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 구림마을
행전 박영환
영암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 구림미을을 찾았다. 이 마을은 2200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인데 일본에 한자와 유학을 전한 왕인박사와 신라 때 풍수지리의 대가로 이른바 '도선비결'로 유명한 도선 국사 탄생지이다.
마을 전체가 전통기와집과 오래된 정자들이 즐비하다. 서원만 해도 4곳이나 있는 곳이며 450여 년 동안 구림대동계가 존속되어 오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도 코로나의 방역을 위해 모든 시설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이 원래 벚꽃이 만개하는 이 즈음에는 축제가 열려 왕인박사 기념관을 공개하고 도기문화센터에는 도예체험을 하는 등 많은 체험프로그램들이 운영되었으나 벚꽃만 구경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월출산 내의 기찬랜드 안의 하춘화 한국트로트 가요센타 등도 입장할 수 없었다.
그나마 한옥 민박집은 운영되고 있어 마을을 돌아보고 난 뒤 쉴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어록: 만약 호남이 없으면 조선도 없다 -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953년 7월 삼도 수군 통제사 충무공 이순신이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 한 말








이곳 기념관에서 조재천 님이 조행립 선생의 후예란 것을 알았다. 이 분이 호남 출신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영암이 고향이란 것은 처음 알았다. 이 분은 자유당 정권 때는 국회의원을, 장면 총리 때는 장관을 지낸 분이다. 이분이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대구에서 민주당 공천으로 당시 자유당 후보와 대결을 벌여서 당당히 당선되었다. 지금 같으면 호남 출신이 민주당 간판으로 대구에서 당선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 당시에는 전혀 지역감정이 없었고 더구나 대구는 철저히 야당 도시, 민주당의 아성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이 대구를 일컬어 제2의 모스코바라고 칭할 정도였다. 일화에 이 대통령이 대구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대구역 플랫폼 에서 '친애하는 대구 시민 여러분' 이라고 잠깐 연설하고는 도망가듯이 가버렸다고 한다. 그 때 휴일이나 공휴일은 선거유세를 우리가 다니는 중학교 운동장에서 했는데 그 분이 자유당의 부패와 무능을 심판하자고 준엄하게 성토할 때 투표권도 없는 내가 열열히 성원하며 박수를 보내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구가 보수정권을 지지하는 도시로 바뀐 것은 박정희 대통령 이후이다. 지금도 그때처럼 영호남 가리지 않고 전라도 사람이 대구에서 대구 사람이 전라도에서 인물본위로 당선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래 한시는 왕인박사를 기념하는 축제에 즈음하여 백일장에 출품했던 작품이다. 사실은 그 때는 구림마을에 와 보지도 않고 문헌 자료를 참고하여 적었던 것이다. 글을 쓰면서 박사의 유적지를 꼭 한 번 들리겠다고 생각하고 이 번에 큰 맘 먹고 왔는데 바깥에서만 보고 돌아서야 하니 무척 허전하다.
王仁文化觀光祝祭選定
王師聖地朗州城 왕사성지낭주성
祝祭懸燈處處明 축제현등처처명
窮理潛心修養跡 궁리잠심수양적
抱篇渡海講磨聲 포편도해강마성
鳩林別界誇佳色 구림별계과가색
月出雄姿振偉名 월출웅자진위명
一體官民團合裏 일체관민단합리
觀光活潑大歡迎 관광활발대환영
왕사(왕인) 성지인 낭주성에
축제의 등불이 곳곳에 밝다
마음을 가라앉혀 이치를 깊이 연구한 발자취
책을 가지고 바다를 건너 강의와 연마를 한 소리가 있네
구림의 별계는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월출산 웅장한 자태는 위대한 이름을 떨치네
모든 관민이 한 몸 되어 단함한 속에
관광이 활발한 것을 크게 환영한다
*왕인
백제의 근초고왕 때 학자. 일본의 초청으로 『논어』(論語) 10권. 『천자문』(千字文) 1권을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유풍(儒風)을 천명하였으며, 그 해박한 경서(經書)의 지식으로 하여 신임을 받고 태자(太子)의 스승이 되었다. 이것은 일본의 문화를 깨우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자손은 대대로 그곳에 살면서, 학문에 관한 일을 맡고 일본 조정에 봉사하여 문화 발전에 공헌하였다. 일본의 역사책 『고사기』(古事記)에는 그의 이름을 와니키시라 하였고, 『일본서기』(日本書記)에는 와니(王仁)라고 나와 있다. 우리 나라 역사에는 그의 이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라남도 영암에 그의 석상 및 유적지가 있다.


상대포 누각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상대포는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 상대 마을 서쪽에 있었다.
설화에 의하면 상대포에서 왕인이 일본으로 떠났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도갑사 대웅전도 코로나 방역 때문에 문이 닫혀 있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히 큰 고찰이었다. 도갑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신라 말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머물렀다고 한다. 조선 세조 때 수미 왕사(守眉王師)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으나 1977년에 화재로 대웅보전이 소실되었다가 복구되었다. 도갑사에는 국보 제50호로 지정된 해탈문(靈巖 道岬寺 解脫門)을 비롯하여 많은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온 세상이 벚꽃이다. 옛날에는 벚꽃이 유명하여 이름을 떨치는 곳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지역 벚꽃이 더 좋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영암의 벚꽃도 눈부시게 곱다. 빨리 코로나가 종식되어 이 고운 꽃그림자 속에 왕인박사 축제가 열리기를 기원한다.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경남 밀양 상동면 박연정 (0) | 2023.01.06 |
|---|---|
| 전남 완도의 청산도 여행 (0) | 2023.01.06 |
| 밀양 소태리 천죽사 등 (0) | 2023.01.05 |
| 김천, 직지사와 문화공원 (1) | 2023.01.05 |
| 전북 순창군 장류박물관 (0) | 2023.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