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 장모님과 거제도 나들이/ 행전 박영환

<장모님(좌)와 미국에서 오신 할머니(우)>
2016년 9월 11일(일), 동서내외, 처남과함께 아흔 한살의 장모님을 모시고 잠깐 거제도 나들이를 했다.
처음에 간 곳이 거제 맹종죽테마파크이다.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게되니 무척 좋아하셨다. 연세가 있으시니 걸음을 걷는데는 약간 어려움이 있어도 아직 기억력 하나는 젊은이 못지 않으신 분이다. 맹종죽은 그야말로 왕대 중에 왕대이다. 구십 평생에 이렇게 큰 대나무는 처음보았다고 하면서 직접 만져보며 연신 감탄사를 만드셨다.
그런데 거기에서 이상하게 외국분을 만나게 된 것이다. 가족들이 한국여행 중이었다. 우리는 그 외국인 부부의 아들이 귀여워 같이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의 그 장면을 보면서 장모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우리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인데 장모는 그 외국인을 보면서 미국에 살고 있는 큰 아들을 생각한 것이다.
"저렇게 나올 수 있는데..."
혼잣말이었다. 지금 아들은 사정이 있어 국내에 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까지는 또 그런대로 지나갔다. 그 다음 결정적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마침 대나무 의자에 잠시 쉬고 있는데 우리와 같이 어떤 분이 나이 드신 분을 모시고 우리 옆 의자에 와서 앉았다. 자연스럽게 연세가 얼마냐고 하니 아흔이라고 했다. 아흔인데 아주 정정했다. 장모님도 나도 아흔 하나라고 하면서 서로 친근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다음 순간 장모님이 물었다.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그 때 그 할머니, 멀리서 왔다고 했다. 다음 순간 멀리라고 하면 하고 좀더 구체적으로 물었는데 미국에서 왔다고 했다. 미국이라는 말에, 아하 이것 뭔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모님은 오는데 힘이 들지 않았느냐고 묻더니 그럼 나도 갈 수 있을까 하고 속마음을 내비치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렸느냐고 하니 13시간이라고 했다. 그러자 이상하다는 듯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그 동안 가시면 안되는 사정이 있어 40시간이나 걸리니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 할머니도 약간 이상한지 갸우뚱했다.
할머니는 7녀 1남 8남매를 두었는데 미국에 딸이 네 명 있다고 한다. 그러나 딸과 같이 있지 않고 아직 혼자 독립하여 살고 계신다고 했다. 미국 공항에서 10년 간 청소 일을 하셨기에 시민권도 나왔고 아파트도 하나 받고 연금도 받고 있어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다고 했다.
장모님도 7남매를 두었다. 할머니와 비슷한 점이 많았다. 헤어질 때 장모님은 그 할머니 손을 잡고 미국 소문을 들려주어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돌아서면서 아들 생각에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사정을 말씀드릴 수 없는 우리는 안타까워 발만 굴릴 뿐이었다.
이 맹종죽이 효도의 대나무이다. 중국 삼국시대 맹종이란 사람이 겨울에 구할 수 없는 죽순을 하늘의 도움으로 구하여 노모의 병환을 구완하였다는 이야기에서 맹종죽이 된 것이다. 효자의 설화가 있는 이곳에서 장모님의 눈물을 보게 되었으니 너무 안타깝다.
다행히 오래 가지는 않고 눈물을 감추고 다시 밝게 돌아오시기는 했으나 내내 마음이 아팠다.





















거제 바닷가


거제 바닷가


위의 두 장 사진은 물금 근처의 낙동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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