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리의 조공 별묘, 구강재, 이강재, 한천재 등 / 행전 박영환
청도군 풍각면 안산리는 16년 12월 29일에 이어 17년 1월 3일 한 차례 더 방문을 했다. 처음에는 재실만 들리고 그 다음 날은 절과 교회를 방문했다.

구강재

구강재(龜岡齋)
청도군 풍각면 안산1리(구산마을) 옛 서부초등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266 번지에 있으며 1948년도에 지었다. 건물은 4칸 구강재(방3, 마루1)와 대문(출입구와 방1, 수납공간1)로 배열되어 있다. 지붕은 함석기와이며 주변에 블록담을 둘렀다. 재사 옆에 있는 3칸의 ‘贈司僕寺正趙公別廟’는 맞배지붕에 별도 토석담이 있으며 ‘根本門’이 있다.
이 재사는 함안인 조봉학(趙鳳鶴) 선생의 묘재이다. 어계 조여(趙旅) 선생의 후예로 사복시정(正)을 지냈다. 안산 2리에는 선생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50여호 거주하고 있다.

조공별묘



금강재

이강재(離岡齋)
청도군 풍각면 안산2리 마을 뒤편 산자락 945-2이며 1948년에 지었다. 건물은 목조와가 4칸인 이강재(마루2, 방2)와, 3칸인 대문채(출입문과 수납공간 2)가 있다. 재사 뒤편은 대나무가 무성하며 주변에 시멘트 블록담장을 둘렀다. ‘이강재기’ 등 현판이 걸려 있다. 성주인 배명선(裵命善)[1659(효종 10년 - 1728년(영조 4년)] 선생의 재사이다. 선생의 자는 효순(孝順)이며 호는 죽암(竹岩)이며 화당 배규(裵規) 선생의 10세손으로 대구에서 풍각 안산에 이거하여 정착했다.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두터웠으며 주경야독하여 학문이 높았다. 현재 이곳에는 성주 배씨들이 30여 호 살고 있다.





한천재

한천재(寒泉齋)
청도군 안산2리 정해마을 뒤편 산기슭 1326번지에 소재하며 1924년에 건축되었다. 건물은 목조와가 3칸인 한천재(방2, 마루1), 대문(출입구 및 수납공간)이 있다. 마당 바닥은 시멘트이며 시멘트 블록 담장을 둘렀다. ‘한천재기’와 이 묘재를 건립한 허류, 허백의 글이 걸려 있다.
김해인 허순(許詢)[1634(인조 12년) - 1685년(숙종 11년)] 선생의 묘재이다. 선생의 자는 순일(純一)이고 상무헌 허득량 선생의 아들로서 학문과 덕행이 높았다.



정토원

정토원
청도군 풍각면 안산리 산 198-3에 있으며 1997년에 설립했다. 안산 2리 마을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으며 안산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다. 건물은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는데 판넬집이다. 주지는 원통스님인데 성철스님의 상좌를 지낸 분이다. 대지는 3500㎡이다.



정토원 아래 저수지

안산교회

안산교회
풍각면 노리굴길(안산 2리) 31-9에 있다. 국도변에서 얼마 떨어지 않는 곳에 있으며 대지 795㎡에 본당과 사택이 있다. 풍각제일교회에서 차산교회가 분리되고 차산교회에서 안산교회가 분리되어 나왔다. 처음에는 안태마을에 있었으나 1967년도에 현재자리에 이전하였다. 현재는 신도수가 10여 명 정도에 불과하다. 박석조 목사가 15년 정도 맡고 있다.


경로당

마을 전경

안산은 풍각면에서 경남 창녕군으로 넘어가는 국도 20호선의 남북으로 위치한 마을이다. 제자 허만호씨가 이곳 정해에 살고 있어 몇 번 찾기도 했던 곳이다. 금강재를 찾았을 때는 배씨댁의 할머니가 안내를 해주었고 정토원에서는 신심이 깊은 신도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안산 교회에서는 15년 동안 이 교회에 시무하고 있는 박석조 목사님을 만나 교회의 내력 및 마을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여러 분의 말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의 소개된 내용을 바탕으로 안산마을의 유래 및 현황 등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안태동과 구산동을 병합하여 안산리라 하였다. 폐교된 서부 초등학교가 있는 한길 옆과 안쪽인 구산과 풍각천 옆에 있는 들 마을 노리구리는 안산 1리이고 개울 건너에 있는 안태와 골 안쪽에 있는 정해는 안산 2리가 된다.
계곡이 구부러진 곳은 대부분 거북이와 연관해서 마을 이름을 짓는 곳이 많은데 이곳 구산도 비슷하다. 금곡에서 급하게 내려온 풍각천이 구산 앞에서 굽어져 내려간다. 조선 시대에는 왕자들의 태를 묻기 위해서 명당자리를 정해서 일반인들이 묘를 못 쓰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안태도 명당자리를 잡아 태를 안치할 준비를 했다 해서 안태(安胎)라 했다고 전한다.
샘 바다는 마을 안쪽에 샘이 하나 있는데 그 샘물이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해서 샘 바다라고 이름을 붙였다. 한자로 표기하면서 정해(井海)라고 하였다. 노리구리 또는 노리굴은 들 가운데에 있으며 장평(樟坪)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본래 풍각현의 지역으로 고려 때에는 밀양 도호부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대구부에 속해 있다가 1895년(고종 32)에 청도군 이동면에 편입되었다. 마을 당산제와 솟대 신앙과 보유하고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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