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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강원도 양구를 찾아서

강원도 양구를 찾아서 / 행전 박영환

 

 

  2019년 7월 23일부터 24일, 1박 2일간 강원도 양구에서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양구까지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청도에서 무려 400킬로미터에 5시간 정도 운전을 해야 도달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양구에 가기 전 속리산 법주사를 거쳐 경기도 광주까지 갈 기회가 생겼는데  그때 마침 백화(화가, 시인) 씨 부부가 양구에 올 일이 있으니 만나면 좋겠다고 권하는 통에 같이 합류를 하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양구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강원도 북단 휴전선 접경한 조그마한 군이란 정도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생각하던 이상으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던 역사도 깊고 볼꺼리도 많은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양구 선사박물관이며 고인돌 공원도 있었습니다. 여기 와서 안 것이지만 양구인들은 이곳이 국토의 중앙, 즉 배꼽이라고 생각하여 배꼽축제도 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중앙인가. 바다의 경계선까지 전부 우리의 국토로 봤을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토정중앙천문대'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정동진과 정남진이 있으니 정중앙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스포츠 영웅탑

 

 

  이곳은 안병욱 김형석 교수를 기리는 철학의 집입니다. 전에 김형석 교수가 출연한 방송을 통해 소개된 적이 있는 곳입니다. 두 분 철학자의 살아온 과정과 발자취가 여러 자료와함께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안병욱 교수 서재

 

 

 

 

 

김형석 교수 서재

 

 

등운사 대웅전

 

스님이 건네주는 따뜻한 차와 다과가 먼 길을 달려온 여독을 풀었습니다.

 

 

 

 민간인 출입 통제선 북방에 위치한 두타연에 들렀습니다. 

 방산면 안내소에서 출입신청서와 서약서를 작성한 후 신분증을 제출하여 확인을 받은 뒤에 태그(위치 추적목걸이)를 받아 군 경비실에 신고하고 점검을 받은 후 차량으로 이동하여 다시 해설사의 설명과 주의사항을 들은 뒤 들어섰습니다. 

  이곳은 금강산 가는 길목(금강산까지 32 킬로미터)에 있습니다. 천혜의 비경을 가진 국내 최대의 열목어 서식지이고 천년 전 두타사란 절이 있었다는데 연유한 이름이며 휴전이후 50여년 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어 오다가 개방되어 민통선 내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낄 수 있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군 부대를 들어서니 옛날 ROTC 훈련을 마치고 민통선 안인 철원지역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이 떠올라 또다른 감회가 있었습니다.

 

 

 

 

 

 

 

 

 

 

 

 

 

 

 

 

 

 

 

 

 

 

내 비록 부족하더라도 오늘은 회정선사가 한 번 되어 보고 싶소. 그대는 관음보살이 되어 주오.

우리는 같이 살면서도 몰라보던 그들은 되지 맙시다. 만나게 해달라고 계족정진으로 애태우지 맙시다. 

번뇌의 티끌 저 물소리에 다 실어보내고 눈을 감아도 여기에 있고 눈을 떠도 저기에서 바라보며 

오늘을 오늘 같이 내일도 지금같이 동행의 기쁨으로 서로의 손을 놓지 맙시다.  

 

 

가시 철조망 꽃이 되듯, 어렵고 고된 일 꽃으로 일구어 오래오래 정겨운 웃음으로 오순도순 

서로에게 길을 물으며 가슴에 큰 종소리를 품고 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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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촬영차 방문한 탈렌트 최주봉 씨를 만나 사진 한 장을 남겼습니다.

 

 

 

양구가 낳은 박수근 화백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박수근 (朴壽根, 1914 ~ 1965) 화백은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는 양구군 군내면 정림리로 좋은 약수와 대나무 숲이 무성해 예전에는 '정죽림리'라고 불리었습니다. 마을 앞으로는 서천이 흐르며 뒤로는 사명산 자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양구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인제군에서 독학으로 미술 공부를 하였습니다. 1932년 제11회 조선 미술 전람회에 입선함으로써 화단에 등장하였습니다. 해방 후 월남하여 1952년 제2회 국전에서 특선, 미술협회전람회에서 입상하였습니다. 1958년 이후 미국 월드 하우스 화랑·조선일보사 초대전·마닐라 국제전 등에 출품하는 등 국내외 미술전에 여러 차례 참가하였습니다. 1959년에 제8회 국전 추천 작가가 되었고, 제11회 국전에서는 심사위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회백색을 주로 하여 단조로우면서도 한국적 주제를 소박한 서민적 감각으로 충실하게 다루었고, 한국인 화가 중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평범한 한국의 서민상을 주제로 삼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