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여행
행전 박영환
2021년 3월 31일, 전남 영암에서 1박 한 뒤 4월 1일 아침 청산도로 가기 위해 완도 여객선 터미널로 향했다. 사실 이 번 우리 부부의 여행은 나름 의미가 있는 여행이다. 3월 31일은 우리 부부가 만나 결혼한 지 50년이 되는 날인 것이다. 오래전부터 아내와 해외여행이라도 한 번 하자고 약속을 했는데 코로나가 해외 길을 막아둔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나선 곳이 영암과 청산도이다.
아직 코로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여행을 한다는 것도 퍽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혹여 나이 든 사람이 잘못 외지에 다니다가 바이러스에 감염이라도 된다면 그것도 큰 민폐요 주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이 망설이다가 최대한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아무튼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니 11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는데 막 배가 출발하고 없었다. 13시 배를 탈 수 밖에 없으니 두 시간이 남았다.
완도 수산물 시장에 들러 전복을 약간 구입했다. 전복 산지답게 값도 괜찮았다. 곁들여 우럭 한 마리를 사서 매운탕을 해서 먹고 나니 그럭저럭 배에 승선할 시간이 가까웠다.

차를 데리고 가지 않고 청산도 내 버스나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먼저 갔다온 분들에 의하면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 여행하기에 편하다고 하여 가지고 가기로 했다. 또 코로나 때문에도 가지고 가는 것이 더 좋은 것은 사실이다. 대형 페리호이니 뒤로 들어간다든지 하는 불편도 없이 바로 들어갔다가 배안에서 한 바퀴 돌아 정면으로 주차해놓았다가 바로 나오니 편했다.

청산도는 사실 오래 전부터 한 번 들리고 싶은 곳이었다. 서편제 영화를 보면서 그림처럼 아름다운 그 정경에 매료되어 있었는데 좀처럼 기회가 닿지 않았다.
청산도는 이름부터 친근감이 간다. 내고향이 청도이니 한자는 달라도 어쩐지 어감이 비슷하지 않는가.
청산도(靑山島)’는 이름 그대로 푸른 섬이다. 맑고 푸른 다도해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해 예로부터 신선들이 산다는 ‘선산(仙山)’ 또는 ‘선원(仙源)’이라고도 불렸는데 청도 역시 맑고 순박한 인심의 고장이니 참 많이 닮은 것이다. 바람이 제법 불었지만 50여분의 운항 끝에 무사히 청산도의 관문인 도청항에 도착했다. '도청'이라는 지명이 좀 특이하게 느껴졌다. 원래 마을 이름을 ‘경치(鯨峙)’라 하였으나 이후 ‘불목리(佛目里)’라 하였고 조세를 받던 기관 국세미도봉청(國稅米都奉廳)이 설치되면서 ‘도청리(都廳里)’로 불려 오다가 도봉청(都奉廳)이 폐지되고 ‘도청리(道淸里)’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청산도는 2007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선정된 이후 이야기가 있는 문화탐방로 선정(2010년), 국내관광지 100선(2012년), 가장 아름다운 농촌마을(상서마을, 2013년), 일본 한류팬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촬영지(2014년), 아름다운 자전거 길 100선(2016년), 한국관광 100선(2017년)에 선정된 슬로시티이다.
면적 33.28km2, 해안선 길이 42km로 섬 한가운데에는 385m인 매봉산 이외에 대봉산(334m)·보적산(330m) 등 300m 내외의 산이 사방에 솟아 있다. 이들 산지에서 발원해 사방으로 흐르는 소하천 연안을 따라 좁은 평야가 발달했으며, 중앙부와 서부 일부 지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남쪽 해안에는 10∼20m의 높은 해식애가 발달하였고, 동백나무·후박나무·곰솔 등의 난대림이 무성하여 경승지를 이룬다.
그런데 도착하니 거의 태풍급 바람에 비까지 내렸다. 어쩔 수 없이 숙소에서 내일을 기약하며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4월 2일
날씨가 좋으면 숙소에서 가까운 노적도 일출 전망대에서 해돋이를 볼 생각이었지만 역시 흐린 날이라 그만두었다. 다행히 어제보다는 바람의 강도가 조금 순해지고 비가 오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처음 찾은 곳이 범바위이다. 범바위 아래까지 차가 올라갈 수는 있으나 길이 좁아 중도에 반대편에 차라도 나타나면 매우 곤란할 것 같았지만 이른 시간이 되어서 그런지 내려오는 차가 없어 무사히 올라갔다.

범의 웅크린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혹은 바람이 불때면 바위틈을 지나면 범 우는 소리가 난다하여 범바위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이 기를 받기 위해 찾는 곳이다.
처음에는 범이 잘 보이지 않아 이쪽저쪽 살폈는데 자세히 보니 범의 형상이 나타났다. 보는 쪽에서 왼쪽이 범의 머리이고 맹호의 강렬한 눈빛도 느낄 수 있었다. 중간은 허리이고 다리와 꼬리도 보였다. 남쪽에서 보거나 권덕리 마을에서 보면 또 다른 형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바람에 섞여 호랑이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호랑이님께 여행길이 무사하기를 빌었다.


전망대에서 다시 범바위를 살피고 뒤에 있는 작은 범도 찾았다. 역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청산도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읍리에는 청동기 시대 대표적 무덤인 고인돌이 있었다. 대표적인 남방식 지석묘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청산도의 하마비는 민간신앙과 불교가 결합한 신앙물로 자연석에 부처를 새겼는데 아무리 지체 높은 사람이라도 이 앞을 지날 때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청산도는 보리와 유채꽃이 유명한데 아직 보리는 익지 않았고 유채꽃은 만발했다. 여기저기 관광객들이 유채꽃 풍경을 담는 모습들이 보였다. 아내 모습도 담아보았다. 50년 전에는 참한 아가씨였는데.... 내가 너무 고생을 시킨 것 같다.


청산도 항에서 해안을 따라 오른쪽 길을 오르면 100만 관객이 몰려들었던 영화 서편제 촬영지가 나타난다. 이 길에서 서편제 주인공 유봉과 송화, 동호 세 사람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돌담길을 내려왔는데 영화 장면이 떠올라 우리도 그길을 같이 따라 걸었다.






전복의 고장답게 섬 곳곳에 이런 전복집 작업을 하는 곳이 많았다.

안통길에는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번성했던 청산 파시의 옛 생활문화와 역사가 남아았다. 곳곳에 잡화가게며 술집 등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한 때는 이곳이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한적한 뒷골목을 밀려나 있다.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구 면사무소 건물이 청산도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전하는 전시관으로 리모델링되었다. 일제 강점기의 건축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시대사적 보전가치가 높은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은 차도 들어가지 못할 높은 계단 위에 있는 건물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새로 지은 면사무소와는 격세지감이 든다.

청산도에서 볼 수 있는 인상적인 풍경으로 구들장논을 꼽을 수 있다. 논바닥에 돌을 구들처럼 깔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만든 논으로 자투리땅도 놀리지 않았던 섬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국가중요농업유산 제1호 지정,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숭모사는 조선말기 문신 김류 선생의 학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공은 부흥리에 머물면서 후세들의 교육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청도 지역의 서원과 재실 사당등을 탐방하여 연재하고 있는 입장이라 이곳의 사당은 어떤지 궁금했는데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해 아쉬웠다.

상서마을은 마을 전체가 구불구불한 돌담으로 이루어져있다. 층층이 쌓아올린 돌담은 소박하게 지어진 농가와 조화를 이루어 포근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상서마을 옛 담장은 2006년 등록문화재 279호로 지정되었다.
이곳 청산도의 다른 마을의 담장도 대부분 이렇게 돌담이다. 그런데 다른 마을은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이곳은 거의 옛날 모습으로 남아 있다.


진산리 갯돌해변은 모래사장이 아닌 동글동글한 갯돌로 이루어진 곳이다. 갯돌을 쓸고 내려가는 파도소리가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해돋이로도 유명한 곳이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마침 정자도 하나 있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청산도 어느 동리 담벼락에 적어둔 글귀가 마음에 닿았다.
전라남도 끝머리에 위치한 완도에서도 남동쪽으로 약 20km 남짓 떨어진 청산도는 뱃길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먼 길이지만, 한번 다녀온 후에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두고두고 남는 환상의 섬이다.
청산도에서 배웠으니
-아내에게
행전 박영환
3월 31일에서 4월 3일까지
어쩌면 등 떠밀려 길을 나선지 모르지만
2개월을 여행한 것 같구려
50년을 같이 살았는데 고작 4일을 2개월로 포장하는 기술을
청산도에서 배운지 모르겠네
돌아보니 잠깐인데
뭐가 그리 할 일도 많고 급하고 바빴는지
다툴 일도 생기고
그래도 아이들 잘 자라 주고
더러는 고장난 여기저기 땜질도 했지만
일년에 12장, 50년이니 600장 달력을 같이 넘긴 것 아니겠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달력장을 넘길 수 있을는지
좀더 머물어 달라고 부탁을 하던 날도
빨리 떠나버리라고 재촉을 하던 날도
돌아보니 추억이고 사랑이었던 것 같구려
청산도에서 느리게 가는 마음의 여유를 배웠지 않소
천천히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또 다른 50년을 시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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