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군 청도읍 거연리/ 행전 박영환
2019년 3월 4일,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를 찾았다. 이곳에도 납청재와 영모재가 있다.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거연리 금호마을에 남평문씨 재실도 있었으나 1980년대에 뜯었다고 한다. 거연리는 청도천을 따라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자연부락은 금호(20호), 사촌(13호), 단산(38호), 하지(17호), 기곡(14호)이 있다.
처음 찾은 곳은 납청재입니다.

납청재(納淸齋)
◯관리문중: 고성 이씨
◯소재지: 청도군 청도읍 단산길 12-45(거연리 기수곡 마을)
오례산성을 뒤로 하고 청도천 맑은 물이 굽어도는 단산 마을 앞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구조: 3칸 와가 평대문을 들어서면 정면4칸 측면1칸 ㄱ 자형 구조의 재사가 있다. 방이 3칸이며 마루가 2칸이다. 재사 보호를 위해 창문을 달았으며 마당은 디딤돌로 마감했으며 돌담을 둘렀다.
◯배향인물: 이탕(李宕)
자는 대곽(大廓), 호는 납청헌(納淸軒)이며 본관은 고성이다. 모헌공 이육의 후예로 군기시(軍器寺) 주부(主簿)를 지냈으며 만년을 이곳에서 제자를 기르고 학문을 연구하며 벗들을 맞아 풍류를 즐겼다. 재사 앞 강변에 350년 정도 수령의 은행나무 두 그루는 그가 심은 것이다.
◯연혁: 1690년에 창건했으며 그 이후 여러 차례 중수했다. 현판과 납청재기가 있었으나 분실했다. 2006년에 하당을 신축했고 2015년에 창문을 달았다.
이 마을에 옛날에는 후손들이 많이 살았으나 현재는 5-6호 정도 거주하고 있다.

납청재는 돌담으로 울을 했다.

납청재 앞 정경

<은행나무>
다음은 영모재 편입니다.

영모재(永慕齋)
◯관리문중:영일 정씨
◯소재지: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 1023
하지마을(샛갓) 용두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속도로 새마을 휴게소 밑, 레일바이크가 옆에 있다.
◯건물구조: 목조와가 정면 4칸 측면 1칸이었으나 현재는 누수로 상당히 훼손되어 있다.
◯배향인물: 문정공 정사도(鄭思道)
본관은 영일이며 자는 계백(啓伯)이다. 1336년(고려 충숙왕 복위 5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권지 전교교감, 직제학을 지냈으며 모친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를 했는데 공민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일성군에 봉했으며 우왕 때 오천군으로 개봉된 공신이다. 영일의 오천서원에서 매년 제향하고 있다.
◯1940년에 건축

거연리(巨淵里)
디지털 청도문화대전에는 거연리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개설]
오례산성의 서문 쪽에 위치하며, 금호, 사기점, 단산, 기수골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명칭 유래]
‘거연’이라는 큰 못이 있어서 거연(巨淵)이라 했다. 청도천이 구미리에서 내려오다 뿔바위를 만나 큰 구비를 이루고 다시 휘돌아 사촌리(사기점) 앞에서 급하게 흘러 그 물살이 마을 앞에서 큰 소를 이루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오례산성의 축조연대는 알 수 없지만 그 아래 형성된 자연 마을로는 시점이 즉 금호와 계곡(桂谷), 사기점(沙器店), 그리고 단산이 있다. 시점이는 쇠점이라고 하며 쇠를 다루어 농기구를 만들었던 곳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마을 뒤 밭 근처에서 슬러지(sludge)를 발견할 수 있다. 사기점은 사기그릇을 만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단산은 거연리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마을 앞 청도천에 신도리 쪽의 산이 불쑥 나와 큰 연(淵)이루어 거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청도군 하남면의 지역으로서 거연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거연동이라 해서 대성면에 편입하였다. 이후 1940년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개명하면서 청도면 거연동이 되었고, 1949년 청도면이 청도읍으로 승격하면서 청도읍 거연동이 되었다. 1988년에 거연동에서 거연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거연리는 청도 김씨의 시조인 영헌공 김지대의 출생지로 알려졌다. 김지대의 어머니가 강에 빨래하러 갔다가 잉어와 접한 뒤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탄생 설화가 있다. 마을에서는 쇠를 다루었다는 것과 사기그릇을 만들었다는 사기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인(匠人)들이 거주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자연 환경]
용각산 지맥이 유천으로 뻗어 가면서 오례산에서 크게 솟아 오른 부분의 자락에 있다. 서쪽으로 청도천이 흐르고 있으며, 동쪽은 모두 산으로 막혀 있다. 남북으로 트여 있으나 청도천이 차지하고 있어 농경에 좋지는 않다.
[현황]
동쪽은 매전면 송원리·구촌리, 서쪽은 청도읍 원리·신도리, 남쪽은 청도읍 유호리·사촌리, 북쪽은 청도읍 원곡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금호, 계곡(桂谷), 사기점(沙器店), 단산, 기수골 등이 있다.
농경에 좋지 않은 땅이어서 예로부터 사기그릇을 만들거나 쇠를 다루어 농기를 만드는 일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례산성을 가려면 가장 짧은 거리인 기수골을 거쳐서 올라가야 하는데 산자락에 형성된 밭은 대부분 과수작을 하고 있다. 높은 곳과 개간되지 않은 산에는 밤나무가 많이 있어 옛날 밤 밭으로 알려진 땅징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속 도로가 거연리 서쪽을 지나고 있다. 청도 휴게소가 거연리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서쪽으로 청도천 건너 신도리의 동쪽 경계선을 따라 경부선 철도와 국도 25호선이 나란히 지나간다. 청도 하수 종말 처리장이 있다.
한편 청도군지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건현(巾峴), 오례산(烏禮山) 등 높은 산줄기가 마을 뒤로 뻗어 나가면서 곳곳에 만든 협곡과 산비탈에 나뉘어 취락된 마을 앞을 청도천이 바싹 붙어 흐르고 있다. 청도천 양변으로 다투기나하듯 산들이 서로 마주하여 달려가는 청도 협곡의 중앙부에 해당되는 곳이다.
이런 지형적인 탓으로 자연부락이 많은 것도 하나의 특색이다. 산비탈을 따라 하천이 흐르고 있어 마을이 형성된 것은 오래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나 단정하기가 어렵고 다만 부락단위로 보면 단산(丹山)에는 1600연대에 고성 이씨가 마을의 기초를 다졌다하며, 금호(金湖)에도 거의 같은 무렵에 김해 김씨가 입촌했다고 하나 이보다 훨씬 앞선다는 설도 있다.
사촌(沙村)에도 밀양 박씨가 금호보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정주하였고 계곡(桂谷)에도 영천 이씨가 다른 마을보다 약100년이나 앞서 입주했다는 것이다.
단산(丹山)
뒷산에 나무가 없어서 붉은 흙산이라고 붙여진 것이며, 금호(金湖)란 시점, 쇠점(철점-鐵店)으로 철광을 캐내어서 여러가지 철제그릇을 만들어낸 마을로 앞에 내가 흘러서 리명을 금호로 개명하여 현재도 통칭되고 있다.
사촌(沙村)-사기점
도요지가 있어 사기를 구워내던 마을이라 하여 사기점으로 불리어지다가 사촌으로 개명한 것이다.
계곡(桂谷)
마을 뒤 계곡에 계수나무가 많이 우거져 있어 붙여진 동명이다.
새갓, 하지(下枝)
거연리 최하단부에 취락된 마을이라 하지라 한다.
참고
-청도문화(2001, 청도문화원)
-청도군지(1991, 청도군)
-국역 청도문헌고(2009, 청도문화원)
-도주지(1958, 김석봉 편)
-디지털 청도문화대전
- 고성 이씨 후손 및 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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