짝꿍이야.
그 날, 길수의 노루 잔칫날, 동리 사람들은 농악을 앞세워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천둥 번개 요란한 꽹과리, 빗소리에 신이 나는 장구, 구름 속의 큰 북 소리, 바람 불어 시원한 징소리, 덩더꿍 어깨춤에 온 동리가 요란했다.
동리 어른들은 얼얼한 술기운에 기분이 좋아 다투어 길수를 목말 태웠다. 길수가 헤벌쭉 웃을 때마다 뻐드렁니가 드러났다. 큰 인물 났지. 암 큰 인물이고말고. 윤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크게 외쳤다. 금사슴을 꼭 찾아서 모시고 와야 한다. 암암. 니는 우리들의 꿈이데이.
윤길수는 서울 아저씨들의 장학금으로 공부했다. 서울 아저씨들은 장학금을 내놓으면서 딱히 윤길수라고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처음부터 그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길수가 장학생으로 추천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다만 나의 당숙인 대호 아저씨만 성적 면에서는 동국이가 낫다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성적보다는 장래성이 있어야 한다고 마을 사람들은 면박을 주었다. 내가 생각해도 길수를 선택한 것은 잘한 것이다. 내가 어른들이라도 나 같은 ‘맹꽁이’는 추천하지 않았을 것이니까.
예나 지금이나 나는 너무 소심하고 바보스럽다. 내가 미워졌다. 이때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좋다. 소대 회식을 한 번 하자. 나라고 못할 게 뭐야. 마침 노루가 자기 발로 걸어와서 죽어 주었잖아. 고마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기회에 나도 노루 고기를 한 번 먹어볼 것이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노루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다. 길수가 먹는 것을 본 적은 있다. 얼마나 맛이 있던지 뼈다귀 안쪽에 붙은 질긴 심줄까지도 남기지 않기 위해 숫제 갈비를 이빨에 대고 문지르는 것 같았다. 입에는 노루 기름이 묻어 반질반질했다. 아무리 보아도 짐승 꼬락서니이지 사람 형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때 나를 발견한 길수가 느닷없이
“먹어 봐라.”
그가 핥던 뼈다귀를 일부러 내 옷섶에 던졌다.
“어어어.”
나는 자지러지게 놀라 뒤로 물러섰다가 급히 도망쳤다.
“똥국’ ‘맹맹, 맹꽁이!”
길수는 양손으로 배꼽을 잡고 숨이 넘어가듯이 깔깔대었다. 그래, 이제는 도망가지 않을 거야. 한 번 와서 보라구. 얼마나 신나게 먹어 치우는 가를. 길수야 나 이제 ‘맹꽁이’ 꼬리표를 자르고 싶어.
정말 곰곰이 생각해보면 노루만 유독 겁을 내어 잡지 않는 것은 너무 이상하다. 노루도 그 많은 짐승 중에 하나일 뿐이다. 노루에 대해 터부시하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어쩌다가 결과가 좋지 않았고 그것이 심리적 불안과 결부된 것. 이것은 함정이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올무다. 지금 올무에는 노루가 걸려 있는 것이 아니고 ‘루노’ 중대장이 걸려 있고 ‘맹꽁이’인 내가 잡혀 있다. 닥치는 대로 뭇짐승 포획하고 또 도살한 서울 포수들이나 강 상사는 스스로에게 올가미를 씌우지 않는다. 겁이 많고 나약한 열쭝이들만 바보스럽게 자기 덫을 만드는 것이다.
- 소대원 전원 집합. 지금부터 노루 잔치를 벌인다.
- 참말이당께요.
송 일병이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왜 그렇게 놀란 얼굴로 쳐다보고 있니? 거짓말하는 소대장만 보았니?
저네들끼리 눈빛이 교신된다. 뭔가 이상하다는 투다.
- 그럼 내가 보여주지.
묵직하고 굵은 나무 세 개를 지주로 삼아 세우고는 노루를 거꾸로 달아매었다. 불을 지폈다. 계곡에는 연기를 타고 구수한 냄새가 쫙 깔렸다.
- 와! 소대장님 만세!
잔치 잔치 벌였네 노루 잔치 벌였네. 병사들은 노루 고기를 신나게 북북 찢어서 입이 터지도록 씹어댄다. 나의 입술과 손에도 노루 고기를 먹다 묻은 기름이 미끌미끌하다. 막걸리 서너 말도 쉽게 동이 났다. 최 상병이 그의 애창곡인 갑돌이와 갑순이를 구성지게 뽑았다. 권 일병이 애인에게 받았다는 비단 보자기로 치마를 만들고 머리에는 손수건으로 감쌌다. 그는 쉽게 갑순이가 되었다. 손가락을 마음껏 비틀며 숫내로 어르는 민 상병의 휘파람. 아유 몸가락 아파. 몸가락이 뭐꼬. 손에 달리면 손가락, 발에 달리면 발가락, 몸에 달리면 몸가락이지. 가시나 엉덩이를 저리 흔드는데 몸가락이 가만 있으면 고자지. 군대에 들어와서 고기를 이만큼 먹은 적이 없습니다. 지랄하네 사회에 있을 때는 니 풍신에 언제 한번 이래 묵어봤나. 저 놈 입정 봐라. 그래 그래 맞다. 니 거시기 크다. 미식기가 덩더꿍 상쇠야 어디 갔느냐. 뱃가죽 북이나 울려라. 소대원들이 목말 태운다. 소대장님 만세. 소대장님 별 다이소. 그럼 우리 소대장님 말고 누가 별을 달까? 진짜 사나이를 외친다. 소대장님은 우리 소대원들의 희망이고 꿈입니더. 조금도 싫지 않다.
동리 사람들이 몰려왔다. 저거 동국이 아니가. 참말이가 동국이가 노루 잔치를 한다고. 봐라 목말 탄 것이 동국이 맞다 아이가. 믿을 수가 없는 듯 몇 번이고 눈을 비비었다. 길수도 배알이 틀리는지 콧구멍을 새끼손가락으로 후비며 마른기침을 컹컹하다가 마을 사람들 뒤에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었다. 길수야 어디 숨니, 나를 보라구. 나도 목말 타고 있다. ‘루노’ 중대장의 ‘똥국 맹꽁이’가 아니라구. 금사슴은 내가 찾을 거야. 분명히 찾아서 마을에 모시고 올 거야.
“여깁니다.”
정 하사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어으응 그래.”
더듬거렸다. 얼굴이 화끈했다. 솔가리를 걷어 내자 송아지만한 놈이 누워있었다. 암놈이었다.
- 네가 회식을 해? 씨도 안 먹히는 소리지.
길수가 등 뒤에서 깔깔대었다.
- 맞아요, 길수님, 맞는 말씀입니다.
우거지상을 한 나는 풀이 죽어 긴 한숨을 내뱉었다. 목 부분 올무에 졸린 상처가 약간 있을 뿐 멀쩡한 놈이었다.
- 빨리 일어나. 왜 이렇게 누워 있어. 다리가 부러진 것도 아니잖니. 또 한 번 산야를 누벼 보라구.
외쳐도 외쳐도 놈은 얌전하게 누워 있었다. 눈을 감지 못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원한이 서려 있는 눈. 갑자기 저쪽에서 중대장이 허우적거리며 달려오고 있다. 그 뒤에 연대장이 뒤뚱뒤뚱 따라오고 있었다. 연대장의 권총이 햇빛에 반짝거렸다.
- 김 소위 곧 겨울이 온다. 땅이 얼기 전에 지뢰 지대를 보완하도록.
- …….
- 왜 대답이 없어? 노루 먹은 힘으로 최선을 다하도록.
- 네 알겠습니다.
부동자세를 하려고 애를 써도 자꾸만 떨렸다. 중대장은 얼굴이 싯누래져 손까지 떨며 연대장께 애원했다.
- 전번에 7중대의 사고가 난 지역 아닙니까? 아직 김 소위가 경험이 부족해서 어떨까 합니다.
- 무슨 소리야. 그럼 중대장이 하겠어? 귀관 노루 먹고 나면 일이 잘되잖아.
- 아, 아닙니다.
중대장은 사색이다. 억지로 용기를 내어 한 마디 했던 중대장이 저만큼 도망을 가다가 나를 향해 모질게 내뱉었다.
- 김 소위는 상관의 지시를 어긴 배신자야. 배신자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가 보라구. 자업자득이야. 나를 원망하지 마.
- 6중대장은 노루 때문에 미쳤어. 제 정신이 아냐. 오죽하면 ‘루노’라고 하겠니. 그러나 위험한 것은 사실이야. 그렇다고 이 중요한 지역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잖아.
연대장은 담배를 붙여 물며 지뢰 지대 보완 작업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저만큼 물러나 있던 중대장이 다시 달려왔다.
- 연대장님 강 상사를 시키면 안 될까요? 강 상사는 너구리만 잡았을 뿐 노루는 잡지 않았습니다. 그는 경험도 풍부합니다. 안산 자기 고향 마을은 자기가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 미쳤군. 중대장의 말을 듣지 마라. 김 똥국 소위는 ‘맹꽁이’라 해도 미치지는 않았으니 훌륭하게 지뢰 지대를 잘 보완하게 될 거야. 성공을 빈다. 파이팅.
우선 들쭉날쭉한 지뢰를 걷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뢰 탐지기를 맨 어깨가 이내 아려왔다. 누군가가 뒤에서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도둑가시가 옷자락에 우두둑 달려들었다. 정 하사와 송 일병이 곡괭이와 대검을 들고 식은땀을 흘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 노루의 보복을 이제야 실감하겠지?
- 정말 노루 그것 영물이네요. 중대장님 말씀이 진리입니더.
중대장이 저만치 서서 히히히 실없이 웃었다. 잠깐. 그런대로 잘 나가던 탐지기의 소리가 이상했다. 지뢰를 알리는 경고음이 ‘웅’하고 울었다
- 송 일병, 이쪽이야. 조심해. 죽음에는 연습이 없다.
야전 점퍼에 땀이 배어 나왔다. 곡괭이 자루를 단단히 잡고 멀찌감치 자리를 잡고 파들어 갔다. 지뢰에 접근할 때는 대검으로 마무리. 어정잡이는 안 된다. 한 치의 오차만 생겨도 우리 세 사람의 몸뚱어리는 일시에 공중분해가 된다. 사단 앰뷸런스의 적십자가 붉게 타고 있었다. 삭은 지뢰 뭉치의 안전핀을 붙들고 있는 정 하사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놈의 노루 새끼, 너구리 올무에 공연히 달려들어 놓고 어디다 분풀이야.
그래도 첫 작품치고는 성공이었다. 노루도 제 잘못은 인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암 인정해야지. 우리는 정말 억울하다. 지뢰 지대의 작업은 수술실의 침묵이다. 환희는 잠시일 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절벽을 만났다. 한 발자국도 더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지뢰 탐지기 바늘의 끝이 보여야 발을 들여놓고 작업을 할 것이 아닌가? 한 번 돌아간 바늘은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멈추어 서서 지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고 계속 울어대었다.
이제는 이놈의 노루가 정말 사람을 잡으려나 보다. 언제 저 앰뷸런스의 요란한 사이렌이 울릴지 모른다. 소리의 강약에 따라 시신 조각도 크기가 달라질 것이다. 얼마만큼 빨리 갈 수 있을까. 전번 7중대 소대장은 다리가 절단되자 애인까지 절교 선언을 했다는데. 현지는 그대로 견뎌줄까? 현지가 보고 싶다.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는데. 연대장의 망원경 렌즈에 내가 빨려 들어갔다. 얼굴이 몹시 따가웠다.
- 연대장님 엄살이 아닙니다. 도저히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습니다.
- 장교가 저런, 맹꽁이, 쯔쯔.
길수는 혹독하게 춥던 그 겨울 12월에 분신자살을 했다. ‘군사 정권의 종식’을 호소하는 목소리로 가득하던 민주의 능선에서 몰이를 하다가 죽었던 것이다. 그 날도 그들은 대학 캠퍼스에서 결의를 다지고 금사슴 몰이에 나섰다. ‘전국 대학생 민주화 추진 위원장’이 그의 공식적인 직함이었다.
산에는 짐승들이 많았다. 짐승들은 모두 저마다 자기가 금사슴이라고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총구에 매달려 손바닥의 지문 지우기 연습을 하던 뻔뻔한 놈들도 있고, 뿔이 엉덩이에 난 놈, 가면을 쓰고 탈놀이를 하던 놈들도 있었다. 그런 정도라면 사람들의 눈을 속이지 못하고 쉽게 드러났다. 그러나 군중들도 구별하기 힘든 두 마리의 사슴이 있었다. 그 두 마리 때문에 사람들은 몹시 고민하게 되었다. 머리, 눈동자, 몸집, 꼬리가 아주 똑 같은 두 마리의 사슴. 단지 태어난 곳이 하나는 전라도이고 하나는 경상도일 뿐이었다. 두 마리는 각각 자기야말로 진짜 금사슴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드디어 군중들도 이쪽이다 저쪽이다, 무리를 짓고 편 가르기를 했다. 양편 지지자들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이성을 잃고 돌을 던지기도 하고 멱살을 잡기도 했다.
길수는 이러다가 두 마리 모두 금사슴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군중들의 선두에 서서 외쳤다.
“두 분 모두 사슴이기는 하나 금사슴은 아닙니다. 두 분은 물론 두 분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착각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두 분은 힘을 합쳐야만 군중들의 소망을 열어 줄 금사슴이 됩니다. 단일화를 하십시오.”
목이 쉬도록 외쳤다. 그러나 단일화의 길은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국민들이 그토록 소망하며 피를 흘려 얻은 밥상이 또다시 간사한 승냥이에게 뺏길 형국이 되었다. 길수는 너무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최후의 결심을 했다.
“내가 사슴 주변에 있는 안개를 밀어낼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 일찍이 서울 아저씨들이 예언했다. 금사슴을 찾을 사람이라고. 내가 금사슴을 찾아 간절히 소망하는 군중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금사슴을 찾아서 모시지 못하면 나는 이미 윤길수가 아니다. 나의 몸을 던져 불을 밝힐 것이다.”
마침내 비장한 결의를 했다. 몸에 시너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불이 환하게 붙자 그는 크게 외쳤다.
“두 분 사슴님, 빨리 주변에 안개를 걷어내고 단일화하여 민중이 소망하는 금사슴이 되십시오. 이 기회를 놓치면 두 분 모두 역사의 죄인이 됩니다.”
그는 그의 몸이 타들어 가면 그 불빛으로 두 마리의 사슴은 주변에 가득 찬 안개를 밀어낼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불빛은 그가 생각한 만큼 밝은 불길을 만들지 못했다. 잠깐 깜빡하기는 했지만 그 불길마저 이내 희미하게 식었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최후의 순간까지 외쳤다.
“합쳐야만 합니다. 제발 힘을 합쳐 국민들이 소망하는 금사슴이 되십시오.”
그가 아무리 외쳐도 다시 안개는 짙게 깔렸다. 결국 그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했다. 겨우 몇 줄의 활자가 까아만 울음을 울었을 뿐이었다.
“야 이놈아, 금록동 금사슴을 찾으라고 했지, 누가 니보고 서울 땅, 금사슴 찾아라 했나. 서울에는 금사슴이 없는 기여. 없는 금사슴을 니라고 용빼는 재주가 있다더냐. 전부 용 못된 깡칠이데이.”
길수 어머니는 금사슴을 쫓다가 쓰러진 길수의 주검 앞에 실신했다. 서울 사냥꾼 아저씨들도 눈물을 흘렸다.
“윤길수 민주 열사.”
그의 이름을, 그를 따르던 몰이꾼들이 헹가래를 쳤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영원히 그와 함께 한다던 오열도 거짓말이었다. 그 날 이후 그는 점점 잊히어 갔다.
연대장의 배 나온 모습이 약간 기우뚱했다. 언덕을 내려오는 연대장 숨소리가 거칠었다. 그는 내가 머뭇거리는 현장에 오자 담배부터 한 대 입에 물었다. 연대장은 줄담배 아저씨를 너무 닮았다. 그도 지독한 골초인데다 구레나룻과 날카롭게 쏘아보는 가시눈, 냉정한 인상도 너무 닮았다. 나는 급하게 다시 길수에게 물었다.
- 길수라면 어떻게 할 건데?
- 나의 정답은 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니? 지뢰지대라도 뛰어 들어야지.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것 아니니?
‘김동국 소위’ 나의 이름은 누가 헹가래 칠까. 정 하사, 송 일병, 중대장, 강 상사, 금록동 사람들, 서울 아저씨들 모두가 아니다. 죽는다는 것은 죽는 것이지 죽어도 산다는 말에 쉽게 동의를 하지 못한다.
- 왜 머뭇거리고 있어?
- 도저히 더 작업을 진행할 수가 없습니다.
- 뭐야 장교가. 정말 ‘똥국 맹꽁이’구먼.
연대장은 군화 뒤축으로 꽁초를 신경질적으로 비벼 껐다. 담배 가루는 씨앗처럼 땅속에 파고들었다.
- 지뢰 탐지기를 벗어. 내가 들어가지.
중대장이 나섰다.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연대장은 6중대장을 힐끔 쳐다보았을 뿐 덤덤한 반응이었다. 연대장은 월남전의 무용담을 틈틈이 훈화 자료로 사용했다. 총알을 빗맞아 피를 흘리며 도망가는 베트콩을 끝까지 추격하여 생포했다. 길수가 노루를 악착같이 쫓아간 것과 같았다. 한 번 한다고 결심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그의 성격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
- 만일 작업을 계속할 수 있으면 귀관은 입창이야.
입창이라니, 군대 교도소에 감금시킨다는 것 아니냐. 파도처럼 주름살이 파이고 지렁이 같은 힘줄이 일어섰다.
“소대장님, 몸이 불편하시당께요?”
송 일병의 걱정스런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연대장과 중대장이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갈증이 일어났다. 수통을 찾았다. 밀려오는 햇살이 은빛 각시가 늘어뜨리는 줄처럼 가로로 걸쳤다. 정 하사는 연방 빈 코를 훌쩍이며 뒤통수를 문질렀다. 늦잠에 빠진 듯한 노루. 순하디 순한 모습. 눈알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 평화는 조금도 깨어지지 않았다. 그 평화로운 모습 어디에도 무서운 ‘앙갚음’, ‘앙화’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의 평화를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노루를 고이 묻어 주자.”
소대원들이 한마디쯤 할 줄 알았는데 순순히 응했다. 그들의 머리에는 이미 노루는 식용동물이 아니었다. 초겨울을 두드리는 곡괭이의 소리가 메아리로 되돌아왔다. 타원형의 구덩이 하나, 노루가 조용히 흙 속으로 모습을 감출 때 꿩 한 마리가 갸르륵 긴 울음을 토했다. 영결을 서러워하는 것이다. 푸석한 흙더미 위로 윤기 잃은 낙엽들이 몰려들었다. 노루의 장례식은 처음이다. 하기야 내가 경험한 장례식이래야 두 번밖에 없다. 길수가 처음이고 다음이 노루다. 두 번 다 열심히 묻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들은 그 자리에 있을 뿐 전혀 묻히지 않았다. 올가미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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