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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가 좋다

청도군 운문면 방지리

청도군 운문면 방지리/ 행전 박영환

 

  2019년 3월 1일, 청도군 운문면 방지리를 찾았다. 원래는 이곳은  금천면 방지리였으나 1995년 운문댐 건설과 함께 수몰민들이 이주하여 세운 이주 단지가 형성하면서 금천면 방지리를 나누어 운문면 방지리로 삼은 곳이다. 이곳에도 운석재가 있다.

 

 

 

운석재(雲石齋)

 

관리문중: 김해 김씨

 

소재지: 청도군 운문면 방지리 550

마을 뒷산 기슭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건물구조: 3칸 규모의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팔작지붕 4칸 전퇴(3, 마루1, 중당협실형)의 재사가 있다. 홑처마이며 시멘트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구체부를 구성했다. 대청마루에 이종은(李鍾殷)이 쓴 雲石齋 13세 주손인 김진곤이 찬한 雲石齋 上樑文이 걸려있다. 담장 밑에는 많은 수석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마당은 시멘트로 마감했으며 블록담장을 둘렀다. 재사 뒤편에는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다.

 

배향인물: 백운(白雲) 김선보(金善輔)

본관은 김해이며 호는 백운이다. 학문을 좋아하여 덕망과 경륜이 높았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운문산에 은거하였다.

 

연혁: 1960년에 건축했으며 오랜 세월에 훼손된 것을 2000년에 대문채도 새로 건립하고 본채 및 마당과 담장도 새로 보수했다. 현재 이 마을에는 김해 김씨가 50여 호 살고 있다.

 

 

 

 

 

 

 방지리 

 

디지털향토문화대전에는 운문면 방지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명칭 유래]

저수지가 있는 곳은 대부분 한자로 방지(防池)라고 표기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마을 이름을 표기하면서 방지(芳旨)라고 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중동면에 속했으며 당시 상방지(上芳池)와 하방지(下芳芝)로 나누져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상방지와 하방지를 병합하여 방지동이라 하여 금천면에 편입되었다.

 

운문면 방지리는 2005년 운문댐 축조로 인하여 물에 잠기고 수몰민을 이주시키기 위해서 금천면 방지리를 나누어 일부를 운문면 방지리로 분할하여 형성되었다.

 

 

[자연 환경]

구룡산 지맥이 내려와 뒷산을 이루고 있으며, 까치산을 마주하고 있는 방지리는 운문댐 축조로 인하여 만들어진 이주 단지이다. 동쪽과 서쪽으로는 산이 있으며 마을 앞에는 운문댐 하류보가 설치되어 있다.

 

 

[현황]

2012 7월 현재 면적은 3.07이며,  115가구에 210[남자 113, 여자 97]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운문면 방음리, 서쪽은 금천면 소천리, 남쪽은 금천면 방지리·임당리, 북쪽은 운문면 대천리·순지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이주 단지답게 구획 정리가 잘 되어 있고, 경작지는 마을 앞 국도 20호선 아래로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다. 국도 20호선은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 도로를 따라 방지리에서 출발하여 대천 공용 버스 터미널, 봉하리, 마일리, 지촌리, 공암리를 지나 다시 방지리로 오는 순환 버스가 다닌다.

 

동창천 건너편에는 구획 정리를 하여 시설 지구로 되어 있다. 운문댐 및 운문사로 향하는 입구 마을인 방지리는 대천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상점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서 정착했고, 연간 2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운문댐 하류보 유원지가 있다.

 

청도군과 경상북도에서는 방지리에 휴양·문화·운동·오락·숙박 시설 등이 갖추어진 297 4000 규모의 신화랑 관광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신화랑 관광지는 2016년 완공을 예정이며, 총 사업비는 678억 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참고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도주지(1958, 김석봉 편)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 김해 김씨 후손 및 마을 주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